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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도 나와 같이 사진을 찍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건 나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할머니와 같이 있었던 6년 동안 딱 한 번 있었던 일이니까.
나는 다연이가 내민 사진을 받아들었다.
할머니와 내가 식당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사진.
심지어 웃지도 않았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웃음기도 없는 사람들은 아마 할머니와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웃음이 없는 게 아니라 정색을 하고 있었으니까.
“오빠가 말했던 그 할머니야?”
“응, 맞아.”
물론 이것 말고도 사진은 남아있었다.
둘이서 찍은 사진은 이것 하나뿐이지만 할머니 혼자 찍은 사진은 몇 장 가지고 있다.
“언제 찍은 거야?”
“음... 2년 전쯤에.”
기억난다.
그 때도 봄이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부탁해 찍은 사진이다.
‘사진 하나는 남겨놔야 할 거 아니야?’
평소에 사진 찍는 걸 싫어하셨던 할머니의 태도와는 조금 다른 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좋을 건 없었기에 평소처럼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사진을 지금에서야 봤다.
꽤 오래된 사진일 텐데 어제 찍은 것처럼 새 것 같았다.
“이거 어디에 있었어?”
“2층, 제일 큰 방에.”
2층, 제일 큰 방이라면 할머니가 지내던 방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2층에 올라갔던 적은 거의 없었다.
비록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사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분명 슬펐고 아쉬웠다. 그러나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흔적을 볼 때마다 다시 슬픈 감정이 차오르곤 했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더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나 잘한 거야?”
내가 조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다연이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응, 잘했어.”
영영 피하려고만 했던 건 아니다.
어찌됐든 이 곳으로 이사 올 계획이었고 그 때가 다가온다면 정리를 하려고 했으니까.
나는 그 사진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고마워.”
할머니가 왜 이 사진을 그 방에 놔뒀는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었겠지.
당장 올라가서 청소를 시작하고 할머니가 남긴 것들을 차근차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장사를 해야 하니까...
사실 그런 핑계로 미뤄두고 싶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마음의 준비는 평생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나중에 하고 싶다.
원룸의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 때까지만.
“사진 옆에 뭐가 하나 더 있었어.. 그거도 들고 올까..?”
내 반응에 다연이도 덩달아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성격이지만 다연이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응.”
두렵긴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 말고 따로 할 일이 있다.
“다연아, 배고프지?”
“배.... 응, 조금...”
떡볶이를 조금 먹긴 했지만 시간이 꽤 지났다.
이제 손님들도 없으니 우리가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그럼 밥 먹자.”
“밥!”
그 말에 다연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물론 밥을 먹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다른 약속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김밥 해 주는 거야?”
바로 다연이가 먹고 싶었던 김밥을 해 주는 것.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다연이는 여태까지 김밥이란 걸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조금 전, 떡볶이를 먹었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면 얼마나 김밥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맞아,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해 줄게.”
“응!”
다연이는 다시 쪼르르 걸어와서 의자에 앉는다.
이제 의자는 다연이의 지정석이 됐다.
품이 큰 후드를 뒤집어쓰고 앉아있으니 의자 위에 올려놓은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옷 때문이 아니라 예뻐서 그런 건가.
나는 다연이의 기대를 받으며 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김밥 발 위에 올려둔다.
이 곳에서 파는 음식들은 모두 할머니에게 배웠다.
나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실력도,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할머니에게 보고 배우며 실력을 늘려갔다.
그럼에도 김밥은 예나 지금이나 딱히 맛이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였다.
김밥이라는 음식은 실력보단 재료들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예를 들어 맛있는 밥이라던지, 속 재료들이라던지.
사실 김밥에 들어가는 건 거의 완제품들이라서 누구나 비슷한 맛이 난다.
적당한 간만 맞출 수 있다면.
“우와, 김밥!”
내가 김 위에 밥을 얹는 모습을 보며 다연이가 작게 말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연아.”
“응?”
“다연이가 한 번 해 볼래?”
“김밥 말하는 거야?”
“응.”
어차피 손님들도 없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니까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빠르게 끝나는 일이기도 하고.
“오빠가 하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아...”
“내가 도와줄게. 다연이는 그냥 나랑 같이 하면 돼.”
“음....”
다연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응, 해 볼게.”
다연이는 설레는 듯한 얼굴로 비장하게 말했다.
“자, 장갑부터 끼자.”
“응.”
나는 다연이에게 투명한 비닐장갑을 끼운다.
어린이용은 없어서 내가 쓰던 걸 줬더니 비닐장갑이 팔뚝의 반을 덮어 버렸다.
“됐다.”
다연이는 커다란 장갑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보기엔 안 된 것 같은데.
“그래.”
그래도 상관없겠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건,
“밥부터 푸자.”
다연이는 힘이 약해서 이건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적당하게 간이 베여있는 밥을 크게 한덩이 뜬다.
툭.
그리고 넓게 펴 바르려고 할 때.
“이건 내가 할 수 있어!”
가만히 지켜만 보던 다연이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해 봐.”
나는 다연이에게 주걱을 넘겨준다.
다연이는 키가 작아서 앉아 있던 의자 위에 서서 김밥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더 인형 같아 보인다.
“음...”
김밥을 예쁘게 말려면 우선 밥이 고루 넓게 펴져야 한다.
그래야 보기 좋게 말린다.
다연이는 열심히 주걱을 휘적거리며 밥을 밀고 있었지만 작은 힘으로는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으이...”
그렇게 열심히 힘을 주다가,
툭.
주걱을 내려놓았다.
“잘 안 돼?”
“응, 그래도 내가 할 거야...”
다연이는 처음 주걱을 잡았을 때보다 더 단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밥은 거의 마무리가 됐다.
다연이가 그렇게 힘줘서 하지 않더라도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다.
그래도 다연이의 도전정신을 존중해주기로 한다.
“으.... 다 됐다!”
결국 만족스럽게 끝낸 다연이가 주걱을 내게 넘겨준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벌써 힘이 빠진 것 같다.
“이 다음엔 뭐 해?”
“이거.”
나는 김밥 안에 들어갈 속재료를 가리켰다.
“우와..”
각양각색의 재료에 다연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냥 속 재료일 뿐이지만 처음 보는 다연이의 눈에는 예쁘게 보일 것이다.
꽤 강렬한 단색을 가지고 있으니 예쁜 게 당연하다.
“이거 하나씩 넣으면 돼.”
“응.”
단무지, 당근 같은 채소들이 하나 둘 더해지고 어느 새 김밥의 속이 가득 찼다.
“이거는 뭐야?”
다연이가 기다란 햄을 가리키며 물었다.
“햄, 맛있어. 먹어볼래?”
끄덕끄덕.
나는 다연이에게 기다란 햄 조각을 먹여준다.
“우오오..!”
맛있는 모양이다.
말랑한 볼이 다연이가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흔들린다.
찰랑찰랑한 게 젤리 같기도 하다.
“맛있어!”
햄은 맛있다.
그냥 맛있다. 어떤 말도 필요 없을 만큼.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혹시 집에 있는 햄도 이거랑 똑같은 거야?”
오물거리던 다연이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집에 사놓은 햄과 소시지가 남아있다.
“아니, 다른 거야. 그런데 그게 더 맛있어.”
“우와...! 이거도 맛있었는데 그거는.... 우와..!”
이렇게 보니까 다연이는 특히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로도 다 표현 못하는 걸 보면 그 생각이 맞겠다.
“엄청 맛있을 것 같아!”
“엄청 맛있어.”
이런 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지.
“우와, 빨리 먹고 싶다.”
다연이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어서 김밥을 만든다.
“그러면 햄은 두 개 넣을래.”
“그래, 그렇게 해.”
뭐든 골고루 먹는 게 가장 좋지만 오늘 하루쯤은 괜찮다.
김밥 위에 차곡차곡 쌓인 속 재료들.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그러면 김밥이라고 할 수 없다.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김밥을 말 차례다.
“이거는 같이 하자.”
“응.”
다연이가 작은 손으로 김밥 발을 잡는다. 그리고 잘 말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준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넓게 편 김밥이 점점 동그래진다.
그렇게 곧 김밥이 완성됐다.
“끝!”
다연이가 끝이라고 외쳤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바르고 김밥을 자르기 위한 칼을 꺼낸다.
“이건 나 혼자 할게.”
“응.”
칼은 위험하니까.
서걱서걱 잘려나가는 김밥이 흐트러짐 없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김밥 완성이다.
“끝인 거야?”
“응, 진짜 끝.”
먹기 좋게 접시 위에 올려놓으니 다연이가 김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다연이가 같이 먹기엔 당연히 김밥 한 줄로는 부족하지만 도중에 손님이 올 수도 있으니 다연이부터 먹여야겠다.
“자, 다연이는 포크 써.”
“포크.”
젓가락 교정기가 없으니 포크로 대체했다.
“이제 먹어?”
“잠깐만 기다려.”
김밥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지만 떡볶이를 곁들인다면 몇 배 더 맛있어진다.
나는 다른 접시에 떡볶이를 조금 담고 김밥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연이를 위한 물도 있다.
“매우면 물 마셔.”
“응.”
맵지 않게 물도 살짝 탔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다연이가 먼저 포크를 들었다. 날카로운 포크.
그대로 김밥으로 달려가서 푹 찍는다.
“맛있게 먹을게, 오빠!”
“그래.”
그리고 김밥을 입에 넣었다.
다연이가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들고 싶었지만 재료를 전부 넣는 바람에 두꺼워졌다.
다연이는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그 말과 달리 먹는데 조금 힘들어 보인다.
“우음...”
그래도 끝까지 뱉지 않았다.
한참을 오물거리다가 꿀꺽 삼켰다.
“맛있어!”
“크진 않아?”
“조금 커. 이제부터는 조금씩 먹어야지.”
다연이의 다음 김밥은 앞 접시 위에서 절반이 잘린 김밥 조각이었다.
산산조각이 났지만 다연이는 개의치 않아 보인다.
“얌.”
순식간에 김밥 조각들을 입에 넣고선 오물거렸다.
“떡볶이도 같이 먹어봐 맛있을 거야.”
“응.”
김밥 하나만 먹기에도 너무 컸지만 조각난 김밥과 떡볶이는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우와...!”
“맛있어?”
“응! 떡볶이도 하나도 안 매워!”
덩달아 물도 조금 마시자 빵빵하던 볼이 금세 평평해졌다.
“오빠도 먹어!”
“그래.”
다연이의 재촉에 나도 김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