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우민재가 사라진 지 3일이 지났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갔다던 우민재와 현장에 출동했다는 신태현 에스퍼, 이렇게 두 명의 에스퍼가 건물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히어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퍼 우민재가 무너진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은 사건 다음 날 저녁부터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막고 또 막아 겨우 그 정도였다.
반면 일반인 사상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때다 싶었는지 히어로 센터의 희생정신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히어로 우민재의 생존 여부를 놓고 수많은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살아 있을 확률이 없었겠지만, 이번 일의 당사자는 ‘그’ 우민재였다.
그는 구조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사람들을 구해냈다. 이전에 공중에서 격추되었을 때도 바로 다음 날부터 멀쩡하게 활동을 하지 않았나.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대중에게 우민재는 죽어도 쉽게 죽지 않는, 좀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많은 에스퍼가 구조 작업에 매달렸다. 건물의 잔해들을 옮겨가며 우민재와 신태현을 찾았다.
지환은 3일 동안 쉬지 않고 무너진 건물을 헤집고 다녔다. 누가 보면 박지환이야말로 좀비라고 할 법한 몰골이었다.
건물이 무너져 약해진 지반이 혹시라도 아래로 더 꺼질까 싶어 지환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
은정이 물병을 내밀었다. 그녀도 지환과 같이 3일째 쉬지 않고 무너진 골조 속에서 민재를 찾는 중이었다. 지환은 잠시 말없이 은정을 보다가 물병을 받아 들었다.
물을 마시자 오히려 목이 말라붙어 찢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덮쳐오는 현실감에 그는 이내 고통스러워졌다.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멀리서 민재가 걸어와 멍청하게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웃으며 타박할 것 같았다.
“…가이딩 수치, 괜찮아?”
언제 다가온 것인지 우석이 물었다. 그는 센터와 현장을 오가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환은 가이딩 수치가 뜬 팔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민재가 무너진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날, 지환은 우석의 멱살을 잡고 몰아붙였다.
“왜 막았어! 왜!”
그때 우석은 지환을 막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건물 안으로 들어갔었다면 지환은 지금과 같이 무력감에 휩싸인 채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뒤지고 있진 않을 터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지환은 우석에게 원망을 토했다.
우석은 그런 지환의 대거리를 말없이 받고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참혹하리만큼 황망했다. 지환은 그런 그의 표정에 전의를 상실했다. 그러고는 3일간 말없이 구조 작업에만 집중했다.
건물의 파편들을 들어 올릴 때마다 묵직한 공포감이 지환을 짓눌렀다. 이번에도 선배를 찾지 못할까 봐, 혹은 찾아버릴까 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그를 계속해서 뒤흔들었다.
이쯤 되면 찾아질 법도 한데 왜 안 나올까. 무엇이든 나와야 맞는데. 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까.
만약 민재 선배가 잘못되었다면 지금쯤이면 무엇으로라도 확인이 가능해야 했다. 기적적으로 탈출했다면 돌아오거나, 하다못해 누군가에게든 연락을 취했어야 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런 기이한 확신이 지환의 머릿속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실장님.”
지환이 우석을 불렀다. 우석은 지환더러 말해보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뭐 때문에 건물에 혼자 들어갔어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지환은 잘못된 이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잡고 싶었다.
“…그건 지금 말해줄 수 없어.”
아. 짧은 감탄사와 함께, 지환은 차가운 비소를 터뜨렸다.
뭐 그렇게 말해줄 수 없는 비밀들이 많으신지. 비밀투성이인 민재 선배와 친구라 그런가. 지환은 솟구치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가이딩 좀 받고….”
그래도 차마 쉬라는 말은 하기가 어려운지 우석은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다. 지환의 입매가 비틀렸다.
“됐어요. 필요 없습니다.”
“…박지환.”
우석이 단호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지환은 그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품속에 있던 가이딩 물약 중 하나를 들이켰다. 지환이 집어 던진 빈 물병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그의 건방진 태도에도 우석은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지환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환은 그 얼굴을 보는 것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됐으니까, 꺼지라고.”
“박지환! 너 이따위로 굴 거야?! 우석 선배라고 지금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은정이 발끈하며 지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지환은 그것을 거칠게 뿌리쳤다.
“건들지 마.”
그의 갈라진 저음에 은정의 눈이 떨렸다. 이를 악문 은정은 지환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환은 바로 몸을 돌려 다시 콘크리트 더미 앞으로 가 섰다.
“다 꺼져요. 선배는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헤집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지환은 마치 폐허의 망령 같았다.
***
건물이 무너지고 10일이 지났다.
센터는 결국 공식적으로 히어로 우민재가 구조 작업 중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했다.
그와 동시에 김진성 센터장은 시민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부디 에스퍼들을 향한 테러를 멈추어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센터 로비에는 히어로 우민재와 신태현을 추모하는 게시판이 설치되었다.
그로 인해 지환은 은정의 손에 억지로 붙들려 센터로 복귀해야 했다. 구조 작업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지환은 센터에 억지로 끌려오다가 게시판을 발견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허탈한 웃음을 짓던 지환은 몇몇이 가져다 놓은 흰 국화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게시판을 통째로 뜯어내 로비에 패대기쳤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주위를 지나던 에스퍼들이 모두 커다래진 눈으로 지환을 쳐다보았다.
“박지환!!!”
은정이 지환을 뒤로 밀쳤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박살 난 게시판과 납작해진 꽃을 바라보았다.
“안 죽었어.”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은정은 일그러진 얼굴로 지환과 게시판을 번갈아 보고는 몸을 돌려 센터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은정도 민재의 죽음과 연관성이 있는 말은 입에 올리질 않았다. 그러니 지환에게 다른 이야길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환은 은정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주위를 노려보았다.
“여기에 다시 꽃 가져다 놓거나 지랄하는 새끼들 있으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지환은 누군가에게 하는 건지 모를 협박을 내뱉고는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숙소 안은 민재와 함께 나서기 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살짝 삐뚤게 놓여 있는 베개와 흐트러진 이불, 두 개의 칫솔.
지환은 일을 마치고 들어온 사람처럼 욕실에서 씻고 나왔다. 그래도 변한 것은 없었다. 그의 숙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고 아늑했다.
그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환은 날아오르다시피 해 침대에 올려진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박지환 에스퍼님, 행정실입니다.]
낯선 목소리에 지환은 실망했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새로운 에스퍼실장 후보로 발탁되는 것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지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실장직이 공석이 아닌데 무슨 새로운 에스퍼실장입니까.”
[…그게-]
행정실 직원은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아직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없는데 이렇게 좆대로 판단을 내려서 성급히 마무리 지어도 되는 거냐고요.”
[…박지환 에스퍼님, 충격이 크실 것으로 압니다만 에스퍼의 경우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으나 내용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폭사로 죽어서 가루가 되어버린 경우 에스퍼의 사체는 찾을 수 없었다. 지환은 눈을 질끈 감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평소 민재가 자주 눕던 자리였다. 지환은 어쩐지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
지환은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어 있는 침대를 보고 절망했다. 다시 끔찍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런 지환과 달리 센터는 꽤 빠르게 변화를 이루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환은 회의실 의자에 걸터앉아 상황을 설명하는 호영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임시 에스퍼실장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호영은 긴장한 듯한 얼굴로 은정을 힐끔거렸다. 연차가 적은 후배인 자신이 팀장이자 실장이 된 상황이 불편한 듯했다. 심지어 호영은 1팀 중에서 가장 등급이 낮았다.
이것은 지환과 은정이 며칠간 실장직을 거절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지환은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누가 실장이라고요?”
지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호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내가.”
호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것을 꿰찬 것 같은 당당함이었다.
지환은 더 앉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쿠당탕!
“야!”
호영이 큰 소리로 지환을 불렀다.
“지랄하지 마. 그 자린 당신 것이 아니야.”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볼게.”
쓴웃음을 지은 은정이 호영에게 이야기하고는 지환을 바깥쪽으로 밀었다. 어차피 할 말은 다 했으므로 지환은 그대로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지환은 곧장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어떻게든 민재를 찾아내야 했다.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에스퍼 실종이 시작되고, 테러가 과속화되었다. 그리고 지환이 발견했던 실험실. 이 세 가지는 분명 서로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에스퍼를 납치하고 비합법 가이딩 물약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며, 테러를 일으키는 조직.
‘민재 선배는 그것이 생각보다 매우 위험하다고 했어.’
그렇다면 지금 민재 선배에게 가해졌던 위해가 그쪽의 짓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만약 자신이 잠복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면 우민재가 아니라 박지환을 노렸어야 맞았다.
지환은 그간 있었던 일을 세부적으로 정리해 보기 위해 서랍에서 메모장을 꺼냈다.
그리고 쪽지처럼 접혀 있는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지환은 그것이 민재가 남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빠르게 종이를 펼쳤다.
-아무나 쉽게 믿지 말고, 가이딩 꼭꼭 잘 챙겨라. 그동안 고마웠다.
간결한 문장들이었다. 당부의 말들로 이루어진 2개의 문장과 인사말. 자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환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가 놓친 것이 여기에 있었다. 거짓을 말하지 않기로 했던 히어로 우민재는 박지환에게 마지막까지 거짓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