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지환의 감시를 벗어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민재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붙어 있는 지환을 관찰해야 했다. 그는 의외로 꽤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우선 민재가 눈을 떴을 때 지환은 이미 일어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일어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팔로 머리를 괴고는 민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네고는 아직 비몽사몽 한 민재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민재의 어깨에 코를 박고 작게 킁킁거렸다. 낑낑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기겁한 민재가 그의 등짝을 마구잡이로 내리쳤으나 지환은 실감이 안 나서 그렇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국 민재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게 되었다.
딱히 오래 그러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다 보니 적응이 되었다.
주로 아침 시간대에 붙어 있었다. 나란히 놓인 인형처럼 말도 없이 한참을 누워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간다면 밤을 노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잠에서 완전히 깬 민재가 세수를 마치고 나면 지환이 늘 묻는 질문이었다. 민재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지환이 알아서 식사를 준비해 왔다.
민재는 사육당하는 돼지가 된 기분이었다. 지환은 움푹 들어간 민재의 볼을 보며 자주 한숨을 내쉬었는데,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이고 간식까지 챙기려 들어 민재가 체한 적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전부 게워내는 민재를 보고 지환은 간식은 챙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들은 심심찮게 준비해두었다. 민재는 부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술을 마시며 버티려고 했으나 지환이 자주 가이딩 해주겠다며 술을 주지 않고 대신 단것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는 것도 아닌데 민재는 입이 심심하면 사탕이나 초콜릿을 까먹어야 했다.
민재는 대강 옷을 껴입는 지환의 상체를 바라보며 사탕 하나를 까 입에 넣었다.
“머리 아파요?”
지환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민재는 고개를 저어 보였고, 지환은 기어이 민재의 이마를 짚어 가이딩을 조금 주입한 다음에야 떨어졌다.
지환은 자연스럽게 잠옷을 벗고는 후드티를 꺼냈다.
‘쟤 몸이 저랬나.’
딱히 지환의 몸을 유심히 본 기억은 없으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슬쩍슬쩍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망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눈을 가리거나 황급히 돌아서는 모습이 더 이상하게 보일까 봐 민재는 늘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지환의 몸은 기억보다 좀 더 크고, 단단해져 있었다. 키가 좀 큰 것 같기도 했다. 한때는 훈련이 잘된 몸이었는데. 민재는 근육이 줄어 얇아진 자신의 팔목을 내려다보고는 약간의 울적함을 느꼈다.
“밥 먹기 전에 단 거 먹으면 입맛 떨어질 텐데.”
지환이 잔소리를 했다. 민재는 태연하게 사탕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왜 너도 먹고 싶냐?”
너도 입에 넣고 닥치라는 뜻이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릴 들으면 언제나 말을 돌리는 민재의 버릇이었다. 그런 그의 화법에 조금 익숙해진 건지 지환은 피식 웃기만 했다.
지환은 별다른 말없이 민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시선의 위치가 조금 이상했다. 볼록 튀어나온 민재의 볼로 향한 시선은 은근하게 뜨겁고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진 민재는 손에 들고 있던 사탕을 지환 쪽으로 집어던졌다. 지환은 사탕을 가볍게 낚아채더니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전 괜찮아요.”
지환은 사탕을 다시 간식 바구니에 내려놓은 다음 밖으로 나섰다. 민재는 지환을 따라 현관 앞에 섰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이라 그런지 지환이 조금 의아하다는 듯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먹을 거 사오는 김에 훈련장에서 중력 가중 아령 좀 가져와.”
숙소와 훈련장은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지환은 날아다니기 때문에 걷는 속도로 계산하면 안 되었다. 그리고 식사거리와 무거운 아령을 들고 오려면 약간의 지체가 있을 터였다. 필요하기도 했으니 일석이조였다.
지환은 눈썹을 얕게 들썩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민재는 얼른 다녀오라는 듯 지환을 향해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지환은 민재를 잠시 보더니 그를 갑자기 덥석 안았다.
“선배가 뭐 가져오라니까 괜히 좋다.”
왜 호구를 자청하는 거지? 민재는 지환의 기분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심부름을 시킨다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니 다행이었다. 민재는 지환의 등을 대충 토닥여 주었다.
지환은 잠시간 민재를 부둥켜안고 있더니 미적미적 떨어졌다.
“선배 배고프죠?”
나가기 싫다는 듯한 말투라 민재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뱃가죽 등에 붙었어.”
그제야 지환은 신발을 신고는 문을 열었다. 민재는 대충 손을 휘적여 보였다. 지환이 그런 민재의 손을 보고 눈을 둥글게 휘며 웃었다.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현관이 닫히자마자 민재는 빠르게 문 뒤로 몸을 붙였다. 그러고는 귀를 가져다 대고는 지환의 기척을 구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환이 천천히 걸어서 멀어져 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아무도 없나? 아니면 이 층에 사람이 거의 없는 건가?’
지환은 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말만 할 뿐 정보를 잘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재는 상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환의 발소리가 꽤 멀어졌을 때였다. 민재는 바깥이 완전히 조용해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망설이던 민재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깥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민재의 숙소가 위치한 층의 복도는 고요했다. 그리고 텅 비어 있었다.
민재는 빠르게 방 안에 있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완전히 문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슬리퍼 한 짝을 문 사이에 끼워 넣어두었다. 문이 살짝 열려 있게 만들어놓은 다음 민재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아래층이나 위층 정도만 살펴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민재는 혹시 같은 층의 주변 숙소에서 누군가 갑자기 나오지는 않을까 긴장한 상태로 기척을 죽였다.
층계 쪽 코너에서 몸을 돌렸을 때였다. 민재의 캡이 앞의 무언가에 부딪혔다. 그의 눈앞에 낯익은 색의 옷이 보였다. 공중에 발을 띄운 채 팔짱을 끼고는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던 지환은 민재를 싸늘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해요?”
***
십오 초 남짓 되는 민재의 외출이 단숨에 끝이 났다. 민재는 지환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숙소 안으로 옮겨졌다. 민재가 발을 허우적거리자 지환은 그의 무릎을 한 팔로 휘감아 고정했다.
“야. 안 놔?”
“조용히 해요.”
현관문을 닫아 잠근 지환은 민재를 내려놓았다. 드디어 제 발로 바닥을 딛고 서게 된 민재는 온 힘을 다해 지환을 째려보았다.
“무슨 생각이었어요?”
지환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배신감에 젖어 있었다. 민재는 묘한 죄책감과 동시에 반감을 느꼈다. 민재는 지환을 속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할 일이란 말인가.
민재는 정말로 잠시 주변만 살펴보다가 곧장 들어올 생각이었다. 무리해서 문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환이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다 들킨 사람 취급할 만큼의 잘못을 하진 않았단 말이다.
“그냥 잠시 살펴보려고 한 거야.”
“그러고는?”
민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환은 대답을 종용하듯 가만히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문장처럼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을 막아선 채였다. 민재는 그제야 자신이 신발을 신은 채로 방에 내려놔졌음을 깨달았다.
“돌아와야지.”
“들켰으면? 문제가 생겼으면?”
민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환의 다급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지환은 혼자서 가능성들을 부풀리고 있는 듯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황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정적인 것들임은 분명했다.
“…너 근데 자꾸 반말이다?”
“말 돌리지 마요.”
민재는 한숨을 내쉬고는 신발을 벗었다.
“모르겠다.”
민재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신발을 현관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정말 모르겠다. 모든 것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지환과 함께 있는 것은 굳이 따지자면 좋았다. 가만히 있어도 밥도 주고, 쉬게 해주고, 이따금 시답잖은 농담이나 대화를 하는 게 다인 그런 일상을 가져본 적이 민재에게 딱히 있었던가. 지금이 민재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갖게 되는 휴식기일 것이다.
어쩌면 히어로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던 그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런 삶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민재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묘한 만족감이 불안했다.
자신은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처럼 죽은 채로 살아 있다. 나고 자란 곳에 곧 커다란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하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끊임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민재를 괴롭혔다.
지환은 민재가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길 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재는 사람을 아낀다는 것 정도는 알아도 함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다. 어느새 자연스레 연애를 하고 있다는 친구 우석처럼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 자신은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간 민재는 꽤 자주 지환을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형태의 감정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모르겠다는 게, 무슨, 의미예요?”
지환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민재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두려워하고 있는 지환을 바라보았다. 최근 지환에게서 보기 어려웠던 표정이었다.
지환과 마주친 순간, 민재는 목 저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울컥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예전 지환이 자신을 지켜주겠노라고 맹세하던 순간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너는 나랑 뭘 하고 싶어?”
민재가 물었다. 그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박지환과 무엇을 하고 싶지? 내가 뭘 하고 싶지?
지환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저랑 각인해요, 선배.”
지환의 말은 예상을 한참 빗나가는 종류의 것이었다. 민재는 멍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