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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는 심란한 마음으로 신문지를 쳐다보았다. 하루 이틀이 지난 신문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신문을 받아 읽었다. 사실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소일거리를 자주 도와주는 젊은이들에게 신문지를 건네주는 것을 꺼려 하지 않았다.
두더지는 자신이 신문을 오려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주변 몇몇의 이웃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민재는 며칠 전 두더지의 손에 이끌려 폰 하나를 개통했다. 비상 상황에 연락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자신들은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날로그에 가까운 핸드폰이 위치를 추적하기가 더 어렵다며 두더지가 쥐여준 것은 조그마한 슬라이드형 기계였다.
개통은 주로 폰을 판매하는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두 개 이상의 넘버가 개통되는 방식으로, 불법이었으나 개통 내역이 남지 않도록 하게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요금은 그들이 직접 지불했다.
“어차피 우린 정확히 ‘인간’에 속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런 식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꺼려 하는 민재에게 두더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준법정신은 인간에게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민재는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도망을 다니는 이들도 그들 스스로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무엇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폰에는 통화와 문자 이외에는 어떠한 기능도 없었기 때문에 시골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대체로 티비, 신문으로 소식을 접했다.
다양한 정치성향을 가진 이웃들 덕에 그들은 여러 신문사의 신문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시간대 별로 라디오 방송도 계속해서 틀어 두었다. 큰 사건은 어느 매체로든 접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 매체를 통해 바깥의 소식을 알아두려고 하는 것도 있었다.
‘히어로 박지환 또 부상 입어… 센터 이대로 괜찮나.’
벌써 일주일째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환이 큰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뜨고 있었다. 김진성 미친 새끼는 무슨 생각인지 저런 애를 계속해서 현장으로 내몰았다. 테러가 계속 일어난다는 이유였다.
가이딩을 받으면 회복 속도가 빨라지기야 한다지만 그래도 그게 만능은 아니었다. 민재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보는 데 좀 더 속도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
거실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민재에게 두더지가 다가왔다.
“왜.”
부름만큼이나 간단한 답이었으나 두더지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곁으로 다가온 두더지는 그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꽤 심각한 표정으로 민재를 빤히 쳐다보았다.
민재는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다시 되묻지 않고 두더지를 마주 보았다.
“야. 너 혹시… 토끼 좋아하냐?”
민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야. 걔 미성년자잖아.”
“…넌 몇 살인데?”
두더지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민재는 말실수를 했다 싶어 잠시 고민했다. 보통 십 대에 능력이 발현되는 편이고 박지환이 후배가 아니라고 했으니 자신은 이십 대 초반이거나 아직 십 대 후반이어야 하는 것이다.
“미성년자는 아니야.”
“…그래? 난 또 요새 토끼랑 자주 붙어 있길래.”
민재는 태연을 가장해 답했다. 그러자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던 두더지는 다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최근 토끼는 민재에게 능력 사용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중이었다. 티 나지 않게끔 한두 번 조언을 해 준 것뿐인데 그게 또 들킨 모양이었다.
“박지환 그 새끼 뭔 일이래.”
“…뭐가?”
두더지는 민재가 들고 있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슬쩍 보더니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민재는 곧바로 여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원래 도망자 전문 헌터처럼 지내면서 구조는 뒷전이더니, 요즘 구조현장 나가서 구르는 거 같더라고.”
도망자 전문 헌터? 민재는 다시 익숙지 않은 호칭에 흠칫했다.
“…근데 너희 저번에 그 센터 관련해서 이야기한 거 말이야.”
민재가 운을 떼어 그나마 좀 더 입이 싸 보이는 두더지로부터 정보를 좀 얻어내려고 하던 때였다. 방에서 조용히 튀어나온 악어가 민재를 보며 말했다.
“센터 입구가 총 몇 개야?”
민재는 그런 악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민재는 입을 열었다.
“총 세 개.”
“어디 어딘데?”
“앞문, 뒷문, 쪽문. 근데 내가 아는 문은 세 개가 아니고 네 개야.”
자신만 알고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 같은 말에 악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두더지를 힐끔 쳐다본 악어는 민재에게 고갯짓을 해 보였다.
“둘이 이야기해.”
“와. 치사하다. 진짜. 너희 누가 가이딩 해 주는 건지 알지?”
두더지는 자신이 소외되는 것 같자 바로 가이딩을 들먹였다.
“야. 웃기지 마. 너 내가 안 나왔으면 입 나불거렸을 거 아니야?”
악어는 두더지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두더지는 아니라며 딱 잡아뗐지만 악어는 소용없다며 민재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두더지가 따라오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악어는 다시 밭으로 향했다. 누구 밭인지는 모르겠으나 풀들의 키가 제법 컸다.
“원래 이런 데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시답잖아 보이고 잘 안 들려.”
악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민재에게 본론을 꺼냈다.
“얼마 전에 토끼가 너 치료해 줬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토끼가 말했나? 잠시 망설이던 민재는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지금 우리 중에 능력을 모르는 게 너밖에 없어. 그냥 우리한테 까라고 하고 싶은데 원래 조건이 그랬으니까 그렇게는 못하겠고….”
민재는 조금 긴장했다.
“우선 입구 위치랑 네 질문 하나랑 교환하자. 어때?”
“네 개 다 알려주면 질문 두 개.”
악어는 딜을 제안했고, 민재는 재빠르게 다른 제안을 했다. 사실 지금 맨몸으로 들어가면 바로 제압되긴 할 테지만 민재가 아는 비밀통로는 정말로 소수의 인원만 아는 곳이었으므로 악어도 손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자신이 손해 보는지 어쩌는지도 모를 테지만. 민재는 아무렇지 않게 여상한 표정을 꾸며냈다. 악어는 잠시 고민하다 알겠다고 했다.
민재는 나뭇가지를 주워 근처 흙바닥에다 그림을 그려 센터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을 세 출입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질문을 했다.
“우리 같이 나갔던 날, 너한테 정보를 줬다는 사람이 누구야?”
“…나 어렸을 때 도와준 사람.”
“그건 너무 추상적인 답인데.”
“나랑 토끼는 보호소 출신이거든. 그 사람은 후원자였어. 센터 안 들어가는 법 알려준 것도 그 사람이었어.”
후원을 하고 센터에 들어가지 않게 도와줬다고? 그러나 분명 민재가 들은 이름은 잭이었다.
“…그때 잭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맞아. 그렇게 알려줬어, 이름을. 본명은 몰라. 너 잭을 알아?”
이걸 우연으로 보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정말 동명이인일 수도 있었다. 잭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희소가치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태현이 언급한 그 잭이 악어가 말하는 잭과 다른 인물이라고 치기에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많았다.
“그 사람이랑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데?”
민재가 물었다.
“…거의 십 년 된 것 같아.”
민재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시기도 얼추 비슷했다.
“네 번째 출구가 어딘데?”
악어가 물었다. 민재는 잠시 고민하다 센터의 한 지점을 짚어 주었다.
“여기.”
어차피 알려줘도 악어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민재는 곧이어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네 계획이 뭔데?”
순간 악어의 눈이 흔들렸다. 민재가 그려둔 센터의 구조를 내려다보다가 발로 그것을 문대며 지운 악어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건 아직 다 정해지지 않았어.”
어떻게 할지 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말 같았다. 민재는 그가 쥐고 있는 열쇠가 얼마 정도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게 가능할지 알고 싶었다. 지금 그의 입장에선 그게 커 보이더라도 생각보다 작은 열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재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더 캐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결론 나면 말해 줄게.”
악어는 대답이 짧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덧붙였다.
“그래. 고마워.”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악어는 흙을 평평하게 펴서 흔적을 모두 지우고 다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오준은 닫혀 있는 문을 외면한 채 정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최근 센터장실은 자주 시끄러웠다.
“뭐 하자는 거야!”
박지환이 들어간 지 삼 분도 되지 않아 고함 소리와 함께 물건이 내던져지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침에 난 기사 때문에 센터장의 기분이 저조하더니 또 난리가 나는 모양이었다.
센터장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환의 속을 긁는 듯했다. 센터는 네가 망친 거라느니 너도 무사할 거 같냐느니 하는 저주와 협박을 번갈아 했다.
이십 분 정도 지나자 저 앞에서 호영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긴장을 했는지 잔뜩 굳어진 얼굴을 한 채였다. 호영은 가볍게 묵례를 해 보이더니 닫혀 있는 문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어요?”
“…십 분? 정도요.”
오준은 자연스럽게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호영은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자코 자신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지환도 센터장의 속을 긁는 것인지 짜증 소리가 잠시 격해졌다.
잠시 후, 지환이 밖으로 나왔다. 최근 많은 부상을 입은 그는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였다. 옷 안에도 많을 테지만, 지환은 그런 상처쯤은 별 상관없다는 듯 태연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준은 에스퍼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들어 와.”
센터장의 낮은 목소리가 오준의 자리로 들려왔다. 오준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호영과 지환을 바라보았다.
“하….”
지환을 노려보던 호영은 한숨을 내뱉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지환은 오준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센터장이 무언가 집어던지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지환의 것보다는 짧았다. 호영은 센터장에게 고분고분한 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불려 온 후로 호영은 센터장의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어찌저찌 실장 자리를 달았으니 본인은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오준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잠시 후, 호영은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오준은 몸을 일으킨 채 어정쩡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윤 비서님.”
호영이 오준을 불렀다. 오준은 왜 그러냐는 듯 호영을 바라보았다.
“민재 선배님… 기일 추모행사를 맡게 되었는데, 기일을 언제로 하는 것이 맞을까요…?”
난감한 질문이었다. 센터장이 여론을 자극하려고 결국 이런 수를 쓰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여기가 더 시끄러워지겠다고 오준은 생각했다.
“음….”
오준이 난감한 기색을 비추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호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쉽지 않네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형식적인 인사가 오고간 뒤 호영은 돌아갔다. 왠지 불편해진 마음에 오준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