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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106)화 (107/181)

106

지환은 센터장실로 걸어갔다. 처음 몇 번은 센터장의 호출을 무시했으나, 끈질기게 자신을 불러대니 무슨 말을 지껄일지 들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환은 민재의 자리를 그렇게 쉽게 갈아치워 버린 센터장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새로 실장직을 꿰찬 주호영은 센터장의 지시를 받는 것인지, 허구한 날 인터뷰나 하면서 비슷비슷한 이야기나 나불거리는 것 말고는 하는 일도 없었다.

지환은 민재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이 발견한 적이 있는 실험실과 비슷한 곳이 발견되는 것 같으면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가서 확인했다.

도주 에스퍼 신고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출동해 정보를 캐내려고 쥐 잡듯이 뒤졌다. 덕분에 도주 에스퍼가 도주에 성공하는 사례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어차피 거리낄 것이 없는 몸이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환은 민재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당부의 말 중 하나만 수긍하고 지켰다. 아무나 쉽게 믿지 않을 것. 지환은 아예 아무도 믿지 않기로 했다.

가이드들한테 가이딩받는 것도 꺼려져 약물이나 잔뜩 빼 와서 대충 들이켰다. 우석은 그런 그를 보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약물 개수 제한을 두라는 말을 섣불리 하지 못했다.

“…오늘은 오셨네요.”

센터장실에 도착하니 비서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전에 민재와 왔을 때도 있었던 비서인 것 같았다.

비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지환을 안내했다. 지환은 허리를 숙여 인사만 하고는 문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지환이 서 있기 시작하고 십 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지환은 비서에게 질문했다.

“혹시 실장님 여기 오실 때도 오래 기다리시고 그랬나요?”

비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민재 실장님 말씀하시는 거죠?”

“네.”

지환에게 민재 외의 다른 실장은 없었다. 단호한 대답에 비서는 난처한 듯한 얼굴로 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아주 가끔 센터장님께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실 때는 그런데, 보통은 바로 들어가셨어요.”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꽤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한 지환은 곧바로 센터장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문이 흔들리면서 큰 소리가 났다. 비서가 깜짝 놀라 지환 쪽으로 급히 다가왔다.

“에스퍼님, 진정하시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손을 내저으며 지환에게 사정하는 비서의 뒤에서 달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비서의 자리에 있는 스피커에서 센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지환은 바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센터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지환을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부르셨다고요.”

지환은 꽤 날 선 태도로 말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빨리 들이지 그랬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어투였다. 그러자 센터장이 뜬금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민재 군이랑 붙어 다니더니. 그 사람 십 대 때랑 성격이 똑같네.”

센터장은 지환이 알지 못하는 민재의 이야기를 들먹였다. 지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실 말씀이 뭔가요.”

“요즘 사고를 좀 친다고 들었는데.”

“무슨 사고요?”

지환은 모른 척 태연하게 물었다. 그러자 센터장이 한숨을 내쉬며 지환이 저지른 짓들을 읊었다. 기물 파손, 능력 남용으로 인한 사유지 침입, 실장에 대한 태도 불량 등이었다.

“내가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참아주고 있었지만, 슬슬 한계라서 말이야.”

센터장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지환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맞받아쳤다.

“실장님이 부재중이시니 같이 추적하던 것을 제가 담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실장인 호영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센터장은 검지로 자신의 책상을 톡톡 두드리더니 말을 이었다.

“자네 지금 생각을 잘못하고 있어. 민재 군이 그래도 자네를 지켜보려고 페어로 데리고 다니면서 애쓴 게 있는데, 그걸 스스로가 다 망치고 있지 않나.”

나를 지키려고 페어로 다녔다고? 지환은 묘하게 이상한 사실이 추가된 센터장의 말을 해석해 보려고 했다. 지환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센터장이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 모르나? 그래. 민재 군이라면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지.”

“선배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마.”

지환이 짓씹듯이 경고했다. 그러나 센터장은 보란 듯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내가 한마디 해주지. 민재 군에게는 큰 비밀이 있지. 그걸 아는 사람은 이 센터에 나밖에 없어.”

센터장과 민재 선배 둘만 아는 비밀이라고? 지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환은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재가 지환에게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지환은 이를 앙다물었다. 센터장에게 이런 이야길 듣고 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이제 지환 군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

지환은 센터장을 싸늘한 눈으로 마주 보았다. 센터장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 센터에서 오로지 민재 군만 알고, 진행하던 비밀 업무가 있네. 그걸 자네한테 물려주라고 했더니 싫다며 차라리 페어를 하겠다고 하더군.”

선배가 그랬다고? 지환은 믿을 수가 없었다. 민재는 딱히 승부욕이나 명예욕이 없었다. 실장직이라는 직위도 그다지 원해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가 무슨 비밀 업무에 강한 집착을 가졌단 말인가.

“그걸 이루어내면 민재 군이 가지고 있던 비밀을 알 수 있음은 물론,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네. 민재 군처럼 센터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거지.”

센터장의 다른 헛소리를 제외하더라도 지환은 ‘비밀’이라는 단어에 흔들렸다. 민재가 그에게 끝까지 숨겼던 무언가를 알 방법이 이것 말고 더 있을까?

생각하는 지환의 곁으로 어느새 몸을 일으킨 센터장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우리 꽤 괜찮은 파트너가 될 것 같은데. 어떤가.”

지환은 그가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환은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

공장지대의 건물 중 하나, 내부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캡슐이 제작되고 있었다.

거대한 대형 집게가 뽑기 기계처럼 공중에서 내려와 캡슐을 집어 들더니, 움직이는 거대 레일 위에 안착시켰다.

-뉴 비전 인큐베이터.

레일 위로 커다란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제작되는 캡슐의 품명인 듯했다.

레일은 사각형의 구조로 건물 내부를 한 바퀴 돌게 되어 있었다. 레일에서 각각의 정해진 통로로 캡슐들이 옮겨졌다. 거대 기계들이 일사불란하게 캡슐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 공장 내부를 관리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꽤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른 사내로 인공지능형 집게 팔이 달린 특이한 구조의 목발을 짚고 있었다. 집게 팔에 커피잔을 들려놓은 남자는 익숙한 모양새로 걸음을 옮기며 중앙에 있는 기계를 만졌다.

그런 그의 곁으로 검은 재킷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태현이 걸어왔다.

태현은 캡슐과 기계 팔이 돌아다니는 그 공간이 자신의 것인 양 익숙해 보였다. 그는 목발을 짚은 남자에게 물었다.

“잭(Jack). 내가 말한 건 마련해 놨어요?”

잭이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현을 따로 보관해 둔 캡슐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근데 누구야? 이 캡슐을 개인적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사람이?”

잭이 물었다. 태현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캡슐을 살펴보다 말했다.

“뭐겠어요. 돈은 많은데 나라에 자식을 뺏기고 싶진 않은 사람이겠죠.”

태현의 말에 잭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센터에 가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

“하하, 센터를 그리워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잭은 태현의 말에 당황한 듯 지레 고함을 쳤다. 헛기침을 한 잭은 캡슐의 뚜껑을 열어 태현에게 보여줬다.

“생명 유지 시스템도 정확하죠?”

“그런 셈이지.”

“잭, 이건 시험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파는 거라고요. 본인도 알 텐데요. 사람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

태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자 잭의 입매가 비틀렸다.

“알지. 잘 알지.”

잠시 묘한 표정으로 캡슐을 들여다보던 잭이 태현을 향해 웃었다.

“걱정 마. 이건 내 역작이니까. 몇 년 여기서 썩어도 끄떡없어.”

“몇 년씩이나?”

“뭐 근육은 좀 빠지겠지만.”

잭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목발을 짚지 않은 손을 캡슐 위로 올려 탁탁 두드렸다. 태현은 캡슐 내부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캡슐을 닫은 태현은 주머니에서 작은 장난감 총 같은 것을 꺼냈다.

“이거 성능 괜찮던데요?”

“거의 일회용이나 다름없으니 실패작이야.”

잭은 냉정하게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 평가했다. 태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장난감 총을 캡슐 쪽으로 겨누었다.

“근데 말이야….”

잭이 다시 운을 떼었다. 태현은 왜 그러냐는 듯 잭을 힐끔 쳐다보았다.

“정말… 죽었어?”

주어가 없는 질문이었으나 태현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었다. 태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짓말이지? 넌 나랑 약속한 게 있는데.”

“아버지 명령이었어요.”

“걘, 걘 나랑 해결해야 할 게 있단 말이야.”

잭이 순간적으로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태현의 팔을 붙들었다. 태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런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잭이 태현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포기해요, 이제. 정말로 죽였으니까.”

태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테마파크가 이곳에 건재한데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태현의 질문에 잭이 비소를 지었다.

“그 새낀 악마야. 그 검은 눈이 어둠보다 더 짙다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이야길 하는 잭의 눈은 이상한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태현은 그 같은 눈을 했던, 자신이 아는 몇몇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달갑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갑니다.”

태현은 장난감 총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염력으로 인해 캡슐이 허공에 떠올랐다.

태현은 총으로 방향을 조종하며 공장 밖으로 향했다. 손을 대충 휘적거리며 잭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장을 벗어난 태현은 건물 앞에서 대형 컨테이너박스가 연결된 화물차 안에 캡슐을 실었다. 그리고 화물차에 올라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캡슐을 실은 차는 공장지대를 한 바퀴 돌아 원래 있었던 공장의 뒷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크고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장이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태현은 허허벌판 같은 공장 부지에 자라난 잡초들 사이에서 플라스틱 쪼가리를 주웠다. 그러고는 그것을 복구시켰다. 그러자 열쇠가 나타났다.

태현은 땅바닥에 있는 작은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잠시 후, 공장 부지의 땅바닥이 열리고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태현은 다시 캡슐을 허공에 띄운 채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태현은 모니터들이 가득한 공간 뒤쪽에 캡슐을 안착시켰다. 모니터에는 센터 내부 풍경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후 태현은 소파에 누워 있던 사람을 들어 올려 캡슐에 눕혔다. 그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진 우민재였다.

민재는 눈을 감은 채였기 때문에 태현은 잭이 말한 ‘어둠보다 더 짙은 악마 같은 눈’을 볼 수는 없었다. 태현은 민재의 코앞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미약한 호흡이 느껴졌다.

태현은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내 민재의 팔목에 주사했다. 그리고 캡슐 뚜껑을 닫고 생명 유지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조금 쉬어요.”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단조로운 음성이었다. 캡슐을 내려다보던 태현은 이내 모니터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인영들로 시선을 돌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기계음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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