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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70)화 (7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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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 올래?><

“컥!”

“헉, 선배님 괜찮으세요?”

민재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다가 조 박사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사레가 걸렸다. 이 노친네가 미쳤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지환이 놀라서 일어섰다. 지환은 민재에게 물컵을 내밀고는 손을 뻗어 민재의 등 쪽을 살살 쓸어내렸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지환의 손길이 은근히 민망하게 느껴졌다. 민재는 큼큼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괜찮아…. 이제 앉아.”

“…무슨 일 있어요?”

민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지환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조 박사를 만나는 데 지환을 데려갈 수는 없었으므로 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갑자기 잘못 넘어가서….”

“천천히 드세요. 안 뺏어 먹어요.”

민재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던 지환의 식판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민재에 비해 식사 속도가 빠른 편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민재를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조 박사 때문에 입맛이 모두 사라진 민재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더 안 먹어요?”

지환이 물었다.

“갈 데가 있어.”

지환은 당연하게 같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민재의 식판까지 들고 빈 그릇을 정리하는 곳으로 향했다. 근방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또 우 실장이 후배 식판 정리까지 시킨다고 소문나겠네. 민재는 한숨을 삼키고는 같이 가는 게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지환을 따라나섰다.

지환은 센터 밖으로 가는 것이면 데려다주겠다고 했으나 민재가 아니라고 하자 순순히 물러났다. 왜 같이 못 가는 것이냐며 따질 줄 알았기 때문에 민재는 살짝 당황했다.

“…넌 어디 가는데?”

“저는 훈련장 갔다가 숙소 가 있을게요.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어디 갈 데가 있나 싶어 물었더니 딱히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닌 듯했다.

뭐가 있나? 민재가 지환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지환이 시선을 살짝 피했다. 추궁을 해보고 싶었으나 지금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지환더러 왜 안 쫓아오냐고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민재가 조 박사가 있는 건물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한 통의 문자가 더 왔다.

-오는 거지?*^^*

이모티콘 시발. 민재는 핸드폰 화면을 빠르게 껐다. 왜 이렇게 재촉을 해대는 거야. 민재는 초조해졌다.

최근에는 커다란 사고가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실험실에 들어올 새로운 인간도 없어야 하는 게 맞았다. 조 박사가 흥분해서 그를 부를 만한 것이라면, 까마귀와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민재는 손목의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초록으로 양호했다. 후. 민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갔다.

조 박사의 실험실 문은 열려 있었다. 민재는 안으로 들어서며 기척을 표했다.

“조 박사님.”

“어어, 들어와~!”

실험실 깊숙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재는 아크릴판으로 겹겹이 가려져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전 뉴스에서 봤던 얼굴과 마주쳤다. 까마귀 교주였다.

교주가 입은 흰 셔츠가 해지고 찢어져 앞섶이 드러난 상태인 걸로 보아 꽤나 험난한 과정이 있었나 보다 싶었다.

“어때, 내 선물이 마음에 들어?”

조 박사가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문제는 그것을 조 박사가 민재 앞에 가져다 놓았다는 데에 있었다.

뭘 숨기고 있을까. 민재는 대답하지 않고 좀 더 자세히 교주를 살폈다.

“비슷한 놈일 확률은?”

민재가 묻자 조 박사가 웃었다. 킬킬거리면서 웃는데 묘하게 쇳소리가 섞여서 기분이 더러웠다.

“그럼 그냥 풀어줄까?”

확실하다고 답하면 민재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물을 것을 아니 나오는 반응이었다. 조 박사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역으로 보면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다. 민재는 자신의 앞에 묶여서 앉아 있는 놈이 정말로 까마귀 교주임을 확신했다. 센터와 까마귀가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동안 어디서 지냈어요?”

민재는 교주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눈이 마주쳤다.

교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혀를 내밀었다. 혀 위에 작은 회로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소형 폭탄이거나 전기 절단기 같았다. 민재는 조 박사를 쳐다보았다.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못 하게 해놨지.”

“…하. 선물이라더니.”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법이니까.”

“…원하는 게 뭔데.”

민재가 묻자 조 박사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피랑 조직 샘플.”

시발. 민재가 욕을 짓씹었다. 조 박사가 또 민재의 신체를 가지고 실험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량만 주면 돼.”

조 박사가 덧붙였다.

민재는 다시 교주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나? 생각하는 민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교주의 쇄골 아래쪽에 이상한 것이 달려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살이 갈라져 있는 것 같았다. 조 박사가 고문을 했나? 민재는 살짝 고개를 숙여 그것을 살폈다.

그것은 상처가 아니었다. 작은 갈색 비늘로 덮인 아가미였다. 아주 천천히 벌어졌다가 닫히는 구멍 사이로 촘촘하게 갈라진 막들이 보였다. 저 막을 통해 들어간 공기가 폐로 연결될 것이다.

에스퍼를 혐오하는 종교의 교주가 에스퍼였다니. 우스운 이야기였다.

민재는 조 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민재가 절대로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얼굴이었다.

“단둘이 대면할 시간.”

“혀에 달린 리모컨 쥐여줄게.”

민재의 요청에 조 박사가 흔쾌히 응했다. 애초에 조 박사는 민재의 신체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조 박사는 실험실에서 가장 깊숙한 공간을 가리켰다. 잠수정만큼이나 두꺼운 철문이 있는 곳이었다.

“여긴 오랜만이지?”

조 박사가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민재의 몸을 감쌌다. 냉동 창고에 들어서는 것처럼 민재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공간 한쪽에는 여러 가지 약품이나 조직 샘플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었다.

조 박사는 방 중심부에 있는 환자용 의자를 가리켰다.

“편하게 누워.”

개새끼가 좆같이 구네. 그 의자는 어릴 때 민재가 여러 번 누워야 했던 곳이었다.

조 박사의 제안을 무시한 민재는 구석에 있는 철제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팔을 올려두었다.

“빨리 하고 끝내죠.”

조 박사는 어디서 하든 상관없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랍에서 주사기와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소독액을 비커에 붓고 주사기와 나이프를 담가 휘적거렸다.

“우리 옛날에는 좀 친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

“그땐 민재 군도 좀 더 귀여웠고. 가끔 난 그때가 그리워. 살던 날들 중에 제일 덜 지루했던 것 같아.”

조 박사가 추억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민재는 올려두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엇이든 움켜쥐고 뜯어버리고 싶었다.

그립다고? 미친 새끼. 민재는 눈을 감았다.

조 박사는 민재를 실험했던 박사 중 가장 뛰어났다. 그래서 유일하게 그가 센터에 남을 수 있었다.

“채혈할게.”

조 박사는 소독을 끝낸 주사기를 들고 민재에게 걸어왔다. 민재는 자신의 팔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주삿바늘이 민재의 팔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역한 느낌이 올라왔다.

민재는 책상 구석을 노려보았다. 파일 정리함에 몇몇 파일이 대강 꽂혀 있었다. 그중 하나의 파일에서 종이의 윗부분이 삐죽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E Rank mind control.

정신계? 민재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정신계 에스퍼는 매우 드물었다. 세계적으로도 잘 발견되지 않을뿐더러 아주 가끔 발현된다 해도 타의에 의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는 모두의 두려움을 사게 되니까.

민재는 까마귀 쪽에서 보냈던 남자가 정신이 망가졌던 일을 떠올렸다. 외부 쪽에서 미리 조종해 놨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 박사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민재는 혹시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보았으나 센터에 정신계 에스퍼는 없었다.

하물며 E급은 하급이다. 이능력이 있어도 활용을 거의 할 수 없는 수준일 텐데.

저 에스퍼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재는 조 박사에게 물을지 고민했다. 조 박사가 가지고 있는 자료니 그 말고는 민재가 정보를 얻을 곳이 없을 터였다.

그러나 조 박사가 순순히 알려줄까? 곰곰이 생각하던 민재는 팔에서 바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선연한 감각이었다. 민재는 다시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조 박사는 소독솜으로 민재의 팔을 눌러 지혈했다. 조금 있다가 도려낼 피부를 살피는 조 박사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서 정상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 후 피가 멎자, 조 박사는 나이프를 들고 왔다. 그리고 민재의 팔 아래쪽에 두꺼운 거즈를 깔아두었다.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지?”

“닥치고 해.”

“까칠하긴.”

조 박사가 씩 웃은 다음 민재의 팔을 다시 잡았다. 나이프가 민재의 팔을 파고들었다. 민재의 팔에서 희미한 빛이 번졌다.

조 박사가 원하는 조직 샘플은 ‘힐을 방금 주입받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 박사가 도려내면 치료하고, 다시 도려내면 치료하는 방식을 몇 번 반복해야 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민재를 파고들었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민재는 신음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조 박사는 피하조직까지 깔끔하게 도려내고는 유리로 된 통 같은 것에 넣었다. 통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조 박사는 민재가 팔을 다시 치료하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조 박사에게서 작은 리모컨을 받은 민재는 조금 전 교주가 묶여 있던 곳으로 나왔다.

조 박사는 민재의 등에다 대고 죽여도 되니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민재는 다른 의자를 끌고 교주의 앞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려 리모컨을 보여줬다.

“이제 내가 가지고 있어요.”

교주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흥분을 한 건지 몸을 뒤틀었다. 의자가 흔들리며 쿵쿵거리는 소리를 냈다.

“말해도 돼요. 난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 이것을 받았으니까.”

“…나한테 뭘 원하지?”

혀에 있는 물체가 거슬리는지 발음이 어눌했다. 민재는 남자가 말을 시작하자 손을 내리고는 팔짱을 꼈다.

“이곳에 이전에도 온 적이 있어요?”

민재가 물었다. 교주가 민재를 빤히 쳐다보았다.

“있지. 그리고 나는 너도 알아.”

“이 나라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죠.”

“네가 실패작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지.”

이 새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민재가 멈칫하자 교주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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