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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은 센터장실 입구로 향했다. 조 박사의 보고를 받은 것인지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센터장실 입구에는 여전히 윤 비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센터장님이 호출하셨나요?”
일정에는 없을 약속이었으나 지환이 센터장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윤 비서는 익숙한 듯 물었고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세요.”
오준은 컴퓨터에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지환에게 말했다. 지환은 센터장실 앞에서 대기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지환은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자랑스러운 히어로 지환 군이 오셨네.”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김진성이 그를 반겼다. 지환은 그의 사무실 안의 소파에 앉았다.
“좋은가 보네.”
지환이 말했다.
“그럼 좋지.”
진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질 않았다. 지환은 그런 센터장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자넨 역사에 길이 남을 거야.”
“당신이 그러고 싶겠지.”
“당연하지.”
진성의 눈이 욕망으로 번뜩였다. 그는 명예욕에 굶주린 남자였다. 그 명예가 추하고 더러운 일들로 이루어낸 것일지라도 상관없어 보였다.
“당분간은 이건 우리 둘의 비밀로 하도록 하지.”
진성이 당부했다. 자신이 유리할 때 공개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환은 진성의 얼굴을 잠시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조 박사 관리 권한 넘겨줘.”
“…조 박사가 널 완벽하게 해 준 건 알지?”
완벽하게? 지환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갔다.
“그래서. 그 완벽한 존재가 지금까지 몇이나 되지?”
지환의 질문에 진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실험은 성공했으나 완벽한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피실험자 중 원하는 실험 결과를 얻게 된 존재는 지환 하나였다. 그건 결국 지환이 돌연변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네가 유일하지.”
잠시 후, 인정하기 싫은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듯 못마땅한 목소리로 진성이 말했다. 지환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진성은 잠시 지환을 굳은 얼굴로 빤히 쳐다보다 물었다.
“죽이고 싶으냐?”
“그럴 생각이긴 한데.”
하하. 진성의 입에서 꽤나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화 내용에 맞지 않는 호쾌한 소리에 지환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사람 죽여 본 적 없지?”
진성이 물었다. 비웃는 것이 명백한 얼굴이었다.
“여럿 죽여 봤나 보네.”
“난 깔끔한 편이라. 맹세코 내 손으로 누군갈 죽인 적은 없네.”
직접 죽이진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진성은 순식간에 사람 좋은 얼굴을 연기하며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지금 본인이 한 발언을 꽤나 재밌어하는 듯했다.
“권한 넘길 거야, 말 거야.”
민재가 말하자 진성이 무언가를 건네는 듯한 손짓을 해 보였다.
“마음대로. 근데 그건 알아둬.”
“뭘?”
“그냥 얌전히 내보내는 건 안 돼.”
그냥 센터 밖으로 놓아주기엔 가진 정보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평범한 직장인이 은퇴한 것처럼 업무를 그만두고 어디 한적한 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해 준다고?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지환의 말에 진성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넌 민재 군이 살아 있다고 믿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지환은 조 박사가 쓸데없는 소릴 한 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진성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해 본 적 있나? 만약 민재가 돌아온다면 말이야.”
지환이 조금 조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손가락 끝이 저릿했다.
“조 박사를 죽인 자네를 보고 뭐라고 할까?”
지환은 진성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자 진성은 여유로운 얼굴로 지환을 마주했다.
“자넨 역시 민재랑 많이 닮았어.”
진성은 묘한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진성은 지환을 보며 민재를 추억하는 듯한 얼굴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만큼 지환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었다.
김진성은 그를 추억해서는 안 되었다. 지환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잠깐은 안타까워할 수도 있겠지. 센터에 사고가 날 테니까.”
지환의 말에 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악역이 필요하면 말해. 우린 같은 편이잖나.”
“….”
지환은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이 늙은 악마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진성이 덧붙였다.
“너무 들쑤시고 다니지는 마. 기강을 잡는 데에도 강약조절이 필요한 법일세.”
최근 민재 선배의 흔적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 것을 수습하면서 어느 정도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었다.
“식구를 늘려 줬으니 너무 뭐라는 마시고.”
지환은 민재를 찾는 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센터장의 지시에 대충 대꾸한 지환은 인사도 없이 센터장실을 나섰다.
“저기… 박 팀장님.”
빠른 걸음으로 센터장실 입구를 벗어나는 지환을 윤 비서가 불러세웠다. 지환은 무심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네?”
“그… 가이딩… 괜찮으세요?”
지환은 잠시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윤 비서가 자신의 가이딩 수치를 왜 걱정한단 말인가.
“최 실장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윤 비서의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는 수준으로 작았다. 지환이 꽤 무서운지 연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하는 것이 보였다. 지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
“왜 불렀어요?”
지환은 곧장 우석의 사무실로 가 문을 벌컥 열었다. 우석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넌 노크란 걸 모르니?”
“오래서 왔는데 문제 있어요?”
우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꾹 다문 채 웃어 보였다.
“아니. 없지.”
“어차피 애인께서 문자로 알려줬을 거 아니에요. 나 온다고.”
“아, 그런 거 아니야….”
우석은 지환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좀 어때?”
지환은 말없이 우석에게 손목을 보여 주었다. 그의 가이딩 수치는 양호했다. 초록빛을 확인한 우석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지환의 손목을 살짝 잡았다.
지환은 그런 우석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멀티가 되었으니, 타인에게 가이딩을 받았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우석이 가이딩을 한 찰나, 지환은 순간적으로 구역감을 느꼈다. 인상을 찌푸린 지환이 비틀거리자 우석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너….”
우석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때요?”
“뭐?”
“어떻냐고요. 나한테 가이딩할 때.”
우석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침묵했다.
“이미 구슬이 잔뜩 들어 있는 주머니에 또 구슬 집어넣는 느낌?”
“더럽게 안 들어간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거예요?”
“막힌 것 같다고.”
우석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지환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너 괜찮아? 몸 상태 어떤데.”
“진짜 안 들어오네요. 방금 가이딩 받았을 때 진짜 토할 것 같았어요.”
지환의 말에 우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민재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지환이 우석에게 퍼부었던 말들 중 하나라 상처를 입은 듯했다.
지환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지금 싸우자는 거 아니고 진짜로 그래요. 생리적으로 못 받아들이겠어요.”
“야. 에스퍼가 생리적으로 가이딩을 못 받아들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대꾸하던 우석은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떠오른 듯 놀란 얼굴로 지환을 바라본 우석은 지환의 어깨를 붙들었다.
“너… 너 설마.”
우석의 눈이 흔들렸다. 지환은 순간 민재를 떠올렸다. 우석을 보고 있으면 자주 그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민재와 함께했다는 우석은 언제나 그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면 민재 선배는 뭐라고 할까. 이 사람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볼까? 당신을 찾으려고 무슨 짓이든 했다고 하면 화를 낼까?
“완전해졌다고 하던데요.”
지환의 말에 우석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우석은 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죽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실험에 임했다. 민재가 느꼈을 고통을 동일하게 받는 것으로 그를 기억하려고 했다.
지환은 겨우 목숨을 건진 현장에서 민재가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렸다.
“운이 없네.”
살아남았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제야 겨우 당신을 조금 이해할 것 같은데. 지환은 눈을 감았다.
“너… 괜찮아?”
조금 전 괜찮으냐고 물어보던 질문과는 다른 어조로 우석이 물었다.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가이딩이 필요 없는 몸이 되었다. 완전해졌는데 괜찮지 않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우선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당분간 가이딩 받는 시늉하러 올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주시고요.”
지환의 말에 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장은 뭐래?”
“좋아하죠.”
우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분노에 차 보이는 우석에게 지환이 덧붙였다.
“이 사실은 당분간 윤 비서님한테도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하는데. 실장님은 몰라도 전 안 믿어서요, 그 사람.”
지환의 말에 우석이 살짝 당황했다.
히어로 우민재가 사라지고 반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사실상 지환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이 민재의 죽음을 납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우석과 윤 비서는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듯 보였다.
딱히 티를 내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았으나 우석의 사무실을 벌컥 열어젖힐 수 있는 몇 안 되는 에스퍼인 지환이 둘이 시시덕거리며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을 봐 버린 것이었다.
우석은 무언가 해명하려고 하는 듯했으나 지환은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지환에게 민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별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래.”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아.”
사무실을 나서려는 지환을 우석이 불렀다. 지환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너 얼마 전에 현장에서 민재 이름 불렀다고….”
센터의 소문이 빠른 건지, 아니면 멍청한 주호영이 뭔가 난리를 친 건지 우석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지환이 가만히 우석을 바라보자 그는 무언가 참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진짜 민재였니?”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였다. 우석의 얼굴은 퍽 간절해 보였다. 지환은 민재의 생존을 아직까지 바라고 있는 그를 고마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환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내뱉은 다음 우석의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