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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손에 붙들린 아이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잘됐다.”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말한 뒤로 굳어있던 여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그래, 네 동생이야. 네가 키워야지. 보육원에 보낼 수는 없잖니.”
뭐라 대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 여자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이 아이는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거기에 내 잘못은 전혀 없지만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을 때,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왜 아이를 키우겠다고 한 건지. 그리고 아이를 보육원에 맡길 거면 바로 보육원으로 가면 되지 왜 굳이 나를 찾아왔는지도.
그 때 여자가 말했다.
“아, 얘 이름은 다연이야. 이다연.”
이다연. 나랑 같은 성씨를 가지고 있는 걸 알게 되니 괜스레 정말 동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 됐다. 네가 키워줘서 다행이야.”
여자는 그제야 살짝 웃었다. 나는 여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아이를 본다.
"다연아, 오빠한테 인사해야지."
"응..."
여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나를 본다.
그 말에 내가 먼저 아이에게 인사한다.
“안녕.”
“안녀엉...”
아이가 작은 손을 들었다. 너무 작아서 내 손가락을 내밀어 악수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때 여자가 말했다.
“아, 그리고 이 말 안 했는데... 자, 여기.”
여자가 꺼낸 것은 두꺼운 봉투와 작은 옷이었다.
아마 아이가 입을 옷이라고 주는 것 같았다.
쓸만한 좋은 옷이어서 일단 받았다.
여자가 내민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5만원짜리 지폐 덩어리가 들어 있다.
“이게 뭐에요?”
“100만원. 매달 주진 못하지만... 자, 이걸로 키워줘.”
100만원..
꼭 100만원에 아이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싫습니다. 제 돈으로 키울 수 있어요.”
“....그래. 네가 그러고 싶다면.”
여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돈을 집어넣었다.
“아, 그럼 나는 가 볼게. 말한 것처럼 나름의 사정도 있고 해야할 일도 많거든.”
나는 다연이를 바라보았다.
나랑 똑 닮은 눈. 다연이도 그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다연이가 그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본 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다연이의 손은 너무 따뜻해서 오래 동안 잡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여자에게 말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뭐... 방법은 많잖아.”
"...그러면 왜 보육원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나를 찾아 온 거예요?"
"..."
여자는 그 물음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짝 웃으면서 신발을 신었다.
“그러면 진짜 갈게.”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여자는 그렇게 있다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안녕, 사랑하는 내 딸. 다시 만나자."
그 말에 아이가 움찔거렸다.
"엄마..."
"안녕."
여자의 눈에 작은 눈물방울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자가 떠난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런 말을 남겼다고 해도 저 여자는 그저 자신의 자식을 버리고 간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저 여자를 도와준 것이 아니다.
이 아이를 도와준 거지.
아이와 눈을 맞춘다.
다연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아이를 다루는 방법은 잘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나는 네 오빠야.”
“오빠...”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장 눈앞에서 엄마가 떠나간 아이치고는 얌전하다.
그 여자와의 관계가 이 정도뿐이었던 걸까. 여자의 행동으로 봤을 때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 때 다연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갔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응...”
“엄마 다시 안 와요?”
“응, 안 올 거야.”
다연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지만 다연이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억지로 울음을 참아낸다.
“괜찮아?”
“네....”
다연이의 고갯짓에 따라 단정한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의도가 나쁘지 않더라도 그 여자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건 확실하다.
저 여자가 다연이에게 정말로 좋은 엄마였다면 이렇게 울음을 참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나는 다연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연아, 말 편하게 해도 돼. 나는 네 오빠니까.”
“네, 아니... 응..”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나는 다연이의 아빠나 엄마가 아니다. 그저 오빠일 뿐이다. 그렇기에 존댓말을 쓸 이유도 없었다.
이제부터 다연이와 같이 살기로 했으니 오히려 보통의 오빠처럼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말을 하는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다연이는 그렇게 울먹이다가 말했다.
“엄마랑은... 조금만 같이 있었어...”
아이와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다연이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여자와 있었던 시간이 너무 짧아서 억지로 눈물을 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엄마는 매일 일한다고 나랑 같이 못 놀았어.. 그래도 엄마는 좋아.. 장난감도 사줬어... 옷도 사주고 같이 손도 잡았어.."
그래도 다연이의 엄마는 다연이를 돌봐줬다. 자식으로써도 많이 사랑했던 것 같고.
그렇다면 다연이는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지내온 걸까.
“다연아.”
“응...”
설마 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내가 말했다.
“그럼 지금까지 누구랑 같이 있었어?”
다연이의 말을 기다리면서 나는 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시, 다연이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지. 그 힘들었던 시간을 견디진 않았을지.
“....아빠.”
아빠.
다연이의 입에서 그 말만큼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외동임을 차라리 감사하며 살고 있었는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어땠어?”
“아빠는 좋아.. 매일 잠만 자서 얼굴은 잘 기억 안 나는데 같이 옆에 있었어.."
뜻 밖의 말이었다.
그 아버지가 좋다고?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다연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다연이는 그 집에서 괴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연이에게 그 집은 나처럼 힘들고 이겨내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야만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연히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었던 그 곳이 다연이에겐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악마 같은 존재였다.
내가 그 집에 사는 대신에 아버지를 버텨내야만 했었다.
그러나 다연이에게는 아니다.
비록 암에 걸려 쥐죽은 듯 있던 것이지만 다연이에겐 그냥 오래 누워있는 평범한 아버지였고 엄마는 자신을 돌봐주는 여자였고 그 집은 다연이가 부족하게나마 살게 해주는 그런 좋은 집이었다.
그러니까 다연이에겐 아버지와 그 집이 지옥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족하긴 했지만 아빠가 늘 곁에 있었던 집이었다.
다연이는 그 집이 좋았던 거다.
그러고 보니 다연이는 아버지와 같이 살았다는 것 치고는 행색이 깔끔했다.
옷도 젖었다 뿐이지 깨끗하고 예쁜 옷이었다. 머리카락도 잘 정리해서 예쁘게 늘어져 있다. 누가봐도 평범한 가정의 예쁜 아이다.
길에서 보이는 다연이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해도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절처럼 맞으며 불행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다연이는 나처럼 학대를 당하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다연이를 돌봐줬다는 말.
그래서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다연아, 그러면 엄마가 다연이 돌봐줬었어?"
"응, 그런데 엄마는 일 한다고 집에 많이 없어서 내가 자고 나면 집에 왔어. 아침에는 엄마가 없었어. 그래서 엄마랑은 조금만 같이 있었어."
그렇구나.
그 여자가 다연이를 돌보고 있었다.
다연이는 비록 낮동안 아파서 매일 누워있는 아버지와 일을 나가는 엄마 사이에서 놓여 있긴 했지만 여자가 다연이가 자고 있는 사이나 일을 쉴 때 매일 돌봤던 것이다.
다연이 말대로 끼니도 챙겨주고 예쁜 옷도 입히고 장난감도 사주고.
그러나 일 때문인지 다른 것들 때문인지 아이를 세세하게 돌봐주진 못했지만 최소한 엄마의 역할은 했다는 말.
다연이의 상태는 그냥 멀쩡한 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느 곳을 봐도 나 같은 시간은 보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연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나날들을 보냈다. 적어도 다연이가 생각하기에는.
당장 유치원으로 가서 친구들과 뒤섞여 놀아도 당연할 정도였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나에게 다연이를 맡기러 온 건지 모르겠다. 설마 아버지가 죽고 자기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돌볼 사람이 없었던 걸까.
어쩌면... 나를 자극하기 위해 보육원에 보내겠다는 말을 했던 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자의 표정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여자가 나에게 다연이를 맡길 이유가 없긴 했다.
여자는 다연이를 사랑했고 지금까지도 어떻게든 키웠으니까.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다연이가 살고 있던 곳은 지옥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연이에겐 좋은 곳이었다.
혹시 내가 괜히 다연이를 데리고 와서 다연이가 싫어하는 건 아닐까. 사랑하는 엄마와 떨어지게 되는 것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그런데.. 오빠는 안 갈 거야? 안 가고 나랑 계속 같이 있을 거야?"
다연이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아빠처럼, 엄마처럼 안 갈 거지?"
다연이의 목소리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연이를 힘들게 했던 건 내가 겪었던 아버지의 폭력이나 세세하게 돌보지 못했던 다연이 엄마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연이는 나처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엄마가 친절하게 돌봐줬으니까.
그러니까 다연이를 무섭게 하는 건 세세하게 챙겨주지 못해서 다연이를 비 맞히게 했던 엄마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것, 그것이 다연이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다연이는 나처럼 학대를 당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집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으니까.
다연이에겐 그 집이 좋은 곳이었고 좋은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이었다.
결국 상처입은 건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했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거니까.
갑자기 생긴 동생이 나처럼 힘들지 않았던 거니까.
생각해보면 다연이는 늘 혼자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누워있었고 다연이의 엄마는 일 하러갔다고 했다.
일을 나간 엄마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아이를 사랑하고 열심히 키웠지만 정작 옆에는 있어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런 순간 다연이의 옆에 있었던 건 아버지였다. 비록 아파서 누워있던 것뿐이었지만 다연이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다연이에게 아버지는 기댈 수 있는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달리 다연이에겐 그 악마 같았던 아버지가 그 시간 동안 버티게 해준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다연이에게 엄마는 거의 없는 존재다. 매일 나갔었고 매일 밤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 때 다연이는 잠들었을 테니까. 쉬는 날, 같이 옷을 사러간다거나 미용실에 간다거나 했을 때에도 그 잠시의 순간에만 같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연이에겐 아버지의 죽음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을 수도 있단 말이다. 다연이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
내가 그렇게나 증오했던 존재가 다연이에겐 하늘이었다.
나의 악마가 다연이의 모든 것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이 아이의 전부였다니.
분명 다연이는 나와 다른 시간을 보냈다. 좋은 엄마와 항상 옆에 있는 아빠 사이에서.
다만 엄마와 아빠가 사라진 지금, 극도의 외로움이 이렇게 묻게 한 것이다.
다연이의 아빠와 엄마가 떠난 것처럼 내가 자신을 떠날까봐.
그래서 이제 혼자 남겨지게 될 까봐.
지금 다연이를 옭아매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아이의 나이에 비해 너무 큰 외로움.
다연이는 지금 내가 자신을 버리지 않길 바라는 거다. 다연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나에게서도 버려지는 것이니까.
다연이는 그 집에서 괴롭지 않았으니까.
나처럼 괴롭지 않았지만 그 대신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을 지나치게 많이 두려워한다.
다연이는 아버지를 의지했지만 정을 주진 않았다. 당연하게도 아버지는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으니까.
다연이는 지금 그런 존재를 잃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프지만 언제든 대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다연이가 의지했던 건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아버지라는 존재였을 뿐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다연이가 의지했던 그 존재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계속 악마로 기억되어야 할 사람이었다.
우선 나는 내 옆에 앉아있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응, 안 가. 계속 있을 거야.”
하지만 우선은 그런 것들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어찌됐든 지금 나는 현실의 다연이를 키워야 하니까.
“진짜..?”
“그래.”
다연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옷은 젖어 있었다.
깔끔하고 예쁜 옷이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젖어 있다.
많이 젖은 건 절대 아니지만 이대로 놔두면 감기에 걸릴 것이다.
그래도 여자가 아이의 옷을 주고 갔다.
예쁜 옷이다.
나는 입구에 놓아둔 작은 옷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때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감촉이 느껴진다.
너무 작아서 툭하면 떨쳐 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었다.
“왜?”
당연하게도 그건 다연이의 손이었다.
“어디 가?”
다시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금 다연이가 어떤 마음일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옷 가지러. 같이 갈래?”
비록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응.”
“그럼 가자.”
내가 손을 내밀자 다연이가 내 손을 맞잡았다.
따뜻하다.
다연이가 내 손을 잡을 때마다 느끼는 감촉이었지만 정말 따뜻했다.
꼭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손을 잡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자가 넘겨준 옷을 집었다.
잘 말랐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이걸로 갈아입으면 될 것 같다.
나는 옷을 들고선 다연이에게 말했다.
“이제 씻으러 가자.”
“응.”
내 감정 없는 말에도 다연이는 예쁘게 대답해줬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