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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트여 있는 철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짐을 옮기는 작업 생각보다 고되었다. 민재는 모텔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마치고 땀에 젖은 옷을 모아들고 근처 코인 세탁방으로 향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물들을 바라보면서 민재는 생각을 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민재가 보는 동안 건물에 컨테이너가 두 번 내려졌다. 두 번째 트럭에서는 오전에 들어갔던 컨테이너가 다시 실려 나오는 것 같았다.
이제 알아보아야 할 부분은 그것이 규칙적이냐는 것이었다.
민재는 옷을 갈아입고는 모자를 눌러쓰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일하면서 내내 보았던 건물의 주변을 천천히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녀보았으나 차나 사람이 건물을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민재는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짐을 옮기며 건물에 들어오는 차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날은 차가 한 대만 들어왔다가 전날의 컨테이너를 들고 사라진 듯했다. 그렇다면 건물 안에는 당일 들어온 컨테이너 하나가 있는 셈이었다.
민재는 퇴근을 한 뒤 근방의 전자상가로 가 소형 카메라를 두 개 구입했다. 그러고는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 아무래도 계속 걸어 다니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깐 눈을 붙인 뒤 민재는 곧바로 다시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할 만 해?”
물을 마시고 있는 민재에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민재는 빠르게 마스크를 올렸다. 중년의 남성이었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남자는 그런 민재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좀 비리비리해 보여 가지고 하루 하고 안 나올 줄 알았더니.”
남자는 의외로 깡다구가 있다며 칭찬이라고 봐야 할지 모를 말을 했다. 남자는 민재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따지고 보면 일반 사람보다 타고난 힘이 센 편이니 몸집에 비해 많은 짐을 들 수 있는 것이었지만, 민재는 잠자코 남자의 말을 받아들였다.
“뭐 죄지었어?”
남자는 별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그러고는 민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황급히 마스크를 쓰는 걸 보고 사연이 있다고 추측한 모양이었다.
죄를 지었다라.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았다. 민재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뭐라 답을 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는 민재를 보고 남자는 혀를 찼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좀….”
“…뭐해요?”
첫날 일을 알려주었던 남자가 지나가다 민재를 보고 물었다. 민재는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후 남자는 몇몇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다 민재를 손으로 가리키는 등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민재는 일을 마칠 때까지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신체를 노출시키거나 현장에서 떨어질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퇴근한 후에는 카메라를 회수해 확인한 다음 다시 설치했다. 밤사이에는 커다란 차가 들어가는 일도, 나가는 일도 없었다.
야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불규칙적으로 몇 군데 불이 켜져 있다 새벽 늦게 꺼진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새희망복지회에 관해서는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했다. 지나친 염려 또한 필요했다.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는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다시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민재는 센터에서 움직일 때는 그래도 편한 편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원도, 동료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성가셨다.
거기다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자니 힘이 들었다.
민재는 모텔을 한 번 옮겼다. 낡은 모텔이라 장기 투숙을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으나 한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낯익은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되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도 정보가 조금이라도 확보되면 바로 그만둘 생각이었다. 민재는 일을 할 때는 더더욱 유령처럼 조용히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민재에게 관심을 두던 남자도 몇 번 가벼운 시비를 걸다가 이내 흥미를 잃은 듯했다.
건물에 드나드는 트럭의 수는 어느 정도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는 두 대. 하루는 한 대였다. 차가 들어왔다 나가는 시간대도 어느 정도 비슷했다.
민재는 그것을 두 번 확인했다. 그러니 대략적으로 6일 정도 되는 기간을 공사장에서 일한 셈이었다.
지환은 회복 중이라 잠깐 현장 출동을 자제한다는 기사가 떴다. 민재는 센터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았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겨 노출을 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단순히 보여 주기를 위한 것일 수도 있었다. 민재는 중간중간 새로 뜨는 기사들을 확인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거두어들인 민재는 촬영된 것들을 확인하고 안에 있는 파일을 삭제한 후 기계도 모두 파손시켰다.
-살아 있냐.
그간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두더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가이딩을 한 번도 받지 못했으면 조금 위험해질 법한 시간이 되긴 했다. 민재는 읽고 답하지 않았다.
***
공사장 일을 그만둔 민재는 곧바로 전기 자전거를 구매했다. 애초에 그만두고 할 것도 없이 인력사무소에 찾아가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좀 더 빨리 움직이는 데다 도로에 쉽게 녹아들려면 오토바이가 좋을 것 같았으나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구하려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민재는 컨테이너 차가 들어올 시간대가 되기 전부터 조금 떨어진 곳을 돌아다니며 대기했다. 계속해서 한 곳에 서 있을 경우 오히려 눈에 띌까 싶어 부러 돌아다녔다.
세 바퀴 정도 돌아다녔을까. 민재가 쫓아야 할 차가 보였다. 민재는 트럭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 차가 가는 곳을 쫓기 시작했다.
컨테이너를 비운 트럭은 꽤 한참을 달려 비슷하게 생긴 차들이 있는 차고로 들어갔다. 민재는 빠르게 바로 근처에 자전거를 세운 다음 안쪽을 살피기 위해 슬쩍 차고로 따라 들어갔다.
민재는 자신이 쫓은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남자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운전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편한 티셔츠와 바지에 그물 같은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남자는 차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트럭 아래로 빠르게 기어들어갔다.
이 차고 자체가 새희망복지회랑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오후에 이 차는 다시 움직일 터였다. 그때까지 눈에 띄지 않고 차의 움직임을 살피려면 이쪽이 가장 빨랐다.
시간은 느리고도 빠르게 흘렀다. 민재는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를 느끼며 차의 밑바닥을 마주한 채로 숨을 죽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 위에 무언가 올려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났다.
“지금쯤 출발하면 되죠?”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했다. 출발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던 남자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재는 아주 조금씩 몸을 움직여 여차하면 바깥쪽으로 몸을 굴릴 수 있도록 했다. 남자의 발걸음이 잠시 반대편으로 향했을 때 민재는 몸을 굴렸다.
최대한 기척을 죽여 몸을 일으키고는 재빠르게 컨테이너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안에는 철로 된 선반 같은 것들이 있었다. 민재는 안쪽까지 들어가 벽에 딱 붙어 섰다.
차고에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혹시 문제가 생기면 모두 기절시키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나, 둘….”
남자는 숫자를 세더니 컨테이너 문을 닫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동 거는 소리와 함께 발밑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민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면서 주머니에 있던 폰을 꺼내 불빛을 비춰가며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사람들이 몇 보이기 시작했다. 민재의 짐작이 들어맞았다. 이들은 아마도 납치되었거나 도망자를 보호해 준다는 곳에 머물다가 이렇게 옮겨지는 자들일 터였다.
민재는 사람들을 흔들거나 눈꺼풀을 올려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깨어나질 않았다. 혹시나 싶어 맥을 짚어 보거나 호흡을 확인해 보았으나 모두 살아 있는 상태였다.
가이딩이 느껴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에스퍼일 것이다.
한동안 달리던 컨테이너가 멈추었다. 시동이 꺼지는 듯 진동이 사라지자 민재는 빠르게 한 남자의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꽤 큰 소리를 내며 컨테이너가 살짝 기울었다. 아래로 내려지는 듯했다.
민재는 내부 인원과 확인하고 이야길 나누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차는 그대로 바깥으로 떠났다. 아마도 오전에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를 싣고 나갔을 것이다.
잠시 후, 컨테이너의 문이 열렸다. 누군가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을 한 명씩 둘러업고 어딘가로 옮겼다.
민재는 어딘가에 눕혀졌다. 손으로 살짝 더듬어 보니 매트리스가 매우 얇은 간이침대 같았다. 민재는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려고 했다. 인부 두 명이 내부에서 사람들을 꺼내고 있었다. 그 후에는 아마 침대를 옮기려는 것 같았다.
민재는 인부들이 모두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왔을 때, 민재는 튀어 오르듯 움직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민재의 눈앞에 곧바로 승강기가 나타났다. 고민하기보다 움직이는 게 나았다. 승강기에 올라탄 민재는 중간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내리기 직전 자신이 있던 층을 누른 다음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민재는 복도를 따라 공간을 살피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좁은 복도를 벗어나자마자 민재의 눈앞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닥에 복잡하게 뒤엉킨 굵은 전선들과 관처럼 놓여 있는 기계들이 있었다. 민재는 그 기계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바로 자신이 일 년간 잠들어 있었던 곳이었다. 민재는 캡슐처럼 생긴 기계에 난 작은 창 같은 곳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잠재운다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기계에 넣고 잠재울 필요가 있을까?
단순히 의식만 잠재우는 기계가 아닐 수도 있었다. 민재는 기계의 용도를 살피기 위해 꼼꼼하게 둘러보았으나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큰 소리로 기계음이 들려왔다. 로봇이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