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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7)화 (16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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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민재는 지환과 함께 침대에 누워 서로의 입에 과자를 집어 넣어 주다가 뉴스 채널을 틀었다.

[‘실험실’이라는 곳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에스퍼들이 연이어 폭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검찰은 특수조사대를 꾸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해당 에스퍼들은 현재 히어로 센터에서 제1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지환을 보았다고 진술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게 뭐야?”

“…하.”

민재가 어이없어하자 지환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저 아니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네 이름이 왜 나오는데. 쟤들 풀어줬다고 하지 않았어?”

“네.”

“뭔가 조작되었나?”

아무리 그래도 굳이 자신의 정체를 밝혀가며 저럴 때는 뭔가 다른 일이 있는 것일 터였다. 민재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자 지환이 옆에서 더 꽉 껴안아 왔다. 

“제가 진짜로 꾸민 일이라곤 생각 안 해요?”

“네가 왜?”

민재가 단호하게 되묻자 지환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민재의 어깨에 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지환이 자주 민재의 어깨에 머리를 맞대고는 흔들어 대서 옷이 더 쉽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 센터장이었다. 이제 뉴스에선 누군가가 히어로 센터의 참상을 밝히겠다며 전력 타워에 올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지환은 전화를 한 번 씹었다. 그러나 센터장은 집요했다. 민재는 지환의 폰을 집어 들었다. 

“왜.”

“…민재 군.”

지환의 전화를 민재가 받자 김진성은 당황한 듯 떨떠름함을 내비쳤다. 민재가 짧게 묻자 그는 이내 자신의 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나?”

“알아.”

“…센터가 위험해.”

“그것도 알아.”

이런 방식일 거라고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생각보다 귀찮아졌다.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민재의 대답에 김진성이 흥분했다.

“그럼 당연히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넌 히어로잖아!”

“내가 왜.”

민재의 단호한 대답에 김진성은 잠시 침묵했다. 당연히 민재가 긍정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민재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높은 타워에 있는 자의 쇼를 중계하고 있는 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자는 정말로 신념이 있어서 저기에 올라간 것일까. 아니면 어떤 모종의 이유로 협박을 당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민재가 정말로 그들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단 거였다.

“내가 가기 전에 명령을 하나 하고 갈 거야.”

“….”

“문제가 심각해지면 센터의 일반인들부터 대피시켜.”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고?”

김진성은 감정적으로 굴었다. 매번 능구렁이인 양 원하는 바를 얻어내던 것과 달랐다.  민재가 자신의 최대 약점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일이 좋지 않게 흘러가니 그런 듯했다.

지금 상황이 조금 재밌긴 했으나 김진성이 계속 이렇게 나오는 건 불안했다.

“똑바로 대답해. 할 거야, 말 거야.”

“…알겠어.”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믿음이 가진 않지만 이렇게 눈치라도 줘야지 어쩌겠는가. 민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장롱에서 옷을 꺼냈다. 그가 매번 입던 작업복이었다. 

지환도 일어나 민재와 같은 옷을 입었다. 이제 둘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네요.”

“그러게. 최대한 빨리 와야겠다.”

“전 선배 몸조심하라고 말한 건데요.”

지환이 입을 내밀었다. 민재는 그런 지환의 입을 살짝 꼬집어 당긴 다음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갔다 오자.”

지환이 민재를 안아 드는 그때였다. 지환의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지환의 눈에 묘한 기색이 끼어들었다. 민재는 지환의 얼굴에서 당황을 읽었다. 민재는 지환의 얼굴을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뭐야.”

“에스퍼 발현 신고가 엄청 들어오고 있어요.”

갑자기 에스퍼들이 발현한다고? 이상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건 다르게 말하면 에스퍼 폭주 신고가 곳곳에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주호영 실장이 어떤 명령도 내리고 있지 않다는 소식을 민재와 지환은 상공에서 접했다. 센터 꼴 한번 잘 돌아간다. 민재는 한숨을 내쉬고는 불나게 울리고 있는 지환의 전화를 받았다.

“어. 나 우민잰데.”

[네. 네? 헉! 네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민재는 고민했다. 함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정말 폭주가 곳곳에서 일어나 버린다면? 일반인들이 위험했다. 민재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했다.

“…비상상황 최고 단계로 올려서 센터 내에 공지하고 아무리 급하더라도 3분의 1은 무조건 센터에 남겨두고 움직여.”

센터의 인원이 너무 비면 안 될 것 같았다. 민재는 마지노선을 잡아 두었다. 저쪽의 정확한 계획을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를 해 두어야 했다. 

[최고… 단계요. 네!]

“…실드 아끼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후배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답을 들려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민재는 지금까지 늘 망설여왔다. 어떤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재는 너무 지쳐 있었다. 구하는 일이 너무 벅찼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민재의 세계가 생긴 것이다. 그곳에는 지환이 있고, 지환이 속한 센터가 있다. 민재를 만들어 온 동료들과 공간이 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러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무리하지 말고.”

민재가 말하자 지환이 눈을 접어 웃었다.

“네.”

민재는 지환의 품에 안겼다. 지환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태현아!”

서연이 막무가내로 그녀를 끌고 가고 있는 태현을 불렀다. 그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뒤에서 분명 폭발음이 들렸다. 저건 단순 폭탄이 아닐 것이다. 폭주다. 

폭주로 얼마나 많은 에스퍼가 죽을까. 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여러 가지 가정들이 서연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사이 둘은 센터 뒤쪽 입구까지 왔다. 

“근데….”

서연은 갑자기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태현의 손을 뿌리쳐야 했다. 손이 떨어지자 그제야 태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너… 태현아. 나한테 뭘 먹인 거야?”

“가자. 누나. 지금 가야 해. 제발 좀!”

태현이 처절하게 외치며 서연을 다시 잡아끌었다. 서연은 다시 그 손을 뿌리쳤다. 꽤나 단호하고 거센 행동이었다. 

“난 못 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몇이나 살 거 같아?”

“그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거지?”

서연은 태현이 자신에게 먹인 것이 정말로 물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처음엔 수면제라고 예상했으나 이렇게 멀쩡하게 걷고 있으니 다른 것이었다. 그럼 하나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무관하게 만들어 주는 약인 것이다.

“어디서 났어?”

서연은 태현의 멱살을 잡았다. 태현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잭한테서. 딱 두 명분만.”

정확히 두 명의 몫. 서연은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말했잖아. 난 누나 안전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

그렇게 말하는 태현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게 더 서연을 두렵게 했다. 나 때문에 태현이가 너무 먼 길을 갔구나. 서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태현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복수는 서연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게 끝나고 나면 죽어 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서연은 알고 있었다. 센터 자체를 부정하는 게 힘든 지금 자신의 복수는 너무 하찮아져 버렸다고. 그건 센터에도 소중한 사람이, 가족과도 같은 사람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참외를 좋아했어. 동생은 귤을 좋아했고. 계절이 다른 시기의 과일을 좋아해서 우리는 계절별로 참외와 귤을 많이 먹었어.”

“….”

“나는 그런 것 정도밖에 기억을 못 해. 그만큼 가족을 빨리 잃었어. 추억하려고 해도 제대로 추억할 거리가 없어.”

서연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좋았을 거라고 서연은 생각했다. 태현이 불안해하는 얼굴로 서연을 보고 있었다.

“누나. 나 버리지 마.”

태현은 어릴 때의 얼굴을 하고 서연을 바라보았다. 서연은 울고 싶어졌다. 태현은 서연에게 좋은 동생이자 나쁜 동생이기도 했다. 가족이지만 아니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서연의 어린 시절에는 태현과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건 다른 혈연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내가 널 왜 버려.”

서연은 태현을 끌어안았다. 태현은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서연은 그런 태현의 등을 토닥였다.

“우리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안 되잖아.”

서연은 자신의 계획을 태현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에게 자주 무언가를 부탁했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계획만큼은 이전의 것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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