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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을게요.”
“잘 먹겠습니다!”
혜원이 부녀가 나에게 말했다.
“다연아 잘 먹을게.”
“나두 잘 먹을게! 다연이가 갖다 준거!"
“네!”
혜원이가 아빠의 말을 뒤늦게 따라한다.
김밥 서빙을 마친 다연이가 살랑살랑 걸어왔다.
“나, 잘했어?”
“응, 잘했어.”
다연이가 다시 의자에 올라가 털썩 앉는다. 그리고 혜원이를 바라본다.
꼭 잘 먹는 지 감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연아, 그렇게 보고 있으면 혜원이가 불편해 할 거야.”
나는 다연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정말?”
“응.”
"오빠가 한 음식 맛있게 먹는지 궁금한데."
"그러면 나중에 물어보자."
"응."
그러자 고개를 돌리는 다연이.
조용한 분식집 안에는 부녀가 음식을 먹는 소리와 간간이 혜원이가 맛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막 점심 장사의 시작이라 밥을 먹기엔 애매하다. 그렇기에 다연이만이라도 먹이고 싶지만..
"나는 오빠랑 같이 먹을 거야. 혼자는 안 먹어."
다연이는 단호했다.
혼자서는 절대 먹지 않을 거라는 태도.
“그러면 맛이라도 볼래?”
“맛?”
“그래, 떡볶이 맛이라도 한 번 봐.”
완성된 떡볶이는 오늘따라 더 맛있어 보인다.
떡볶이의 붉은 색에 눈이 팔린 다연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나는 작은 접시에 떡볶이를 퍼서 다연이에게 건네준다.
떡과 어묵, 갖가지 채소들까지 하나씩 맛볼 수 있게 퍼 놓았다.
“계란도 줄까?”
“응.”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다 결정한 듯 말했다.
다연이에게 조금 많은 양이긴 하지만 괜찮다. 못 먹으면 내가 먹으면 되니까.
먹음직스럽게 담긴 떡볶이. 그 위에 이쑤시개 하나를 꽂아준다.
“젓가락이 없으니까 이렇게 먹자.”
“응.”
그리고 다연이가 떡 하나를 푹 찍어 들었다.
떡 전체에 고루 배인 양념이 뚝뚝 떨어진다. 그만큼 먹음직스러운 모습이 없었다.
“아암.”
다연이가 떡을 한 입에 먹는다.
햄스터 같은 입이 오물거렸다. 떡을 씹기 힘든지 계속 오물거리다가 꿀꺽 삼킨다.
“맛있어!”
다연이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떡볶이는 할머니가 만든 음식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그 방법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 할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맛있을 거다.
“맵진 않아?”
“조금 매워. 무울.”
헥헥 거리는 다연이에게 물을 받아준다.
“그래도 맛있어! 오빠도 먹어!”
“아니야, 괜찮아. 너 다 먹어.”
다연이는 몇 번이나 더 권한 다음에야 어묵 하나를 더 입에 넣었다.
떡볶이 속의 떡과 어묵은 비슷한 듯 다르다.
서로만의 명확한 식감이 있고 그렇기에 그것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떡만 먹는 사람도 있고 어묵만 먹는 사람이 있듯 둘의 취향은 확실하게 갈린다.
나는 어묵을 더 잘 먹는 편이다. 그에 비해 다연이는,
“떡이 더 맛있어!”
떡인 듯 했다.
보통의 아이라면 어묵보단 떡을 좋아하긴 하지.
접시에 담긴 모든 것들을 말끔히 비운 다음, 마지막으로 삶은 계란을 툭툭 건드렸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계란을 기어이 쿡 찍는 데 성공했다.
바로 입으로 가져가기엔 조금 큰 감이 있었지만 다연이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듯 쿡 찍은 이쑤시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 됐다.”
오랜 사투 끝에 삶은 계란을 절반으로 자르는 데 성공한 다연이는 그 중 조금 큰 반을 내게 건넸다.
“오빠 먹어. 안 먹으면 배고프니까 먹어야 돼.”
점심시간이 다 돼서 마침 배가 고프기도 하다.
다연이의 성의를 무시하자니 상처 받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알겠어.”
내가 계란을 받아먹자 그제야 다연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나머지 계란을 마저 물었다.
“얌얌.”
입에 비해 계란이 너무 커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귀엽게 보였다.
분식집 의자에 앉아서 계란을 먹고 있는 다연이의 모습은 어제와는 많이 다르다.
하루 사이에 많이 편안해 보였고 나에게 의지도 하고 있다.
“맛있어."
계란을 다 먹은 다연이가 말했다.
처음 보는 표정인 걸 보니 꽤 맛있게 먹은 것 같다.
“진짜 맛있어! 오빠가 만든 거!”
“고마워.”
다연이의 맛있다는 말처럼 뿌듯한 말은 없는 것 같다.
6년 째, 이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연이의 그 말이 가장 기분 좋았다.
“그럼 나중에는 김밥 해 줄게.”
“에...”
그 말에 다연이의 눈이 커졌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초롱초롱해졌다.
“좋아!”
처음 만났을 때의 다연이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 좋았다.
홀에서는 혜원이 부녀가 식사 중이다.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다연이 오빠분이 만든 거라서 그런가 진짜 맛있네요. 제가 이래봬도 맛없는 건 못 먹거든요. 특히 떡볶이가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배불러...”
남자의 옆에서 먹고 있던 혜원이가 의자에 털썩 기댄다.
병원에서 봤던 혜원이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혜원이의 모습은 음식과의 전투에서 진 병사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먹기를 포기한 혜원이는 의자에서 다시 내려와 처음의 다연이처럼 분식집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들은 딱히 없다. 그렇기 때문인지 혜원이의 시선은 자연스레 다연이를 향했다.
“너도 떡볶이 먹어 봤어?”
혜원이는 첫 만남 때처럼 거리낌 없이 다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첫 만남이라고 해 봐야 불과 몇 시간 전이지만.
하지만 지금 다연이는 그 때와 조금 다르다.
내가 한 음식을 혜원이 부녀가 맛있게 먹었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은 기분까지 좋게 만드니까.
“응! 우리 오빠가 만든 거야! 엄청 맛있었어!”
지금 다연이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단순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밥도 맛있었어!”
“응, 그것도 우리 오빠가 해준대!”
오전과는 다른 다연이의 모습에 혜원이는 더 신이 난 듯 말했다.
아이들은 금세 친해졌다.
혜원이의 아빠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둘이서 식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안 그래도 활기찬 혜원이의 성격 덕분인지 다연이도 진심으로 편안해하고 즐겁게 노는 것 같다.
“진짜 맛있었습니다.”
혜원이의 아빠가 입을 닦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예전에도 여기에 가끔 들렀었는데 이상하게 사장님 얼굴은 기억을 못 했네요.”
뭐, 조용한 사람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 법이니까.
“아, 맞다. 그리고 어린이집 물어보신 거 있잖아요. 그거 혜원이 늦는다고 어린이집에 전화한 김에 물어봤는데 이번 달 지나면 자리가 하나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뜻밖의 좋은 소식이다.
이번 달이면 얼마 남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입소대기를 신청해 놓아야겠다.
“네, 그래서 집이 이 근처면 거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희 애도 잘 다니고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연이를 본다.
오늘 처음 만난 혜원이와 익숙하게 놀고 있다. 저 나이대의 아이들이면 쉽게 적응하고 또 친해지지만 다연이는 나름의 사연이 있는 아이다.
그렇기에 친구나 교육 부분에 대해서도 걱정이 있었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문외한이니까. 그래도 혜원이랑 같이 라면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다연이는 오늘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갔던 거예요?”
“감기에 걸려서요.”
병원에 갔다 온 이후에는 기침도 잘 하지 않아서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 다연이는 감기에 걸린 상태다.
그렇기에 오래 걸릴 것 같은 쇼핑도 하지 않고 바로 왔다.
언제 한 번 날을 잡고 다연이가 입을 만한 옷을 사러 가야 한다.
“혜원이는요?”
“뭐, 마찬가집니다. 요즘에 일교차가 심하잖아요. 게다가 혜원이는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막 놀다가 감기가 걸린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았다. 나도 일교차가 심하다고 느껴지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원래 아내가 오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대신 오게 됐습니다. 주말에는 병원이 문을 안 열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병원들은 웬만하면 주말에 문을 닫는 편이니까.
“사장님은 혼자서 다연이를 키우는 거예요?”
“네, 그럴 일이 있어서.”
그 말에 남자도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남자가 다시 말했다.
“같이 애 키우는 입장인데 친하게 지냅시다. 도와줄 수도 있고, 도움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원래 혼자 키우면 힘들잖아요. 저희는 어렸을 때 결혼해서 혜원이가 왔는데, 둘인데도 힘들었거든요.”
그건 그렇다.
“네, 그래요.”
“이름이 뭐에요?”
남자의 질문에 문득 내 이름을 떠올렸다.
이름이라.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어서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이도 그건 아니었다.
이렇게 금방 떠오른 걸 보면.
“이지훈입니다.”
“이지훈.. 저는 김성진입니다.”
이름이 김성진이었구나.
그 때 김성진이 문득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네.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남자도 직장인일 테니 서두르는 것 같았다.
“혜원아, 가자.”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다연이랑 놀고 싶은데.”
혜원이는 다연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안 돼. 너도 어린이집 가야하고 아빠도 이제 회사 가야지.”
“..... 응.”
혜원이 답지 않게 축 늘어진 모습이 조금 가엽게 보이기도 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가 볼게요. 다음에 또 봬요.”
“네,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오늘 첫 손님을 보내나 싶었는데 김성진의 옆에 있던 혜원이가 내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나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아저씨...!”
“응?”
“저, 다연이랑 같은 어린이집 다니고 싶어요..!”
다연이도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다.
그세 혜원이와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다연이도 같이 다니면 안 돼요?”
다연이와 관련된 것이면 잘 거절을 못하겠다.
이미 전에 다연이에게 설명을 했지만 다시 이런 말을 들으니 더 흔들린다.
“알겠어, 생각해 볼게.”
“네,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고 혜원이가 다시 아빠에게 되돌아갔다.
“혜원아, 너 무슨 얘기했니?”
“아무 말도 안 했어!”
“사장님, 혜원이가 뭐라고 했어요?”
그러자 혜원이가 아빠 모르게 한 쪽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댄다.
말 하지 말라는 뜻이다.
옆에 있던 다연이도 우리가 어떤 이야길 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내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저희 식당 음식 맛있었다고요.”
그 말에 혜원이와 다연이가 살짝 미소 지었다.
"내 말이 맞지?"
"그러네, 미안."
그리고 혜원이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