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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기 계세요?”
혜원이의 아빠가 물었다.
“제가 사장입니다.”
“정말요..?”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던 남자가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이제 기억나요! 익숙하다했더니 여기 사장님이셨군요!”
"나도 이제 기억나...!"
남자의 말 끝에 혜원이가 작게 덧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다연이만이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다연이가 말했다.
“우리 오빠에요!”
다연이는 내가 식당의 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그래, 멋있네.”
혜원이의 아빠가 일부러 더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남자가 맞장구를 쳐주자 다연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나저나 진짜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가끔 여기서 사 먹었는데. 주방이 아니라 바깥에서 봐서 그런가.”
아마 주방에서도, 밖에서도 말을 잘 하지 않는 내 성격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저도 손님을 못 알아봤으니 죄송하죠.”
장사의 기본은 손님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거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는 할머니나 나나 많이 부족하다.
“그러면 뭐 드시겠어요?”
“아, 그렇죠! 밥을 시켜야 하는데 잊고 있었네요.”
남자는 내 말에 메뉴판을 잠깐 훑어보더니 혜원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다. 알겠지?”
“응, 알겠어!”
혜원이의 대답이 끝나자 남자가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저희는 김밥 세 줄이랑 떡볶이 이 인분. 그렇게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드디어 첫 주문이 들어왔다.
나를 보는 다연이의 눈빛이 조금 부담스럽다. 마치 최고의 셰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눈이다.
“열심히 해 볼게.”
내 말에 다연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러면 이제 요리를 시작해볼까.
떡볶이와 김밥. 분식집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다.
우리 식당의 떡볶이는 꽤나 맛있는 편이다.
그 이유는 떡볶이에 들어가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직접 만들기 때문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텃밭이 작아서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다 쓴 날부터는 공산품을 써야 했지만 그럼에도 맛있다는 데에는 거의 대부분이 동의했다.
보통의 식당에서는 그런 것들은 그냥 사서 쓰는 편이고 그러는 것이 더 편하다. 아마 나 혼자 식당을 운영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식당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할머니였다는 거지만.
‘떡볶이는 장맛이지. 그러니까 빨리 가서 고추장이나 더 퍼 와.’
정말로 그 말이 맞는 진 몰랐지만 그 때의 나는 말대꾸 할 여유가 없었다.
할머니의 장은 뒷마당의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파리나 다른 벌레들이 못 들어가게 빨리 움직여야 했다.
고추장을 퍼 오자 할머니가 떡볶이를 만들 판 앞에 서서 말했다.
‘잘 봐. 너도 해야 하니까.’
나는 네, 라고 대답한 뒤 할머니의 행동을 눈으로 익혔다.
할머니의 떡볶이는 여느 분식집의 떡볶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에 고추장을 넣고 곱게 간 고춧가루를 넣는다.
그리고 미리 썰어 놓은 채소들을 더해준다. 양배추나 대파 같은 채소들도 넣고 물이 끓을 때까지 다른 것들을 준비한다.
처음 할머니의 떡볶이를 보고 든 생각은 이거 하나였다.
‘생각보다 정확하게 계량 하시네.’
솔직히 할머니의 성격대로라면 어림짐작으로 넣으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재료들을 똑같이 넣지 않으면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진다.’
뒤늦게 들은 할머니의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말을 새겼다.
식당에서 중요한 건 맛이기도 하지만 그 맛이 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끓은 붉은 물은 벌써부터 떡볶이의 향을 내고 있었다.
새빨간 색깔. 그만큼 매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기억 속의 할머니가 그 안에 떡이나 어묵, 계란 같은 것들을 넣어서 휘휘 젓는다.
새하얗던 떡과 계란이 붉은 빛에 점점 휩싸여서 어느 새 완벽한 떡볶이로 바뀐다.
‘다 됐다. 이제 덜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선 김밥을 말러 가신다.
나는 새빨간 떡볶이 앞에 서서 커다란 접시에 완성된 떡볶이를 담는다.
계란도 넣고 떡도 충분하게. 따뜻한 어묵도 곁들이자 접시 한가득 푸짐하게 쌓인다.
국물도 적당하게 담아주면 드디어 손님에게 낼 수 있는 떡볶이가 완성된다.
“우와아, 빨간색이야!”
저 멀리서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나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애써 멀리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의자에 꼭 붙어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다.
“가까이 와서 봐도 돼.”
“안 돼. 오빠한테 방해 될 거야...”
시무룩한 표정의 다연이도 귀엽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이 훨씬 좋다.
다연이는 자신이 방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은데.
“다연아.”
“응?”
“오빠 좀 도와줄래?”
“.....?”
내 말에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방해 될 거야...”
“아니야.”
나는 다연이 옆에 떡볶이 접시를 올려두고 말했다.
“이거 혜원이한테 가져다줄래? 오빠는 바빠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분식집 안은 따뜻했지만 떡볶이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허공에서 다시 흩어진다. 그리고 다연이가 입을 열었다.
“정말? 내가 오빠 도와줄 수 있어?”
“그럼, 다연이가 도와줘야 해.”
다연이는 접시 위에 올려 있는 떡볶이는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한 번 봤다.
그리고 침을 꼴깍 삼킨다.
“그러면, 해볼게.”
다연이의 표정은 비장하다기 보단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래.”
그래도 걱정하진 않는다. 잘 할 거니까.
나는 접시를 다연이에게 쥐어준다. 그리 무겁진 않아서 6살 아이라도 서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여기 잡아야 돼. 다른 곳은 뜨겁거든.”
“응.”
다연이에게 서빙을 맡기고 나는 김밥을 말러 간다.
물론 정말 가지는 않았다. 다만 다연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숨어서 지켜본다.
“나도 오빠 도울 거야.”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연이 손에 있는 접시가 커 보인다.
뒤뚱뒤뚱 걸으며 손에 쥔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마치 심부름 시킨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처럼 보고 있었다.
넘어지지 말고 무사히 도착해라.
“으...”
그 순간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간다.
그러다.
턱.
다연이가 손에 쥔 접시를 혜원이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김이 피어오르는 떡볶이가 안전하게 서빙이 됐다.
“우와, 다연이가 갖다 준 거야?”
혜원이의 아빠가 다정하게 말했다.
다연이는 자랑스럽게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네! 오빠 도와줬어요!”
“우와... 다연이 멋있어..!”
그 모습을 본 혜원이가 말했다.
“잘했네,"
남자가 그런 다연이를 보고 살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다연이는 쭈뼛쭈뼛 서 있다가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서둘러 김밥을 마는 척 했다.
“오빠! 나, 떡볶이 주고 왔어!”
“그래, 잘했어.”
“또 도와줄 거 없어?”
탄력을 받은 다연이가 자신 있게 다음 할 일을 물었다.
“있어, 잠시만 기다려줄래?”
“응!”
다연이가 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김밥을 시작한다.
김밥은 분식집에서 가장 기본적인 메뉴. 나는 빠르게 김밥을 완성시키고 먹기 좋게 썰었다.
“우와, 맛있겠다.”
그 때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의자에서 김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점심으로 김밥을 해 줄까.
“다연아, 김밥 먹고 싶어?”
“아니야."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해도 되는데.
“점심으로 김밥 먹고 싶다고 해도 괜찮아.”
“정말?”
“그래.”
“그러면 나중에 먹을래. 오빠랑 같이.”
“그래, 그러자.”
그러면 일단 완성된 김밥부터 내놓자.
“다연아, 이거 가져다주면 돼.”
“응!”
힘차게 대답한 다연이가 다시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