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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에 다녀왔다.
진짜 다연이가 내 동생으로 되어 있었다.
법적으로 완전한 내 동생.
행정복지센터까지는 꽤 걸어야 했지만 다연이와 같이 있으니 지루할 틈은 없었다.
다연이가 힘들어 할 것 같으면 내가 안아서 갔다.
“나 안 힘든데.”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지금도 다연이를 안고 걷는 중이다.
바깥은 조금 쌀쌀하지만 괜찮다. 이렇게 다연이를 안고 있으니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따뜻하다.
다연이의 볼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다연이가 사탕을 입에서 굴리는 소리였다.
“오빠, 그러면 나 약 먹고 또 사탕 먹어도 돼?”
걷다가 다연이가 문득 내게 물었다.
지금 다연이가 먹고 있는 사탕은 행정복지센터의 공무원이 준 작은 알사탕이다.
다연이가 귀엽다면서 준 사탕.
우리들만의 규칙에서 다연이는 하루에 사탕 두 개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만 벌써 두 개 째 먹고 있다.
“음....”
나는 다연이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연이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다연이가 양심선언을 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다연이의 모습이 심하게 귀엽다.
“왜?”
“어.. 오빠랑 약속해서. 하루에 사탕 두 개만 먹기로.”
어차피 하나 더 먹어도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렇게 말하는 다연이가 고마웠다.
그래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 거니까.
“그래, 그런데 오늘은 약 먹고 하나 더 먹어도 돼.”
“우와! 그런데 왜?”
“다연이가 약속 지키려고 했잖아. 그래서 상 주는 거야.”
“우오..!”
“대신 오늘만이야.”
“응!”
다연이가 순식간에 밝아진 얼굴로 헤 하며 웃었다.
웃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아진다.
미소 지으며 바깥을 보고 있던 다연이가 문득 어딘가를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저 나무는 무슨 나무야? 죽은 거야?”
다연이는 행정복지센터에 갈 때도 지금처럼 내게 자주 이렇게 묻곤 했다.
모르는 나무나 건물 같은 것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 때마다 나는 성실하게 대답해줬지만 간혹 모르는 것도 있었기에 잘 모르겠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저거는....”
다연이가 가리킨 나무는 몽우리가 지어있는 벚꽃나무였다.
곧 피어날 것 같이 부푼 꽃봉오리가 나무 끝에 맺혀있다.
“벚꽃나무야.”
“벚꽃?”
“그래, 저 꽃이 피면 엄청 예뻐.”
“얼마나 예뻐?”
“엄청. 그래서 축제도 해. 사람들이 많이 와서 보거든.”
“우와, 정말? 그러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와?”
“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연이 머리카락 개수만큼.”
“우아, 그렇게 많이 오는 거야?”
“응, 엄청 많이. 그리고 재밌는 것도 많이 해.”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흥미가 생긴 듯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재밌는 거 뭐해?”
“불꽃놀이나 게임 같은 거.”
“우와, 그러면 나도 오빠랑 같이 갈 수 있어?”
여전히 다연이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벚꽃축제가 이 근처에서 열리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축제기간은 분식집이 가장 바쁠 때이기도 하다.
그 날을 축제에서 노는 것으로 보낸다면 근처 상인들이 바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축제날을 포함한 그 기간은 근처 상인들에게 대목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연이에게 안 된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축제 기간에는 분식집이 많이 바빠. 쉴 시간도 없을 만큼.”
“그러면 안 돼는 거야..?”
“아니, 대신 마지막 날 밤에 가자. 다른 날엔 일해야 하니까.”
“우와! 응!”
마지막 날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 정도 수익은 다연이를 위해 포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루를 통째로 빼는 건 안 되지만.
그건 앞으로 다연이와 살기 위해서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제 내가 걸어갈래.”
식당 근처로 와서 다연이가 말했다.
“그래.”
나는 다연이를 내려주고 다연이는 우산을 편다.
꽤 멀리서 보는 식당은 나름의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 바로 옆에 붙어있는 건물과도 많이 다르다.
마치 우리 식당 혼자 과거에서 현대로 떨어진 것처럼.
나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 식당이 좋다.
“오빠 식당이 엄청 멋져!”
다연이도 나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식당의 문을 다시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따뜻하다아.”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의 뒷모습을 보고 내일은 꼭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내일도 식당 문을 늦게 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로 틀어줄까?”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지난겨울에 쓰던 작은 난로가 있다. 다시 쓰려면 창고에서 가져와야겠지만 다연이가 추워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난로가 뭐야..?”
“따뜻하게 하는 거.”
“집에서 처럼?”
“음... 아니. 그거랑은 달라. 뜨거운 열이 나오는 거야.”
그 말에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더울 것 같아.”
그리고 웃었다.
“그래.”
조금 걱정됐지만 내가 과민반응하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식당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쿠우.....”
의자에서 졸던 다연이가 완전히 잠들었다.
다연이를 2층으로 안고 갈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2층에서 자던 다연이가 깨어난다면 조금 놀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곳은 청소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깨어났을 때 혼자라면 조금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텅 빈 복도에 눕히기로 했다.
물론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이불을 깔 거다.
주방과도 가깝기 때문에 춥지도 않을 것 같다.
“으암...”
의자 위에서 위태롭게 자고 있는 다연이.
빨리 준비해야겠다.
나는 창고에 있는 오래된 돗자리를 가지고 와서 복도에 깔아놓는다.
내가 이 곳에 오기도 전부터 있던 건데 왜 있는 건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어찌됐든 지금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복도에 깔아 놓은 돗자리 위에 2층에서 가져온 작은 이불을 다시 깔았다.
그리고 덮을 이불까지 준비해 놓는다.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다연이가 편하게 잘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잠든 다연이를 살며시 안았다.
“오빠.”
그 때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일어났어?”
“....”
그러나 다연이는 아무 대답도 없다.
“잠꼬대 하나 보네.”
이렇게 안으니 다연이가 더 작게 느껴진다.
너무 작아서 푹신한 인형 같다.
나는 잠든 다연이를 이불 위에 눕혀 놓는다.
“가지마....”
다연이를 눕히고 가려고 하자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잠꼬대인걸 알고 있어도 그런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잠든 다연이가 내 옷깃을 잡는다.
“그래, 있을게.”
내 옷깃을 잡은 다연이의 손을 대신 잡아주고 이불을 끌어올려서 덮어준다.
그리고 나는 복도에 앉아서 멍하니 주방 쪽을 바라봤다.
다연이도 하루 사이에 나와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오고 잡은 다연이의 손이 따뜻했다.
.
.
.
“장사 열심히 하세요.”
“조심히 가세요.”
간만에 온 손님맞이를 끝내고, 나는 다연이가 앉아있던 의자로 가서 앉는다.
다연이는 아직 잠들어 있다.
쿠우 하며 내는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마저 하던 것들을 이어서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다연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한 절차들이다.
절차들이 생각보다 더 많았지만 시간이 들 뿐, 복잡하지는 않았다.
“햇살 어린이집이라....”
남자가 알려준 어린이집을 검색해본다.
사이트에는 생각보다 어린이집에 대한 정보들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총원이 몇 명이고 지금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몇 명이 있으며 어린이집의 상태와 갖추고 있는 시설들, 그리고 어린이집의 넓이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더 자세하네.”
나는 주변에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들을 차근차근 찾기 시작했다.
우리 집과의 거리부터 시작해서 구비된 시설들까지 살펴본다.
처음이라 뭐가 뭔지 감이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군데를 비교하며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차근차근 후보들을 줄여가니 두 군데가 남았다.
‘햇살 어린이집이랑 나비 어린이집.’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 그런지 이름이 귀엽다.
나는 스크린 샷을 찍어서 두 군데의 정보를 비교한다.
그 결과 두 군데 전부 괜찮다.
평가도 좋고 시설도 쓸 만하고. 다른 점이라면 혜원이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우선 두 군데 다 입소 대기를 신청하기로 하고 휴대폰 화면을 닫았다.
“후....”
입소 대기만 신청하는 것뿐인데도 진이 빠진다.
사실 신청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곳이 다연이를 잘 케어해 줄 수 있을지, 아니면 조금 멀어도 더 좋은 곳을 선택했어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잘 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하는 생각이겠지만 그렇기에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연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혜원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 간다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나는 그런 고민을 그만두고 다연이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아직 잘 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도 잘 자고 있다. 아이라서 잠이 많은 건가.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다연이가 눈을 떴다.
“음.....”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오빠.”
“응.”
다연이는 나를 찾고 있었는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 어디야..?”
“식당. 기억 안 나?”
내 말에 다연이가 눈을 꿈뻑거리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억나, 오빠 식당.”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응.”
다연이는 다시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고 나서 말했다.
“나, 왜 여기에 누워 있어?”
“아까 의자에서 졸아서 내가 여기에 눕혔어. 편하게 자라고.”
다연이가 아, 그렇구나. 라고 말하며 자기가 덮었던 이불을 쓰다듬었다.
“여기 따뜻해서 좋아.”
“그래?”
“응.”
다연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식당에서 졸려도 오빠랑 같이 잘 수 있어서 더 좋아.”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는 미소 짓고 있었다.
“다연이가 그러고 싶으면 거기서 자도 돼. 이불도 깔아줄게.”
“응. 고마워, 오빠.”
다연이가 앉은 채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분명 나 혼자 살 때보다 할 일이 많아졌다. 쓰는 돈도 많아졌고.
짬을 내서 이불도 사고 빨아야 했으며, 어린이집에 다니게 하기 위해서 행정복지센터에도 가야했고 입소 대기도 신청해야 했다.
그런데 다연이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런 피로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힘든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저 미소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 이유가 내 동생이라서 그런 건지 기계처럼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더 고마워.”
정말 내가 더 고마웠다.
다연이가 온지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바뀐 것들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그래서 기계 같던 내 삶이 조금이나마 사람의 삶으로 변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연이와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연이가 사라지면 다시 기계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고 다연이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는 이 마안큼 더 고마워!”
하늘 위로 손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내가 대답했다.
“나도.”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