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5)화 (166/181)

165

-일 년 만에 살아 돌아온 신화, 우민재.

-우민재, 부활하다?

-특종 우민재 단독 인터뷰!

온갖 신문사에서 우민재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가 살아 돌아왔다.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 채 거리를 떠돌고 있던 것을 페어인 박지환이 포기하지 않고 추적한 끝에 구조했다. 그리고 기억을 찾은 우민재와의 눈물 나는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스토리.

흥미진진한 사건과 반전, 거기다 감동까지 더해진 막장이 아닌가.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못 배길 만했다. 신경준은 쌓인 신문들을 들여다보다가 두꺼운 종이더미들을 갈기갈기 찢어 집어던졌다. 

최근 하향세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히어로센터가 갑자기 상승세를 탔다. 모두가 히어로센터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살아 있는 우민재에 대한 이야기를, 기적을 논한다. 감히. 이렇게 되면 그 스스로가 우민재의 성공을 기원해 준 꼴이 되지 않나. 

신경준은 자신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신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서는 전화를 받았다.

“일을 이따위로 할 거야!!”

큰 소리로 고함을 치자 곧바로 죄송하다는 답이 들려왔다.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사실 화를 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태현이, 어디 있어.”

“찾는 중입니다.”

“찾는 중이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찾지를 못해! 왜. 내 아들도 부활할 때까지 기다릴 건가?”

이죽거리는 신경준의 말에 비서는 연신 죄송하다며 시정하겠다는 말만 내뱉어댔다. 시정하겠다는 말은 상황과 조금 맞지 않았으나 한참을 화를 내던 그는 전화를 끊고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쪼가리들을 구둣발로 짓밟았다. 

이건 아니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계획이 틀어졌단 말인가. 며칠 전, 그가 운영하는 실험실에서 잭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다 풀려나 버린 볼모들과 잭의 이마에 뚫린 구멍만이 경준을 반겼다.

차라리 풀려나 버린 볼모들이 날뛰어서 세상이 더 어지러워지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이렇게 생겨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지 않은가. 

경준은 평등을 원했을 뿐이었다. 평등을 위해 자신이 여태 얼마나 노력했는가.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짊어져 있었다. 자신의 과거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정 당겨. 때가 왔어.”

시민들이 원하는 게 가십이라면 경준은 거기에 어울려 줄 의향이 있었다. 반짝 떠오른 히어로센터의 이미지는 금방 다시 바닥으로 처박을 수 있었다.

***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민재는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오준을 바라보았다. 우석은 오준의 옷소매를 접어주는 중이었고, 지환은 민재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민재는 오준이 말하는 것이 지금의 낯부끄러운 상황인지, 세상이 돌아가는 꼴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석이가 잘해줘요?”

민재가 묻자 오준의 눈이 흔들렸다. 그래서 민재는 오준이 말한 것이 연애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준이 우석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이가 좋나 보네.

민재가 흐뭇한 얼굴로 우석을 바라보자 지환이 민재의 턱을 잡아당겼다.

쪽. 하고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민재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왜.”

“최 실장님이 잘해주는지 왜 궁금한데요.”

각인을 하고 나면 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민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우석이 헛기침을 했다.

“괜찮아? 각인하고 좀 어때.”

“알아서 뭐 하게요.”

우석이 민재를 보며 묻자 지환이 또 끼어들었다. 민재는 지환의 콧잔등을 가볍게 꼬집었다.

“조용히 해.”

“…어떤 기분이에요?”

그때였다. 차분한 목소리로 오준이 민재를 향해 물었다. 의외였다. 민재는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뭐가요?”

“각인한다는 거요.”

어떤 기분이라. 민재는 지환을 바라보았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지환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러나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지환과 따로 움직이는데도 한 몸처럼 느껴지는 안정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있었다. 

거기다 지환이 느끼는 감정이 가이딩처럼 민재에게 밀려들 때가 있었다. 

“좋은데 피곤해요.”

“아….”

오늘 해야 할 일을 위해 침대와 베개, 그리고 의자 등을 가이딩실 구석에 배치하고 있던 지환이 덜컹하고 침대 머리맡을 내려두며 탄식했다. 누가 봐도 민재의 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태도였다.

민재는 그런 지환을 검지로 가리켰다.

“저 바보가 느끼는 기분을 저도 느끼거든요. 그래서 피곤해요.”

순간 오준의 눈빛에 부러움이 섞였다. 민재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오준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오준이 가이드를 사랑하고, 그런 존재들이 엮이는 걸 부러워한다.

“…우석 씨도 나중에 각인해야 해요?”

“내가 왜 해요?”

“그럼?”

“윤 비서가 갑자기 발현하면 모를까.”

닭살 돋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내뱉은 우석은 지환이 준비해 둔 침대에 몸을 뉘였다. 지환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여기서 제일 평범한 케이스니까 먼저 해 볼게.”

넷은 잭이 민재에게 던졌던 약물을 자신의 몸에 ‘적용’해 보기 위해 모였다. 샘플이 적으니 극단적이어도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았다. 그리고 실험체도 너무 적절했다.

가이드 하나, 고장 나기 쉬운 에스퍼 하나, 멀티 하나, 그냥 사람 하나. 다양성을 고루 갖춘 완벽한 환경이었다. 

지환은 스포이트로 약물을 빼 우석의 팔목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다섯 방울 정도 떨어뜨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우석은 약물이 묻은 팔을 들어 올리고는 냄새를 맡았다.

“어?”

우석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가 다가가려고 하자 지환이 먼저 우석 쪽으로 다가갔다.

“아픈 데 있어요?”

지환이 물었다. 우석이 지환의 팔뚝을 덥석 잡았다. 지환은 잡힌 팔을 빼내려다 멈칫했다.

“가이딩 들어가?”

“아뇨?”

“근데 난 나가는 중이거든.”

이상한 소리지만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못 잠가?”

우석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 팔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다가 헛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제대로 만든 거 같은데.”

우석과 민재의 눈이 마주쳤다. 민재는 볼 안쪽을 짓씹었다. 민재에게 통하던 것이 우석에게도 통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우려하던 약물테러가 이루어질 것이 확실하단 뜻이었다. 

오준은 우석을 빤히 쳐다보더니 알코올솜을 꺼내와 우석의 팔목을 닦아냈다. 고작 다섯 방울 떨어뜨렸을 뿐인데도 이런데 약물을 대량으로 뿌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살포할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아야 한다. 

다음은 오준이 누웠다. 우석은 지환에게서 병을 빼앗아 두 방울 정도의 약물을 오준의 손목에 떨어뜨렸다.

우석은 금방이라도 닦아낼 수 있도록 알코올솜과 거즈를 손에 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오준 역시 손목을 들여다보다가 민재 쪽을 바라보았다.

“좀 더 묻혀 보죠.”

“안 돼.”

우석이 단호하게 말했다.

“실장님한테 사용한 양만큼도 안 되잖아요. 해야 할 건 해야죠.”

오준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우석이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두 방울 더 그의 손목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오준은 우석이 말리기도 전에 다른 쪽 손으로 약물을 자신의 피부에 펴 발랐다.

“윤오준!”

우석이 신경질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오준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좀 어지럽네요.”

오준이 말했다. 우석은 오준의 팔을 잡아채고는 알코올솜으로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민재는 고민하다가 약물을 닦아내고도 남았을 정도로 벌게진 팔을 계속 문대고 있는 우석을 뒤쪽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오준의 머리 쪽에 손을 올리고는 힐을 사용했다. 

“좀 어때요?”

민재가 묻자 오준이 눈을 감고 생각하는 듯하다가 물었다. 

“…시원한 느낌?”

“차갑다고요?”

“아뇨. 그러니까… 꼭 안마 받았을 때처럼 노곤해져요.”

노곤해진다라. 그건 긍정적인 걸까? 애매했다. 다음은 지환의 차례였다. 지환은 제 몸을 제대로 돌보질 못하기 때문에 민재가 그의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끼어들지 마.”

민재가 제법 험악한 얼굴로 경고하자 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스포이트로 약물을 덜어 지환의 팔목 위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지환의 팔목은 한참을 기다려도 노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민재는 지환의 팔목을 알코올솜으로 닦아냈다. 그러고는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민재의 손에서 계속해서 흰 빛이 번졌다. 지환은 민재에게 입술을 내밀며 입을 맞춰 달라는 시늉을 했다. 

“가이딩 좀 멈춰 봐.”

“이거 그냥 나가는 거예요.”

민재는 단호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각인의 영향인지 몰라도 지환은 민재랑 조금만 붙어 있으면 가이딩이 줄줄 샜다. 덕분에 몸을 좀 사리라고 민재가 혼내기까지 해야 했다.

“진짜예요.”

지환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면 각인이 된 사이라 그런가, 아님 약의 영향인가 알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민재는 힐의 강도를 높였다. 왜인지 지환이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턱이 움직였다. 

“아파? 이상해?”

민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지환은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지환의 손목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멀티가 된 이후로 잘 보이지 않던 수치였다. 민재와 지환의 눈이 마주쳤다. 지환의 다갈색 눈동자가 유독 밝게 느껴진다고 민재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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