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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8)화 (169/181)

168

가이딩실은 겉보기엔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았으나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센터 내 에스퍼 대부분이 출동한 상황이었다. 

우석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대강은 알았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그것이 예상 범주 안에 있을지는 모르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넌 상황이 급박해지면 무엇을 가장 중시할 것 같냐.”

민재는 우석에게 물었고, 우석은 한참을 고민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존이라고 답했다. 민재는 묘한 표정으로 우석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너답다.’라는 평을 남겼다.

우석은 그것이 이기적인 대답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스스로를 위한 결정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겁을 먹어보았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봤다. 민재는 기적처럼 돌아왔지만 그 기적이 또 일어난다는 보장 같은 건 없었다.

우석은 그저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건 도무지 견디고 싶지 않았다. 

우석은 앞에 서 있던 에스퍼를 불렀다. 

“실장님. 부르셨나요?”

“네. 여기 좀 앉아 봐요.”

장부를 확인하니 B급 에스퍼였다. 이런 에스퍼들이 오히려 가이딩 변화엔 민감한 편이니 손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면 좋겠다. 싶었다. 에스퍼를 앉히고, 맥박을 확인하듯 손목을 보여달라 부탁해서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실장님!”

누군가 우석을 다급하게 불렀다. 우석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우석은 바깥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이딩 접수를 받는 쪽으로 걸어가자 투명한 무언가에 어깨를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비상을 알리는 경보음이 다시 울렸다. 

“비상.”

우석이 짧게 중얼거렸다. 폭주 에스퍼가 센터를 돌아다닐 경우를 대비해 가이딩실을 고립시키는 것으로 강화실드가 가이딩실 전면에 내려온다. 이 경우 경보가 해제되거나 실제 폭발이 감지되기 전까지는 실드가 해제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었다. 가이딩실 전체를 가로막는 두꺼운 외벽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걸 바라보고 있던 우석의 머릿속에 순간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오준이 어디 있지?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면 지금 가장 위험한 곳은 센터장실이었다. 센터장이야 어떻게 되든 우석의 알 바가 아니었지만 그 앞에서 자릴 지키고 있을 오준은 다쳐선 안 되었다.

우석은 외벽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몸을 날렸다. 저 위에 오준이 있다. 그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누군가 우석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래서 우석은 크게 휘청였고 그가 넘어짐과 동시에 외벽이 닫혀 버렸다.

“왜 그래요.”

우석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는 오준과 눈이 마주쳤다. 헉. 우석은 숨을 몰아쉬면서 자신이 숨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떻게 여기….”

그의 질문에 오준의 당황한 표정이 묘하게 굳어 들었다. 안 좋은 소식이구나. 예감한 우석은 오준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센터장이 사라졌어요.”

“네?”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오준이 말한 듯했으나, 근처에 있던 에스퍼가 큰 소리로 되물었다. 우석은 옆쪽을 보았다. 귀가 밝아도 너무 밝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센터장이 없어졌다니.

“언제 발견했어요?”

“좀 전에 비상사태 보고하려고 들어갔다가… 없어진 거 봤어요.”

오준은 거의 우석의 귀에 입을 박다시피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사라진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거였다.

“센터장님이 그럼 납치라도 당하신 건가요?”

에스퍼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도 무언가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쳐 버렸을 확률이 높았지만, 우석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한 뒤 민재와 연락을 취할 방법을 알아내려고 하던 찰나였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폭발음이 근방에서 들렸다. 외벽 때문에 어디서 들렸는지 정확히 알아내긴 어려웠지만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가이드들과 몇몇 에스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찔렀다. 우석과 오준이 눈빛을 교환했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쿵!

조금 전의 폭발음과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습격인가. 우석은 자연스럽게 다른 가이드들과 오준을 자신의 뒤쪽으로 밀었다. 

쿵! 쿵! 쿵!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갈수록 빠르고 커졌다. 우석은 이 성질 급한 소리가 설마 자신이 아는 사람일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곧바로 풀렸다. 부서진 벽 뒤에서 팔이 까져 피를 흘리면서 짜증을 내는 은정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다. 우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은정은 투명 실드 앞에서 손짓했다. 다 비키라는 소리였다. 우석은 빨리 비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은정은 훈련장에서 가지고 온 특수 무기로 실드를 찢었다. 그제야 소리가 좀 더 선명해졌다.

“다 나오세요.”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빠르게 구멍으로 나아가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김진성은 자신이 마련해둔 벙커에 앉아 있었다. 벙커에 앉으면 땅속에서 센터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센터장실이 폭파되는 걸 보면서 그는 자신의 판단력에 감탄했다.

“도대체가….”

왜들 그렇게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 건지. 김진성은 자기연민에 가득 차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김진성은 그래도 언제나 히어로 센터를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피곤하다.”

피로감에 절은 목소리로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유년의 한 풍경의 그의 앞에 펼쳐졌다. 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긴 테이블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기, 수저가 있었다.

“오늘치 과제는 다 한 거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이 고개를 들어 옆쪽을 바라보자 김진성과 닮은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바로 했어?”

다시 한번 들어오는 질책이 섞인 질문에 김진성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늘 그러했듯 순식간에 허무에 휩싸여 움직이지 못했다.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계. F 추정.

김진성의 원래 등급은 F였다. 그의 아버지의 생에 있을 수가 없는 등급이었다.

그랬기에 김진성은 늘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지금의 E급도 그가 노력해 얻어낸 것이다. 낮은 등급일수록 등급을 올리는 게 어렵다는 걸 그의 아버지는 아마 모를 것이다. 아마 김진성의 부친에게는 E나 F나 같을 것이다. 패배자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김진성의 인생에 최고가 아닌 것이 섞여 들어서는 안 되었다. 먹는 것, 입는 것도 그랬기 때문에 그가 맞추어야 하는 기준도 그러했다.

“이럴 수가….”

절망 섞인 아버지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자꾸만 부풀어 올랐다. 김진성은 눈을 깜박였다. 실제인지 가상인지 모를 존재가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붙들었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알겠어?”

어깨를 붙든 손이 몸을 흔들었다. 마구 흔들리며 김진성의 고개가 앞뒤로 왔다 갔다 할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고장 난 라디오가 그러하듯 늘어지면서 끝없이 반복되었다. 

“너희가 이해해야 돼.”

김진성이 중얼거렸다.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은 최고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에스퍼로 살 수 없었다. 그러나 히어로 센터의 인물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에스퍼와 가이드로서 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가 그들이 받는 선망까지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난 최선을 다했어.”

누구한테 하는 말일지 모르는 말이 내뱉어졌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노력했다. 그래서 최고가 되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나?

아니 그는 최고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의 김진성은 선망을 받는 국회의원이며 히어로 센터의 수장이다. 전쟁과 테러와 관련된 국가의 존망이 달린 위험에서 언제나 모두가 김진성을 먼저 찾는다. 왜냐면 히어로 센터를 일군 것이 자신이니까.

“나는 사람이다. 사람인 나는 센터장이고, 많은 것을 이루었고….”

그는 고장 난 기계처럼 계속해서 같은 말만 내뱉었다. 이대로 살다 보면 삶이 마감된 뒤 저승에 가서 부친을 뵐 면목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던 노인네가 칭찬하는 꼴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E급 에스퍼, 김진성.”

어쩌다 그걸 들키게 되었을까. 김진성은 자신을 배신했을 사람을 추려보았다. 애초에 그는 그런 가능성을 잘 배제해 두기 때문에 후보도 거의 없었다.

이서연 혹은 조 박사.

조 박사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는 성정이 유약하고 맹한 데가 있어 감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서연? 그녀는 김진성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 해 직접 들여 자신의 가이드로 만든 존재였다. 

이서연에겐 그를 닮은 무언가가 있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눈. 김진성은 그 눈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진성을 배신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계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민재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동정해서?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서연은 너무 오랜 시간 센터에 있어 왔다. 그러나 그녀가 비교적 흐리멍덩한 눈을 하기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였다. 

하루는 이서연이 가이딩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모든 걸 영원히 비밀로 할 테니 봐달라고. 그러나 김진성은 그런 그녀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지내고 있던 값진 패가 값이 떨어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쓸 줄 알아야 진정한 승리자니까.

폭발의 여파 때문인지 코가 매웠다.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도 이상했다. 김진성은 연기가 자욱한 화면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은 E급 에스퍼 따위가 아니었다. 

그걸 똑똑히 우민재를 비롯한 모두에게 알릴 것이다. 이서연도 마찬가지였다. 김진성은 그렇게 벙커를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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