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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은 자신을 위주로 포커스가 잡힌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보았다.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뭐라도 짚이는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영상을 수없이 되감기하면서 지환은 자신 근처에서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민재가 그 안에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실은 그 반대인지도 몰랐다.
지환은 계속해서 솟구치는 분노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추모식에 폭탄을 터뜨린 미지의 존재에게도 화가 났고, 그걸 또 이용해 먹는 센터에도 화가 났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민재에게도 화가 났다.
그러나 지환은 알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환은 결국 이번에도 제대로 민재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났다.
빈 껍데기뿐이란 걸 알지만 그의 추모식도 지키지 못했고, 우민재 자체도 행방을 알지 못하는 채였다.
지환은 자신에게 조사권을 넘기라고 할 생각으로 호영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종종 호영은 자리를 비울 때는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가 두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열려 있는 걸 보니 오래 나가 있을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지환은 앉아서 그를 기다리기로 마음먹고는 사무실 소파에 자리 잡았다. 금방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던 지환의 예상과 달리 호영은 한참 동안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환은 지루함을 견디다 몸을 일으켜 그의 사무실에 있는 것들을 뒤적거려 보기 시작했다.
서류철에 보관되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센터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졌던 사건이나 기록물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이것은 민재가 사무실을 사용할 때부터 있던 것이었다.
민재의 숙소는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할 수 있었으나 사무실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실장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가끔 지환은 그 당시 실장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환은 민재의 책상에 앉을 수 없었다. 민재는 사무실에 잘 들르는 편은 아니었으나 필요할 때에는 저곳에 앉아 업무를 보기도 했다.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게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지환은 민재와 단둘이 사무실에 있게 되는 순간을 즐겼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라든가, 이따금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는 민재의 기척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지환은 수집했다.
그래서 지환의 자리는 언제나 책상 맞은편에 있는 이 소파여야 했다. 그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이 감각을 정확히 무어라 정의 내리기 어려웠으나 지환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지환은 지금은 호영이 사용하고 있는 책상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호영 역시 서류 작업을 엄청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닌지 필기구가 많지는 않았다. 서류 역시 쌓여 있는 편도 아니었다.
그 서류 중 많은 것이 지환이 최근 다녀온 현장들의 보고서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토커인 양 모아놓은 자료들을 보고 지환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노크를 하고는 호영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오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아… 주 실장님은 안 계신가요?”
“네.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아….”
작은 감탄사를 내뱉은 오준은 지환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조용히 나가서 돌아갈지, 같이 기다릴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문 안 잠겨 있는 거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네요.”
지환이 덧붙이자 오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소파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서류철 하나가 들려 있었다.
“주호영한테 보고할 게 있어요? 비서님이?”
윤 비서는 센터장 직속 비서인데 굳이 실장에게 무언가를 보고할 정도냐는 질문이었다. 지환의 질문에 오준은 눈을 두어 번 정도 깜박이더니 답을 내놓았다.
“아뇨. 보고 의무는 없어요. 이건 제가 뭐 물어볼 게 있어서요.”
“…뭔데요?”
대답을 줄 거라는 생각으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오준은 원체 말이 없는 편인 데다 제 애인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센터의 모든 사람에게 입이 무거운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환이 그를 믿지 않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었다.
지환에게 오준은 우석의 애인보다는 센터장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애초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아직 저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런데 오준은 답을 했다.
“사실은 우민재 실장님 추모식 관련해서요. 좀 이상한 게 있어서….”
“어떤 게요?”
지환은 오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다급하게 물었다. 오준은 그런 지환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 사실 저 박 팀장님도 한번 찾아뵈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추모식 열린 장소 대관을 제가 추천했었는데….”
말을 하다 오준은 잠시 지환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의심하거나 화를 낼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지환은 더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 오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혹시 폭탄이 터진 위치를 저한테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오준은 역으로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지환은 꽤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환의 얼굴이 굳어지자 오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고… 제가 그냥 마음에 걸리기만 해서요.”
오준이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반응으로 확실해졌다. 윤 비서는 호영이 추모식 때 폭탄을 설치한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센터장과 아예 무관한 일도 아닐 것이다.
“…내부도 같은 거 있어요?”
지환이 물었다. 오준이 장소를 추천했다고 하면서 폭탄 위치를 물었으니 가지고 있으려나 싶어 한 질문이었다. 오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져온 서류철을 열어 지환에게 내밀었다.
추모식이 열린 곳을 간략하게 도식화한 지도였다. 그리고 X로 표시된 부분이 지환의 눈에 들어왔다.
지환이 이를 가는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을 울렸다. 오준은 지환을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내리깔았다.
“이번 한 번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오준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이 새끼 어디 있는지 혹시 알아요?”
지환이 묻자 오준은 고개를 저었다. 몰랐으니 이 사무실로 왔을 터였다.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생각을 한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사실, 비서님이랑 나만 아는 걸로 해요.”
지환이 말했다. 오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누가 더 알게 되면….”
“네. 제 책임입니다.”
겁박이라도 하려 했는데 오준은 다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환은 그런 오준을 잠시 바라보다 사무실을 나갔다.
“주호영 본 적 있어?”
“어… 실장님 못 봤는데요.”
“언제부터.”
“네?”
“언제부터 못 봤어?”
“한… 며칠 된 것 같아요.”
주호영이 꾸준히 출몰하는 훈련실에서 에스퍼들을 붙잡고 물어봤으나 다들 요새 잘 보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지환은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호영 어디 있는지 알아?”
“…야. 너 그래도 호칭은….”
“최근에 언제 봤어?”
“…한 삼 일 전에? 왜 또 무슨 일인데.”
은정은 비교적 호영과 마주칠 일이 많았다. 제1팀에게 지시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호영이 지환을 통하지 않고 은정을 통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서로 마주쳐서 좋을 사이가 아니었으니 지환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은정도 보지 못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니.
지환은 계속해서 주호영을 찾아 센터를 뒤지고 다녔다. 행정실에 그가 출동 경로를 남겼는지도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로 간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날 내내 사무실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주호영은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다.
***
민재가 가장 먼저 가 본 곳은 자신이 태현과 빠져나왔던 그 공간이었다.
태현이 그렇게 계획했던 것인지 그곳에는 커다란 싱크홀처럼 검은 구멍만이 남아 있었다. 깊이가 꽤 있는 편이라 잔해에서 뭔가 찾아보려고 해도 섣불리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근처에 포클레인이 있는 걸 보니 대강이라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민재는 다음으로 근처 건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태현이 말한 본거지는 어디인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바로 들어가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희망복지회가 어떤 용도로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정확히는 알기 어려웠다. 그런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잠입하는 것이 가장 좋았으나 우선 주변 환경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민재는 근처에 있는 공장 몇 군데를 돌다 건설 현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새희망복지회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터에 새 공장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민재는 이른 새벽 근방에 있는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민재를 보고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던 소장은 그가 벽돌이 잔뜩 든 상자를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 올리는 걸 보고는 한번 보자며 민재가 보았던 현장으로 데려다주었다.
첫 근무라는 민재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물건을 옮기는 일만 시켰다. 그러는 것이 민재도 마음이 편했다. 철근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나르는 동안 민재는 계속해서 그가 보아야 하는 건물을 주시했다.
창문이 크게 나 있지 않는 건물이라 내부를 관찰하기는 어려웠으나 어떤 것들이 드나드는지 정도는 살필 수 있었다.
컨테이너 상자를 끌고 온 트럭 두 대가 두 시간 정도의 차를 두고 드나든 것이 끝이었다. 그 건물은 조용했다. 차량은 커다란 철제 차고로 들어가 컨테이너만 내려놓고 밖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안을 살피려고 했으나 사람들 몇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뭐해. 멍하니 있다가 다쳐요!”
누군가 민재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민재는 어깨에 짊어진 시멘트 포대를 고쳐 들고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