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민재도 교주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당신도 그렇게 성공작으로 보이진 않네요.”
민재는 교주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 뭐, 그런 건가요? 별로 쓸모 있어 보이진 않은데요.”
민재가 덧붙여 빈정거렸다. 교주는 체념한 듯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말이야. 인간에 가까워졌지.”
“아가미 봉합수술이라도 준비 중이셨나요?”
“너도 갈망한 적이 있지 않아?”
교주가 물었다. 그는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고 칭하고 있었다. 본인이 만든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꽤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꽤 괜찮은 프로토타입이 될 뻔했지.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교주의 눈이 흐렸다.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프로토타입이라고? 민재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이 사이코 새끼는 아이들을 실험 쥐 취급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몇 명이 성공을 한다고 해도 당신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잖아.”
“그러니까. 테스트는 신중해야지.”
민재는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지금 저 새끼의 혀나 머리통이 터져 버리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든다. 민재는 되뇌었다.
“교주라기에 꽤 특이한 능력이라도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를테면 정신계라든가.”
민재는 말을 돌려 떠보았다.
“잘못 짚었어. 이쪽은 아니지.”
정신계 에스퍼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관련된 자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민재는 바로 이어 질문을 했다.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차례였다.
“근데 당신 말대로라면 본인의 업적이 꽤 성공적인 상황이었는데, 왜 갑자기 자취를 감춘 거지?”
민재의 말에 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잠시일 뿐 교주는 갑자기 민재를 보더니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가래가 끓는 목소리라 듣기가 불쾌했다.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그렇지?”
교주가 민재를 도발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라. 그렇다면 제삼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센터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제는 조금 알겠는데. 거슬리니까 그만 웃지.”
민재는 리모컨을 들어 올려 살짝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교주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리모컨을 노려보았다.
“당신도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하나 알려줄게.”
“…….”
“당신은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인 데다 아가미가 달린 몸으로 실험실에 묶여 있어. 그걸 자각하고는 있는 거야?”
민재의 말에 교주는 눈을 부릅떴다.
“넌 그걸 누를 수 없을걸”
교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재는 팔을 뻗어 그의 턱을 주먹으로 갈겼다. 그리고 이어 교주의 가슴팍에 자리 잡은 아가미도 가격했다. 헉. 교주가 고통스러운지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어때. 지금도 못 누를 것 같아?”
민재가 물었다. 순식간에 둘 사이의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거래를 하자.”
“거래?”
교주의 목소리는 꽤나 초조하게 들렸다. 제 목숨 소중한 줄은 기가 막히게 아는 모양이지. 민재는 속으로 비꼬며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 내가 죽으면 넌 그걸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을 거다.”
“…내가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날 살려주면 그것의 위치를 알려줄게!”
교주는 다급하게 본인이 할 말만 했다. 그러나 그 말 속에 힌트들이 있었다.
교주는 물질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민재가 원할 만한 것이라고 했으니 센터나 센터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혹은 민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주는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건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로 살려준다고 해도 이 쓰레기 새끼는 이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구라나 까고 해외로 튀겠지. 민재는 초조하게 눈치를 살피고 있는 교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실험을 해본 적은 있는데 받아본 적은 없는 거지?”
“뭐? 없어. 그, 그딴 건 왜 물어.”
민재는 몸을 일으켜 교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럼 경험자로서 하나 알려줄게. 생각보다 많이 아프니까 각오해야 할 거야. 조 박사는 당신도 봤다시피 좀….”
민재가 말끝을 흐리자 교주의 턱이 떨렸다.
“살려줘.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 내가 뭘 갖고 있었는지 알면….”
교주는 계속해서 살려달라는 말을 했다. 민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살 가치가 없어 보이는 놈도 이렇게 간절하게 살고 싶어 한다.
민재는 살려달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끔 궁금했다. 살고 싶다는 건 어떤 기분인지.
민재는 묶여 있는 교주의 손에 리모컨을 쥐여주었다.
“살려줄게.”
민재의 말에 교주의 눈이 흔들렸다. 어차피 교주는 이곳에서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스스로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었다.
민재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실험실을 나왔다. 등 뒤에서 절규가 섞인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지환은 여느 때처럼 민재의 숙소 문 앞에서 민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은 최근 민재의 일정 중 따라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눈치껏 구분하고 있었다.
물론 마음이야 어디든 붙어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미움을 사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태현이 얼마 전 했던 말도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내 마음을 들키지 말라는 경고는 무슨 의미였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제 갈 데가 있다고 한 뒤 민재는 밤늦게 숙소로 들어갔다. 훈련장에 있다가 숙소를 조금 돌아다녔는데 민재를 찾을 수가 없어, 지환은 그의 숙소 쪽을 서성이며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발을 질질 끌며 숙소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피곤해 보였는데 어딜 갔다 온 걸까?’
현관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지환은 생각했다. 그때, 지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내일 밤, 서연의 생일 파티에 참석할 것. 선물 지참 필수!
은정의 문자였다.
이서연 가이드면 태현의 누나이자 은정의 페어였다. 지환과는 자주 마주치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파티에 참석해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지환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민재의 현관문이 열렸다.
“선배님, 좋은 아침입니다.”
지환의 인사에 민재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 선배님 문자 받으셨어요?”
“어. 너도 받았어?”
“네. 근데 이서연 가이드님 생일 파티에 저도 가도 되는지….”
“은정이가 문자를 보냈는데 가야지. 안 갔다가 얼마나 시달리려고.”
민재는 말을 하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정이 삐지면… 되게 무서워.”
삐진다는 단어는 은정과 어울리는 단어 같지는 않았다. 지환의 머릿속에 삐진(?) 은정이 화를 낸다면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펼쳐졌다. 지환은 빠르게 생각을 접었다.
“그럼 저랑 선물 사러 같이 갈래요?”
지환이 물었다.
“선물? 아… 선물도 사오라고 했지.”
민재는 귀찮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같이 가기 딱 좋다. 지환은 예상치 못하게 민재와 같이 있을 기회를 얻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지환은 민재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날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재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현관문을 열고는 숙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라?”
지환은 숙소 앞에서 석상처럼 굳어 있다가 현관을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민재의 손에는 야구모자가 두 개 들려 있었다. 민재는 하나는 자신이 쓰고는 하나는 지환의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이거 써.”
이거 좀 커플 모자 같다. 지환은 올라가는 입가를 내리눌렀다.
둘은 날아가는 대신 택시를 타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근데 원래 팀원들이나 페어 생일을 챙기는 편인가요?”
지환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환은 팀원들과 민재의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냥 각자 마음대로. 원래는 은정이도 지 페어 가이드랑 오붓하게 보낸다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왜인지 변덕을 부리네.”
그럼 페어끼리는 보통 생일을 챙기는구나. 지환은 민재의 생일을 알고 싶었다.
“선배님 생일은 언제예요?”
“왜.”
지환이 생일을 묻자, 민재가 이유를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지환은 당황했다.
“생일 챙기고 싶어서요.”
“됐어.”
민재의 대답은 꽤 단호했다. 뭐지? 생일 거창하게 챙기고 그럴까 봐 그러시나. 지환은 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민재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민재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 유독 둔한 편이었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게 조금 더 맞는 표현이었지만.
지환은 화려하게는 아니더라도 민재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생일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지환은 생각했다.
“뭐 좀 눈에 들어오는 거 있어?”
“선배님은 생각해 둔 거 있으세요?”
“난 이미 골랐는데?”
“네?”
이렇게 빨리? 지환은 당황했다. 여자 선물을 많이 골라봤나?
“뭐 고르셨는데요?”
지환의 말에 민재는 층별 안내도를 살피더니 다른 층으로 향했다. 백화점에 올 때부터 이미 정해두고 온 것 같았다.
안내 데스크를 찾은 민재는 상냥하게 반기는 직원에게 말했다.
“상품권 구매하려고요.”
민재는 망설이지 않고 상품권을 구매했다. 지환은 어쩐지 긴장했던 것이 민망해졌다.
“…돈을 선물하시려고요?”
“야, 이게 최고야. 머리 싸매봤자 본인 마음에 드는 거 구할 수도 없어.”
“그래도 조금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요?”
지환의 질문에 민재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럼 뭐가 성의 있는 선물인데.”
민재의 말에 지환은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음… 책이나 다이어리…? 평소에 잘 쓸 수 있는 머그컵이나…?”
지환의 말에 민재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건 좀 별론가? 지환은 그 외에도 액세서리나 신발 종류를 읊어보았다. 지환의 말이 길어질수록 민재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갔다.
민재는 지환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그냥 상품권 사라.”
“네.”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재와 비슷한 액수의 상품권을 구입했다. 지환은 자연스럽게 민재가 들고 있는 작은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민재는 별말 없이 지환이 하는 대로 두었다.
“뭐라도 먹고 들어갈래?”
민재가 물었다. 아. 역시 같이 나와서 너무 좋다. 밖에서 밥을 먹는 건 꽤나 데이트 같았다.
들뜬 지환은 민재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가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