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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2)화 (163/181)

162

“악!”

잭이 내지른 비명이 스피커를 타고 공간을 울렸다. 민재는 조각난 유리 파편들을 짓밟고, 잭이 조작하고 있던 스위치들을 발로 아무렇게나 짓이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잭의 멱살을 부여잡고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컥. 하고 잭이 고통을 토했다.

“너… 너….”

잭의 눈은 분노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민재는 순간 허무함을 느꼈다. 이 개자식은 어째서 민재에게 분노를 느끼는가. 그래야 할 사람이 누군데.

민재는 손을 뻗어 잭이 개발한 총을 집어 들었다. 엎드려 잭을 압박하고 있던 몸을 일으켜 그의 상체를 발로 눌렀다. 잭은 꿈틀거리며 기침을 토했다. 

총구가 잭의 머리 위로 겨누어졌다. 

“어땠어?”

민재가 물었다. 어떤 것을 지목하는지 명확히 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잭은 총구를 마주하고는 커다래진 눈으로 계속 몸을 버둥거렸다.

“치워! 치우라고!”

“그런다고 내가 치워줄 거 같아? 대답이나 해. 어땠냐고.”

“뭐가!!”

잭이 악을 쓰듯 되물었다. 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인간적인 대답이었다. 

“김 박사 죽일 때 말이야.”

“그… 그 새끼가 내 계획을 방해할 약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내가 참을 수가 없어서…! 총, 총으로….”

민재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했던 것이 명백한 사실로 되돌아왔다. 김 박사는 정말로 민재 때문에 죽었다. 민재는 총을 고쳐 잡았다.

“잠깐. 너 진짜 쏘게?”

김 박사가 물었다. 민재는 총을 장전했다.

“쏠 건데.”

“거, 거짓말. 네가 사람을 어떻게 죽여?”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민재는 화가 나 잭의 상체를 발로 걷어찼다. 잭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마구잡이로 기침을 내뱉었다.

“총으로 깔끔하게 죽여주는 걸 고마워해야 할 거야.”

민재는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모두 잭에게 돌려줄 수도 있었다. 때로는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게 지옥인 순간들이 있다. 잭은 모르겠지만.

“넌… 넌 히어로로 자랐잖아. 그래 놓고 내 다리도 앗아가고, 사람들 목숨도 빼앗았지. 네가 태어난 건 저주야. 알아?”

잭은 난데없이 민재에게 히어로 이야기를 하며 광분했다. 무슨 지점에서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넌 히어로 같은 게 아니야. 넌….”

탕! 총이 발사되었다. 레이저 때문에 잭의 얼굴 옆 바닥이 부식되며 옅은 연기가 일었다. 

“누가 그래?”

민재가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가 히어로라고.”

잭의 말 중 일부는 맞았다. 우민재는 자신이 태어난 것이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죽지 못해 사는 삶을 꾸역꾸역 이었겠지. 그러나 우민재는 히어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것 따위 되고 싶은 적도 없었다. 

“그래도 넌 나한테 미안해해야지. 내 다리를 앗아간 걸 후회해야지….”

잭은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점점 동공의 초점이 풀리고 있었다. 말의 맥락도 이상했다. 어쩌면 과거의 민재라면 저 말에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민재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들이 죽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들이 죽었다. 결코 자신은 결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재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게 자신이 히어로가 아니라고 단정한 이유였다. 

“아니. 난 히어로 같은 게 아냐.”

“….”

“난 그냥… 사람이야. 네가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며 실험한 아이였고, 지금은 그냥 내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사람일 뿐이야.”

민재의 말에 잭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이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잭은 팔을 움직여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무언가를 민재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민재는 총을 들지 않은 팔로 그것을 막았으나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옷깃과 팔이 젖어들었다. 얼굴에도 정체를 모를 액체의 일부가 튀었다. 매캐한 냄새가 났다.

제가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잭의 얼굴은 의기양양했다. 민재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 소리와 함께 잭의 비틀린 얼굴이 멈추었다. 이마에 구멍이 난 채였다.

***

잭과 민재가 있는 곳을 벗어나 지환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처음 들어올 때 빈 기계를 작동시켰던 곳이었다. 그 층에도 이미 갇힌 에스퍼들이 있을 터였다. 

‘빨리. 최대한 빨리.’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환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민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가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민재는 분명 강한 에스퍼였다. 민재는 매번 자신이 질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하지만 센터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여은정도 그가 마음먹고 덤비면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 지점조차도 지환은 감동스러웠고, 그만큼 마음이 쓰라렸다. 지환이 각인하고 싶은 에스퍼는 좀처럼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게 지환의 피를 말리게 했다. 

민재는 지환에게 영웅이자, 연인이자, 절대적인 군주와도 같았다. 그 세 가지의 위치들이 지환의 안에서 계속해서 충돌했기 때문에 지환은 민재를 생각하면-언제나 그러고 있지만- 종종 미칠 것 같은 감각을 느껴야 했다.

우선 지환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민재가 지시한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지환은 더 이상 실패라든가 후회라든가 하는 것들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환은 에스퍼 한 명이 잠들어 있는 기계 앞에서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자신이 예상한 방식대로, 민재가 추리한 방식대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이딩 주입 수치를 올려 어느 정도 기다린 다음, 잠금을 해제하는 방식이었다.

잠금을 해제하기 직전 지환은 ‘신체 활성화’라고 적힌 버튼을 확인했다. 이걸 눌러야 할까. 지환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문득 센터로 돌아온 에스퍼들이 평소와 크게 다름없이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럼 이 기계는 센터로 ‘일반인’이 된 채 돌려보내기 위한 장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지환은 더 망설이지 않고 그 버튼을 누르자 안에서 기계음이 나며 빛이 돌았다. 그 후 잠금이 해제되었고 눈을 감고 있던 에스퍼가 눈을 떴다.

“어… 내가 왜 여기… 1팀 팀장님?”

에스퍼는 센터에서 일하던 놈이었던 듯싶었다. 지환은 잘 모르지만 그는 지환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환은 그간 꾸준히 언론에 노출되었으며 센터에서도 유명한 축에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너 마지막 기억이 며칠이야?”

지환이 묻자 에스퍼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열흘 정도 전의 날짜를 읊었다. 지환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물었다.

“능력이 뭐야.”

“저… 저도 비행입니다.”

에스퍼는 상당히 긴장한 듯 말했다. 지환은 곧바로 손을 까딱였다.

“날아 봐.”

에스퍼의 팔목은 노란색이었다. 지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이딩 약품을 그에게 넘겼다. 에스퍼는 약을 들이켜고는 몸을 띄워보았다.

“별 문제 없어?”

“네.”

“그럼 됐어. 저기 가 서 있어.”

지환은 턱 끝으로 구석을 가리키고는 다시 다른 기계들을 빠르게 만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지환이 구조한 에스퍼는 대략 열 명 정도 되었으며 대부분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이었다. 

절반 정도는 외부에서 발현되고 끌려오거나, 도망자로 살다 잡혀온 경우였고 나머지는 센터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층이 올라갈수록 잡혀온 지 오래된 에스퍼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환은 우선 센터 소속 에스퍼들을 집합시켰다.

“…우선 비행할 수 있는 애들 2명이 있으니까 너희가 센터로 복귀시킬 거야.”

“…저희는요?”

지환이 지시하는 사항을 에스퍼들이 듣고 있는데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 물었다. 꽤 앳되어 보이는 놈이었다. 지환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한동안 지환은 도망자들을 미친 듯이 잡아들였다. 민재를 찾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고, 센터장과의 거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게 에스퍼들에게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어서였다. 우민재가 있고, 자신이 있는 센터는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오만이었다. 지환은 민재를 되찾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다. 민재가 돌아와도 센터는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에스퍼 전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우민재는 그걸 막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지환은 민재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센터로 가면 보호해 줄 수는 있어.”

잠시 고민하다 몇 명이 손을 들고 센터로 가고 싶다고 했다. 두어 명의 에스퍼는 눈치를 보다 빠르게 바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쫓을까요?”

비행 에스퍼가 물었다.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넌 얘네 복귀시키라니까. 그러고 네가 다시 돌아와. 이 사항에 대해서 여기저기 떠벌리지 말고, 우선 구조한 애들은 데리고 바로 가이딩실 가서 최우석 실장님한테 인계해. 무슨 일인지 아실 테니까.”

지환은 명령을 내리며 순간순간 민재 생각을 했다. 방금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우석 실장이 뒤에서 받쳐 주면 걱정 없이 구조 활동을 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선배는 계산했던 걸까? 지환은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지환은 층을 옮겨가며 에스퍼들을 구조했다. 비행 에스퍼가 발견될 때마다 움직이는 게 가능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많은 에스퍼들이 복귀했다. 비행이 흔한 능력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환은 처음으로 해보았다. 먼저 보냈던 에스퍼는 최우석 실장이 뒤쪽에 공간을 따로 마련해 가이딩이랑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보고 했다.

한시름 놓은 지환은 속도를 가해 빠르게 에스퍼들을 구조했다. 층이 올라갈수록 지환의 예상대로 상황도 심각해졌다. 그들 중 몇몇은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어떡해요… 어떡….”

한 명이 입을 막고 엎드려서 오열했다. 돌연변이처럼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안정해 계속 가이딩이라는 에너지를 받아 생활해야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부였던 이들도 있었다. 지환은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재활하다 보면 조금 돌아올 거야.”

거짓말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환은 차가운 분노가 조금씩 쌓여 가는 걸 느꼈다.

“팀장님. 팀장님은 아시죠. 저 이렇게 만든 새끼, 어디 있어요?”

한 에스퍼가 지환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물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였다. 그는 충분히 위험해 보였다. 지환은 이런 놈을 민재가 있는 공간에 데려갈 마음은 없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달래려던 찰나였다. 지환의 바로 머리 위쪽에서 총성이 빗발치는 게 들렸다. 꽤나 가까웠다.

지환과 에스퍼의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눈을 본 지환은 빠르게 에스퍼의 옆 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얘도 복귀시켜.”

명령을 내린 뒤 지환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설마. 아니겠지. 지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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