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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외전(7)화 (181/181)

외전 7

민재에게 생각보다 많은 일이 쏟아졌으므로 지환은 민재가 가야 하는 현장에 종종 나가곤 했다. 민재의 일을 덜어 주기도 할 겸 그가 보내고 싶지 않은 곳은 스스로 자진해서 가기도 했다.

산사태 복구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사상자나 부상자가 별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도 민재는 가능한 한 그런 현장에는 참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2차 피해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지환은 민재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보통 현장이라는 게 다 위험하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후배들이 인사를 해 왔다. 지환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사상자가 없었다. 몇몇이 약간의 타박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가긴 했으나 이 정도면 무난한 편이었다.

구조물을 덮어 2차 피해를 막고, 쏟아진 흙을 옮기면 마무리가 될 작업이었다. 

민재는 오늘 정치인 몇과의 식사 자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이니 빨리 끝내고 나면 데리러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야. 조 짰어?”

지환은 일을 하고 있는 지훈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환은 팀장이었다가 다시 팀원이 되어서 애매한 위치였지만 현장에서 그의 대우는 여전히 팀장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은정이 실장직을 맡아 현장으로 많이 나서는 일이 줄어들어서 현장에서 1팀 인원들은 모두 리더급으로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네, 선배님은 알아서 움직이시면 됩니다.”

지훈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지훈은 신이 났다. 어느새 자신의 위치가 상승해 있는 느낌인 데다 지훈도 슬슬 선배가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환으로서는 꽤 오랜만에 나오는 현장이었다. 지환은 꽤 익숙한 태도로 현장을 지휘했다. 흙을 옮기고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어?”

누군가 의아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환이 위쪽을 바라보자 밀려 내려오고 있는 흙더미가 보였다.

2차 산사태였다. 흙 아래에는 몇 에스퍼가 있다가 이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지환은 빨리 몸을 날려 그들을 둘씩 데리고 거리를 띄워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원래 공사를 하려고 하던 자재가 흙에 파묻혀버렸다. 

지환은 흙 안에 필수 자재를 꺼내려다가 기운 나무에 어깨를 맞았다. 

“아.”

“선배님! 괜찮으세요?”

꽤 아프지만 커다란 부상은 아니었다. 지환이 괜찮다는 듯 어깨를 살짝 돌려보자 지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피 나잖아요! 미치셨어요?”

지환은 그제야 찢어진 어깨를 보았다.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다. 덕분에 옷이 찢어졌으니 또 지급받기 귀찮아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상처를 아마도 민재 선배는 걱정해 주겠지. 지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고, 흙 속의 자재를 좀 더 꺼냈다. 그런 지환을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아니, 아니! 다친 사람 없으니까 뒤로 물러서세요, 선배님.”

“선배님. 피 많이 납니다.”

한눈에 봐도 어깨가 피로 젖은 게 보였다. 이제 집 가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한 지환은 뒤로 물러섰다.

“나 복귀한다.”

“네. 빨리 좀 가세요. 응급처치는요?”

“됐어.”

지환의 응급처치는 민재가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은 멀티가 된 후로 아무는 속도가 더 빨라졌기 때문에 벌써 어느 정도 지혈이 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지환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민재 선배가 오지 않게 하길 다행이었다고 지환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선 안 되는 문제였다. 지환은 이 날의 쉬운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

민재는 친한 사람이 아닌 사람과의 식사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었다. 

“우민재 대표는 고생한 것치고 사람이 참 젊어.”

그야 진짜로 젊으니까…. 그러나 민재는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늙은이의 장단에 맞추었다.

식사는 스테이크 코스 요리였다. 모두가 작은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조금씩 썰어 먹었다. 민재는 그걸 둘러보다 별생각 없이 크게 썰어 입에 넣고 씹었다.

“보내준 서류 봤는데. 잘 준비했더라고. 덕분에 오늘 디테일 설정이 잘된 거 같아요.”

“별말씀을요.”

센터 운영 관련 법안이 조금씩 정해지고 있었다. 오늘 논의했던 사항은 바로 민재가 그렇게 원하던 ‘은퇴 여부’였다. 

그리고 민재의 제안은 통과되었다.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40대 후반이 되면 은퇴가 가능하며 대신 센터 내의 서류 작업 등 다른 방식으로 근무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구조 작업의 경우 좀 더 빠르고 신체적 능력도 활성화시키기 쉬운 나이의 에스퍼들이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진 협의였다. 

민재는 작은 산을 하나 넘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다 의원님들 덕분이지 않겠습니까.”

민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웃을 때 웃고, 조용히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씹어 삼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식사 자리가 끝이 나고 민재는 겨우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산사태 현장은 어때?

중간에 눈치를 봐 보내 놓은 문자에 답이 없었다. 혹시 옮길 게 많나? 현장을 들릴까 생각했던 민재는 우선 옷이라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민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현관 앞에 쓰러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누구일지는 빤했다.

어깨가 짙은 색으로 젖은 사람이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민재는 숨을 들이켜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 사람을 뒤집어 눕게 했다. 

의식을 잃은 지환의 얼굴을 보고 민재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눈을 다시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환이 아니길 계속 바랐는데 그것이 다 틀려 버렸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애초에 치료를 받지 못할 정도로 긴박했다는 건가? 설마 다시 테러가 시작된 걸까? 누군가 지환을 노리는 걸까.

머리가 쾅쾅 울렸다. 민재는 떨리는 손으로 지환의 얼굴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려두었다. 

지환이 열이 펄펄 끓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손이 너무 차가워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민재는 지환의 체온이 뜨거워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체온인 채로 누워 있었다면 민재는 견딜 수 없었으리라. 그는 조심스럽게 지환을 불렀다.

“지환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큼. 민재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지환을 불렀다. 

“지환아.”

민재는 지환의 옷깃을 조심스럽게 풀어헤쳤다. 커다란 상처가 위치하고 있는 어깨가 보였다. 민재의 손에서 흰 빛이 뻗어나갔다. 

상처가 모조리 아물 때까지, 민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상처가 머물고 나서도 민재는 몸 곳곳을 어루만지며 힐을 지환에게 밀어 넣었다.

“음….”

제발 좀. 일어나라. 그렇게 민재가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때였다. 지환이 작게 신음을 하더니 눈을 떴다. 그러고는 눈을 깜박이며 민재를 바라보았다.

“어라? 선배, 언제 왔어요?”

“…너 진짜 미쳤어?”

눈앞이 흐려졌다. 뒷골이 당겼다. 민재는 지금 지환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 어깨… 나 잠시 잠들….”

“미쳤냐고. 너. 지금 나랑 장난해?”

민재의 어깨가 들썩였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지환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민재를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이며 소매로 민재의 코를 닦아주었다.

그제야 민재는 자신이 코피를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만큼 미친 듯이 능력을 사용했다는 것도.

지환은 자신의 몸쪽으로 계속해서 민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지환이 민재에게 입을 맞추려고 할 때 민재는 그걸 뿌리쳤다.

“내가 지금 너랑 입 맞추게 생겼어?”

“…선배?”

“그 현장은 치료팀이 없었어?”

민재의 차분하고 싸늘한 목소리에 지환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아니… 나는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선배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래서. 피범벅인 상태로 쓰러진 꼴을 보여 주셨다, 이거야?”

“아… 선배에.”

“내가.”

민재의 목소리가 쩍 갈라졌다. 왜인지 계속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끅끅거리는 민재의 등을 지환이 가만히 도닥이며 울상을 지었다.

“선배. 내가 잘못했어요. 울지 마요.”

울고 있구나. 그제야 민재는 얼굴에 열이 올랐다. 지환이 쓰러져 있는 걸 보았을 때 민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울고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떨고 있는지도 몰랐다.

“진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진짜. 나 이제 진짜 멀쩡해. 볼래요?”

지환은 거칠게 제 옷을 잡아 늘여 어깨를 보여 줬다. 핏자국을 제외하고는 말끔하게 치료된 어깨를 보고 민재는 이를 악물고 그걸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

“이딴 짓 하지 마. 내가… 내가 치료 못 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는데 너.”

“선배가 치료 못 하는 게 어딨어.”

“B급은 못 고칠 수도 있잖아!”

민재의 목소리가 현관의 벽을 부딪혀 울렸다. 지환이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선배. 저번 등급 검사에선 A였고, 능력 사용에 문제 느낀 적 없었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왜 안 중요해. 중요하지.”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지환의 멀쩡해진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어… 피 묻어요.”

“걱정 좀 시키지 마.”

모든 진이 빠진 기분이었다. 지환은 민재가 걱정되는지 자꾸만 민재를 쓰다듬으며 가이딩을 밀어넣고 있었다. 

“…많이 걱정했어요?”

지환이 물었다. 이 자식은 다 알면서 자꾸 물어본다. 자기가 그렇게 걱정하는 티를 안 냈던가. 민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환의 얼굴을 손바닥을 찌그러뜨렸다.

“그래. 늘 걱정한다. 됐어?”

지환의 눈이 커졌다가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지환이 약속했다. 지환은 약속한 건 지키는 편이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둘이 현관에 앉아서 뭐하는 짓인지. 민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지환이 재빠르게 그를 부축했다. 

“…씻을까요?”

지환이 물었다. 너무 피곤했다. 민재가 끄덕이자. 지환이 민재를 안아 들어 올렸다. 둘이 가지고 있는 작은 루틴이었다. 함께 씻고, 함께 먹고, 자는 것.

그렇게 둘은 계속해서 함께일 것이다. 약속했던 것처럼. 민재는 자신이 고쳐놓은 지환에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부드럽게 토닥이는 감각이 계속되었다.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외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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