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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는 숨을 참았다. 매캐한 화약품의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기침을 하거나 소리를 키울 수는 없었다. 민재는 지환의 멱살을 틀어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환은 한쪽 팔로는 호영을 업고, 다른 쪽 팔로는 민재를 안은 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환은 민재를 자신의 품 안에 거의 가둬질 정도로 끌어당기며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숨이 막혔으나 민재는 항의하기는커녕 눈을 뜨기도 버거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간적으로 셋이 옆으로 콱 처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놀란 민재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양쪽 팔이 으스러진 지환이 있었다. 마주치는 눈이 일순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환은 다시 튀어 나갔다.
양쪽 팔이 칼날이 박힌 콘크리트 벽에 깔렸던 상황인데도 지환은 호영과 민재를 놓지 않았다. 민재는 숨을 쉬지 않았다. 지환에게 모두 놓고 도망치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방이 화염이었다. 지환은 사람 둘을 꾸역꾸역 껴안은 채로 불길 속을 날았다. 영원 같은 찰나가 계속되었다.
지환이 느끼는 충격이나 고통이 그의 팔 안쪽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지환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이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그가 그런 건지 민재 자신이 그러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민재는 지환과 맞닿은 모든 부위로 힐을 내보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 마요.”
지환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민재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환이 사라질 것 같았다.
“놓치지 마!”
누군가 외쳤다. 거친 목소리인 것 같았다.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모른 척하겠다더니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새된 비명 같은 것도 들려오는 듯했다.
민재는 시야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눈앞으로 회색과 붉은색이 지나쳐 갔다. 곧이어 어둠이 닥쳤다.
무언가 깨지는 파열음이 들렸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눈앞을 날아다녔다. 지환의 손가락이 민재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손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건물을 벗어나 낮은 고도로 날고 있었다. 지환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바닥 쪽에 붙어 달리듯이 날면서 빠르게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있는 듯했다.
“지금 능력 쓰지 마요.”
지환이 헐떡이는 목소리로 당부했다. 민재는 길을 둘러보았다. 어느 정도 낯이 익은 곳이 나오자마자 민재는 빠르게 방향을 지시했다.
“오른쪽으로 가.”
어디로 가는 건지 묻지도 않고 지환은 민재의 지시에 따랐다. 민재는 자신이 어젯밤까지 묵은 모텔의 뒷골목으로 지환을 안내했다.
지환을 벽에 기대서게 한 다음 민재는 호영을 지환에게서 받아 들었다. 낚아채다시피 해 호영을 둘러업은 민재가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지환이 민재를 붙들었다.
“어디 가요?”
“넌 지금 바로 들어가기 좀 그러니까 기다려.”
“싫어.”
지환이 민재의 옷깃을 말아 쥐었다. 민재는 한숨을 삼켰다. 주위를 둘러본 민재는 우선 지환의 손에 힐을 쓴 다음 자신의 옷 아래쪽에 그의 손을 문대어 닦았다.
“잠깐만 있어. 프런트에 누구 있는지 보고 올게.”
마주친 지환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볼도 열기에 그을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이 꼴인 너를 두고 어떻게 가.”
민재가 달래듯이 말해 보았다. 그러자 지환의 턱이 작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지환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잠시만. 응?”
민재는 마음이 급해졌다. 지환은 너무 많이 다쳤다. 상태를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빠르게 지환의 손을 뿌리치고는 낡은 모텔로 들어섰다.
호영은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걱정을 해야 하는 건지,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프런트는 평소와 다름없이 비어 있었다. 민재는 곧바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지환은 바보 같은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재는 그대로 그의 팔을 잡아끌고는 모텔로 들어가 자신이 묵던 호실로 들어갔다.
민재는 침대 끝 쪽에 호영을 눕히고는 지환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지환도 눕히면 좋을 테지만 그을음과 피가 많이 묻어 있는 상황이라 모텔 주인으로부터 괜한 의심을 사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지환은 넋이 없는 인형인 양 민재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 지환을 낡은 욕조에 걸터앉게 한 민재는 지환의 옷을 끌어 올려 몸통 쪽을 살폈다.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소매 벗어 봐.”
민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지환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파? 못 벗겠어?”
민재가 다시 물었다.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겨 보자 지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황한 민재는 지환의 몸을 붙들고 무작정 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
지환이 깊은숨을 내뱉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그의 입술이 살짝 달싹였다.
그때 작은 경고음이 울렸다. 민재는 빠르게 지환의 손목을 낚아채 가이딩을 확인했다. 그의 손목은 초록색이었다.
그렇다면 경고음은 민재에게서 난 것이리라. 그렇게 빠르게 여기저기 날아다녔는데도 가이딩 소진이 거의 안 되었다니 좀 이상했지만 연비가 안 좋은 자신의 몸도 정상은 아니니 민재는 그러려니 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야말로 이상한 걸지도 몰랐다.
“나 약 있….”
가이딩 약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민재는 그대로 지환에게 끌어당겨졌다.
카메라를 너무 가까이 들이댄 것처럼 초점이 흐려졌다. 지환은 그대로 민재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안을 헤집는 지환의 혀를 타고 무언가 민재의 목 뒤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따듯하고 몽글한 어떤 것이 민재의 몸을 채웠다. 민재의 감각은 예민하게 곤두섬과 동시에 무뎌졌다. 지환과 닿아 있는 곳의 촉각만이 선명했다.
그의 뒷목과 귓불을 어루만지는 손이 뜨거웠다. 민재는 지환의 화상이 낫지 않아 열기가 가시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민재의 몸에서 빛이 새어 나갔다. 지환이 낮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뭐지? 민재는 자문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지환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다. 발음이 뭉그러졌다. 뭐라고? 민재는 생각으로만 질문했다. 그것을 읽기라도 한 듯 지환이 좀 더 명확하게 말했다.
“선배가 구한 거예요.”
민재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지환의 목소리는 탁했다. 그것이 자신의 공을 그에게 미뤄 치하하는 것인지, 경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환의 얼굴이 멀어지는 순간 민재는 깨달았다. 그는 지금 가이딩을 받았다.
민재는 빠르게 자신의 손목을 확인했다. 초록색으로 변한 가이딩 수치를 보고 민재의 입이 헤벌어지는 찰나였다.
너 이 새끼 무슨 짓 했어, 라는 질문을 하려고 했다. 민재는 지환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러나 목에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을 끝으로 시야가 점멸했다.
옆으로 쓰러지는 자신을 받아내는 지환의 손바닥을 느낌과 동시에 민재는 정신을 잃었다.
***
지환은 깔끔한 숙소에 민재를 눕혔다. 낡은 천 쪼가리 같은 옷들은 모두 민재의 옷장에 있던 것으로 갈아입힌 상태였다. 지환은 욕실에서 수건을 따듯한 물에 적셔와 민재의 얼굴과 목, 그리고 손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자신을 치료하느라 묻은 혈흔 자국이나 그을음 같은 것들이 신경이 쓰였다. 민재는 언제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걸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그의 몸에 흠집이 나진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말끔해진 민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환은 젖은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의 머리맡에 자리 잡고 앉았다.
지환은 이 모든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현실로부터 순식간에 밀려난 것처럼 멍했다. 그럼에도 그의 머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착실하게 읊어댔다.
원래 여차하는 문제가 있을 시를 대비해 마련한 수면제였다. 민재가 깨어나려면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호영도 민재를 확인하지 못했으니 지금 그의 소재지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지환뿐이었다.
“아니야….”
지환은 조금 전 만나고 왔던 호영을 떠올렸다. 정신을 차린 뒤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검사를 받은 호영은 충격을 받은 듯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했다.
무엇을 뒤지고 다니다 그리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호영은 새희망복지회 본거지에 납치를 당한 것 같았다. 호영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에 납치 당시에 본인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정승규도 기억상실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더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호영은 빠른 시간 안에 능력을 상실했다. 아예 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등급은 D를 찍었다.
호영이 잡혀 있던 층이 보다 상층이었다는 것과 그 안에 있는 장치의 수가 적었다는 것으로 볼 때 주호영은 다른 에스퍼들과 다른 취급을 받는 이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었다.
즉 정승규와 같은 이유로 납치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주호영은 센터에 던질 경고장으로 쓰려던 게 아니라 여차하면 죽여 버리려고 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 지환이 호영을 둘러업었을 때 호영의 몸은 의식이 없는데도 지환의 가이딩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굶주린 사람이 눈앞의 음식을 끌어 입속에 욱여넣는 것처럼. 호영에게 가이딩을 주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옆에 민재가 있으니 폭탄 같은 몸을 만들 수는 없어 지환은 잠자코 가이딩을 내주었다.
아마도 정승규의 능력 퇴화는 점차적으로 가이딩을 줄여 모든 것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거라고 지환은 짐작했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캡슐처럼 생긴 장치는 그 과정을 돕는 도구일 것이다.
최근에는 새희망복지회의 여러 공간들에서 폭발 사고가 줄어든 상황이라 단서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는데, 에스퍼를 가둬두는 장치도 발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환은 그곳의 상황을 그렇게 짐작했다.
호영은 절규했다. 검사실을 나서면서 그는 지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지환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런 그의 손을 뿌리쳤다.
“…너만…너만 입 다물면….”
능력이 하락되었음에도 실장 자리를 지키고 싶은 모양이었다. 호영은 일그러진 얼굴로 지환을 탓했다. 너 때문이다. 너만 아니었어도.
그런 말들을 반복해서 내뱉으며 호영은 끅끅거렸다.
“말 안 할게요.”
지환은 호영에게 약속했다. 그러자 호영의 눈이 빛났다. 지환은 호영에게 빚을 지웠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곧 주인이 되찾을 자리였으니 호영이 조금 더 차지하고 있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지환은 민재의 하얀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이렇게 그의 체온이 손을 타고 전해지는데도 여전히 조바심이 났다. 두려웠다. 지환은 민재의 소매를 살짝 걷고는 가이딩 수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의 손목에서 빛나는 초록색은 지환이 만들어낸 안정이었다. 그 사실이 지환은 숨 막히게 좋았다. 눈을 뜬 민재는 아마도 그에게 화를 낼 테지만.
드디어 우민재가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왔다. 지환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