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은정은 오랜만에 자연재해 피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밤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인해 비탈면이 내려앉아 전봇대랑 도로 일부분에 손상이 생겼다. 다행히 근방에 인가 피해는 없었으나 빠른 현장 복구를 위해 몇몇 에스퍼들이 투입된 것이었다.
밤보다 어두운 새벽이었다. 어느 정도 어둠에 적응한 은정은 띄워져 있는 조명등들을 살짝 옮겨가며 몸을 움직였다.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린 은정은 낙석을 모아두는 곳으로 걸어갔다.
쿵.
은정이 바위를 내려놓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안녕.”
손에 묻은 돌가루를 터는 은정의 귀에 작은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은정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빛을 띄우고 있던 아담한 키를 가진 남자가 은정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 승규 선배!”
은정이 그를 부르자 승규가 웃어 보였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선배, 어떻게 지냈어? 우리 왜 이리 오랜만인데?”
“나는 주로 지방으로 다니니까….”
은정이 말하자 승규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승규는 빛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에스퍼였다. 민재보다 조금 늦게 발현했으나 나이는 민재보다 2살이 많았다. 그는 등급이 c였다. 빛의 밝기 조절이나 유지 시간이 조금 부족한 편이었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는 현장에는 잘 투입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성정이 유약하고 겁이 많아 전투 상황을 잘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주로 자연재해 복구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느라 좀처럼 센터에 계속 머무르질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게 승규에게는 잘 맞아 보였다.
“은정아, 이거 몇 개는 좀 부숴줄 수 있을까?”
승규가 크기가 꽤 큰 바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흔쾌히 대답한 은정은 손깍지를 끼고는 기지개를 켜 스트레칭했다. 은정이 고개를 돌리자 목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은정아 그러다 다쳐….”
승규가 작은 목소리로 걱정을 늘어놓았다. 은정은 그런 승규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목을 한 번 돌린 다음 큰 소리로 기합을 외쳤다.
“어잇!”
은정은 송판 격파를 하듯이 손날로 바위를 내리쳤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에 금이 갔다. 두 동강이 난 바위를 보고 승규의 입이 헤벌어졌다.
날리는 먼지를 손으로 대충 부채질해 날려 보낸 은정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는 기합을 넣었다.
현장의 바위들이 돌멩이 수준으로 작아질 때까지 은정은 신나게 손을 휘둘렀다. 이따금은 발로 콱콱 밟아서 으깨기도 했다.
“아. 스트레스 풀리네.”
은정은 어깨를 돌리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돌멩이들은 도로가에 있는 풀밭 쪽에 놓이게 되었다.
“고생했어.”
“선배도!”
일이 마무리될 즈음이 되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은정은 숙소에 들어가면 샤워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은정아!”
승규가 은정을 불렀다. 그는 주변의 띄워놓았던 빛을 모두 거둔 채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긴장한 기색이었다. 뭐지? 은정은 순간적으로 같이 긴장하며 대답했다.
“어… 왜?”
“…혹시 너 협박 편지 받아본 적 있어?”
협박 편지를? 나한테? 은정이 어릴 때였으면 몰랐을까 지금 그렇게 간 큰 놈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런 유치한 짓을 하는 놈이 있었다고 해도 은정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은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데 그건 왜? 나 그런 거 많이 받을 거 같아?”
내가 소문이 그렇게 안 좋나. 은정은 수도권에서 먼 곳에 있는 센터 지부에서 그녀가 악명이 높은 편이라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응?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받았거든.”
“…어? 협박 편지를?”
은정의 질문에 승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은 자신이 그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저렇게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에게?
“선배가 왜 협박 편지를 받아?”
“모르겠어….”
“지금 갖고 있어?”
승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은정은 종이를 받아 들어 펼쳐보았다. 필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서 글자들을 오려 붙인 것으로 상당히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협박 편지였다.
-네 죄를 알아라. 곧 그 값을 치르게 될 거야.
뭔 소리야. 은정이 중얼거렸다. 글자를 오려 붙이느라 그런 건지 문장의 문법도 묘하게 이상했다. 은정은 심란한 마음으로 승규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얼마나 순진하면 웬 사이코한테 이런 괴상하고 조잡한 협박을 당하고 그래?
“선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실수한 사람이 있다거나.”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승규는 억울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냥 괴롭히려는 목적인가. 은정은 어쨌건 그다지 커다란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누가 싸움 걸어오면 나한테 바로 말해. 내가 대신 싸워줄게.”
“아니…. 싸우는 걸 원하는 건 아닌데….”
“누군가랑 사이가 안 좋았던 게 아니면 너무 신경 쓰지 마. 장난일 수도 있잖아.”
은정의 말에 승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은 그런 승규의 등을 다독였다. 그의 몸이 흔들거렸다.
***
오준은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납골당에 엄마를 안치시켰다. 눈높이에 있을수록 비싼 위치였기 때문에 그의 옆구리쯤 오는 높이를 선택했다. 오준이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자리였다.
오준은 엄마를 마주 보기 위해 바닥에 앉았다. 그러면 오준의 시선이 아주 살짝 높은 곳을 향하는 지점에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엄마, 이렇게 하면 엄마 키가 더 크네. 그치.”
오준이 중얼거렸다. 바닥의 찬 기운이 오준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타고 올랐다. 오준은 무릎을 모아 팔로 껴안았다.
“이제 어떡하지.”
오준에게는 인생의 목표랄 것이 없었다. 당연히 꿈도 없었다. 그에게는 엄마의 안위가 전부였다. 그것이 그를 숨 막히게 했지만 반대로 그를 살게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제 오준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준은 이제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 한 지역에 매여서 살 필요도 없었다. 그 사실은 그에게 아주 약간의 해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묵직한 외로움이 따라붙었다. 책임질 이가 없다는 건 혼자라는 의미였다.
이제 진짜 혼자다. 고아구나, 나. 오준은 다시 한번 실감했다. 계속 멍하니 있는데, 오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 잘 모셔다드렸어요?
우석의 문자였다.
장례식의 마지막까지 우석은 오준의 곁에 머물렀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서, 오준에게 이따금 따듯한 물을 떠주기나 했다.
공간의 일부처럼 오준의 곁을 지키던 그는 엄마를 납골당에 모시러 떠날 때까지 있다가 센터로 출근했다. 끝까지 같이 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함께였다. 이미 너무 과분했기 때문에 오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오준이 몸을 일으켰다.
“또 올게.”
인사를 건넨 오준이 납골당을 벗어났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맑은 하늘이 보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오준은 문득 자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하는 그런 삶을. 적어도 먼저 떠난 엄마가 그를 보았을 때 속상하지 않을 만한 그런 삶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럼 뭘 해야 하지? 오준은 가장 먼저 자신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센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센터를 그만두자는 생각이 들자마자 우석에 대한 생각이 오준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최우석은 가이드다. 그냥 가이드도 아니고 등급도 아직까진 센터 내 최고인 데다 실장을 달고 있다. 그 남자는 죽지 않고서는 센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울어도 돼요.”
오준은 그의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최우석은 처음부터 그랬다. 오준이 누르고 또 누르던 것들을 터뜨리게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도 그의 앞에서는 화를 내고, 울고, 웃었다. 오준은 인정했다. 최우석은 오준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그러나 그것이 센터에 머무를 만큼, 자신의 남은 평생을 모두 최우석에게 걸 만큼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은 그랬다. 지금의 오준은 자신에게 헌신해 준 우석을 버리는 개자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준은 핸드폰 화면을 켜고 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의 신호음이 다 울리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괜찮아요?]
우석이 물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오준은 숨을 들이켰다.
“잘 모셔드렸어요.”
[…다행이에요. 지금은? 어디예요?]
“납골당 앞이요.”
오준의 대답에 우석은 잠시 침묵했다. 무슨 말을 할지 고르는 듯했다. 우석이 말을 잇기 전에 오준이 먼저 그를 불렀다.
“우석 씨.”
[…네?]
오준이 그를 직함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석의 대답이 조금 느리게 들려왔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저요. 제 인생을 살아보려고요.”
[…….]
“엄마가 없으니까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뭘 하고 싶은지,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만 생각해 보고 싶어졌어요.”
[그것도 좋겠네요.]
오준의 말에 우석이 덤덤하게 공감해 주었다.
“이직을 준비할까 해요.”
정적이 흘렀다. 우석은 아마 오준의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새롭게 살아갈 삶에 그를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거절이었다.
“미안해요.”
오준이 사과했다.
오준은 통화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다. 우석의 숨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용한 호흡이었다. 화났겠지. 오준은 입술을 짓씹었다.
[알겠어요.]
우석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적당히 따듯했다. 화를 내거나 질책하는 말투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전달받았을 뿐이라는 듯 여상했다.
화를 내거나 가지 말라는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오준은 괴로웠을 것이다. 오준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래야 했다.
그러나 오준은 적당히 다정한 말투로 덤덤하게 그의 결정을 받아들여 버린 우석의 태도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