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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3)화 (164/181)

163

민재는 굳어 버린 잭의 얼굴을 보다 그의 코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떠한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공포와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매캐한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잭이 마지막에 우민재에게 던지고 싶었던 액체란 건 무엇일까. 오래 생각해보지 않아도 추측되는 것이 있었다. 민재는 주머니를 뒤져 가이딩 약품을 찾아보았다.

소량의 알약이 나왔다. 이걸로 해결이 될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목 안쪽에서 울컥하고 올라왔다. 민재는 피를 쏟았다. 손바닥에 올린 알약 위로 피가 줄줄 쏟아졌다. 코도 답답한 걸 보니 코피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과도하게 빠르게 뛰고 있는데도 몸이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선배!!”

다급하게 민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이렇게 다급하게 선배라고 부를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환이었다. 지환은 민재가 눈 한 번을 깜박이는 사이에 다가와 민재의 등을 받치며 주저앉았다. 덕분에 민재는 뒤로 누울 수 있었다. 

쿨럭. 민재가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피가 멈추지 않아서 뒤로 넘어가면 숨이 더 막히는 것 같았다. 민재가 피를 토하며 고개를 돌리자 지환이 민재를 옆으로 누이듯 자세를 바꾸었다.

민재의 몸으로 가이딩이 마구잡이로 밀려들어왔다. 지환은 민재의 얼굴을 끊임없이 쓰다듬었다. 민재가 흘리고 있는 피만큼이나 지환의 눈이 빨갰다.

민재는 손을 들어 올려 지환을 살짝 밀어냈다.

“이거… 묻으면 안 돼.”

잭이 던진 약물은 민재의 피부에 닿았고, 냄새를 풍기는 것만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그렇다면 자신과 붙어 있는 지환도 위험하게 되는 게 아닌가.

“선배. 제발… 지금 손 떨려요, 선배.”

지환은 덜덜 떨리는 민재의 손을 잡아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지환은 일그러진 얼굴로 민재를 보더니 가이딩 약을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민재에게 입을 맞추었다. 

지환은 민재의 입안에 차오르는 피를 빨아당겼다. 입안이 헤집어지는데도 민재는 그 안에서 조금씩 숨을 쉴 수 있었다. 민재는 저도 모르게 지환에게 매달렸다.

“으….”

몸이 급격하게 추워졌다 뜨거워졌다를 반복했다.

삐. 삐. 삐.

작은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환은 다급하게 민재의 손목을 확인하더니 울먹였다. 온통 피범벅이 된 지환의 얼굴이 가관이라고 민재는 생각했다.

“아… 선배.”

지환이 다급하게 다시 입을 맞춰왔다. 피로 범벅된 입맞춤이었지만 민재는 왠지 갈수록 편안해진다고 느꼈다.

“각인해요. 선배. 각인해요….”

주문처럼 지환이 계속해서 애원했다. 너는 이 꼴을 보고도 그 소리가 나오냐. 민재는 말하고 싶었지만 눈이 자꾸만 감겼다.

빛이 일었다. 섬광처럼 강렬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민재의 앞에 도사린 어둠을 천천히 치워 나가는 빛이 있었다. 빛은 민재의 몸을 돌아 지환에게 갔다. 그리고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퍼져 나갔다. 민재가 겨우 발견했던 풍경들의 구석구석에 빛이 있었다.

‘살고 싶어?’

누군가 물었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빛을 내는 존재라는 것만 보였다. 이미 내가 죽었나? 빌어먹을. 민재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내가 살고 싶나? 조금 전에는 피범벅도 상관하지 않고 입을 맞춰오는 지환을 보고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민재가 죽을 곳이 있다면 원래는 현장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전에 그랬듯 영웅 심리로 포장되어 온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아주 몇몇의 인물을 제외하곤 진짜 민재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현장이라면 현장이었다. 그래도 민재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할 사람의 입맞춤을 받는 마지막이란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민재는 어쩌면 내내 그걸 갈구했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끝. 평온하고 안온한 허무. 그런 것이 민재는 필요했다.

“선배.”

지환이 자꾸만 민재를 불렀다. 절절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삶은 고되었다. 민재는 모두를 그만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구하는 길로 움직여야 했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야. 민재는 되뇌었다. 그러니까 그냥 그냥….

‘살고 싶어.’

민재가 대답했다. 그는 누굴 구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구원받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바로 옆에서 자신을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있지 않나. 

민재의 대답과 동시에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은 점차 줄어들었다. 다시 눈앞에는 어둠만이 남았다. 민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선배….”

지환이 눈물을 떨구며 웃었다. 괴상한 얼굴이었다. 민재는 손을 뻗어 지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네가 날 구했네.”

어느새 경고음이 멎어 있었다. 민재는 지환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

민재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숙소였다. 지환은 민재의 몸을 따듯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고 있다가 놀란 듯 행동을 멈추고는 민재와 눈을 맞추었다.

“몸은 좀 어때요?”

“…어떻게 된 거야?”

지환은 민재의 등 뒤로 손을 넣어 상체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피가 굳은 옷을 벗는 것을 도왔다.

“선배 걱정하실까 봐 말하는데 대부분의 에스퍼는 구조 성공했어요.”

대부분의? 그럼 문제가 있었다는 걸까? 민재의 표정에 의문이 서리자 지환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몇몇은… 센터로 가고 싶지 않아 하길래 우선은 내보냈어요. 그중 몇은 능력이 거의 상실된 듯했고요.”

그럴 수도 있었지. 모두가 센터에 오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었다. 민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아오는 걸 망설이지 않았나. 민재는 지환의 얼굴을 살폈다. 지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혹시 잘못했어요?”

지환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했어. 고마워.”

목 안이 따가웠다. 민재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지환이 빠르게 미지근한 물을 가져와 내밀었다. 

“선배. 마셔요. 피를 너무 많이 토했어.”

민재는 지환이 내민 컵을 받아들고는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물 하니 갑자기 잭이 집어던졌던 액체가 떠올랐다.

“그 액체는….”

“하나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게 있어서 병 챙겨왔어요.”

지환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듯 다시 컵을 민재의 입가로 밀며 한 손으로는 민재의 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부드러운 온기가 민재의 목젖을 간지럽혔다.

완벽함에 가까운 일처리였다. 지환은 많은 에스퍼들을 구했고, 민재도 구했으며 해야 하는 것까지 모두 깔끔하게 처리했다. 민재는 그런 지환이 대견스러웠다.

“선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칭찬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민재를 지환이 불렀다. 지환은 어느새 민재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 참이었다. 새삼스럽게 민재는 자신이 살아난 상황이 떠올랐고 왜인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어….”

“각인해요.”

지환이 속삭였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간질거렸다. 지환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살짝 젖은 속눈썹이 묘하게 선명하게 보였다.

“야….”

민재는 조금 전 폭주해서 죽을 뻔했다. 그렇게 되면 지환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인하고 나면 지환은 내내 전전긍긍하며 민재 곁을 맴돌아야 할지도 몰랐다. 민재는 그게 걱정되었다.

“내가 불안정하잖아.”

“허락해 주세요.”

지환은 민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했다. 민재는 망설였다. 그사이 지환은 천천히 민재의 뒷목을 감싸고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손은 점차 등으로 내려갔다.

“…그.”

무어라도 말해보려던 민재는 뭐라 할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녀와서 각인하자고 한 건 민재였다. 지환의 품에서라면 죽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도 민재였으며, 그럼에도 지환 때문에 살고 싶어진 것도 그 자신이었다.

“그래.”

민재도 속삭이듯 대답했다. 지환이 곧바로 민재에게 입을 맞춰왔다. 더 이상 둘의 상황은 급박하지 않았지만 지환은 꽤나 다급한 듯 서툰 손길로 민재의 옷깃을 풀어헤쳤다. 그러자 민재도 조급해졌다. 민재는 지환의 뒷목을 잡고 더욱더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몽롱한 감각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선명하게 몸을 관통하는 열감이 있었다. 계속해서 지환의 가이딩이 민재의 몸을 파고들었다. 민재의 몸에서 자꾸만 빛이 새어 나갔다. 지환이 가이딩의 모자라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각인의 감각은 민재가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모든 에스퍼들이 다 그렇겠지만. 민재는 어쩔 줄 몰라 계속해서 지환의 등만 더 세게 끌어안았다.

지환은 계속해서 짙은 가이딩을 밀어 넣었다. 민재의 가이딩 수치는 이미 초록을 넘어 차고 넘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계속 가이딩이 들어왔다. 민재는 눈앞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민재는 지환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음을 알았다.

세상 존재들에게 시계가 있다고 치면 민재의 시침은 지환을 축으로 돌게 될 것이다. 민재는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환과 함께하는 것이 온전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민재는 지환이 자신과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 에스퍼가 선배여서 기뻐요.”

지환이 민재의 귀에다 입을 맞췄다. 내 에스퍼라니. 지환은 정말로 가이드처럼 말했다. 

“이제 우리는 계속 함께예요. 그렇죠?”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지환이 민재의 어깨에 얼굴을 비벼 댔다. 안겨 있는 쪽은 민재였으나 귀여움을 떠는 건 지환 쪽이었다. 계속 함께라는 말이 좋았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속 함께야.”

지환이 민재의 대답에 환하게 웃었다. 민재가 좋아하는 눈웃음을 지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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