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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9화 (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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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녀엉.”

다연이는 방금 전처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네, 안녕하세요.”

병원 입구에 있던 사람은 병원에서 대화를 나눴던 혜원이와 아이의 아빠였다.

우리보다 빨리 나갔을 텐데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걸까.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가자니 그래도 대화도 나눴던 사인데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말을 걸었다.

“누구 기다리시나 봐요.”

“하하, 아뇨....”

그리고 남자가 말끝을 살짝 흐렸다.

“우산 잃어버렸어!”

그 말을 혜원이가 대신했다.

나에게 한 말이 아니라 다연이에게 했던 말이었지만.

“으응...”

“네, 우산을 누가 가져갔더라고요. 아마 자기 꺼랑 헷갈렸나 봐요.”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산 없이 가기엔 비가 꽤 많이 오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둘 다 우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도 인연이 닿은 김에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산 빌려드릴까요. 5분 정도 거리에 편의점이 있어서 사 오면 될 거예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비 맞는 건 상관없는데 혜원이가 있어서 혼자 우산을 사러가기도 조금 그랬었거든요."

"여기요."

나는 내 우산을 내밀었다.

다연이와 같이 맞춘 우산.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자가 우산을 펼친다.

회색 건물들과는 다르게 눈에 확 띤다. 다른 사람이 쓰는 모습을 이렇게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튀구나.

멀리서 봐도 어디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산이 귀여워요!"

“정말 그렇네요.”

다연이가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본다.

“빨리 갔다가 올게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혜원이와 같이 사라진다.

“다연아, 우리는 조금만 기다리자.”

“응.”

나는 다연이와 같이 벽 쪽에 붙어서 남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빗소리가 들리고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들린다.

“오빠.”

“응?”

사람들이 종종 지나다니는 건물 입구에서 다연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어린이집 간다고 했잖아...”

“응.”

“혹시 혜원이랑 같은 어린이집 갈 수 있어?”

같은 어린이집이라.

불과 몇 분밖에 대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만났던 친구여서 그런 걸까.

“왜?”

“음.. 혜원이는 오늘 나, 처음 봤는데 엄청 착했어. 오빠처럼.”

쭈뼛쭈뼛 말을 잇는다.

부끄러운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말은 또박또박했다.

물론 혜원이의 성격이 나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는 있었다.

다연이는 작은 친절에도 크게 반응한다. 여태까지 만난 사람이라고는 아버지와 엄마라는 사람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다연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래서 같이 있고 싶은 거야?”

“응.”

다연이가 용기내서 한 말을 그냥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간단하게 결정하고 싶지도 않다.

혹시 같은 어린이집에 갔는데 혜원이가 다연이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렇다면 다연이는 또 상처를 받게 된다.

물론 그런 과정도 꼭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

아버지와 여자에게 받은 상처 한 번이면 이미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한 뒤, 말했다.

“알겠어, 혜원이 아버님께 한 번 물어볼게.”

“우와!”

“대신 혜원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멀거나 자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

다연이도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응, 알겠어. 멀거나 자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

“그래, 맞아.”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다연이가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최선.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니 혜원이와 아빠가 다시 나타났다.

“진짜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혜원이 비 맞힐 뻔했네요.”

남자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이거는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남자가 나에게 커피를 쥐어준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커피였다.

“그리고 이건 혜원이가 고른 선물.”

“자!”

이번에는 남자 대신 혜원이가 걸어와 음료수를 내밀었다.

“어... 고마워.”

혜원이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연이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것를 받았다.

혜원이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음료수다.

"커피로만 때워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가 볼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기, 잠시만요."

"네?"

내 말에 남자가 멈춰 선다.

그리고 다연이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혹시 혜원이는 어느 어린이집에 다니나요?"

"네..?"

"아.. 다연이도 곧 있으면 어린이집에 가야 돼서요. 혹시 좋은 곳 있으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나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남자도 잠시 멍한 얼굴을 하다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죠."

남자가 가볍게 웃는다.

그제야 옷자락을 꼭 잡은 다연이의 손이 천천히 풀어진다.

"혜원이는 이 근처 민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햇살 어린이집이요."

"너도 와!"

아빠의 말에 혜원이가 덧붙였다.

다연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같이 놀자!"

"응.."

햇살 어린이집이라.

어제 저녁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 이름이다. 심지어 집과도 꽤 가까웠던 것 같은데.

어쩌면 다연이가 원하는 대로 될 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아뇨, 뭘요.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러면 다연이도 햇살 어린이집으로 보내려고요?"

"조금 더 찾아보고요. 가깝고 자리도 비어있으면 아마 갈 것 같네요."

"선생님들도 괜찮고 아이들도 착합니다. 혜원이도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혜원이를 본다.

밝은 미소를 띠고 있는 것처럼 다연이에게 착하게 대한다.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성격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어리기에 잘 숨기지 못 하니까.

혜원이가 잘 다니고 있는 유치원이라면 좋은 곳이겠지.

여건이 된다면 그 곳으로 보내야겠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가 볼게요. 다연이랑은 햇살 어린이집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요."

남자가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나도 남자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손을 흔드는 혜원이.

“안녕히 가세요.”

다연이도 손을 흔든다.

“안녕! 또 봐!”

혜원이의 마지막 말이 끝나고 남자와 혜원이가 멀어졌다.

다연이는 내 옆에 서서 손을 꼭 잡는다.

“혜원이랑 친해지고 싶구나.”

“응, 그래도..”

다연이가 나를 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오빠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지만 말끝을 얼버무리진 않았다.

그런 다연이가 대견스러웠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 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나도 노력해 볼게.”

나는 다연이가 행복해졌으면 하니까.

최대한 그럴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연이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이제 가자. 비 오니까 맞지 않게 우산 잘 쓰고.”

“응!”

우산을 푹 눌러 쓴 다연이.

투명한 우산 사이로 나를 보는 다연이의 눈이 보인다.

.

.

내가 할머니와 함께 일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분식집의 문은 항상 같은 시간에 열었다.

오전 10:30.

식당 준비까지 시간이 걸렸기에 그것보다 더 일찍 나갔지만 문을 여는 시간은 늘 똑같았다.

거의 다른 것도 아니라 항상 똑같은 시간.

‘그런데.’

지금이 마침 10시 30분이다.

나는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늘 지켜오던 규칙을 깨는 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전혀.

문득 할머니가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가게 문을 10시 30분 이후에 여는 짓은 하지 마. 내가 죽어도 그런 꼴은 못 본다.’

그 때는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는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는 그 의미는 안다.

그 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으니까.

어찌됐든 오늘 나는 드디어 그 짓을 하게 됐다.

물론 원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다연이를 위한 거니까.

“어서 오세요!"

가게로 들어가니 가게의 주인이 우리를 반겼다.

"여기는 뭐 하는 데야?"

다연이가 물었다.

"이불 파는 곳이야. 우리 이불 사러 왔어."

"이불...!"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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