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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센터가 너무 조용했다. 그는 다른 곳들을 둘러보려다가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로비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모여있는 에스퍼와 가이드들을 발견하고는 아연실색했다.
여긴 폭탄이 터졌던 건물이다. 물론 골조만 상해 흉할 뿐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여기 모여 있단 말인가.
[현재 약물 테러 현장이 되어버린 히어로 센터 밖에는 일시에 에스퍼들이 폭주를 일으킬 상황에 대비해 특수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센터장 측은 답변을 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내부 상황을 알아보기도 힘들어 시민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야. 윤 비서는 무얼 하고.
그는 잠시 현실을 잊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말로 센터 외벽 너머로 더 높게 올라간 바리케이드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
김진성의 입에서 비틀린 헛웃음이 새어 나갔다. 저 잡것들은 특종거리를 달라고 빌빌거릴 땐 언제고 이렇게 그를 모욕한단 말인가. 자신이 만든 히어로 센터는 이렇게 쉽게 무너질 리가 없었다.
김진성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뉴스가 나오는 모니터 화면 뒤쪽 코드를 뽑아 버렸다. 순식간에 로비에 침묵이 감돌았다.
“센터장님?”
누군가 그를 불렀다.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니 멍청한 주호영이었다. 기껏 실장 자리에 앉혀 줬더니 이 사달을 만들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쳤다. 김진성은 손을 들어 호영을 가리켰다.
“이 멍청한 새끼야! 저 밖에 바리케이드가 쳐질 때까지 넌 뭐했어? 어?!”
“…센터장님은 어디 계셨죠?”
평소라면 벌써부터 꼬리를 내린 채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 텐데 호영은 그러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진성은 남몰래 이를 갈았다. 주호영은 에스퍼지만 멍청한 데가 있어 힘을 크게 쓰면 간단한 최면이나 암시 정도는 가능한 편이었다.
‘어쨌든 아직 애들을 통솔하고 있던 인물이니 이놈을 굴리면 나머지는 따라오겠지.’
김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능력을 사용했다. 주호영의 뇌세포에 보이지 않는 손을 뻗어 그의 생각을 조종했다.
“…바리케이드로 인해 더 위험해질 수도 있겠네요.”
잠시 뒤 암시가 통한 건지 주호영이 진성이 원하는 대로 입을 벌려 말했다. 김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그런데 바리케이드를 지금 그냥 가서 제거하는 건 더 위험합니다. 센터장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약물 테러로 우리 동료들 몇을 잃었는지 알고 계신 겁니까?”
호영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김진성은 암시가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주호영이 자신에게 대들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에스퍼가 아니라 센터장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지금 뭐라고 하는지 스스로 자각하고 있나?”
“센터장님.”
무언가 할 말이 많다는 듯 주호영이 앞으로 나섰다. 평소 늘 아니꼽게 생각하던 최우석은 웬일인지 싸늘한 얼굴로 김진성 쪽을 살피기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그 옆에 있는 이서연의 얼굴을 발견했다. 이서연은 묘한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배신자는 저것이구나. 저것이 기어이 일을 쳤구나. 진성은 치를 떨었다.
“이서연…!”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더 확실해졌다. 이 일의 배후에는 이서연이 있다.
서연이 과거에 자신과 악연이었단 사실을 김진성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고 우연히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가이딩을 받으며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는 거래를 하기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꿍꿍이가 있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으면서 진성은 그녀를 봐줬다. 그랬던 건 자신이 하는 일에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성은 곧바로 능력을 발휘했다. 이대로 여기 있는 에스퍼들의 정신을 장악하는 거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 볼 만했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센터 내부 인원들을 다루는 데에도 더 쉬워질 가능성이 있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진성은 그런 상황에서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했다.
김진성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자신의 뇌파가 눈앞에 있는 모든 이에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묘한 쾌감이 일었다. 그가 에스퍼로서 처음으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 보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서 하얀 빛이 터졌다.
불꽃놀이를 하듯 강렬한 빛이었다. 머리 안쪽에서 전기가 이는 것처럼 펑! 하고 무언가 터지는 것도 같았다.
하얀 빛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모든 건 아직 내 손 안에 있다. 김진성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이 빛을 따라가면 편해질 것이다. 모든 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김진성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빛을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을 끝으로 그의 몸이 발화했다. 그가 나름으로 지켜오던 모든 것이 재가 되는 건 최고도, 최저도 아닌 한순간일 뿐이었다.
***
-센터장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더 버티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요.
민재는 서연으로부터 온 문자를 받고 지환과 허공에서 멈추었다. 계속해서 장치를 색출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으나 이게 어디까지 설치된 건지 모두 짐작하기가 어려우니 어려움을 겪고 있던 참이었다.
“…김진성이 죽었다고?”
믿기 힘든 메시지였다. 그치가 어쩌다가 죽었으며 그걸 또 서연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어딘데.
민재가 문자를 보내자 서연의 답이 곧바로 도착했다.
-로비에 많이 모여 있어요.
로비라. 설마 로비에서 김진성이 죽었나?
-로비에서 폭주로 사망했습니다.
민재의 입이 헤벌어졌다. 통쾌해야 할지 어이없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소식이었다. 메시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민재가 걱정되는지 지환이 비행을 멈추고 상태를 살피는 듯했다.
“…센터장이 죽었대.”
민재의 말에 지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잘되었네요.”
잘된 일이었다. 꼭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으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민재는 그 뒤로 이어진 전화를 바라보았다. 지환의 폰이었으므로 모두 지환에게 오는 연락일 테지만 지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민재도 그러했다.
“여보세요.”
[선배. 그래도 상태 괜찮은 몇 비행 에스퍼가 바리케이드 너머로 일반인 직원들 밖으로 안전히 내보내는 데 성공했어.]
은정이었다. 민재는 숨을 내쉬었다.
“너희 로비에 있지.”
[어… 대부분 그리 모여 있어. 아 그리고 혹시 센터장….]
“알아.”
[하아….]
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가 찰 노릇이지. 정신적 충격으로 폭주가 가속화되고 있는 자들이 많을 수도 있었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막 자신이 고려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너희 움직일 상태 되는 애들 서로 도와서 다 훈련장으로 집합해.”
[훈련장?]
“응. 잘 부탁해.”
지환과 돌아다닌 결과 눈에 띄는 건물에 좀 더 많은 개수의 약물 살포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훈련장은 원래 충격에 대비해 다른 건물들과 다른 소재와 구조로 되어 있는 데다 폭주 대비가 잘되어 있는 곳이라 크게 노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런 결과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새희망복지회는 단순히 에스퍼들을 학살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리고 몇몇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살아서 버티고 있는 에스퍼들이 꽤 많다.
그러니까 저들의 이때까지 행보를 통해 보자면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에스퍼들이 단체로 일반인이 되는 걸 말이다.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여태 그쪽이 미치지 않은 상태였던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민재가 가장 안쪽에서 필요한 걸 개발하는 잭을 제거했으니 초조해질 만했다.
그래서 훈련장엔 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기에도 꽤 괜찮은 곳이었다. 민재의 말을 듣고 지환이 훈련장으로 빠르게 향했다. 저쪽에서 단체로 줄지어 민재의 말을 듣고 오는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보였다.
“…선배. 나랑 한 약속 기억하죠?”
지환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소중히 하라는 약속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민재는 바람에 흩날리는 지환의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불안을 담은 눈을 맞추고 민재가 말했다.
“우리 각인 발표 할까?”
지환의 동공이 부풀었다.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그 눈빛이 민재는 좋았다. 언제나 올곧은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따금 민재 앞에서 요동치는 지환을, 민재는 꼭 구하고 싶었다.
모인 에스퍼들은 모두 지친 표정이었다. 그럴 만했다. 눈앞에서 동료를 잃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민재는 잘 알았다.
에스퍼들은 각자 조를 짜서 경계를 유지하고 진영을 유지하면서 움직여 민재의 앞에 열을 맞추었다. 민재가 구상했던 방법으로 교육된 에스퍼들이었다. 그러니 민재가 생각했던 대로 움직여 주고 있었다.
“…고맙다.”
민재가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하자 에스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오늘 너희가 보여 준 것들은 정말 영웅적인 것들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그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 보려고.”
민재는 그대로 지환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지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마무리.”
민재는 그대로 지환의 얼굴로 다가가 입을 맞췄다. 지환의 눈이 커졌다가 살짝 접히는 걸 보고 민재는 눈을 감았다. 밀려드는 가이딩과, 민재를 갈구하는 지환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민재의 몸에서 하얀 빛이 눈부시게 퍼져나갔다.
민재는 힐을 내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환의 입맞춤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 남은 힐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히어로 우민재의 힐이 퍼져 나가는 광경은 눈부신 천국 같았다고, 그곳에 있었던 한 에스퍼가 목격담을 털어놓은 건 꽤 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