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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71)화 (17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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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이 원한 것은 단순했다. 그는 평등을 원했다. 어릴 때부터 똑똑했던 그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불평등이었기 때문이었다. 남들과 다른, 가난한, 소수의 같은 수식어가 붙은 자들은 무조건 소외당하게 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세상이 그랬다. 그리고 보통 소외된 자들은 여러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수식어 중 하나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궁창 인생은 내내 시궁창일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그는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난한 집을 버리고 나온 후로 그는 데모에 미쳐 살았다.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싸우는 삶이 좋았다. 그 순간에 경준은 뜨거웠으며 살아  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걸 싸움으로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세상이 두텁게 쌓아 올린 불평등이란 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경준은 자신의 평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이 세상을 바꾸기에는 너무 짧다는 점이 걱정되었다. 

자신의 신념을 확실히 가진 후로 경준은 데모판을 떠났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그는 돈을 벌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증오로 가진 자들의 생리를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을 잘 이해했고, 그건 돈을 버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처음엔 공사판에서 시작했던 것이 누군가의 투자를 받고, 그 이상을 버는 일로 발전했다.  

신경준은 나름 타고난 사업가였다. 그건 그를 아는 이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정치를 시작했다. 자선 사업도 여럿 진행했다. 그 긴 여정 안에서 그는 결혼을 했고, 자식을 얻었고, 아내를 잃었다. 그리고 서연과 만났다. 

서연은 작은 몸으로 혼자 기다란 행렬을 거슬러 달리고 있었다. 눈에는 슬픔과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경준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자신과 함께해 줄 것이다.  

새희망복지회는 단순히 지원사업을 하거나, 정치적 세력을 얻기 위해 만들어 낸 도구 같은 게 아니었다. 그건 경준의 비전이자, 꿈이었다.

에스퍼란 무엇인가. 그것이 등장하면서부터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던 세상이 더 끔찍해졌다. 애초에 같은 조건을 가질 수 없는 생리인데, 운으로 타고나는 초능력이라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본인들이 불평등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원래 불공평했다. 그리고 초능력으로 인해 그들이 삶에서 손해 보는 게 있다면 그걸 없애 주면 모두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겠는가. 

경준은 정말이지 평등한 세상을 보고 싶었다. 모두 같은 조건에서 시작해 원하는 만큼 노력해 일구어내는 삶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경준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보통 뉴스는 제대로 된 진실을 전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이게 필요했다. 필요악인 셈이다. 경준은 자신이 일구어 낸 것들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히어로 센터의 상황이 진정되었습니다. 히어로 우민재가 능력인 힐로 대다수의 에스퍼 및 가이드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딩동. 

“신경준 의원. 계십니까? 문 열어 주시죠.”

경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가 몸을 일으켰다. 총구가 곧바로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평범한 사람 체포하는데 이렇게들 몰려오기까지 하시고.”

경준이 이죽거리자 총구가 들썩였다. 그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은 일반 경찰이나 형사가 아니었다. 특공대였다. 그러니 그는 지금 특수범인 셈이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주십시오. 가택 수사 및 긴급체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멍청한 자식들. 속으로 욕을 뇌까린 경준이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릴 때였다. 그의 시야에 특공대 뒤쪽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현이 들어왔다. 

“이… 쓸모없는 놈!”

경준이 팔을 뻗어 삿대질을 하자 탕! 하고 총성이 바로 옆에서 울렸다. 공포탄이 발사되었다. 귀가 얼얼했다. 경준은 팔이 뒤로 꺾이는 순간에도 제 아들을 노려보았다.  

*** 

민재는 몸에서 무언가가 소진되어 가고 있는 걸 느꼈다. 천천히 눈을 뜨자 일몰과 함께 자신이 내뿜는 빛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지환이 민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모두 홀린 것처럼 지환과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이딩 돌아왔는데?”

한 명이 중얼거리는 걸 시작으로 모두 자신의 손목을 확인했다. 농도 짙은 힐로 인해 가이딩이 새는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방식이 성공한 것이다. 대부분의 에스퍼들이 정상 수치까지 가이딩이 돌아왔다고 했다.  

몇몇 위험했던 자들도 가이딩이 계속 새는 상태를 면했다. 그래서 가이딩 약물을 추가로 사용함으로써 정상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민재는 손목을 들어 올려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민재의 가이딩 수치는 노란색으로, 위험 상태가 아니었다. 지환의 가이딩이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와 별개로 몸의 상태가 어딘가 허전했다. 민재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 보았다.  

‘힐이 안 나온다.’

가이딩이 남아 있는데 힐이 더 나오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민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지금 이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주목.”

민재의 차분한 어투에 모두가 집중을 하는 게 느껴졌다. 

“테러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곳곳에 숨겨진 장치에 남겨진 약물이 있을 수 있으니 모두 주의하도록.”

“네!”

큰 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민재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센터장은 죽었다. 그리고 센터의 건물들은 모두 오염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에스퍼와 가이드들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누군가는 자유를 꿈꿀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대로 변화하면 좋겠지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센터를 부수고 다시 세운다.”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민재는 손을 들어 센터 바깥에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가리켰다. 

“오늘 우리는 많은 것으로부터 버림받았어. 알아. 너희도 나만큼이나 복잡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지켜냈어.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민들도 지켜냈지.”

“….”

“그래서 나는 우리가 자랑스러워. 너희가 진짜 히어로다.”

문제가 생기고 국가가 가장 먼저 한 결정은 히어로 센터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 모두가 폭주하고 서로를 죽이다가 끝나는 결말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어로 센터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민재는 자신이 발현해서, 이곳으로 왔고 히어로 센터에서 히어로로 길러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자랑스러웠다. 이 모든 것을 일군 희대의 사기꾼이 허망하게 죽어 버리고 나서 생긴 일이 센터의 부활이라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앞열 쪽에 서 있던 한 에스퍼가 말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한 명의 에스퍼가 환호를 시작했다. 죽다 살아난 이들이 손뼉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민재는 그 광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잠깐의 감격적인 상황이 끝나고 히어로 센터의 인원들은 곧바로 일을 이어 나가야 했다. 말 그대로 센터의 모든 건물을 ‘부수고’ 다시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해가 완전히 저버리고 나서도 쉬는 인원이 없었다. 빛 에스퍼들이 띄워 놓은 불빛 아래서 그들은 센터의 건물들을 부쉈다. 은정이 가장 신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좀 통쾌한데?”

장난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한두 군데에선 또다른 약물 살포 장치를 발견해 콘크리트 아래 두고 부수기도 했다. 그렇게 늦은 새벽이 되고 나서야 조 박사가 있는 건물을 제외하곤 모든 건물이 망가졌다.  

민재는 조 박사가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 박사는 입구 쪽에 서서 바깥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이제 여기도 부술 거야.”

민재의 통보에 조 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긴 안 돼!”

조 박사는 갑자기 벽에 딱 붙어서서는 만세 자세를 하고 자신을 죽였으면 죽였지 그건 안 된다고 소리쳤다. 민재는 그런 조 박사를 무덤덤한 얼굴로 가만히 쳐다보았다. 

“후회하진 않아?”

“…뭘?”

“나한테 한 짓 말이야.”

민재는 당시 10대였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였다. 그럴 때 부모에게 버림 받고, 모두의 쓸데없는 기대와 원망을 샀다. 그런 그를 조 박사가 어떤 태도로 실험했는지 민재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필요한 것이었어.”

조 박사는 그 모든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린애를 그렇게 끝없는 고통 속에 밀어 넣었으면서 그게 필요했다고.  

민재는 그 말로 자신의 마지막 죄책감을 덜어냈다. 그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민재는 자신의 폭주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자들에게 더 이상 속죄하지 않을 것이다. 민재에게도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오늘 여길 부수지 말라고 했던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조 박사는 자신의 ‘업적’이라고 부르는 끔찍한 세계를 지켜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를 진창에 처박을 것이다. 민재가 그렇게 만들 것이었다. 

민재는 건물을 나와 자신의 옆에 붙어선 지환을 끌어안았다. 

“선배야말로 진정한 히어로예요. 이 말 꼭 해 주고 싶었어.”

지환이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민재는 쿡쿡 웃었다. 그러고는 지환의 뒷덜미를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민재는 지환에게 힐을 넣어 주려고 했으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아야 했다. 

“지환아.”

“응?”

“나 능력이 다한 거 같아.”

지환이 고개를 들어 올려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어쩌면 오랫동안 바랐을 순간이 오고 나니 깨달았다. 민재는 센터를 정말로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환과 헤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빨개진 눈으로 지환이 속삭였다. 그래. 괜찮을 거야. 민재는 눈을 감고 지환의 손길을 느꼈다. 소용없는 가이딩이 안으로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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