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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6화 (1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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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 든 김밥은 탱탱하게 잘 말려 있었다.

잘못 말면 속 재료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만든 김밥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집어 든 김밥을 입으로 가져간다.

“음...”

밥의 간도 잘 맞춰져 있고 속 재료의 조합도 좋다.

다만 햄이 두 개나 들어가 있어서 햄의 맛이 더 잘 느껴진다.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다.

“맛있다아.”

다연이를 보니 그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어묵과 떡을 같이 집어서 먹는다.

쩍쩍 달라붙는 떡과 폭신한 식감의 어묵이 맛있다.

“맛있지?”

그 때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다연이의 입가에는 떡볶이의 소스가 묻어있었다. 그렇게나 맛있었나.

“응, 맛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휴지도 다연이의 입가를 닦아준다.

다연이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었다.

“배불러...”

한참 먹던 다연이는 김밥을 몇 개 남겨두고선 포크를 내려놓았다.

배부를 만도 하다.

김밥의 절반과 떡볶이도 꽤 많이 먹었다.

“후....”

의자에 기대듯 앉아서 배에 들이찬 숨을 내뱉는 다연이.

많이 밝아졌다. 아주 많이.

“다행이네.”

우울한 모습이 이렇게나 금방 사라질 줄은 몰랐다.

아마 혜원이나 맛있는 음식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다연이의 원래 성격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뭐가 다행이야?”

“다연이가 맛있어 해서 다행이라고.”

“김밥 엄청 맛있었어!”

“그래.”

남은 김밥과 떡볶이를 전부 먹은 뒤 그릇들을 정리한다.

내가 설거지 하는 모습을 다연이가 옆에서 지켜본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 같다.

“뭐 하는 거야?”

“설거지.”

“오... 설거지이..”

“그래, 다 먹은 그릇은 이렇게 닦아야 돼. 그래야 다음에 다시 깨끗하게 쓸 수 있지.”

“아! 알겠어!”

다연이는 내가 설거지를 끝마칠 때까지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이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고무장갑을 벗으니 다연이가 말했다.

“다음에는 내가 도와줄게!”

“설거지 하는 거?”

“응!”

“안 도와줘도 괜찮은데. 다연이는 도와주는 거 말고 밥 많이 먹고 아프지만 않으면 돼.”

그 말에 다연이가 잠시 생각하는 가 싶더니 밝은 얼굴로 다시 말했다.

“그러면 밥 많이 먹고 도와줄게!”

지금 다연이의 표정을 보고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어.”

.

.

식사를 끝낸 다연이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내 쪽을 보고 있다.

“으...”

정확하게는 내 앞에 놓인 약을 보고 있었다.

오늘 병원에서 처방 받아온 물약.

불그스름한 물약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다.

“약은 쓰다고 했지?”

“......응.”

쓰다고 하면 먹지 않을 걸 알고 있지만 다연이가 이렇게 묻는데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먹으면 안 되지?”

“응, 한 번 먹어 봐. 그렇게 쓰진 않아.”

나는 숟가락에 물약을 담고 다연이에게 내밀었다.

찰랑거리는 물약.

다연이는 그 물약이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다연이가 나와 약을 번갈아가며 본다.

마치 먹긴 싫은데 내가 줘서 마지못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약 먹으면 사탕 줄게.”

“사탕?”

“응, 지금은 없어서 안 되고 나중에 이불 널러 집 가면 사탕 가져오자.”

“으.... 알겠어..”

그리고 다연이가 물약을 꿀꺽 삼켰다.

“으....”

처음엔 표정을 찡그리는가 싶더니.

“어..?”

다시 찡그러진 얼굴이 펴졌다.

생각보다 그리 쓰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만 써!”

“많이 안 쓰다고 했잖아.”

“응, 오빠 말이랑 똑같아!”

그제야 다연이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밥 먹고 난 뒤에는 이거 먹어야 돼.”

“알겠어, 그러면 먹을 때마다 사탕도 먹을 수 있는 거야?”

“응, 대신 하루에 두 개 씩만. 더는 안 돼.”

“음... 알겠어.”

첫 날에 말한 것처럼 이가 썩으면 안 되니까. 그러면 더 아프다.

다연이와 작은 식사를 마친 뒤, 나도 나름대로의 끼니를 해결하려 했다.

그런 와중에 다연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오빠는 왜 밥을 또 먹어?”

“나는 어른이라서 더 많이 먹어야 되거든.”

“이 만큼이나 더 먹어?”

다연이는 놀란 듯 말했다.

하긴 다연이가 먹는 양에 비해서 훨씬 많으니까.

거의 두 배다.

“응.”

“아, 그래서 힘이 센 거구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비슷하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나도 또 먹을래!”

“배부르다며?”

“나도 오빠처럼 세지고 싶어!”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다연이는 집요했다. 그래서 설명해주기로 한다.

“많이 먹으면 세지기는 한데.... 너무 많이 먹으면 배 아파.”

“배 아파..? 아까는 많이 먹어서 뒷마당 문도 열었는데...”

아까라면 점심 장사 때를 말하는 모양이다.

“음... 밥은 나이에 맞춰서 먹으면 돼. 다연이처럼 어리면 작게 먹어도 배부르고 나처럼 어른이 되면 많이 먹어야 배부르게 되는 거고.”

“어.... 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배부를 만큼만 먹어도 힘이 세 질수 있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배 아프고.”

“나도 빨리 세져서 오빠 도와주고 싶은데.”

다연이가 힘이 세 지려는 이유가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라니.

너무 대견스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네.”

“나도 엄청 힘세져서 오빠 도와줄 거야! 그래야 일도 빨리 끝나고, 그래야 나랑 같이 놀 수 있어!”

“그래,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다연이는 비장하게 주먹을 쥐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알겠지?”

“응.”

드디어 납득을 한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밥을 먹는 나를 지켜본다.

잘 먹는 지 감시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

.

시간이 조금 더 흘렀지만 손님들은 간간이 식당에 방문할 뿐 아무도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아무래도 비 오는 날의 영향이 지금 오는 것 같다.

다연이는 할 일 없이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대단한 것이 떠올랐는지 어깨가 들썩거리며 나를 돌아본다.

“왜?”

“생각났어!”

“뭘?”

“선반 위에 올려놓을 거!”

창밖을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한 건가.

그게 창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다연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한다.

“그거 줘!”

툭 하고 의자에서 내려온 다연이가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뭐?”

“그거 사진!”

사진이라면 다연이가 갖다준 사진 밖에 없다.

나는 주머니에서 그 사진을 꺼내 다연이에게 건네준다.

“자, 혹시 이거 올려놓으려고?”

“응!”

재빠르게 사진을 받아간 다연이가 낑낑대며 의자에 올라간다.

그리고 턱하고 사진을 붙였다.

사실 벽에 붙지 못하고 선반으로 안착했지만.

몇 번 시도하던 다연이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거 붙이고 싶어.”

나는 별로 안 붙이고 싶었다.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아니라 다연이 사진이라면 얼마든지 붙일 생각이 있는데.

“안 돼..?”

그래도 다연이의 표정 때문인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돼.”

잠시 후, 나는 테이프 조각을 다연이에게 건네준다.

“자, 이걸로 붙이면 돼.”

“응.”

다연이가 테이프 조각을 들고 다시 의자 위를 낑낑대며 오른다.

내가 대신 해주고 싶었지만 다연이는 기어코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됐다.”

드디어 선반 위에 사진이 붙여졌다.

다연이는 다시 의자에서 내려와 내가 있는 곳에서 선반을 감상한다.

“좋아.”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다연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

“사진 떼면 안 돼.”

“알겠어.”

그리고 다연이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

“벌써 집에 가는 거야?”

다연이가 우산을 쓴 채 물었다.

우리는 지금 식당 바깥에서 문을 잠그는 중이다.

“아니, 잠깐 갔다가 다시 올 거야.”

지금은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세탁기에 돌려놓았던 이불을 널 때라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도 다른 할 일도 있었고.

“그래서 불도 켜놓는 거야?”

“응.”

부쩍 질문이 많아진 다연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집은 식당보다 쌀쌀했다.

보일러를 켜 놓지 않았으니 당연한 말이었지만.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기에 이불이 잘 마르진 않을 거다. 그래도 새 이불을 세탁하지도 않고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나 혼자였다면 이런 건 상관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다연이와 같이 있었기에 다르다.

“나도 도와줄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연이가 세탁기로 쪼르르 달려가 젖은 이불을 잡았다.

“안 도와줘도 돼. 이거 젖어 있어서 감기 더 심해져.”

나는 다연이가 잡은 이불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다연이의 손에서 이불이 스르르 밀려나온다.

“오빠 도와주고 싶은데, 감기도 걸리면 안 돼... 오빠가 아프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러면 이불 말고 다른 걸 도와줄래?”

“뭐?”

축 쳐졌던 다연이의 눈이 다시 생기를 띤다.

“사탕. 아까 약 먹었으니까 사탕 먹어도 돼. 그거 가져와 줘.”

“응!”

나는 다연이가 사라진 틈을 타서 빠르게 이불을 넌다.

이대로 놔뒀다간 마르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이지만 집에 보일러도 켜 놓는다.

“사탕 가져왔어.”

다연이 손에는 막대 사탕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나한테 주려고 가지고 온 것 같다.

“나는 안 먹어도 되는데.”

“아니야! 이거 엄청 맛있어서 오빠한테도 주고 싶어.”

주고 싶다는데 안 받는 게 이상하다. 특히 이런 얼굴로 준다면 더더욱.

“그래, 고마워.”

“응.”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3시 28분.’

식당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한다.

다연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보거나 입소대기 신청 같은 다른 일들이 많았지만 여유롭게 컴퓨터로 알아볼 시간은 없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휴대폰으로 봐야겠다.

게다가 등록을 하려면 다연이의 개인정보도 알아야 되니 근처 행정복지센터에도 들러야 한다.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많구나.

아이를 키우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던 것들.

“내가 사탕 뜯어 줄게. 밥 먹고 힘세져서 내 꺼도 뜯었어!”

그래도 힘들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런 모습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보고만 있어도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해줄래?”

“응.”

사탕을 건네주니 다연이가 야무지게 껍질을 잡고 훅 하며 뜯어낸다.

“읏..!”

그러나 껍질을 뜯어지지 않았다.

다연이가 입에 물고 있는 사탕은 자기 힘으로 뜯기에 성공한 것 같지만 이건 못 뜯었다.

“어.. 아까는 됐는데.”

껍질도 사탕마다 다른 거니까.

“괜찮아. 내가 할게.”

“다음에는 내가 뜯어 줄게.”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집을 나섰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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