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언제나 그렇듯 센터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다만 새로운 문제가 바로 우민재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민재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꼬박꼬박 센터장실에 불려가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능력 남용 때문이었다.
“너 진짜 왜 그래?”
“뭐가.”
“아니 왜 안 하던 짓을 하는데!”
“그러니까 뭐가.”
우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인상을 썼다. 그도 그럴 게 민재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민재는 요즘 아무 데서나 능력을 사용했다. 그게 그냥 눈앞에 조금이라도 다친 사람이 있으면 능력을 사용해 주는 수준이었고, 그건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지정되어 있어. 알잖아. 왜 이래 너 진짜.”
우석은 울고 싶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민재는 그런 우석을 교묘하게 모른 척했다.
“그럼 그냥 지나가? 아프다잖아.”
“아니 실… 센터장님. 우리 선배가 뭐 어디서 크게 사고 친 것도 아니고 힐 능력자가 힐을 사용하겠다는데.”
“넌 진짜 조용히 해라.”
우석이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지환은 아랑곳하지 않고는 계속 민재 편을 들었다.
“이게 다 우리 선배가 마음이 약해서….”
“야. 우민재. 너… 하여간 당분간 능력 사용 금지야.”
“뭐?”
우석의 새로운 사무실에 들어온 뒤로 민재가 가장 격한 반응을 했다. 능력 사용 금지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야. 나 센터장 시킨 건 너다. 꼬우면 네가 해.”
“아니. 권력 남용이잖아 그건.”
“지금 에스퍼 능력 사용 관련 법안 제정이니 뭐니 난린데 자꾸 남발하고 다니지 말라고! 금지라면 금지야!”
우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민재에게 나가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예전 민재가 우석에게 자주 하던 행동이었지만 민재는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야. 너 센터장 다 되었다?”
민재가 이죽거리자 우석이 헛웃음을 쳤다.
“누구 덕분에 이미 센터장이거든요?”
“지환아 쟤 재수 없지.”
민재가 열이 받아 말하자 지환이 곧장 맞장구를 쳤다.
“네, 재수 없어요.”
“야. 너 뭐라 그랬냐.”
우석은 민재에겐 더 뭐라 하지 못해 지환을 걸고넘어졌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우석을 째려보았다.
“비루한 팀장은 갑니다!”
민재는 그대로 지환의 손을 잡고 센터장실을 나와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밖에 앉아 있던 오준이 큰 소리에 놀라 살짝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비서님 남친은 성격이 왜 그래요?”
“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오준의 입이 헤벌어졌다. 민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석 씨가 어때서요.”
그때였다. 오준은 샐쭉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덕분에 민재와 지환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자.”
민재는 지환의 품에 안겼다. 오준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더니 서류를 정리하는 척을 했다. 참나. 민재는 둘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속으로 욕을 하며 지환과 함께 날아서 복도로 향했다.
***
민재의 기분 전환을 핑계로 둘은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어차피 능력 사용도 금지당한 거 직무유기나 할 참이었다.
모든 자리를 받지 않겠다고 한 민재가 유일하게 남겨둔 자리가 1팀 팀장 자리였다. 은정은 실장이 되어서 팀을 나갔고, 민재의 팀에는 지환과 민재 그리고 지훈만 남게 되었다.
사실은 민재도 알고 있었다. 우석이 그러는 이유는 센터 관리부 대표직을 민재가 맡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재는 이제 SSS급 에스퍼가 아니었다. 흔하디흔한 B급이었다. 그런 에스퍼가 센터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민재의 마음에 걸렸다.
민재는 SSS급이라 센터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는 센터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뭐랄까 정말로 히어로가 되고 싶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그런 자리를 맡는 게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환은 쓸데없는 생각을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민재에겐 꽤 중요한 고민이었다.
놀이동산에는 튤립이 피어 있었다. 아마도 꽃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기간인 모양이었다.
최근 민재와 지환은 꽃을 많이 보았다. 민재가 그간 봐온 꽃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였다. 지환은 민재가 좋은 것만 보면 좋겠다고 늘 말했다.
그래서 새로 꽃이 피는 곳이면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칩거 생활을 하다가 나간 자리에서 사람을 구해 인터넷에 소문이 돌았고, 그로 인해 능력 사용을 금지당했으니 이것도 오랜만의 외출인 셈이었다.
“솜사탕 먹을래요? 아님 츄러스?”
놀이동산에는 꽃만큼이나 달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간식들의 향연이었다. 민재가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자 지환은 핫도그와 츄러스, 솜사탕, 닭꼬치, 떡볶이 등 온갖 메뉴를 한 아름 사 가지고 왔다.
“…이걸 다 먹어?”
“네.”
분명 그와 민재는 놀이공원에 오기 전에 아침 식사를 푸짐하게 하고 나왔다.
민재는 지환이 먹는 간식들을 모두 한 입씩 맛보았다. 지환은 민재가 먹은 것을 먹어치웠다. 왜인지 아기 새가 된 것 같아 좀 민망하기도 했다.
“뭐 타고 싶은 거 없어요?”
지환이 물었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범퍼카?”
히어로의 덕목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재는 언제나 안전을 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범퍼카를 타고 싶었다.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상대방에게 차를 들이받을 수 있는 놀이기구라니 너무 좋지 않은가.
사실 중력을 이용해 아찔함을 선사하는 놀이기구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굳이 그걸 타지 않아도 이미 다 경험해 본 것일 것이다. 그것도 더 위험천만한 방법으로 말이다.
“좋아요.”
지환은 자신이 또 범퍼카 운전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중얼거리며 같이 줄을 섰다. 그러고 차례가 다가왔을 때 어이없어했다.
“…아니. 따로 탄다고?”
“어. 나 운전 할 거야.”
“그럼 내가 조수석에 탈게요.”
“싫어. 넌 저기 타.”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려온 어른들 틈에 섞여서 민재는 빨간 차에 몸을 실었다. 지환은 어이없다는 듯 민재를 바라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고는 초록색 차에 몸을 욱여넣었다.
빰빰 빠밤-
꽤 웅장하고 발랄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민재는 액셀을 밟아 지환 쪽으로 향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환의 차가 구석으로 처박혔다. 지환의 몸이 덜컹거렸고 민재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하. 민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음으로는 민재가 지환에게 쫓겼다. 민재는 빠르게 빈 공간을 찾아 요리조리 움직였고, 직진해 오던 지환은 다른 아이들의 차에 부딪혀 좌우로 쿠당탕 흔들렸다.
지환이 결국 민재의 미니카를 들이받는 데 성공했을 때도 민재는 웃음을 터뜨렸다. 킥킥거리는 민재를 지환이 행복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선배, 우리 귀신의 집 갈래요?”
“그런 건 다 가짜잖아.”
“비명 한 번도 안 지르고 나오는 사람이 비명 지른 사람 딱밤 때리기 어때요.”
“가자.”
그렇게 해서 둘의 다음 코스는 귀신의 집이 되었다. 둘은 호기롭게 귀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둘 다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으아아아악! 선배!”
“악! 비켜 봐!”
둘은 누가 딱밤을 맞을지 정할 수도 없었다.
이쯤 되면 출구가 나와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형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재와 지환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동공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형아들.”
어린 목소리가 다시 둘을 불렀다.
“어… 어?”
지환이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옆쪽에서 절뚝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악!”
민재와 지환은 일단 눈을 질끈 감은 채 비명부터 지르고 보았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울먹이고 있는 어린아이가 눈에 보였다.
꼬맹이는 대략 5~6살 남짓 되어 보였다. 그 아이는 어디서 넘어진 건지 한쪽 무릎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길을 못 찾게써….”
아이는 계속 코를 훌쩍거렸다. 민재는 우선 쪼그려 앉아 아이를 안아 올렸다.
“엄마나 아빠는?”
“밖에.”
밖에? 엇갈렸나?
“근데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귀신의 집은 연령 제한이 있었다. 아무리 부모 동반이라고 해도 들어오기가 힘들 텐데.
“몰라.”
혼날까 봐 그런 건지 아이는 모른 척을 했다.
민재는 아이의 다친 무릎이 신경 쓰였다. 어두운 길이지만 민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규지니.”
“규진이?”
규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규진아, 지금부터 형아가 마술을 쓸 건데 이거 비밀로 해 줄 수 있어?”
“비밀?”
“응. 약속.”
민재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규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약속을 했다. 민재는 곧바로 몸에서 흰 빛을 내었다. 곧장 규진의 무릎도 치료되었다.
빛이 생기자 그간 걸어온 길이 그저 합판과 철골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란 게 보였다. 왜인지 민재는 맥이 빠지는 기분이 되어 출구 앞까지 규진을 안고 걸었다.
“…뭐야? 어?”
걷다 보니 출구가 나왔다, 앞에 가던 커플 하나가 뒤에서 밝은 기운이 생기자 돌아보았다가 민재를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민재 아냐?”
“우민재다. 박지환이랑.”
좀 더 성의 있게 귓속말을 해 주면 좋을 텐데 너무 잘 들렸다.
민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출구 앞에 규진을 내려놓자 곧바로 뛰어나가는 게 보였다. 다행히도 바깥에선 부모님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직원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 규진아!”
“엄마!”
민재는 조금 전 귀신 분장을 한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보다 공포감에 젖은 느낌으로 밖으로 향했다. 규진은 약속 따윈 홀라당 잊어버리고 큰 소리로 저 형아가 치료도 해 주었다고 말했고, 단시간 안에 민재와 지환은 인파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설마 귀신의 집에서 사건 일어났어요?”
“아닙니다….”
“오빠 잘생겼어요. 오빠라고 해도 돼요?”
민재는 지환을 끌어당겼다.
“자유이용권 못 쓰겠다.”
“그러게요.”
지환이 민재를 안아 들었다.
“히어로 우민재래.”
쑥덕거리는 소리가 둘의 귀에 다 들어왔다. 민재와 지환은 서로를 보면서 웃음을 참았다.
“선배.”
“어.”
“그냥 해요. 대표직.”
민재는 지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 아닌가.
“선배가 히어로인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여기도 봐. 달라질 거 없어요.”
지환이 속삭였다. 달라질 게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우석한테 또 큰소리도 칠 수 있으니까.
“그럼 오늘 일로 시말서 안 써도 되겠지?”
“당연하죠.”
지환이 못 말린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민재는 여전히 서류 작업은 질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