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민재는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훈련장으로 향했다.
“무슨 문제 있어?”
“뭐가?”
“너네 꼬맹이 요새 여기 매일 출석 찍던데.”
“…어디 아프대?”
“아니. 너 찾으러 온 거겠지.”
어제 가이딩실에서 우석은 지환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환이 퀭한 얼굴을 해서는 지박령처럼 센터를 쏘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민재는 조금 민망해졌다. 우선 생각이 많아 좀 피해 다니려 한 것인데 저렇게 본격적으로 쫓으려고 들 건 뭔가 싶었다.
그러나 반대로 별것 아닌 일로 지레 몸을 사린 건 민재였다. 비행 연습 때 있었던 일은 어쩌면 민재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 나이 때는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냥 모르는 척하면 되는 것이다. 민재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인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꽤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손이 살짝 아려왔다.
민재가 육탄전을 할 때 가지는 전략은 간단했다. 피하고, 때린다. 못 피하면 그냥 맞아주고 때린다. 좀 아프긴 했지만 몸을 빠르게 복구하면 되는 문제이니, 그냥 맞아주는 대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면 되는 문제였다.
상대의 발이 민재의 복부 쪽으로 날아들었다. 민재는 몸을 뒤로 물리다가 손이 뒤쪽으로 꺾였다. 팔이 꺾이는 건 내버려 두고 발을 날려 앞쪽의 인영을 처치했다.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확실하게 들렸다. 그리고 치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게 생성되었나? 민재는 눈앞으로 들어오는 공격들을 막아내며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민재의 눈앞에 있던 인영이 가슴을 앞으로 훅 내밀더니 쓰러졌다. 뒤에서 가격당한 것이다.
쓰러지는 인영 뒤에서 손이 뻗어져 나와 민재 옆의 인영의 목을 가격했다. 민재는 훈련장을 침입한 당사자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요, 선배님.”
지환이었다. 그동안 꽤나 열이 받았었는지 어투가 신랄했다.
민재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근처의 인영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호신술만 알려주랬는데 은정이가 그것보단 좀 더 많은 걸 알려준 모양이었다.
미션 성공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훈련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민재는 잠금장치가 덜렁거리는 훈련장 문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민재가 물었다. 지환은 민재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선배님 다치시는 걸 보고….”
“뛰어들어서 내 훈련을 방해했다고?”
민재의 말에 지환은 잠시 당황한 듯 말을 멈추었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그 반응에 도리어 민재가 어색함을 느꼈다.
“…왜 나 피해 다녔어요?”
지환이 말을 돌렸다. 민재에게 달가운 주제는 아니었다.
“내가? 내가 왜?”
민재는 최근 며칠간 있었던 일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다. 지환의 눈이 가라앉았다. 민재도 지지 않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럼 피해 다니신 게 아니라는 거죠.”
“말했잖아. 내가 왜.”
“…….”
“근데 왜 갑자기 문까지 뜯고 들어온 거야.”
민재가 턱 끝으로 훈련장 문을 가리켰다. 이따금 훈련하다가 잠금장치를 부숴 먹는 에스퍼들이 있어 위험 탐지기 작동을 막아놨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센터에 비상이 걸릴 뻔했다.
“같이 하기로 해놓고 왜 저랑 훈련 안 해요?”
“…따로도 하고 같이도 하면 되지.”
“비효율적이잖아요. 저랑 같이 움직이면 굳이 팔 꺾이실 일도 없잖아요.”
맞는 말이긴 했다. 지환과 함께 움직이면 훨씬 쉽게 공격을 하거나 방어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환의 말은 억지이기도 했다.
“네가 늘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상황이라는 게….”
“같이 있을게요.”
“아니….”
“절대 안 떨어질게요. 약속해요.”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 약속을 받은 민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환의 얼굴이 또 쓸데없이 비장했기 때문이다.
민재는 지환이 했던 다른 약속을 떠올렸다. 지키게 해달라고 하던, 부탁을 빙자한 약속.
민재는 그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금 본인이 어떤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지 알고 있나? 민재는 궁금했다.
민재는 저렇게 열망에 가득 차,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덩달아 기분이 이상해졌다. 민재는 조금 전 주먹을 내질렀을 때처럼 손끝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저 피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럼 같이 훈련하면 되겠네요.”
지환이 강수를 던졌다. 훈련을 같이하지 않으려면 피해 다녔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지환과 비행 연습 때 있었던 일을 언급해야 한다.
이 새끼 점점 머리 쓰는 것 같단 말이지. 민재는 찝찝함을 느꼈으나 그것에 대해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여 훈련 계획에 동의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저거 내일까지 고쳐놔.”
“네!”
민재가 문을 가리켰다. 작은 심술이었다. 그러나 지환은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서연은 사격연습장으로 들어서면서 문자를 확인했다. 태현이 오겠다는 대답을 한 것을 확인한 서연은 가방을 사물함에 넣었다. 그리고 소음을 막는 헤드셋을 착용했다.
평소 서연이 사용하는 가벼운 권총을 골라 총알을 채운 다음 거치대에 총구를 올렸다.
탕!
총성이 헤드셋을 뚫고 서연의 귀를 파고들었다. 서연은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으로부터 적당히 차단되는 느낌이었다. 서연은 다시 과녁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서연은 총을 다루는 것을 좋아했다. 태현의 집에 들어가게 되어 처음 총을 만져보았을 때부터 그랬다.
총알은 총구를 벗어나 정확히 한 곳으로 향한다. 한번 발사된 총알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제대로 조준하기만 한다면 명료하게 끝이 나니까. 서연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면 총을 들었다.
탕!
서연의 앞으로 과녁판이 다가왔다. 서연은 총을 거치대에 걸어두었다. 단 한 발 빼고는 모두 9점 이상으로 원 안에 잘 자리 잡혀 있었다.
서연은 과녁의 동그라미들을 벗어난 하나의 구멍을 노려보았다. 그 구멍에서 핏발 선 눈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서연의 시간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서연이 뒤를 돌아서 달렸기 때문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자를 도왔더라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서 가이딩을 쏟아부었더라면? 그 근방에 있던 모두가 죽었을까? 서연의 머릿속에서 질문들이 떠나질 않았다.
출장지에선 위급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거나 혹은 단체로 의논해서 무언가를 결정했기 때문에 서연이 오로지 단독 판단으로 누군가를 포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서연은 그 순간 그 에스퍼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연은 망설이지 않고 그 에스퍼를 죽인 셈이었다. 서연은 방금 전까지 총을 들고 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
어디선가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서연의 어깨를 짚는 손이 있었다. 서연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며 고개를 돌렸다.
“누나?”
태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연을 보고 있었다. 태현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리면서 퍼졌다.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그제야 서연은 태현이 오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서연은 헤드셋을 벗었다. 백색소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미안. 뭐라고 했어?”
“그냥 사격 연습하고 있었냐고.”
태현이 미소 지어 보였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로 하나 흔들렸네.”
빗겨 나간 총알 자국을 보며 태현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러게….”
“누난 어릴 때부터 진짜 잘 쐈잖아. 나 밤에 누나 잘 때 누나 이마 만져보고 그랬잖아. 이마에 눈 하나 더 있는 줄 알고.”
“그랬어?”
태현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그녀가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해서 속상해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서연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이 새어 나갔다.
“오늘은 나도 누나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태현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서연이 사용하던 총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도전!”
태현이 도전을 외치고는 서연의 머리에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헤드셋을 하나 더 가져와 자신의 머리에 썼다.
탕!
다시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7점 구간을 뚫고 지나갔다. 태현은 개의치 않는 듯 바로 다시 다음 총알을 장전했다.
태현은 에스퍼였으나 전투에 적합한 능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서연과 함께 총을 배웠다.
태현의 아버지인 신경준 의원은 태현을 자극하기 위해 자주 둘을 비교하고는 했다. 서연을 칭찬함으로써 태현의 승부욕을 올리기 위함이었으나, 태현은 그런 것에 딱히 자극받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누나인 서연을 대단하다며 추켜올리기 바빴다.
서연은 그게 싫었다. 태현의 여유를 보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태현이 갑작스럽게 발현한 날, 고통에 몸부림치는 태현을 끌어안은 서연을 보고 신경준 의원은 서연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날 서연은 자신이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서연은 태현의 다정한 누나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다. 다행스럽게도 태현은 서연을 아주 잘 따랐다. 자신의 아비보다 더.
“역시 잘 안 되네.”
태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태현은 7점과 6점을 위주로 맞춘 과녁을 바라보았다. 서연은 그런 태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태현아.”
“응?”
“너 어릴 때 발현했을 때… 많이 아팠어?”
서연은 살고 싶어서 태현을 부둥켜안았다. 태현이 죽으면 자신도 죽으니까.
살아난 태현은 늘 서연과 함께였으니 발현 때와 같은 고통을 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서연은 태현이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건 왜 물어?”
“그냥.”
태현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 서연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연은 태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별로 생각이 안 나네. 너무 어릴 때니까.”
“…그렇구나.”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잊힐 법한 고통이었다는 걸까. 서연은 눈앞에서 날아가던 피투성이의 엄마와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면서 입술을 달싹이던 에스퍼를 떠올렸다.
태현이 두 손을 뻗어 서연의 뺨을 가볍게 잡았다.
“누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태현이 서연을 불렀다. 서연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서연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서연의 고개를 따라 태현의 손이 흔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