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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9)화 (17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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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솟구친다든가, 현장이 모두 타 버린다든가 하는 상황은 에스퍼에겐 흔한 것이었다. 폭탄이 눈앞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능력에 따라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에스퍼들은 처참한 광경에 익숙한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외부에 발현 에스퍼를 구조하는 작업을 복귀한 지훈은 덤덤한 표정으로 로비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몇몇이 ‘탄내’에 대해 이야길 하는 걸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매캐한 냄새가 나긴 했다. 현장에서 돌아온 이들에게서 나는 냄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발현 에스퍼가 죽었다는 걸 의미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타워 위에서 분신 자살을 하겠다고 한 에스퍼는 우민재 히어로에 의해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조 직후 폭주 현상을 보여 안정시키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로비에선 큰 소리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일이 쉽게 터지는 곳이었지만 좀 이상하긴 했다. 한꺼번에 일이 이렇게 되다니? 센터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가 폭파되어 버린 것도 그랬다. 그쪽에는 특수설계가 되어 있어 건물 자체가 무너질 일은 없었으나 밖에서 보면 꽤 흉측하게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되어 있는 건물 상황이 우스웠다. 

지훈의 눈앞에는 위층에서 우르르 내려온 건지 긴장한 얼굴로 로비 끝 쪽에 모여 서 있는 가이드들이 보였다.

뭐지? 쫓겨났나? 아니면 설마 가이딩실도 같이 폭파당했나?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저 앞에서 은정이 지훈을 향해 손짓하는 게 보였다. 

“네, 선배님!”

“바깥 상황 보고해.”

“네, 저….”

말하면서 빨리 움직이려던 때였다. 쿨럭. 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지훈이 옆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낯이 별로 익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지훈은 그게 어떤 증상인지 알았다.

“헉. 괜찮으세요?”

“이상… 켁!”

또 피가 울컥 쏟아졌다. 지훈은 손목을 잡고 확인했다. 그러자 붉은색 경고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이내 경고음도 울리기 시작했다. 

“저리… 가세요…!”

에스퍼는 피가 묻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지훈을 밀어내려고 했다. 지훈은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런 지훈을 에스퍼가 꽤 강한 힘으로 밀쳤을 때였다.

“지훈아!”

은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의 동공이 부풀었다. 

펑!

순식간에 에스퍼는 폭발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폭발의 여파로 인해 뺨이 작은 유리 조각들이 스치는 것처럼 쓰라렸다. 지훈은 얻어맞은 사람처럼 뒤로 밀려나 넘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는 재만 남았다. 폭발의 여파로 화상과 부상을 입은 에스퍼들도 모두 지훈처럼 멍한 얼굴로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경악이 깃든 침묵이 무겁게 그 공간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바닥의 그을음과 파괴된 타일들, 처참한 바닥의 몰골만이 그 에스퍼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어쩌면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명이 일었다. 지훈이 귀를 틀어막았다. 쓰러지는 가이드들도 있었다. 

숨이 막혔다. 뛰어오며 지훈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르는 은정이 보였다. 몇몇 가이드들이 에스퍼들을 붙잡고 가이딩을 하고 있었다. 몇몇 에스퍼들은 긴장한 얼굴로 가이딩 약물을 연신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서 소형 전투 대형으로 서 있는 에스퍼들이 보였다. 

“어?”

지훈처럼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스퍼가 로비로 들어서며 의문을 표했다. 선배님.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지훈은 은정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

-시작됐어.

우석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센터에서 죽어 나가는 에스퍼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지환에게 안겨 복귀하고 있던 민재는 초조해졌다.

타워에 기어 올라가 난동을 부리던 자식은 어떻게든 목숨줄을 붙여놓은 참이었다. 그래야만 복귀할 면이 서기 때문이었다. 지금 민재가 빨리 간다고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민재는 마음이 계속해서 급해졌다.

“지환아. 빨리.”

민재의 말에 지환이 더 속력을 냈다. 바람이 시리게 민재의 몸을 때렸다. 지환은 상황 파악을 시켜주기 위해 머리가 쥐어뜯긴 것인 양 되어 있는 로비 건물의 외관과 일 층에 모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에스퍼들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빠르게 선회해 비행했다. 

상황을 본 민재는 지환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약물을 미세분포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부 배신자가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지환의 질문에 민재는 잠시 고민했다. 만약 내부 배신자라면 지금 원인을 파악해 제거하기 어렵게끔 약물 살포 장치를 설치해 두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찾아서 일단 파괴시키는 게 가장 빨랐다. 

지환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민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부터 가 볼까요?”

“가이딩실 뒤쪽으로 돌아서….”

지환은 민재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건물을 빙 둘러 가이딩실이 있는 위치 쪽으로 올라가 보기 시작했다. 환풍구부터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건물 뒤쪽으로 달려 멀리 멀어지고 있는 인영이 하나 보였다.

뒤통수만 보였기 때문에 신원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민재는 지환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저기.”

민재가 바라보는 시선을 좇은 지환은 급하게 하강했다. 그리고 인영이 가까워지자 민재는 그게 익숙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영아.”

“아, 선배님.”

호영은 굉장히 당황한 듯 보였다. 멍하니 민재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방향을 틀어 되돌아가려고 했다.

“어디 가던 길이었는데?”

“아. 저기….”

호영이 가리킨 곳은 막다른 길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 데나 가리킨 거 같은데. 민재는 호영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그의 손목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호영이 거친 몸짓으로 민재의 손을 뿌리쳤다.

“주호영.”

지환이 꽤 살벌한 목소리로 호영을 불렀다. 민재는 지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가만히 있으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지환은 못마땅한 얼굴로 호영을 노려보고는 침묵했다.

“무슨 일 있어? 실장이 이렇게 변두리에 있으면 어떡해.”

“…선배님 돌아오셨잖아요.”

호영은 민재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민재가 돌아왔으니 이제 실장이 아니라는 건가. 여러 가지를 고려하느라 호영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니 민재는 조금 머쓱해졌다. 실장 자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데.

“무슨 소리야. 지금 실장은 넌데. 난 그냥 복귀했을 뿐이고.”

“…그래도요. 팀장님이자 실장님이셨는데 지휘해 주세요. 모두가 그걸 원할 거예요.”

호영의 목소리에는 영혼이 없었다. 딱히 이죽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한데? 민재는 지금 호영이 낯설었다. 

“무슨 일 있어, 너?”

“…아뇨.”

호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으나 그게 더 이상했다. 민재는 호영을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약물 맞거나 다쳤어? 폭주 전조 오고 있어?”

겉으로 멀쩡해도 몰아치는 경우가 있었다. 

“선배.”

지환이 민재를 불렀으나 그는 다급하게 다시 호영의 손목을 잡아챘다. 호영은 그래도 책임감이 강한 편이니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힘들다는 걸 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간 목숨을 잃기 마련이다. 

“놓으라고요!”

호영이 소리치며 민재를 밀쳤다. 당황한 민재를 뒤에서 지환이 가볍게 받아 들었다. 지환은 경계가 되는지 그대로 민재를 들어 올려 뒤쪽으로 몸을 날려 물러섰다. 

“미안. 괜찮아?”

민재가 다시 묻자 고래를 숙인 호영의 어깨가 들썩였다. 다시 고개를 든 호영의 얼굴은 젖어 있었다. 

“전 폭주 안 해요, 선배님. 저는….”

“…?”

“전 이제 못 날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지. 민재는 멍하니 우는 호영을 바라보았다. 민재는 다시 호영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손목을 빠르게 낚아채 확인했다. 이번에는 호영도 포기한 듯 뿌리치지 않았다. 호영의 손목은 붉은색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색이 붉은색인데 경보음이 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지 오래되었어요. 한 이 주?”

민재의 시야가 흐려졌다. 

“제가 욕심을 부리다가 이렇게 되었어요. 선배님, 저 어떡해요, 이제? 저 못 날아요….”

끅끅대며 호영이 설움을 토했다. 민재는 가만히 호영의 등을 도닥였다. 저 멀리서 다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여야 했다. 민재는 등을 도닥이던 손으로 호영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야. 그래도 넌 아직 실장이야. 실장이 위험을 뒤로하고 튀어도 되냐?”

호영의 눈이 흔들렸다.

“…가서 네가 애들 멘탈 잡아. 지금 날지 않아도 기댈 데가 전부 필요할 테니까.”

호영의 눈이 흔들렸다. 이제 에스퍼라고 하기 애매해진 몸이 된 호영은 센터 중심으로 들어가면 목숨이 위험해지기 더 쉬울 것이다. 그래도 이게 민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이자 명령이었다.

“…감사합니다.”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감사 인사를 한 호영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호영아.”

민재가 호영을 불렀다. 호영은 다시 센터로 뛰어가려다 말고 민재를 바라보았다. 

“행정실 일반인부터 보호해. 할 수 있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쉽게 죽을 사람들은 모두 행정실 사람들이었다. 민재의 말에 호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민재와 지환은 환풍구 구석진 곳에 부착된 작은 장치를 발견했다. 민재는 그것을 지환에게 내밀었다. 지환은 방어용 장갑을 장착하고는 그 장치를 터뜨렸다.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어 다행이네.”

민재가 말하자 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센터를 샅샅이 뒤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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