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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건 그가 어딜 가든 그의 마음대로라는 것을 뜻했다. 민재는 식당을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상황파악에 도움이 될, 믿을 만한 사람은 모두 센터에 있었다. 그러나 센터로 가면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확률이 높았다.
안전하게 살아 있으려면 공식적으로 죽은 상태인 지금이 안전했다.
민재는 순간 시골을 떠올렸다. 예전부터 여유가 생기면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 왔으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며 걷던 민재의 눈에 구석진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하나가 들어왔다.
-히어로 우민재를 찾습니다. 사례금 이천만 원.
-오천만 원.
-일억.
-오억.
그를 찾는다는 전단지는 여러 번 새로 붙인 것인지 일부분씩 가려져 옆으로 덧붙여져 있었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우민재의 몸값이 올랐던 듯했다.
꼭 비싼 포상금이 걸린 지명수배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건물이 무너져서 죽은 걸로 알려진 게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한 민재는 전봇대 가까이로 슬쩍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단지에 붙은 그의 얼굴이 ‘진짜 자신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홍보용으로 사진이야 많이 뿌렸지만 그건 사진기사를 재촉해 민재가 매만진 버전이었다. 그러나 출입증에 붙어 있을 법한 민재의 얼굴 그대로의 사진이 길거리에 나붙어 있었다.
‘시발 미친 거 아니야?’
민재는 언제나 자신의 실제 얼굴을 완벽하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찾겠다고 이딴 사진을 내거는 새끼는 뭐란 말인가.
그의 실제 얼굴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사진을 이렇게 내걸 만한 놈은 하나였다.
바로 박지환.
민재는 한숨을 삼켰다. 애초에 정말로 오억을 턱 내놓을 정도로 여유가 있으려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퍼 월급이 올라도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저도 끝까지 선배 찾을게요. 절대 포기 안 해요.”
왜인지 모르겠으나 지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민재는 다시 센터를 떠올렸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모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환은 그 쪽지를 발견했을까. 그랬다면 화를 냈을까, 아니면 슬퍼했을까.
일 년이란 시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쩌면 이제는 우민재의 죽음을 인정하고 있는데 그가 나타나 모든 것을 들쑤시는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민재는 눈앞의 전단지를 떼어냈다. 그리고 구겨서 재킷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그때 저 멀리서 적색 경고등이 깜박이는 것이 보였다. 민재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빛이 있는 곳에서 소량의 인파가 민재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민재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잠시라면, 아주 잠시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 상황에 대한 파악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저곳에 지환이나, 은정이나 그가 아는 자들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민재는 그곳으로 향했다.
늘 그래왔듯이, 민재는 모두가 도망쳐 나오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
민재는 저 멀리 건물이 보이자 걸음을 멈추었다. 건물 자체에 홀로그램형 접근금지 사인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따금 테러 진압에 쓰이는 것인데, 테러범이 있다고 의심되는 현장에 이목을 너무 끌지 않고 들어갈 때 사용한다. 무음인 데다 건물에 딱 붙은 표시가 바깥으로 드러나니 저 표시를 보면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소리 없이 그 근방을 벗어나야 했다.
‘잠복수사가 이뤄지는 건가?’
민재는 적당한 건물 뒤에 몸을 숨기고는 해당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건물은 10층짜리로, 조금 큰 사거리 도로 가운데에 있는 평범한 주상복합건물로 보였다. 보통은 못해도 3~4명이 조를 짜서 오니 움직임이나 배치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보고 있다 보면 무엇을 쫓아 저 건물로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건물은 계속 잠잠했다. 결국 아는 얼굴이 접근금지 사인을 수거하는지만 보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8층 창문 중 일부가 깨지면서 무언가 확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것은 그대로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민재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좀 더 내밀었다. 튀어나온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멱살을 잡은 쪽과 잡힌 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뒤엉킨 두 인물은 건물 외벽에 이리저리 처박히며 몸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그로 인해 건물 바깥 일부가 손상되었다.
멱살을 잡은 쪽이 파란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제압을 하는 것에 센터 쪽이라는 것은 알아챘다. 둘의 싸움은 센터 쪽 인물이 몇 대 후려갈기는 것으로 끝이 났다. 거리엔 사람이 없었으므로 꽤 크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보통은 센터에 대한 인식 때문에라도 길거리에서 제압을 하는 일이 흔하진 않았다. 한 명을 제압한 에스퍼는 곧장 다시 날아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 건물 앞으로 커다란 차 한 대가 주차되었고, 구속구에 손발이 묶인 사람들이 거기에 실렸다.
그쯤 되자 민재는 지금 보고 있는 현장이 단순 테러 진압 현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에스퍼를 진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건물에서 무언가 다시 휙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착지자세를 취할 마음이 없는 건지 머리부터 아래로 떨어졌다.
“…어?”
민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튀어 나갔다. 저대로라면 머리통이 바닥과 충돌해 죽을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짐과 동시에 그 사람이 2층 높이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진짜! 좀!”
차 바로 옆에 붙어 선 다른 에스퍼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보였다. 염력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투덜거리는 것인지 뭐라 뭐라 하는 에스퍼의 머리 위쪽 창문에서 좀 전에 에스퍼를 제압하던 에스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투덜거리던 에스퍼가 곧바로 말을 멈추었다.
민재는 아래쪽에 있는 에스퍼를 보면서 자신의 곁에서 종알거리던 지환을 떠올렸다.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민재는 시야를 위쪽으로 다시 올렸고, 순간 8층 창문에 있던 에스퍼를 보았다.
‘박지환…?’
민재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박지환이 에스퍼를 거칠게 진압하고 있었다. 좀 더 멀리서 봤으면 박지환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문제의 에스퍼가 박지환이었다고? 민재의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민재는 그 순간 지환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두리번거리던 고개가 정확히 민재에게 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좆됐다.’
지환이 몸을 튕기듯 건물을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민재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들킬 테니 빨리 몸을 숨겨야 했다.
“우민재!!!”
절규하듯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울부짖는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음성이었다.
그것이 박지환이 그를 여태까지 놓지 않고 계속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민재는 가슴께가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민재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지환은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함부로 부르는 놈이 아니었다. 그는 저렇게 에스퍼를 난폭하게 진압하지도 않았고,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을 던지지도 않았다.
지환이 다시 한번 민재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민재를 놓친 것인지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자 포획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안전합니다.]
접근금지 표시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건물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일상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민재는 지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들키는 것은 좋지 않았다. 대로변에서 저렇게 큰 소리로 이름을 불리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민재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알아보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
“또 사고를 쳐?!”
실장실 바깥으로 고성이 튀어나왔다. 지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실장실 문 앞에 기대 서 있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심드렁한 태도였다.
맞은편 책상에 앉은 호영은 인상을 쓴 채로 지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말을 해. 왜 그런 거냐고.”
“….”
“야!”
지환이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인내심이 다한 것인지 호영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네 명이요.”
“뭐?”
“네 명 잡아왔다고요. 에스퍼. 그쪽에 자진해 갔는지 붙들려 갔는지 괴상한 기계에 갇혀 있던 애들 구조 목적으로 데려왔습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보고요.”
니가 하라며. 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어조였다. 그런 지환의 태도에 호영의 입매가 비틀렸다.
“말은 바로 해야지. 구조 목적?”
“네.”
새희망복지회에 ‘자유’를 얻으려고 들어간 존재들은 모두 실험체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구조가 맞았다.
“너는 구조자를 냅다 패서 집어 던지냐?”
“우리 팀에는 염력 사용 에스퍼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 현장에서 사망한 에스퍼는 없는 걸로 아는데요.”
지환이 여상한 말투로 말하자 호영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계속 기사가 뜨잖아! 사람들 대피를 시켜도 여기저기에 보는 눈이 있어. 네가 매번 에스퍼 이미지 깎아 먹는 바람에 센터장님이 얼마나….”
센터장은 지환을 불러 지랄할 수 없으니 호영에게 난리를 피우는 듯했다. 센터장이 제1팀 팀장인 지환을 은근히 싸고도는 것은 센터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센터장은 지환을 건들 수 없었다. 그가 제1팀 팀장으로 남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그럴 것이다. 서로 틀어쥐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호영은 지환이 S급이라 센터장이 건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호영은 이렇게 작은 일에도 지환을 불러내 소리를 지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래 봤자 주호영은 어차피 아무것도 못한다.
“하. 그리고 그 와중에 민재 선배님은 왜 고래고래 불렀는데?”
호영이 민재의 이름을 언급하자 지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이 정말 민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을 호영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명색이 센터를 대표하시는 히어로께서 미쳤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나야 직성이 풀리겠어? 자그마치 일 년이다. 이 새끼야.”
호영이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주호영 에스퍼.”
“실장님!!!”
지환이 낮은 목소리로 호영을 불렀다. 호영은 벌게진 눈으로 지환을 노려보며 호칭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지환은 그것을 무시했다.
“우리 선은 넘지 맙시다.”
지환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호영은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하다 이내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축객령으로 알아들은 지환은 망설이지 않고 호영의 사무실을 나섰다.
“실장은 씨발.”
나지막이 욕을 내뱉은 지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