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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33)화 (134/181)

133

“…뭐예요?”

지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는 내쳐진 자신의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민재의 손을 잡아끌었다. 민재는 다시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뭐하는 거야!”

민재가 화를 내자 지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왜 화를 내요?”

어이가 없었다. 왜 화를 내냐니. 지환은 그사이 민재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멍청해진 모양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민재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화가 났다. 지환은 그가 꼭 지켜내고 싶었던 것을 너무 쉽게 무너뜨렸다. 그래놓고는 민재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했냐니. 내가 뭘 해요.”

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했잖아. 네가 다 망가뜨렸잖아. 민재는 비난의 말을 한꺼번에 퍼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너 정말 몰랐어? 내가 왜 센터에 남아 있었는지. 왜 너랑 페어 같은 걸 했는지. 정말 하나도 몰랐어?”

몰랐을 거다. 민재는 그런 이야길 지환에게 한 적이 없었다. 알아줄 리 없는 일이었지만 민재는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지환에게 원망을 쏟아부었다.

지환은 무슨 동아줄인 양 민재의 손을 끊임없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걸 놓으면 죽기라도 한다는 듯 하얗게 지린 얼굴을 한 채였다.

“…선배가 없어지고, 들었죠.”

“들었어? 듣고도 실험을 받았다고?”

“선배. 일단 진정하고….”

“그렇게 히어로 놀이가 하고 싶었어?”

입에서 빈정대는 말이 튀어 나갔다. 말을 함과 동시에 민재는 후회를 했다.

분명 민재는 지환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폭탄이 있는 건물로 혼자 들어갔다. 우석만 내보내고 자신만 깔끔하게 죽을 생각이었다. 

민재는 모두를 구하는 영웅이고 싶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이들은 구해내고 싶었다. 일 년 전 그에게는 그 중심에 지환이 있었다. 

어쩌면 그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되뇌었던 그런 히어로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민재도 구원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나.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렸고, 그가 노력했던 모든 것은 너무 쉽게 물거품이 되어 있었다. 늘 필요에 따라 살아야 했던 그는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기분이 되었다.

“말해 봐. 팀장이 되어서 센터의 간판이 되어 보니까 어때? 네가 원하는 대로야?”

민재의 이죽거림에 지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어떡해요?”

지환이 물었다.

“선배 그렇게 사라지고, 모두가 죽었다고 하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어요?”

지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민재는 지환의 빨간 눈을 노려보았다. 

“그러는 선배는. 우리 약속 같은 건 다 잊어버렸죠? 끝까지 찾으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달리 있었겠어요?”

민재는 지환이 서로 끝까지 찾겠다고 약속해달라고 하던 순간이 기억나 입을 다물었다. 

“…하. 나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었어. 알고 보니 납치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없어진 공간에 깨어나 보니까….”

그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되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니 말이 꼬였다. 지환은 그런 민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지환은 민재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그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가이딩이 퍼졌다.

“안 믿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지환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애초에 설명해도 안 믿을 거면서 왜 따진 건데. 민재는 어이가 없어졌다. 민재는 지환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재는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은 민재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는 작게 훌쩍거렸다. 우는 거야? 민재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실언을 떠올렸고, 약간 풀이 죽었다. 

민재는 손을 내려 자신을 세게 끌어안고 있는 지환의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몸통이 더 센 힘으로 조여졌다.

“야. 팔 줘봐.”

실험으로 억지로 가이딩이 가능하게 개조된 것이라면 민재에게 이렇게 계속 가이딩을 집어넣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민재는 지환의 손목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환의 가이딩은 노란불이었다. 위험 직전.

“이 꼬라지면서 왜 자꾸 가이딩 해. 조절이 안 돼?”

민재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지환의 얼굴을 살피려고 했다.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후유증이 생길 모르는 일이었다. 지환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이 아래로는 잘 안 내려가요.”

지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이딩 약 먹어.”

“…그것도 잘 안 들어요.”

민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왜?”

“…가이딩이 잘 안 들어와요. 먹으면 메스꺼워서….”

지환은 진심으로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입을 막기까지 했다.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싫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일종의 부작용인가? 민재는 그렇다면 어찌 되었건 기본값은 에스퍼인 이 몸뚱어리가 유지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덴.”

자신의 가짜 추모식과 새희망복지회에서 있었던 부상을 제대로 치료해 주기도 전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민재는 지환의 옷을 들춰 복부와 등허리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흔이 있어 보이는 곳에는 바로바로 힐을 사용했다. 

지환은 그런 민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묘한 표정이었다. 이전의 지환이 종종 하던 짓이었으나 민재에겐 이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지환의 몸이 꽤 매끈해지자 민재는 갑자기 울컥했다. 그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민재는 빠르게 주먹을 쥐고 지환의 옆구리를 쥐어박았다.

“아.”

지환의 몸이 확 숙여졌다. 그러고는 민재가 알고 있는 바보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선배를 냅다 기절시켜?”

민재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으름장을 놓자 지환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래서. 계획이 뭐야?”

민재가 물었다. 이렇게 자신을 데려와서 안전을 운운했으니 그간 지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알아보려는 생각이었다. 

“…밥 시킬까요?”

그러나 지환은 그런 민재를 안았다. 민재는 다시 주먹을 내지르려는 것을 참았다. 때마침 그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민재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

민재는 자신의 생을 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숙소는 안락했지만 좁고, 답답했다. 민재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의 생활반경은 순식간에 6평 안으로 좁아졌다.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지환은 민재에게 그저 이곳에 있으면 된다는 말만 지껄였다. 끼니가 되면 따듯한 밥을 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구해다 주었으나 나가지는 못하게 했다.

“여긴 아무도 안 와요.”

지환은 호언장담했다. 지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민재의 숙소를 드나들 수 없다는 거였다. 죽은 사람의 숙소를 드나드는 게 찝찝해서인가 싶었으나 그렇다면 우석과 은정이 한 번은 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숙소는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숙소에는 먼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어제 아침에도 지환은 깨끗한 수건을 걸레라며 들고 와 몇 번이고 꼼꼼하게 바닥을 훑어 닦았다. 

민재의 방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알 것 같아 민재는 조금 묘한 기분이 되었다. 죽었다는 동료의 방을 닦으며 그를 기다리는 기분이란 건 어떤 것일까 생각하면 지환을 연민하게 되었다. 그런 유의 커다란 애정을 민재는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민재는 욕실에 있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사이 얼굴 살이 조금 오른 느낌이었다. 지환은 혹시 모른다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커튼을 치고 있게 했고, 민재에게 아날로그 시계만을 주었다. 정확한 시간도 알지 못한 채로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뭘 잘못 살았을까.’

민재는 소용없는 푸념을 속으로 늘어놓으며 지환을 기다렸다. 지환은 현재 민재를 위해 밥을 포장하러 나간 상태였다. 민재는 무료함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지환도 답답했다. 

민재는 기척을 들어보고 문을 열어 복도를 살펴보는 시도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침대 쪽의 서랍장이 눈에 들어왔다. 민재는 그곳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작은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가 지환에게 남겼던 쪽지가 곱게 접힌 채로 들어 있었다. 내가 저렇게 접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으나 다른 주름은 없는 걸 보니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럼 박지환은 이 쪽지를 보지 못했을까? 민재는 복잡한 마음이 되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집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유언을 남기는 기분으로 썼다고 하지만 그걸 다시 읽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민재가 그것을 집어 들고 펼치지 않은 채로 쓰레기통 앞에 가 섰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지환이 들어오다가 놀란 듯 크게 눈을 뜨고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였다. 지환은 민재의 손에서 쪽지를 낚아채 내부를 확인했다. 

“…너 뭐해?”

민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지환은 쪽지를 보고 민재를 한 번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서랍장으로 걸어가 민재의 쪽지를 다시 곱게 넣어두었다. 

그러고는 다시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고 걸레를 빨아 바닥을 깔끔하게 닦아냈다. 민재는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물었다. 

“…그때 쪽지 봤어?”

“네. 얼마 뒤에요.”

지환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정수리밖에 안 보였다.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왜 날 기다렸어?”

자신이 마지막 인사로 남겨둔 쪽지를 보고 왜 기다렸냐는 질문이었다. 지환의 걸레질하던 손이 멈추었다. 

“깨어나자마자 왜 나 안 찾아왔어요?”

차가운 목소리였다. 지환이 서서히 일어났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민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재는 순간 가슴께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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