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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82)화 (8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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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밥 먹고 싶은데, 그건 괜찮아요?

오준은 점심시간에 도착했던 우석의 문자를 붙잡고 한숨을 쉬었다. 이 쉬운 문자를 답하지 못하고 퇴근 전까지 질질 끌었다.

이렇게 정중하게 물어오다니. 차라리 밥 먹어야 된다고 어깃장을 놓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우석이 보자고 먼저 연락을 해준 것은 오준의 기분이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미안하고 고마운 게 많으니 밥을 사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오준이 문자를 입력했다.

-언제가 좋아요?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아. 멍하니 감탄사를 내뱉은 오준은 달력을 확인했다. 금요일이었다.

오늘 보는 게 아니었어? 오준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우석을 주말에 만난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주말에는 거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오준이 주말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네, 괜찮아요. 편한 때 말해주세요.

-데리러 갈까요?

오준은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주말에 데리러 와서 밥을 먹으러 가는 건 너무 데이트 같지 않나?

-괜찮아요. 어디로 가면 되는지만 알려주세요.

계속해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선을 긋는 답을 보내놓은 오준은 정작 집에 와서는 약속에 입고 갈 옷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출근을 할 때 입는 정장류의 옷을 제외하고, 가지고 있는 사복이 죄다 후줄근했다.

오준의 고민은 우석과 약속한 시간이 한 시간을 앞두고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옷을 계속 갈아입던 오준은 이렇게 준비하는 것도 웃기다 싶어 출근할 때 입는 옷 중 가장 캐주얼한 옷을 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여기요.”

식당에 들어서자, 우석이 손을 들어 보이며 오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오준을 부른 곳은 분위기 좋은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오준은 어쩐지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며 우석의 맞은편 의자에 자리 잡았다.

둘은 리조또와 파스타, 화덕피자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둘 사이에는 묘하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준은 왜인지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우석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왜… 그렇게 봐요?”

“어떻게 지냈어요?”

우석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오준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다른 질문을 내놓은 우석을 잠시 바라보다 대답했다.

“음… 그냥 평소처럼 회사 다니고 그랬어요.”

오준은 이직 준비가 쉽지 않다느니 하는 이야긴 하지 않기로 했다.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우석이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지금 이런 질문을 한다고? 오준은 당황해서 물을 들이켰다.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종업원이 접시를 내려놓고 사라지자 우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보고 싶었어요.”

“그, 실장님.”

“그래서 말인데 우리 보류하기로 하는 거 어때요?”

우석은 태연하게 피자 한 조각을 덜어 오준의 접시에 놓아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우리가 잤고, 내가 고백을 했고, 오준 씨가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한 거요. 전부 다요.”

우석은 그 말을 하더니 잔을 집어 들고는 물을 들이켰다. 오준의 눈에 우석의 귀 아래쪽이 붉어져 있는 게 보였다. 긴장하고 있는 건가? 잘은 모르겠으나 태연해 보이진 않았다.

오준은 우석이 태연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이 한 번 선을 그었는데도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을 기다려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못내 기뻤다.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근데 이래도 될까? 오준은 망설였다.

“…그것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우석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그는 씁쓸해 보였다.

내가 지치게 한 건가? 오준은 초조함을 느꼈다. 우석과의 관계에 겁을 먹어 그를 내치기로 했으면서, 정작 그와 정말로 멀어질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

오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보류, 좋아요. 그렇게 해요.”

오준의 답에 우석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괜찮겠어요? 오준은 그렇게 물으려다가 말았다. 무슨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우석이 오준 쪽으로 그릇을 살짝 밀어주었다.

“먹어봐요. 여기 맛집이래요.”

“…네.”

오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자를 잘라 먹었다. 그러고는 피자 한 조각을 아직 비어 있는 우석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우석은 살짝 웃음을 터뜨리더니 식사를 시작했다.

***

“선배님.”

민재가 지환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자 눈앞에 물병이 들이밀어졌다. 민재는 물병을 받아 들어 물을 마셨다.

두 사람은 이제 막 합동 비행 훈련을 마친 참이었다. 서로 피해 다니느라 시간을 썼으니 꽤 오랜만에 훈련을 한 셈이었다.

며칠 전 민재의 말에 잘 알겠다며 꽤나 험악한 얼굴로 대답한 지환은 더 말을 하지 않고는 휙 뒤돌아 가버렸다. 민재의 말에 뭐라 반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알겠다고 하니 불러 세워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더니 다음 날 지환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연락을 해 비행 훈련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다. 지환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더군다나 원래 민재와 닿으면 슬슬 피하기 바빴던 놈이, 오늘은 가벼운 나무토막을 들 듯 민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는 위치를 옮겼다.

빠르게 이동할 땐 몸이 밀착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흠칫 놀라는 것도 오로지 민재의 몫이었다.

갑자기 왜 태도가 이렇게 변한 거지. 없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 말해주니 금세 편해진 건가. 민재는 지환을 힐끔 쳐다보았다.

지환은 민재가 물을 다 마시는 걸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민재는 물병을 지환에게 내밀었다.

“줘?”

지환이 물병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병을 받아가서는 몇 모금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오늘 고생했어.”

“선배님, 우리 밥 먹으러 가요.”

민재가 그만 돌아가려는데 지환이 식사를 제안했다. 지금 같이 먹으러 가면 어색할 것 같은데. 고민이 되었지만 거절하는 게 더 이상할 것 같긴 했다.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센터 밖으로 나가서 먹을까요?”

그렇게까지? 싶었으나 민재는 그러자고 했다.

아무 데나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했더니 지환은 수제 버거를 판매하는 곳으로 민재를 데려갔다. 간판이 눈에 익은 걸 보니 체인이 많은 프랜차이즈 같기도 했다.

아직은 햄버거 좋아하고 그럴 나이긴 하지. 민재는 지환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섰다.

지환은 햄버거를 세 개나 주문했다. 민재는 가장 기본 메뉴인 베이직 햄버거를 시켰다. 둘은 밀크셰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으며 네 개의 햄버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환은 민재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감자튀김 하나를 민재의 앞에 내밀었다.

민재가 멀뚱히 감자튀김을 바라보자 지환이 손을 좀 더 내밀어 감자튀김의 끝으로 민재의 입술을 콕 찍었다.

뭐야, 먹으라고? 민재는 감자튀김을 받아먹었다. 그러자 지환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지? 민재는 지환을 의아한 듯 바라보았으나 지환은 태연한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

이상한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햄버거를 먹던 지환이 갑자기 팔을 뻗어 민재의 입가를 손으로 훔쳤다. 당황한 민재는 뒤로 상체를 빠르게 물렸다.

“뭐….”

“소스 묻었어요.”

지환은 바비큐 소스가 묻은 자신의 손가락을 민재를 향해 보여주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걸 빨아 먹었다. 당황한 민재의 입이 벌어졌다.

“너… 너….”

“네?”

뭐 문제가 있냐는 듯 지환이 물었다. 그런 건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 민재는 괜히 자신이 과민반응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말을 하다 말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뒤로도 지환은 민재의 입에 감자튀김을 넣어주거나 밀크셰이크를 들어 올려 민재의 입가에 갖다 대는 등 쓸데없는 짓을 했다. 민재는 그런 지환의 행동을 멈추기 위해 입에 햄버거를 쑤셔 넣다시피 했다.

“배고팠어요?”

지환이 피식 웃으며 민재를 바라보았다. 어린 조카에게 밥 먹이는 삼촌 같은 얼굴이었다. 민재는 입안에 가득 찬 햄버거를 꿀꺽 삼켰다.

이 새끼 진짜 왜 이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민재는 심란한 마음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실수한 게 미안해서 아부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은 상사니 지환 입장에서는 민재가 너그럽게 넘어가 준 것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야.”

“네?”

지환이 햄버거를 입안에 가득 문 채로 물었다.

“나 진짜 괜찮아.”

“뭐가요…? 감자튀김 싫으세요…?”

감자튀김 실컷 먹여놓고 싫냐고 묻는 건 뭐냐. 민재는 황당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환은 바보 같은 얼굴로 멀뚱멀뚱 민재를 바라보았다.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일 있잖아. 네가 실수로 그런 거 나 진짜 신경 안 쓴다고.”

민재는 입을 맞췄다든가 키스라든가 하는 말은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하면 전달이 되었겠지. 민재는 지환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지환은 제대로 못 알아들은 건지 오히려 어두운 표정이었다.

“…네.”

전혀 긍정 같지 않은 대답이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하며 테이블에 처박힌 시선이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뭐 오히려 협박하는 걸로 보였나? 환장하겠네. 황당한 민재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세요?”

지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화장실.”

생각할 공간이 필요했다. 민재는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우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실수한 걸 넘어가 준다니까 도리어 기분 나빠하는 건 뭐야?

우석의 답은 빠르게 도착했다.

-어떤 새낀데? 무슨 실수?

박지환이 자신에게 입술을 냅다 박았다고… 말해야 하나? 민재가 망설이는 순간 우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민재는 전화를 받았다.

[뭔데. 무슨 상황이야.]

민재가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우석이 호들갑을 떨었다. 민재는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타서 약간의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후로 상대가 자신을 피해 다닌다. 근데 계속 껄끄럽게 지낼 수는 없으니 민재 쪽에서 먼저 찾아가 괜찮다, 없는 일로 치겠다고 했더니 오늘은 과하게 아부를 떨더라. 그래서 정말 신경을 안 쓴다고 말을 해줬는데도 기분이 상한 티를 내더라는 내용이었다.

[…박지환이?]

민재는 지환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는데 우석이 곧바로 그의 이름을 꺼냈다.

“걔인 줄 어떻게 알았어?”

[네 주변에 그만한 사고를 칠 놈이 또 있어?]

“…그건 그런데. 아니 근데 왜 그러는 거 같아? 넌 그래도 나보단 요즘 애들이랑 친하잖아.”

하하. 민재의 말에 우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쪼개. 민재가 볼멘소리를 했다.

[걔가 너 좋아하잖아.]

우석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잘못 들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을 정도로 또렷한 음성이 민재의 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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