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
민재는 주로 인터뷰를 당하는 쪽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에스퍼들의 노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관련된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각인한 에스퍼 가이드 커플을 인터뷰하러 가게 되었다.
지환은 민재를 데려다준 후 센터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환은 함께 인터뷰에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민재가 반대했다.
민재와 지환 역시 꽤나 유명한 커플이었기 때문에 괜히 인터뷰 대상자보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첫 각인을 해 지금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여자가 에스퍼, 남자가 가이드인 커플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이은수로, 남자는 강수현으로 소개했다.
“유명인사를 다 뵙네요.”
은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민재에게 인사를 건넸다.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공식 첫 각인 커플분들을 뵈니 영광입니다.”
인터뷰는 훈훈하게 진행되었다. 첫 각인 당시 인식이 어떠했는지, 절차가 어떠했으며 그 후 과정들이 어땠는지를 듣던 중 일상적 이야기가 나왔다.
“엄청 싸웠죠. 그치?”
수현이 은수에게 묻자 은수는 눈을 굴리며 딴청을 피웠다.
“누가 잘못했더라?”
은수가 말하자 수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누구 잘못이지?”
둘은 어떤 사연인지 민재는 알지도 못하는 걸로 다시 누가 잘못했는지를 한동안 다투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인지 굳어지고 있던 민재는 긴장을 겨우 풀어냈다.
“많이… 싸우셨나 봐요.”
민재가 농담처럼 이야길 꺼내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안 싸우시나요?”
“아… 같이 산 지 얼마 안 되었어요.”
“그럼 곧 싸우시겠네요.”
곧 싸운다니.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민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당연하던 게 당연하지 않아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럴 땐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뭐… 사실 서로 노력한 것도 있고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었어요.”
“어쩔 수 없는 거요?”
“각인한 게 처음이니 만큼 각인을 해제한 예시도 없었으니까요.”
그건 그럴 만했다. 꼼짝없이 엮인 상황이었을 테니까. 민재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각인한 걸 후회한 적이 있나요? 조금 예민한 질문이죠.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후회했는데.”
은수가 먼저 대답했고 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여기서? 그 카드를 꺼낸다고?”
“근데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하길 잘했어요.”
“늦었어. 늦었어.”
자칫하면 상처가 될 말들이 오가는 데도 은수와 수현은 웃고 있었다. 어쩌면 저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쌓인 관계의 두터움이라는 걸까.
민재는 당연함에 대해 생각했다. 지환이 민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이 올까? 그래서 서로 싸우거나 각인한 걸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오래된 커플의 이야길 듣고 보니 싸우지 않는 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재는 인터뷰가 종료될 때쯤엔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민재는 지환이 해주는 모든 것들에 익숙했다. 그러고 보니 관계를 유지하거나 둘이 맞춰 가는 과정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보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곧바로 심란해졌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하듯 인터뷰가 끝이나 밖으로 향했을 때, 민재는 지환이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처음엔 짜증이 났고 그 후에는 묘해졌다. 여태 자신을 데리러 오는 지환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과 자괴감이 듬과 동시에 서운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지환에게 말해 둔 예상 시간보다 이르게 인터뷰가 끝나 있긴 했었다. 그래도 지환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일찍 와서 대기하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어디야?
민재는 지환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곧바로 왔다.
-벌써 끝났어요? 저 센턴데 금방 가요.
센터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냐. 나 그냥 알아서 돌아갈게.
민재는 그대로 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걷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민재와 지환은 딱히 싸운 적이 없었다. 굳이 싸운 걸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사귀기 전, 그러니까 서로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랄까.
그것도 일적으로 의견 차가 있었던 것이다 보니 서로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싸운 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지환은 은근히 고집이 셌다. 민재도 그건 만만치 않아 문제지만. 진심으로 싸우게 되면 최초로 헤어지게 되는 각인커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민재답지 않게 계속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가 있었다. 그건 대부분 지환에 관한 것이었는데 행복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자꾸만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이게 맞을까? 만약 틀어지면 어떡하지.
최근 민재의 생활은 완벽했다. 이상하리만치 꼭 맞는 퍼즐처럼 행복함이 내내 머물러 있는 시간들이었다. 민재는 그게 두려웠다. 그의 삶에서 이런 순간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재는 지금 상황을 망치게 될까 봐 내내 두려웠다. 그는 애인이라든가 하는 관계를 제대로 맺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건 물론 지환도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그렇다면 더 큰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들에 잠겨 민재가 노심초사하게 되었을 때쯤 그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굉장히 살벌한 표정으로 문 앞을 지키고 선 지환과 마주쳤다.
***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지환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했다. 민재는 멍하니 그 꼴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센터로도 안 왔어. 인터뷰 한 장소에도 없어.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어요?”
“내가 알아서 온다고….”
“어디로 돌아간다고 말을 안 했잖아!”
지환이 소리를 질렀다. 민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지환이 그런 식으로 민재에게 소리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집에 오겠지.”
“…당연한 거 맞아요?”
지환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에 민재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게 무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전화는 안 받지. 문자도 확인 안 하지. 사람이….”
지환은 불안에 떨었던 것처럼 손을 떨면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민재는 이를 앙다물었다. 이건 정말로 불공평했다. 지환의 치사함에 민재는 화가 났다. 그래서 굳이 걸고넘어지지 않으려던 부분을 짚고 말았다.
“너야말로 뭐하자는 거야.”
“…아니에요, 선배.”
“야. 너 내가 귀찮아?”
“뭐라고요?”
지환이 억울하다는 듯 민재를 쳐다보았다.
“원래는 데려다 놓고 기다리더니 오늘은 왜 굳이 센터까지 가 있는데? 심지어 네가 먼저 그 인터뷰 구경하고 싶다고까지 했잖아.”
“선배가 안 오는 게 좋겠다면서요.”
“그렇다고 센터를 가란 건 아니잖아!”
민재가 소리를 치자 지환의 눈이 커졌다. 민재는 그렇게 내뱉고 나니 수치심이 들었다. 왜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았냐고 떼를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냔 말이다.
그래도 왜인지 모르게 서운했다. 지환이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았고, 찾아 헤매게 한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서러웠다.
“…하.”
지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민재의 심장도 쿵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복수한 거예요? 늦게 데리러 갔다고?”
“뭐?”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환은 열이 받았다는 듯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선배가 말한 시간에는 분명 안 늦었어. 나보고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건데요.”
그렇게 말하는 지환은 낯설었다. 민재는 속이 뒤틀리는 게 느껴졌다. 그는 그대로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지환이 따라오기도 전에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민재는 그대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물을 걸어 잠갔다. 정확히는 지환과 같이 쓰는 침실이었다. 곧이어 따라 들어온 지환이 민재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요.”
“꺼져.”
“부술 거예요.”
“꺼지라고!”
쾅!
걷어찬 건지 손으로 내리친 건지 문이 흔들리면서 굉음이 났다. 그러나 에스퍼에게 맞춤으로 제작된 문은 한 번에 부서지지 않았다.
이 집은 지환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특수 소재로만 지어 올린 집이었다. 그러니까 웬만한 폭탄에도 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아….”
몇 번이나 문을 내리치더니 지환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런 소리는 또 기가 막히게 민재의 귀에 잘 들렸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 문을 열고 어깨를 감싸쥐고 있는 지환을 노려보았다.
“잘하는 짓이다.”
민재가 이죽거리자 지환이 헛웃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 화났어요. 이유가 뭐야.”
“넌 왜 그렇게 화났는데.”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지환이 작게 숨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전 아직 선배 없어지면 불안해요. 말 제대로 안 해 주고 어디 가 버리지 좀 마요.”
지환이 먼저 꼬리를 내리고는 대화를 시도했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넌 나랑 끝을 생각해?”
“…아니. 나 오늘 왜 이렇게 충격적인 말을 많이 듣지? 무슨 일 있었어, 선배?”
지환은 자신의 어깨가 다쳤다는 것도 까먹었는지 아픈 쪽 손을 뻗어 민재를 잡아당겼다. 자신의 몸쪽으로 가까이 붙이는 건 지환이 불안할 때마다 취하는 행동이었다.
“왜 내가 할 말을 네가 해?”
그러나 민재는 어이가 없었다.
“선배. 각인이 뭐예요.”
지환이 확인하듯 물었다.
“뭐긴 뭐야. 한 사람과 원활한 가이딩을 함으로써 에스퍼의 안정을 찾고 그리고….”
“그니까. 우린 그걸 했잖아요.”
“어.”
“못 물러요. 선배 안 놔줄 거야.”
지환은 그렇게 말하며 민재를 꼭 껴안았다. 칭칭 휘감아오는 팔이 주는 압박감이 나쁘지 않았다. 민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을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왜 불안해해.”
“선배가 워낙 신출귀몰하니까.”
지환이 민재의 귓가에 대고 웅얼거렸다. 이게 진짜 끝까지. 민재가 지환을 밀어내려고 하자 지환은 더 깊게 안아왔다.
“선배.”
“왜.”
“선배 오늘 돌아와서 해야 하는 일 처리 좀 대신 해 두려고 센터 갔었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지환이 속삭였다. 민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투정을 부린 거란 말인가.
“아니… 말을 하든가.”
“당연한 거니까. 생색내고 싶지 않았어요.”
당연한 거라고. 지환은 말했다. 당연한 거라니. 민재는 입을 오므렸다. 오늘 민재가 들은 당연함과 지환이 말한 당연함은 달랐다.
지환에게 민재는 이미 당연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민재는 가만히 있다가 지환을 마주 안았다. 지환이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우리 떨어지면 안 되겠다. 그쵸.”
“…어.”
민재의 작은 대답에 지환이 안고 있던 팔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아기를 달래는 듯한 태도여서 민재는 어쩐지 자꾸만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