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
“그냥 같이 가지?”
“아니에요.”
서연은 민재와 지환의 호의를 극구 사양했다.
오늘은 민재와 지환 그리고 서연과 은정이 태현의 면회를 가는 날이었다.
태현 쪽에서는 자주 서연의 면회를 거절했는데 민재와 지환의 이름을 보자 바로 수락했다고 했다.
그때 새희망복지회에서 민재를 꺼내준 후 처음 보는 태현이었다. 민재는 지환에게 자연스럽게 업혀서 지환의 목을 장난스레 끌어안았다. 컥 하고 지환이 목 졸린 소리를 냈다.
그래놓고는 민재의 엉덩이를 움켜쥐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럼 우리가 먼저 도착할 거 같은데.”
“괜찮아요. 먼저 들어가 계셔도.”
그게 되려나. 이러나 저러나 괜찮은 건 민재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과 서연은 택시를 타고 오기로 했다.
“…조심해서 다녀.”
은정은 둘이 각인을 한 지가 언제인데도 지환을 좀 못마땅해하는 듯했다. 탐탁치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누나. 알겠다고.”
“…진짜 재수 없어. 너 말투 고쳐라.”
지환이 은정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가 웃으면서 말을 자르자 은정이 질색하면서 펄쩍 뛰었다.
“선배. 아무래도 사기야. 당장 각인 취소해.”
“그게 되는 거야?”
과연 각인이 취소가 되는 건가 싶어 중얼거리자 이번에는 지환이 난리를 피웠다.
“되는 거냐고 왜 물어봐요, 선배? 나 지금 상처 받았어.”
하… 민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재는 지환의 귀를 끌어당겨 속삭였다.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출발하자.”
그러자 지환은 씩 웃으며 은정을 바라보았다.
“선배가 둘이만 있고 싶대. 나 갈게!”
민재는 하지도 않은 말을 공표한 지환은 냅다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민재는 하얗게 질린 것 같은 은정의 얼굴을 보고 소리쳐 해명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당연하게도 둘은 빠르게 도착했다. 민재의 얼굴을 확인하자 교도소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절차를 줄여주었다.
“선배 멋져요.”
지환은 별것을 가지고 다 주접을 떨었다. 민재는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 다음 특별 요청한 개인 면회실로 향했다.
“이제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태현은 꽤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씩 웃으면서 물어오는 말투는 이전에 들어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민재는 조금 안심했다.
태현은 에스퍼 전용 특수 구속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특히 물건 복구가 가능한 능력이다 보니 탈출이 용이해 보안에 철저하다고 했다.
신태현은 죽지 않고 살아서 징역살이를 하는 첫 번째 에스퍼였다. 보통 도망 에스퍼가 테러를 일으킬 경우 센터로 데려가 심문을 했고 그 전후로 폭주해 죽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에스퍼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좀 어때?”
민재가 물었다. 좋을 리가 없지만서도.
“괜찮아요. 아버지랑 만나지 않아도 돼서 좋은 것도 있고요.”
“…그래.”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왔어요?”
태현은 용건을 물었다. 그는 민재의 곁에 있는 지환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둘 다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있었다. 민재는 작게 한숨을 삼켰다.
“너희 인사 안 해? 죽고 못 살 땐 언제고.”
“그런 적 없어요.”
지환이 싸늘하게 답했다. 태현은 그런 지환을 슬쩍 쳐다보더니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너 많이 변했다?”
“….”
지환은 태현을 슬쩍 쳐다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현은 쓰게 웃었다.
“왜 그랬어?”
“뭐가요? 왜 센터를 배신했냐고요?”
민재의 말에 태현이 덤덤하게 물었다. 꽤 많이 들은 질문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건 궁금하지 않았다. 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왜 날 살렸어? 네 입장에선 손해잖아.”
“그게 왜 궁금해요?”
“내가 살아 있으니까.”
태현은 민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태현은 입을 열었다.
“그때 구해줬잖아요. 빚 갚으려고 그랬어요.”
“고마워.”
민재가 말했다. 이 말이 태현에게 꼭 하고 싶었다. 태현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는 게 보였다.
“난 몰랐는데 살고 싶었더라고. 그래서 꼭 말해야지 했어. 넌 지금 범죄자로 이곳에 있지만 그래도 네가 용기를 내서 센터의 많은 사람들이 살았어.”
“….”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태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민재는 지환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지환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손수건을 민재의 손에 올려두었다.
태현은 능력 때문에 구속된 채라 제 눈물을 닦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였다.
민재는 손을 뻗어 태현의 눈물을 닦아 주려고 했다. 그러자 지환이 잽싸게 손수건을 뺏어 태현의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아.”
“몇 년 뒤에 센터에 자리 남아 있을 거야.”
태현은 눈을 조용히 깜박였다. 돌아올 곳이 있다고도 꼭 알려 주고 싶었다. 돌아갈 데가 있는 것과 없는 건 많이 다르니까.
“…고맙습니다.”
태현이 고개를 숙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은정과 서연이 들어왔다. 다섯은 개인 면회실에서 울다가, 장난 섞인 말로 서로를 할퀴기도 했다.
장소와 별개로 그들의 일상이었다. 민재는 그런 셋을 바라보다 지환을 데리고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
***
센터에 새로운 풍습이 생겼다. 다름 아닌 특별회식이었다. 말이 특별회식이지 그냥 우석과 오준, 민재와 지환이 하는 더블데이트나 다름없었다.
이번엔 오준의 집에 놀러 가서 같이 술을 마시기로 한 날이었다. 민재가 지환과 함께 샴페인을 사서 도착하자 우석이 새로운 집 테라스에서 이미 버섯과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다.
“오준 씨는?”
“뭐 좀 사러.”
오준의 집에서 행동하는 우석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무리 봐도 자주 드나든 모양새였다. 심지어 우석은 다리가 좀 짧은 편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오준의 것이었다.
“키가 크셨나 봐, 센터장님.”
민재가 놀리자 우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둘이 딱 붙어서 창문으로 기어 들어와 놓고 왜 나한테 그러냐.”
“센터장님 혹시 이게 다는 아니죠?”
우석이 굽고 있는 스테이크를 보고 지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석은 지환을 째려보았다.
오준은 술을 더 사러 갔던 건지 맥주 캔을 박스째로 들고 들어와 냉장고에 술을 채웠다.
“그러니까… 오늘 달리는 거야?”
민재가 듣기로 오준은 술을 못했다. 그런데 왜인지 오준이 비장한 표정인 게 아닌가.
“네.”
“지금 삐져서 저래. 자기야. 오늘 약속한 두 캔.”
우석은 계속해서 고기와 야채를 구우면서 오준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자 오준은 들은 체도 안 하고는 맥주 캔 하나를 따서 들이켜고는 다른 것 하나를 민재에게 내밀었다.
“드실래요?”
민재는 양쪽 눈치를 보다가 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지환이 캔을 집어 들려는 걸 그대로 뺏어 들었다.
“음주 비행 된다고 했어, 안 했어.”
“…고기 맛있겠다.”
지환은 술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술을 먹고 민재에게 주사를 부린 전적도 있었기 때문에 민재는 지환의 술을 금지시켰다.
지환도 딱히 불만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지환이 시무룩한 게 신경 쓰여 민재는 지환에게 캔 하나를 다시 내밀었다.
“이거만 먹어.”
그러자 지환은 피식 웃으면서 민재를 바라보더니 끌어당겨 안았다.
“난 다른 거 먹고 싶은데.”
지환은 맥주를 마시는 민재의 입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라 못 알아들은 척을 하기도 어려웠다.
“오준아.”
그사이 우석이 환장한다는 듯 오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가 두 캔째 원샷으로 들이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자기야.”
우석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오준을 잡고 있었다. 벌써 얼큰하게 술기운이 오른 건지 붉은 얼굴을 한 오준이 우석을 노려보았다.
“왜.”
오. 반말이다. 민재와 지환은 둘의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붙어 앉았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게 서운했어?”
“어.”
우석의 목소리는 매우 나긋나긋했다. 민재가 죽을 뻔했을 때도 거의 보여 주지 않던 목소리였다. 민재는 팔에 돋은 소름을 벅벅 문질렀다. 그러자 지환이 민재의 손을 잡고 그러지 못하게 했다.
“아니. 나는….”
“네 생각 나서 그런 거야.”
오준은 비틀거리면서 우석을 가리켰다. 뭔 소리야. 민재는 지환을 바라보았으나 지환도 영 모르는 소리 같았다.
“그니까 조금만 사람을 덜 들여달라는 게….”
“네가 맨~날 들여보내달라고 그랬잖아. 근데 너 내가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면서 뭐?”
사람 들이는 문제로 실랑이하는 모양이군. 민재는 그렇게 짐작했다. 우석은 최근 그에게 마구 찾아가는 에스퍼와 가이드들의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친근한 사람이 센터장이 되었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래서 오준에게 사람 좀 맘대로 들이지 말라고 한 소리를 해 버렸고, 이 꼴이 난 모양이었다.
“나 그만둘래. 역시 비서 일은 나랑 안 맞아.”
오준은 사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오… 민재와 지환은 감탄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책임감이 대단한 오준은 이렇게 술주정을 한 번 부리고 나면 내일 또 깔끔한 자세로 출근을 했다.
“대표님.”
“네.”
오준이 민재를 불렀다. 오준은 민재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팔을 붙들었다. 뒤에서 지환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저 잘라 주세요.”
“원하신다면요. 퇴직금도 두둑이 드릴게요.”
“야!!”
미친 거 아니야? 우석은 입 모양으로 민재에게 협박을 시전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오준은 민재에게 기대서는 히죽거렸다.
“와… 대표님 짱… 역시 대표님 비서를 했어야 된다.”
그 말이 내뱉어짐과 동시에 민재와 오준의 몸이 떨어졌다. 오준은 우석이, 민재는 지환이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너희 진짜 유치하다.”
민재의 말에도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석은 오준을 눕혀 두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지환은 민재의 팔과 어깨를 손으로 탈탈 털었다.
“뭐하는 거야.”
“내 건데.”
지환은 어린애인 양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 이따금 고기도 구워먹고.”
민재와 지환의 공간은 생겼지만 숙소는 이런 식의 취사까지는 어려웠다. 대부분 급식실이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중얼거리자 지환이 민재를 살짝 끌어안았다.
“선배.”
“응?”
“같이 살까요. 우리?”
이게 무슨 소리지 민재는 바보 같은 지환을 돌아보았다.
“우리 같이 살잖아.”
“아뇨. 숙소 나와서.”
지환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고백하는 사람처럼. 그래서 민재도 긴장이 되었다. 고백을 받은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