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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21)화 (12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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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는 자신의 추모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곤란해졌다. 사람들이 그 이야길 매우 자주 꺼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죽지 않은 것이 기대를 배반하고 있는 느낌이 되었다.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두더지와 악어, 토끼는 추모식에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에스퍼와 가이드 등이 득시글거릴 테니 안 가는 것이 당연히 맞았다.

그러므로 역시나 민재도 가지 않기로 했다.

민재는 자신의 추모식에 왔을 센터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우석과 은정은 왔을 것이다. 지환은 왔으려나.

그들이 울고 있을지 조금 궁금했다. 민재는 그들이 울고 있는 것이 좋을지, 웃고 있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민재는 언제나 경계에 있었다. 온전한 인간도, 완벽한 에스퍼도 아닌 기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으로 살아온 그는 현재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상태였다.

센터를 벗어나면 모든 것이 편할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타인에 의해 벌어진 일이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민재는 늘 그러했듯 어정쩡한 상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우민재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

계속해서 관련된 정보를 브리핑하는 뉴스를 보던 토끼가 악어에게 물었다. 악어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뭐… 상징적 영웅?”

악어는 말을 뱉고 민재를 슬쩍 쳐다보았다. 반응을 살피는 것 같았다. 민재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화면 안에서는 호영이 그의 사진 앞에 촛불을 밝히는 짧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재밌게도 전시된 사진들 대다수는 민재가 포토샵으로 만져둔 사진들이었다. 그곳에 우민재가 있으면서 동시에 없었다.

뉴스를 보던 민재는 문득 왜 은정이 나오지 않은 건지 궁금해졌다. 은정은 일을 잘하는 데다 카리스마가 있어 자신은 언제고 다음 실장이나 팀장 자리를 은정에게 주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더 그랬다.

두더지는 갑자기 과일을 깎아왔다. 왠지 모르게 어색해진 민재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지 않고, 과일도 먹지 않았다.

그때였다. 폭발 사고가 일어나 추모식이 중단되었으며 센터의 많은 에스퍼들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는 속보가 발표되었다.

[아직 파악 중에 있으나 인명 피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불길이 치솟는 건물 사진이 보였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구조자와 부상 정도에 대한 뉴스가 계속해서 브리핑되고 있었다.

“오빠.”

토끼가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악어를 불렀다. 악어가 토끼를 돌아보았다.

“우린 언제까지 숨어 있어?”

그 질문에 악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악어의 질문에 두더지는 곤란한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되었건 매번 사람들이 다치고 힘든 일이 생기잖아. 근데 우리는 계속 도망 다니는 거고.”

“…그건 에스퍼의 의무가 아니야.”

“그렇지만 다들 의무라고 하잖아”

“누가 해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아니야.”

토끼의 눈이 빨개졌다. 그녀는 주먹을 말아 쥐고 악어를 노려보다 말했다.

“내가 있으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잖아.”

토끼는 자신이 살리거나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두더지는 토끼를 말리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관두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만 이야기 해.”

악어가 피곤하다는 듯 자신의 미간을 눌러 지압하며 말했다. 그러나 토끼는 멈추지 않았다.

“나도 이제 능력 사용 잘할 수 있어. 배웠단 말이야. 오빠는 필요하면 쓰면서 왜 나는 다 안 된다고만 해? 나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토끼는 손 위로 흰 빛을 띄워 보였다. 악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그랬잖아. 그건 널 지키기 위해서라고.”

“거짓말 치지 마! 오빠는 그냥 날 가둬 두고 싶은 거잖아. 내가 못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토끼가 화를 내는 건 처음 본다. 민재는 지금 이 둘을 말려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고민했다.

“아니, 너를 가두고 싶은 게 아니야. 그건….”

악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이어 나갔다.

“네가 힐을 쓰기 때문이야. 능력치가 얼만지는 자세히 몰라도.”

“…그러니까 나는 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잖아.”

“사람들을 돕는 데에만 쓰일까?”

악어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의 말에 토끼의 눈이 흔들렸다. 악어는 순간 자신의 동생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민재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 우민재?”

민재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민재는 상황을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민재의 귓가를 앵커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두 번째 폭발을 막으려던 박지환 에스퍼가 중태에 빠졌습니다. 센터 측에서는 한 에스퍼의 죽음을 기리는 자리에서 벌어진 비극에 참담한 심정을 표하며 박지환 에스퍼의 회복에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

중태라는 글자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지? 화상을 입었나? 아니면 골절? 아니면 폭주 위험?

민재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민재는 빠르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악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악어의 손에는 어느새 단도가 들려 있었다.

***

민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몹시 괴이하고 우습게 느껴졌다.

여태 도망 다녔으니 운이 좋았거나 그렇게 멍청한 것은 아닐 터였으나 악어의 지금 행동은 정말이지 평범한 인간의 그것이었다.

그것이 민재에게 묘한 허탈감을 주었다.

센터에서 나고 자란 인간이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는 에스퍼가 눈앞에 있으면 절대로 칼을 먼저 들이밀진 않을 것이다.

소용이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이 등급 높은 힐 능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라면 더더욱 무용지물이었다.

그것이 민재와 이들의 차이였다. 우민재는 어릴 때부터, 놀이동산에서 빌어먹을 순간의 연민으로 누군가를 치료해 버린 때부터 괴물로 자라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달랐다. 능력을 갖게 되어서 숨어 지내고, 계속해서 도망쳐 오고 있지만 이들은 인간으로 자랐다. 실소를 짓고 있는 민재를 두더지와 악어가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토끼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악어의 곁으로 가 그의 손을 잡아 내리려고 했다.

“왜 그래….”

“언제부터 알았어?”

민재가 차분하게 묻자 악어는 한숨을 내쉬고는 칼을 조금 내렸다.

“조금 됐어. 너는 밥 먹을 때 빼고는 주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어느 순간 알겠더라. 네 얼굴 워낙 여기저기 팔렸으니까.”

“그럼 왜 여태 모른 척했는데?”

“…네가 나쁜 놈 같지는 않았으니까.”

민재는 악어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쁜 놈이면 어쩌려고 했는지, 이들이 생각하는 나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여기서 너희 다 죽이고 떠날 수도 있는데.”

“야. 야. 잠시만….”

민재가 태연하게 말을 내뱉자 두더지가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넌 이 중에서 제일 느리니까 가장 먼저 잡힐걸.”

두더지에게 경고하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악어의 뒤로 숨었다.

“쟤가 없으면 너희도 별수 없어지겠지. 가이드 없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에스퍼는 몇 없으니까. 너는 그렇다 쳐도 네 동생도 폭주 위험에 처하게 할 거야?”

민재는 계속해서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위험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었다. 어떤 거짓말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런 민재를 악어는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다.

민재는 악어의 뒤쪽에 있는 화면을 힐끔 바라보았다. 지환의 에스퍼 등록증 사진과 함께 아까부터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었다. 민재는 지환을 보러 가고 싶었다.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면 좀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보러 가면? 그러면 뭘 할 수 있지?

지금 바로 다시 대중 앞에 서는 선택을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추모식에서 폭탄이 터진 뒤에 살아 돌아온 우민재? 미친 소리였다. 그렇다면 그는 지환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도 별다른 조치를 해 주지도 못할 터였다.

센터에 힐을 가진 에스퍼가 새로 몇이나 들어왔으려나.

순간 민재는 토끼와 눈이 마주쳤다. 토끼는 걱정을 담은 눈으로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왜. 이래도 내가 나쁜 놈 같지 않아?”

민재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 질문에 악어는 바닥에 칼을 던진 뒤 의외로 담담하게 답했다.

“…거래를 하자. 아마도 네가 받아줄 것 같아.”

민재는 곧바로 잭을 떠올렸다. 악어는 아마도 그걸 제시할 것이다.

“네가 받은 실험 영상 샘플 두 개와 그 날의 영상 일부를 내가 가지고 있어.”

그 날. 악어는 그 날이라고 지칭했다. 영상 샘플이라고? 그 날의 기록이 있다고?

“내 동생도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어.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실험은 끝났어.”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민재는 침묵했다.

“잭은 너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했어. 나도 처음엔 네가 위험인물이라고 판단했고.”

복수. 그 단어를 듣자마자 민재의 입에서 다시 실소가 터져나갔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꽤 여럿이 죽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어쩌면 그가 그렇게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했으니까.

그 날. 끝없는 고통 속에서 민재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갖게 된 자신을 저주했다. 아무도 살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두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폭주 직전까지 내몰렸던 민재는 실험실에서 가폭주를 일으켰고, 12명의 연구진이 죽음을 맞이했다. 연구소 전체 인원이 16명 중 대부분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남은 네 명 중 세 명은 죽었다. 남은 하나가 조 박사였다. 나머지는 아마도 김진성이 살해했을 것이라고 민재는 추측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살아나간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가 복수를 하고 싶어 한다니 민재는 살아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반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스스로가 끔찍하게 여겨졌다.

“우릴 영원히 찾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면 좋겠어.”

악어가 말했다. 민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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