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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60)화 (16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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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화났어요.”

좀 전과 같이 민재를 안아 들고 숙소로 돌아온 지환은 뜬금없이 투정을 부렸다.

“뭐?”

민재가 황당해하는 얼굴을 하자 지환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선배는 왜 아무한테나 다정해요?”

“뭐…?”

“막 선배라고 부르는 것도 다 봐주고. 걱정해주고. 팀에 넣어준다는 것도 그냥 덜컥 아무나 된다 그러고.”

민재는 눈을 깜박였다. 강지훈은 지환이 데리고 있던 팀원이고, 일도 꽤 잘한다고 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민재는 지환을 믿은 것이다. 그게 어째서 아무나 덜컥 들인 게 된단 말인가.

“걔가 왜 아무나야?”

민재가 묻자 지환의 눈 크기가 커졌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지환의 눈에는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럼 뭔데요.”

“네가 괜찮다고 한 애잖아.”

“아… 아! 짜증 나.”

지환은 난데없이 짜증을 내더니 민재의 어깨에 자신의 이마를 콩 박았다. 

민재는 지환의 짜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왜인지 몰라도 그런 지환이 좀 귀엽게 느껴졌다. 후배가 뜬금없이 짜증을 부리는데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다니 그것도 좀 신기했다.

“선배가 나만 예뻐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지환이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지환의 머리카락이 민재의 목젖을 간지럽혔다. 배 안쪽부터 간지러운 기분. 민재는 지환을 살짝 밀어냈다.

“네가 괜찮다고 해서 일 시킨 거니까. 너 예뻐하는 거잖아, 멍청아.”

달래주려고 한 말인데 막상 내뱉고 나니 너무 민망했다. 민재는 괜히 지환의 이마에 살짝 딱밤을 놓았다. 그러자 지환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민재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진짜 너무 착해. 그래서 좋은데 싫어요.”

또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근데 왜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민재는 모든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민재는 죽다 살아났고, 지환과 무어라 정의 내리기 힘든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센터가 위험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민재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원래 그는 딱히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삶도, 죽음도 별 의미가 없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일 처리가 쉬웠다. 판단도 빨랐다. 그런데 지금 민재는 자주 망설이고, 지환을 신경 쓴다.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멈출 수가 없었다.

‘안 다쳤으면 좋겠다.’

내내 저주하던 자신의 능력이 어쩌면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재는 지환을 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민재는 자신과 맞대고 있는 지환에게 살짝 입을 맞췄다. 지환의 눈이 환한 빛을 품은 채 부풀었다.

“미쳤다.”

거친 말을 내뱉으며 지환이 다시 입을 맞춰왔다. 등허리를 옥죄는 힘이 강해졌다. 지환의 가이딩이 몸을 타고 흘렀다. 목 안쪽이 간지럽고 온몸이 전류가 흐르는 듯 저릿했다. 민재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몸속의 빛을 흘려보냈다. 

***

지환은 태현이 준 정보를 통해 어쩌면 에스퍼들을 가둬둔 장치를 안전하게 해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민재에게 대량의 가이딩 약품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검은색 저지와 세트로 보이는 트레이닝 바지를 민재에게 건넸다. 센터의 작업복을 입고 움직일 수는 없으니 어두운 색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민재는 지환이 건넨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니 지환도 똑같은 옷으로 갈아입은 게 보였다. 

“연락 왔어?”

“곧 올 거예요.”

둘은 지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음엔 곧바로 민재와 지환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둘의 계획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우선은 김 박사의 구조가 최우선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조 박사 그 새끼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먼저 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잡혀 있는 에스퍼들을 최대한 풀어주는 것이다. 

위험이 따르는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여러모로 안전한 방법이란 없어 보였다. 

지환의 폰이 울렸다. 잠시 문자를 확인한 지환이 민재를 보고 팔을 벌렸다.

민재는 팔을 벌린 지환에게 안겼다. 긴팔 원숭이인 양 매달린 민재의 허벅지를 지환이 안아 들었다.

“이렇게 가는 건 처음이다. 그렇죠?”

지환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민재를 바라보았다. 

“내가 후방을 주시할 테니까 네가 전방 주시야.”

민재가 지시하자 지환은 킥킥대며 웃었다. 민재는 턱으로 지환의 어깨를 때리며 응징했으나 웃음소리는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지환의 웃음이 완전히 멎은 건 새희망복지회 건물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지환은 출발한 뒤 갑자기 민재의 머리 쪽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안은 다음 각도를 틀어 속도를 올렸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으나 약간 둔탁한 충격이 민재의 머리 위에 올려진 지환의 손을 통해 느껴졌다. 

속도가 조금 늦춰지고 나서 민재는 지환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뭐 날아왔어?”

“아뇨. 속도 내면 선배 머리 띵 할까 봐.”

새희망복지회 본거지는 분명 센터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그 근방에서 깨어나 헤매어 봤으니 민재가 그걸 모를 리는 없었다. 다만 민재가 예상한 것보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는 게 문제였다.

“혹시 아파요? 뭐 따라붙을까 봐 속력 낸 건데 그러지 말 걸 그랬나.”

멍한 표정으로 민재가 바라보자 지환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급하게 민재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 언제 이렇게 빨라졌어?”

“응?”

지환은 민재의 질문에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이내 묘하게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은 삐죽 나오고 미간이 찌푸려졌는데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기분이 나쁜 표정도 아니었다. 그에 이어 대뜸 민재의 볼에 입을 맞춘 지환은 화제를 또 바꿨다.

“선배가 모르는 사이 많이 컸죠. 아픈 데는 없는 거죠?”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환이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저번에는 어디로 들어갔어요?”

지환이 묻자 민재는 자신이 ‘내려갔던’ 입구를 가리켰다. 무언가 왔었던 건지 커다란 트럭이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저긴 주차장 같은데요?”

“그러니까.”

지환은 그쪽을 잠시 살피더니 자신이 아는 곳보다 저기가 오히려 수월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둘은 트럭 근처에 착지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옮기는 것 중 에스퍼도 있어.”

“여기로 에스퍼를 옮긴다고요?”

민재의 말에 지환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몸을 띄워 허공에서 슬쩍 트럭 운전석과 내부를 살피는 듯했다. 검은 천으로 뒤집어 쓰인 곳은 슬쩍 들춰보기도 했다.

“오늘 온 건 에스퍼가 아닌 모양이네요.”

지환은 여러 종류의 나사와 전선을 보았다고 했다. 그럼 물품이 들어오는 건가 싶었다. 그때 민재가 들어가 본 적이 있는 곳에서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민재는 빠르게 지환을 밀어 건물 모서리 쪽에 숨었다.

두 명의 사내가 문을 나오는 게 보였다. 민재는 지환의 등을 툭 쳤다.

“들어가야 하는데. 잠그는 거 아니겠지?”

그때였다. 지환이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러고는 열린 문 사이에 좀 전까지 서 있던 사내의 신발을 벗겨 끼워놓고는 민재에게 걸어왔다.

“…뭐 한 거야?”

“괜찮아요. 잠깐 기절시킨 거예요.”

오늘 지환은 여러모로 달랐다. 민재는 혹시나 싶어 두 명의 맥을 짚어보았으나 정말로 자고 있는 듯했다. 지환과 민재는 쓰러진 두 명을 안쪽의 공간으로 옮겨두었다. 그리고 안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어둡고 서늘한 공간이 드러났다.

“여기서 한 층 올라가면….”

지환이 민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들과 그 안의 에스퍼들이 나올 것이다. 민재와 지환은 빠르게 움직였다. 한 번 와 본 길이라 그런지 혼자일 때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민재와 지환은 우선 빈 인큐베이터를 먼저 찾아냈다. 그리고 그 인큐베이터를 조작시켜보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내부 상황을 설정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몇 번이고 문을 열었다 닫고, 내부 설정을 다시 바꾸었다. 

“가이딩 올리는 것도 되는 거 같은데?”

설정을 조작한 다음 민재는 기계 문을 열고 안쪽으로 손을 집어 넣어보았다. 그때 지환이 민재의 손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뭐하는 거예요?”

살벌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민재는 순간적으로 느낀 사실을 말해야 했다.

“가이딩 올릴 수 있어. 가이딩 나오는 게 느껴져.”

민재가 지환의 앞으로 멀쩡한 손을 내밀었다. 지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환은 민재의 손을 가져가 그 자신의 손목을 잡게 했다. 그러고는 기계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민재의 손은 아직 바깥쪽 영역에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하라고요.”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는 꽤 절절하게 들렸다. 그러나 민재는 지환의 손을 끌어다가 뭐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공간에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해요. 그래도.”

지환은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다. 민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방법 좀 알 거 같으니까 바로 구출 가능한 상태로 보이는 사람 좀 찾아보자.”

지환은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민재의 머릿속에 꽤 중심부로 보였던 공간이 스쳐 지나갔다. 민재는 지환의 팔을 슬쩍 잡았다.

“일단 잭 위치부터 제대로 파악해보자. 거기 기억나? 화면에 인큐베이터 뜨고, 제작하는 것 같던 곳.”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대로 민재를 안아 들고 빠르게 다른 층으로 날기 시작했다. 이전에 본 적이 있는 공간이 보였다. 자재들이 라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잭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화면 조작하는 곳 옆에 완성된 인큐베이터 하나가 놓여 있단 것이었다. 라인 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미 만들어진 게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민재와 지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환이 자연스럽게 먼저 몸을 움직여 그쪽으로 다가갔다. 

“조심해.”

민재가 속삭이듯 말했다. 지환은 근처로 다가가 인큐베이터를 살피더니 굳어진 표정으로 민재를 돌아보았다. 싸늘한 감각이 민재를 덮쳤다.

빠른 걸음으로 지환의 곁으로 다가가 기계 안쪽이 보이는 부분을 살펴보았다. 

파리한 안색으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김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이마에는 크기가 크지 않은 상처가 있었는데, 민재는 그게 총알에 꿰뚫린 자국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민재는 멍하니 눈을 감은 김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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