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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은 자신의 오지랖을 부린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세세한 계획까지 진행하진 않더라도 이따금 센터장이 원하는 행사를 기획할 때 자신이 전에 해 봤던 몇몇 업무에 관해 도움을 주려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우민재 실장은 실내 업무를 웬만해선 하지 않으려 들었기 때문에-보고서도 올리기 싫어했다.- 현장 업무를 위주로 움직였으나 주호영 실장은 좀 달랐다.
한 마디로 센터장이 시키면 무엇이든 했다.
그래서 약간의 동정심이 발동된 오준은 호영이 말한 추모식을 진행하기 편안해 보이는 공간의 대관 절차와 비용 관련한 문제를 조금 조사해 호영의 내부 메일주소로 전송했다.
-몇 명 수용 가능한 게 좋을까요?
-식 순서… 중요하겠죠?ㅠㅠ
-윤 비서님 또 필요한 게 있을까요?
그 후로 호영은 물 만난 물고기인 양 날뛰면서 메일을 보내왔다. 우석과 메시지를 나누는 시간보다 더 잦을 지경이었다.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부담스럽고 걱정되는 것이 컸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겼을 때 오준의 책임도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주호영 실장도 주로 현장으로 출동하는 인원이었는데 갑작스레 추모행사를 그에게 맡기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고심하다 행사 관련 보험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메일을 보내준 오준은 센터장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오준은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센터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오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장은 의자에 뒤로 기대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오준이 물었다. 센터장은 근래 몇 개월 사이 꽤 늙었다. 피로에 젖은 눈을 끔벅이던 센터장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오준을 바라보았다.
센터장은 흰머리가 약간 늘었으며, 예전에 비해 점점 말라갔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유독 선명했다. 약간의 섬뜩함 같은 것이 오준의 등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민재 군이 보고 싶은 날이군.”
센터장의 목소리는 씁쓸하게 들렸다. 가장한 것일지 몰라도 그는 꽤 슬퍼 보였다. 오준은 순간적으로 그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 원래는 이렇게 센터가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에스퍼의 단체를 짊어진다는 것이 무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준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를 뒤흔들었다. 말없이 오준을 바라보던 센터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별다른 일 없으면 정리하고 일찍 들어가 봐.”
“…감사합니다.”
의외의 말이었다. 오준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문을 조용히 닫자마자 이상하게 속이 메슥거리며 토기가 일었다. 오준은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다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를 부여잡자마자 구역질이 튀어나왔다. 누군가 오준의 뇌수를 손으로 휘젓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어지러웠고, 머리가 광광 울렸다.
낮에 먹은 것들을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오준은 구역질을 멈출 수 있었다. 속이 쓰라렸다. 물을 내리는 오준의 귓가에 우석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그만해요. 우리.”
우민재 실장이 사라지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우석에게 오준은 사귀자고 했다. 그러나 우석은 관계를 끝내고 싶어 했다. 우석은 하루 빨리 센터를 나가라며 오준을 재촉했다. 친구를 잃은 그는 주변인을 모두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준은 그런 그를 붙들었다. 그는 여태 센터와 우석을 모른 척하고 싶어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스스로가 우석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그러나 우석이 힘들어하는 걸 더 보고 싶진 않았다. 오준은 스스로 센터에 남기로 결심했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는 거예요.”
오준은 그렇게 말하고 우석을 잡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센터장을 불쌍히 여기다니? 그와 엄마를 겹쳐 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준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들고 한참을 손을 씻다가 자리로 향했다.
-오늘 퇴근 몇 시예요?
우석의 문자가 와 있었다. 지금 당장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어려웠다. 오준은 망설이다 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끄려고 했다.
-배치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지긋지긋한 주 실장의 메일이 또 도착해 있었다. 한숨을 내쉰 오준은 그가 보낸 배치도를 확인했다. 제대로 표기한 것도 없이 대강 선으로만 만든 것에 빨간색으로 두 개 정도 엑스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뭔가 고려하다 안 될 것 같아서 저렇게 한 건가? 아님 파일이 잘못 왔나?
-보내주신 배치도가 맞다면 전면부 중앙에 사진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오준은 배치도를 캡처해 그림판으로 네모와 몇 가지 배치를 옮긴 다음 호영에게 답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는 컴퓨터를 종료하고 가방을 챙겼다.
-오늘 몸이 조금 안 좋아서 먼저 퇴근할게요.
오준은 우석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센터를 나섰다. 곧바로 우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가 안 좋아요?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
“머리가 좀….”
오준은 말끝을 흐렸다.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석은 걱정의 말을 건네고 이따 다시 연락하겠다며 병원에 꼭 가 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오준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
추모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환은 절망과 기대를 동시에 품은 채로 그 기간을 보냈다.
처음 기사가 났을 때에는 민재가 그것을 보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센터장실로 찾아가 난리를 피웠으나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러고 나서는 차츰차츰 어쩌면 민재가 추모식에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선배도 사람이니 죽지 않은 자신을 기리는 추모식을 하면 기가 차서라도, 혹은 호기심에서라도 찾아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환은 덫에 먹이를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의 마음으로 시간을 죽였다. 그사이 지환의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지환의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의문들이 자라났다. 왜 안 올까. 혹시 내가 착각을 한 걸까? 그런 생각들이 지환의 불안을 조금씩 키웠다.
추모식 날, 검은 정장을 꺼내 입은 지환은 거울 앞에 섰다. 검은 정장을 입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추모식에 이상한 옷을 입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민재가 올지도 모르니 너무 추레하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추모식은 꽤 큰 강당에서 열렸다.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강당 안에 줄지어 우민재의 사진 앞에 흰 꽃을 놓아두었다. 구슬픈 노랫소리가 잔잔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언론에 공개되었던 히어로 우민재의 사진들이 공간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사진이었다.
꽤 많은 일반 시민들이 그곳을 찾아왔다. 모두 민재에 관해 크고 작은 말을 한마디씩 하며 그를 추억하는 행위를 보였다.
지환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이 말하는 우민재가 각기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우민재를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그는 민재가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어렸을 때의 사진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확히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민재의 어릴 때의 기록이 얼마 없었으므로 귀한 자료처럼 느껴졌다.
“지환아.”
뒤에서 은정이 그를 불렀다. 은정은 조금 파리한 안색의 서연과 함께였다.
그 날, 민재와 태현이 같이 사라진 뒤로 서연은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은정의 말에 따르면 이제는 그녀의 전담 가이드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했다.
지환은 서연에게 묵례를 해 보이고는 은정을 마주 보았다.
“왔네.”
은정이 다소 힘없이 웃었다. 지환은 계속해서 민재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데다, 작년 이맘때의 장례식 아닌 장례식에서는 지환이 난리를 쳐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와야지.”
다른 의미의 말이었으나 은정은 잘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환은 그런 은정에게 작게 미소 지어 보였다.
잠시 뒤, 지환은 오준과 함께 참석한 우석을 발견했다. 그 역시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드는 건지 묘한 얼굴로 민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환은 에스퍼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얼굴을 계속해서 살폈다. 혹시 그들 중에 우민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모자를 쓴 사람들은 더 눈여겨봤다.
어쩌면 민재는 색이 있는 렌즈를 착용했거나, 가발을 착용했을 수도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관찰하며 지환은 민재가 이곳에 왔으면 했을 법한 말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았다.
“지랄한다….”
지환은 낮은 목소리로 욕을 읊조렸다. 그때였다. 지환의 귓가에 누군가 작게 헛웃음을 짓는 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지환은 빠르게 둘러보았으나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선배?”
지환이 작게 속삭이듯 민재를 불렀을 때였다. 굉음이 지환의 귓가를 때렸다. 번쩍하고 눈앞이 하얗게 잠식되었다가 붉어졌다.
조금 전까지 잔잔한 음악이 흐르던 공간에 비명 소리가 가득 찼다. 지환의 눈앞에서 민재의 사진이 동강 나고 불길이 치솟았다.
예고도 없이 폭탄이 터졌다. 소형이었으나 다친 사람들도 몇 있었고, 에스퍼들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대피 시작.”
지환이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려고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지훈이 창백한 얼굴로 지환의 뒤쪽 벽을 가리켰다.
“저기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몸을 돌리자 폭발의 여파로 벽의 일부가 붕괴된 것이 보였다. 하필 기둥 쪽을 건드려 잘못하면 건물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폭탄이 한 개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지환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그쪽 벽에서 떨어지세요!”
지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몇몇 에스퍼들이 빠르게 그 방향으로 가 거동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편으로 들어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은정 역시 빠르게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때 지환의 눈앞에 또 다른 폭탄의 붉은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폭탄은 투명한 소화전 벽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무너지고 있는 벽의 근처였다. 이대로면 이 공간 자체가 위험해질 터였다.
“전부 다 나가세요!”
지환은 소리치고 몸을 날렸다. 늘 소지하고 다니는 실드를 꺼내 소화전 옆에 던지듯이 설치한 지환은 그 앞을 막고 섰다. 다 막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충격완화는 해 줄 터였다.
‘어디부터 떨어질까?’
벽이 점점 더 갈라졌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 민재를 떠올렸다. 그도 이와 같은 풍경을 보았을까? 오늘 여기 있었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지환은 처음으로 민재가 여기 오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한발 늦을 수는 없었다. 지환은 무너지는 기둥의 옆쪽으로 팔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