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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환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일시적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낸 지환은 훈련실 반대편 벽으로 날아갔다. 계산을 한 것처럼 그의 몸은 벽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 바로 옆에 총알이 박혔다.
지환은 유유히 다시 총 앞으로 날아갔다. 다시 총성이 울리자 지환은 총알의 속도로 날아 벽 앞에서 급정거하는 것을 반복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지환이 벽 앞에 도착한 직후 총알이 박혔다. 그것을 확인한 지환은 곧장 훈련 시스템을 종료한 다음 바닥에 드러누웠다.
평범하게 비행을 할 때는 중력과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를 낼 때에는 달랐다. 지환이 에스퍼가 아니었다면 몸에 큰 충격이 가해질 법한 속도였다.
총알의 속도로 날 때면 지환은 거대한 벽에 온몸을 부딪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빠르게 멈춰 설 때도 그랬다. 그래서 지환은 벽에 민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면 날 수 있었다. 멈추는 것도 쉬웠다. 그가 날아간 속도로 부딪치면 그가 다치니까.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감각을 느낄 때 지환은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고통을 느낄 때는 이따금 희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민재 선배가 와 주지 않을까.’
그는 몇 번이고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구하러 와 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늘 그러했듯 무심하면서도 다정한, 그가 늘 좋아했던 그 얼굴로 심드렁하게 운이 좋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왜 그러고 있어요?”
멍하니 천장을 보며 눈을 깜박이는 지환의 시야에 지훈이 들어왔다. 지환의 옆에 쪼그려 앉은 지훈은 지환의 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힘들어서.”
지환은 퉁명스레 답했다.
“무슨 훈련을 했는데 팀장님이 힘들어서 드러누워요?”
지훈은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환은 그런 지훈에게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총알보다 빠르게 날기.”
“네…?”
지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대체 왜요?”
지속적으로 날 순 없지만 자신의 몸을 일시적으로 띄울 수는 있는 지훈은 이따금 지환의 훈련을 살펴보며 움직임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그러니 몸에 가해지는 무리도 이해를 어느 정도 할 터였다.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지환의 답은 간단했다. 그게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의 대답에 지훈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런 게 필요할 정도면 다 끝장난 상황 아니에요?”
“할 줄 알면 다를 수도 있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
지환이 묻자 지훈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빠르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어머님은 네가 부모님 아프다고 거짓말 치고 다닌 거 알아?”
“아, 팀장님!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에요.”
지훈이 센터로 들어올 당시의 일을 짚어 주자 그는 붉어진 얼굴로 지환을 불렀다. 아, 그때 선배 당황하는 표정 귀여웠는데. 지환은 생각했다.
지훈은 교육기간이 끝난 후 바로 제1팀에 지원했다. 우민재 선배님 팀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에 지환은 그를 팀으로 들였다. 사람들이 애도기간을 가지고 있을 때 그렇게 말한 것은 그가 유일했기에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내가 건드렸냐, 네가 건드렸지.”
“아… 진짜.”
입술을 비죽거린 지훈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놓고는 지환이 손을 내밀자 얌전히 물병을 쥐여주었다. 지환은 상체를 일으키며 물을 들이켰다.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까.”
지환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가 지금만큼이라도 비행을 잘했다면, 좀 더 빨랐다면 민재를 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질문은 소용없었다. 늦었기 때문이었다.
지환은 일어서서 지훈에게 물병을 던졌다.
“네가 써라.”
“팀장님. 무리하셨을 텐데… 최 실장님 사무실 들르세요.”
지환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하게도 초록색이었다. 그의 가이딩은 이제 줄지 않는다. 무심한 얼굴로 손목을 살짝 가린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은 곧바로 우석의 사무실로 향했다. 보는 눈이 있었으니 보여주기 식 방문도 할 겸, 얼마 전 근처 마을에서 끌고 온 에스퍼들에 대한 정보 파일도 건네받을 생각이었다.
걸어가던 지환은 우르르 몰려 있는 에스퍼들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로비에서 가까운 복도에 모여 웅성거리는 것이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에스퍼들 사이 키가 커서 머리통이 툭 튀어 나온 은정이 보였다. 지환은 그쪽으로 다가서며 은정을 불렀다.
“누나. 무슨 일이야?”
“그게….”
은정의 얼굴이 꽤 창백했다. 무언가 불길했다.
“비켜.”
지환의 말에 에스퍼들이 옆으로 붙어 섰다. 빠르게 걸어간 지환은 은정이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는 쪽을 쳐다보았다.
밋밋한 인상의 남자가 은정을 보고 있었다. 사람? 뭐지? 지환이 생각하는 사이 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 배….”
선배? 지환은 은정을 돌아보았다. 센터 내에 지환이 모르는 은정의 ‘선배’가 있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랜만에 보는 사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은정이 당황하는 것이 이상했다.
“정승규 선배….”
“은정아. 너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못 올 데를 온 것처럼.”
정승규? 지환은 머릿속에서 언제 그 이름을 들어보았는지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그는 분명 이전 에스퍼 실종의 첫 번째 피해자였다.
정확히는 도망자로 기록된 정승규를 ‘실종’으로 처리하기 위해 민재가 노력한 결과였지만. 소재지 파악이 되지 않은 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가 돌아왔다.
지환은 정승규를 살펴보았다. 겉보기에는 몸에 큰 부상이나 별 다른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를 알아보는 자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있는 반면 그는 매우 태연했다.
“선배. 이게 무슨…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몸은 괜찮아? 그동안 어디 있었어?”
은정이 빠르게 질문을 토해냈다. 그런 은정을 보고 정승규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센터에 무슨 일 있었어? 나 일어나 보니까 복귀 중에 쓰러진 것 같더라고. 다행이 가이딩엔 큰 문제없어서 바로 들어온 건데….”
정승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무언가 말을 했다. 그러나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고 그도 그것을 느끼는지 말하다가 중간중간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 선배가 없어진 지 일 년이 지났어.”
“뭐…?”
은정의 말에 정승규의 얼굴이 멍해졌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저 멀리서 호영이 손을 위로 들고 흔들며 걸어왔다.
“다 비켜 봐.”
반대편에서 에스퍼들을 가르고 걸어온 호영은 정승규를 보고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기억을 잃은 것 같아.”
호영에게 은정이 나지막이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호영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듯 잠시 입술만 달싹이다 이내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우선 여기 모여서 이러고 있지 말고 다 흩어져. 선배님, 우선 몸이 괜찮은지 검사 좀 하러 갑시다.”
기억을 해 보려고 하는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정승규의 팔을 호영이 부축하듯 잡았다. 그와 동시에 지환은 정승규의 반대쪽 팔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내가 안내할게요.”
“…뭐?”
“내가 한다고요.”
늘 그렇듯 호칭은 잘라먹은 채였다. 에스퍼가 많은 상황인지라 열이 받은 건지 호영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지환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같이 갈게.”
은정이 어색하게 웃으며 호영에게 말했다. 그러자 호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지환이 주위를 둘러보자 에스퍼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선배, 우선 괜찮은지 확인해 보자.”
은정이 미소 지어 보이며 승규를 부축했다.
“걸을 수 있어.”
어색하게 웃어 보인 승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환은 옆에 서서 그런 그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근데 이쪽은 누구?”
승규가 은정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은정은 지환을 힐끔 보고는 역시 작은 목소리로 답을 줬다.
“1팀 팀장. 내 후배야.”
“…1팀? 민재는?”
승규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순식간에 셋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은정이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지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의 당신과 마찬가지로 현재 실종상태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몸 검사 후 제가 몇 가지 물어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지환의 말에 잠시 멍하니 서서 눈을 깜박이던 정승규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왜 기억이 안 나지.”
그는 허망한 듯 계속 혼자 중얼거렸다.
정승규는 센터 근처 골목에서 눈을 떴다고 했다. 분명 현장에서 복귀 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어 정신을 잃었나 싶어 손목을 확인해 보니 가이딩 수치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센터에 와 보니 몇몇 낯익은 얼굴이 자신을 귀신 보듯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정승규는 곧바로 능력 검사실로 향했다.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신체에 문제가 없는지에 관한 검사도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를 검사실로 들여보낸 후 지환과 은정은 한동안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당연하게도 민재를 생각했다. 그도 어쩌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은정이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새희망복지회가 에스퍼들을 납치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지환은 민재가 없어진 뒤로 그 잔당들을 찾아내 족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숨겨 놓은 것인지 새로 발현한 에스퍼들을 실험하는 공간들은 이따금 찾을 수 있었으나 센터에서 빼 간 에스퍼들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첫 번째 실종자가 이렇게 멀쩡히 돌아왔다.
일부러 그쪽에서 센터로 보낸 것이라는 결론만 나왔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센터로 곱게 돌려보냈단 말인가.
잠시 후, 지환과 은정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등급 F.
정승규의 능력이 거의 상실되었다는 결과지를 건네받은 은정의 얼굴이 굳었다.
“원래 이런 등급이었어?”
“아니지.”
지환의 질문에 은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해 봐.”
지환이 명령했다. 그들은 세 번의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혹시 검사기가 고장 났나 싶어 지환은 은정을 검사실로 들여보냈다. 은정은 자신의 등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은정아, 이상해… 빛이… 빛이 안 나와.”
검사실에서 나오는 은정을 향해 승규가 횡설수설했다. 은정은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왜 정승규가 돌아온 것인지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것은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