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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4화 (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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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샤워를 마친 다연이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화장실에서 나온다.

"다연아, 수건."

"응."

나는 다연이의 머리에 수건을 얹어준다.

다연이가 수건으로 자기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꼭 그 모습이 작은 강아지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사이, 빨아 놓은 옷의 물기를 짜낸다.

다연이가 여기 왔을 때 입고 있던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털어서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는다.

"으..."

다연이가 목소리를 작게 흘리며 머리에 얹은 수건으로 열심히 머리를 닦는다.

"이리 와. 머리 말리자."

"응."

저만큼 떨어져서 머리를 닦고 있던 다연이가 천천히 걸어온다.

다연이는 내 어린 시절과는 조금 달랐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긴 했지만 불신하지는 않는다. 아직 어린 아이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다.

만난 지 한 시간 밖에 안 됐지만 나 같은 경험은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불행을 좋아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다연이가 괜찮다면 상관없다.

다연이는 내 동생이기도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나의 어린 시절 같기도 했으니까.

다연이는 정말 내 어린 시절 같다.

작은 손으로 나를 붙잡았을 때부터 그런 기분이 들었다.

비록 내가 다연이의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해 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다른 경험을 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위이잉.

나는 머리를 말리기 위해 드라이기를 켠다.

그리고 다연이는 내게 머리를 맡긴다.

나와 달리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런지 빗어줘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빗이 필요한데 우리 집에 빗은 없다. 생각보다 사야할 것들이 많다.

옷부터 시작해서 칫솔이나 빗까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그제야 다연이를 키우게 됐다는 것이 실감난다.

내가 원해서 데려온 것이긴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충동적이었다.

처음 다연이를 키우겠다고 한 건 분명 충동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그 행동을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때 결정이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때 다연이가 내 손을 잡지 않았다면 다연이에게서 내 모습을 보지 못했을 거니까.

“앗, 뜨거.”

그런 생각에 빠져 있으니 다연이가 말했다.

“아, 미안.”

나는 드라이기를 떼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긴 머리는 한참 말려야 하는 구나. 한참 동안 드라이기를 대고 있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다 됐어.”

다연이가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안 추워?”

“응, 안 추워.”

다연이는 어색하게 대답하고선 자리에 앉았다.

투두둑.

바깥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아까보다 더 많이 내리는 것 같다.

이제 나도 씻어야겠다.

.

.

.

씻고 나니 한결 상쾌하다.

다연이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 볼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밖으로 나오자 다연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되게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엄청 높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 말을 나한테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긴 전에 살던 집은 작은 주택이었으니까 이렇게 높은 곳은 처음이겠지.

“응.”

다연이는 나와 다르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것도 아니고 아직 어리다.

그렇기에 성격도 조금 다른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의 나였으면 구석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거다.

저런 표정도 짓지 못했겠지.

“높아.”

나도 다연이를 따라서 시선을 밖으로 옮겼다.

사람들이 종종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다연이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엄마를 찾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나였으면 그랬을 것 같다.

어찌됐든 저 나이에는 엄마가 그리운 건 사실이니까.

그 때 다연이가 말했다.

“혹시...나중에는 엄마 만날 수 있어?"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그만큼 그 여자가 보고 싶었다는 말이겠지.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그럴 리 없다고 말해야 할 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나중에는."

내가 말하고도 이게 맞는 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내 오빠인 거야?"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그럼 나랑 계속 같이 있는 거지?"

"그래."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다연이는 버려지지 않길 바라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다연이 옆에 계속 있을게.”

그거 하나만큼은 약속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계속.

다연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응!”

웃을 때는 더 예쁘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투둑.

빗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다연이는 창에서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딱히 할 일 없이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었으니 뭘 보여줄 것도 없다.

조용한 집에 빗소리만 울린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하는 연습이라도 해보는 건데.

그러고 보니 지금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걸 하나 꼽아보자면 단연 요리다.

잘 한다기 보다는 맛없지는 않게 만들 수는 있다.

그래도 할머니한테 배운 게 있으니까.

“다연아.”

“응?”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다연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모르겠어.”

“그러면 평소에는 뭘 먹었어?”

“음... 엄마가 해주는 밥이랑 빵."

여자는 일 하느라 집에 없었던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기엔 힘들었을 것이다.

밥을 차려 놓고 나갔다고 해도 매 끼니를 그럴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 말을 들으니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알려주고 싶다.

"먹고 싶은 건 있어?"

“음.. 오빠 먹고 싶은 거."

아직 처음이라서 어색해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먹고 싶은 걸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더 가까워지려면 아직 한참 남은 것 같다. 다연이는 나에게 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조심스러울 거다.

버림 받는 걸 두려워하기도 했고.

계속 묻는다고 말할 것 같진 않으니 내가 정해야겠다.

그러면 집에 남아있는 건 뭐가 있을까.

열어본 냉장고 안에는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웬만한 식사는 가게에서 하니 자연스레 집에는 먹을 만한 것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연이에게 아무거나 먹이고 싶지 않았다. 첫 날에는 좋은 기억을 주고 싶다.

“다연아, 우리 마트 갈래?”

조금 더 맛있는 걸 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아마 평소의 나였으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렇게 들뜬 말투로는 절대.

“마트?”

“응, 맛있는 것도 많을 거야.”

집에서 늘 아버지와 둘이서 있었기에 사람이 많은 곳을 낯설어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이겨내야 할 문제였다.

오늘부터 조금씩 해 보자.

“알겠어.”

바깥은 춥다. 비 때문에 더 그렇다.

나는 옷장에서 후드 집업을 꺼내어 다연이에게 입힌다.

많이 커서 옷에 잡아먹힌 것처럼 보였지만 따뜻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가자.”

“응.”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이 집을 나설 때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만큼 친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다연이가 옆에 있으니 조금 기분이 다르다. 평생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바스락.

얇은 비닐 소리가 들린다.

‘뭐지?’

쓰레기가 빌라 안까지 들어왔나, 하는 생각으로 뒤돌았다.

그 자리에는.

“봉지..?”

검은 봉지가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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