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긴급 상황. 발현자 신고 접수. 코드 레드. 즉시 출동 요함.
서연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전자시계에 진동이 울렸다. 서연은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시계의 화면을 터치해 출동 동의를 표했다.
보통 발현자 현장에는 2명이 조를 짜 출동하게 되지만 1분 안에 답이 없을 시 한 명만 가게 되기도 했다. 만약 1분 내로 동의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면 전담자들 중 한 명에게 강제 출동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서연은 1분이 너무 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알림음과 함께 비행 에스퍼가 매칭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서연은 빠르게 로비로 향했다.
“출동 맞으시죠?”
한 여자 에스퍼가 다가왔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서연의 허리춤에 로프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단숨에 날아올랐다.
서연은 숨을 들이켰다. 바람이 뺨을 때리는 것이 느껴졌다.
“첫 출동이에요?”
“네.”
“가이딩 뺏는 사람이 둘일 필요 없으니까 전 근처에 내려드리고 좀 떨어져 있을 거예요.”
“네, 알고 있어요.”
서연은 발아래의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작아진 도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한참을 날다가 저 앞에 모여 있는 작은 머리통들이 보이자 에스퍼는 고도를 낮췄다.
“어휴… 어떡하니.”
“출동한다더니 왜 이렇게 늦어?”
말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은 착지하자마자 로프를 풀고는 사람들을 제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히어로 센터에서 나왔습니다. 비켜주세요!”
사람들이 비켜섰다. 서연은 거의 고꾸라질 뻔하면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앞에 도착했다.
남자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누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미 폭주 상태에 진입했다. 그렇게 판단하자 서연은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언제부터 떨기 시작했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지?
서연은 남자의 몸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가이딩을 쏟아부었다.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려 서연의 손목을 붙들었다. 꽤나 억센 힘이었다. 서연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했다.
남자가 눈을 떴다. 핏발이 서서 빨간 눈이었다.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은 그것이 남자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서연아! 안 돼!”
“엄마, 안 돼….”
서연은 피가 잔뜩 묻은 엄마의 손을 기억했다. 그 손이 자신을 밀어내던 감각과 자신의 몸이 나동그라지던 것. 그리고 세상이 모두 끝나 버리는 순간을, 그리고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정리되어 버리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의 몸은 여전히 뒤틀리고 있었다. 가이딩이 엄청나게 빨려들어 가고 있는데도 폭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늦었나? 서연은 두려워졌다.
남자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서연의 손바닥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서연은 빠르게 손을 남자의 몸에서 떼어냈다. 남자의 손이 뿌리쳐졌다. 남자의 동공이 커졌다.
막을 수 없어. 서연은 판단을 내렸다. 이제 서연이 구해야 할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서연은 빠르게 몸을 일으키고 충격을 흡수해 주는 실드를 꺼내 설치했다. 버튼을 누르면 일정 구간에 원터치 텐트처럼 생성되는 실드 장막이었다. 투명한 막 너머에서 남자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서연이 속삭였다. 그리고 시스템을 조작해 실드를 검은색으로 변경했다. 시민들에게 이런 광경을 생중계할 수는 없었다.
서연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자신의 뒤쪽에 물러서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얼른 대피하세요! 이곳은 위험합니다!”
서연이 외치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서연은 두 팔을 벌려서 사람들 쪽으로 뛰어 사람들을 한꺼번에 밀었다.
“몇 초 남지 않았어요!”
서연의 말에 사람들이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저 앞에 서연과 함께 온 에스퍼가 보였다. 에스퍼는 상황을 파악한 건지 서연의 근처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으아앙!”
서연의 근처에서 넘어진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서연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부모일 법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서연은 아이를 안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조금 달리다 보니 사람들 사이를 역주행하며 우는 여자가 보였다. 서연은 그 여자에게 아이를 안겨주었다.
쿠궁!
서연의 등 뒤에서 작은 폭발음이 들렸다. 서연은 눈을 감았다. 구했어. 해냈어. 서연은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
지환은 아침 일찍 기상해 샤워를 했다. 그리고 검은 반팔 티에 검은색 트랙팬츠를 입었다. 민재를 찾으러 센터를 돌아다니려면 눈에 띄지 않는 위장색이 필요했다.
지환은 곧장 민재의 숙소로 향했다. 노크를 해보았으나 답이 없었다.
지환은 몸을 띄워 건물 밖으로 향했다. 한 바퀴를 빙 돌아 민재의 숙소 창문 앞으로 향했다.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지환은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정확히 보이진 않았으나 민재는 이미 나가고 없는 듯했다.
지금 시간은 민재가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렀다. 지환은 가이딩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역시나 가이딩실에서도 민재는 없었다. 로비의 가이드들에게 물어보고 있자 근방에 있던 최우석 실장이 지환을 불렀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뇨, 없어요.”
지환은 민재가 우석에게 자신에 대해 무언가 이야길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자신은 피해서 다니는 민재 선배가 가이드실장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잘 만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화가 날 것 같았다.
“너 요즘 정신 빼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석이 말했다. 걱정하는 말투였다. 지환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최근에 민재 선배님 오셔서 가이딩 받으셨어요?”
“어. 어제.”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석은 지환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매일 온 건 아니고. 온 김에 너도 가이딩 좀 받고 가라.”
“괜찮습니다.”
우석이 들고 있던 차트로 지환의 손등을 내리쳤다. 아. 지환은 인상을 쓰며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노란색 경고등이 들어와 있었다.
“받고 가라면 받고 가.”
“…네.”
“하여간 요새 애들은 빠져 가지고.”
우석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지환은 아무 침대에나 걸터앉았다. 잠시 뒤 한 여자 가이드가 와서 지환의 손목을 짚고 가이딩을 시작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손을 타고 밀려들었다. 혈관을 타고 피가 도는 것처럼 에너지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지환은 민재가 자신에게 힐을 불어넣던 순간을 떠올렸다. 하얀 빛이, 서늘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날카로운 것 같으면서도 살랑거리는 감각이 자신의 안으로 퍼질 때의 감각. 그것을 떠올리자 지환의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지환은 손목의 경고등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초록불이 들어오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지환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가이딩실을 나섰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민재를 볼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지환이 찾고자 하면 쉽게 찾아지던 선배였는데, 무슨 수를 쓴 건지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지환은 요 며칠 센터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민재의 행방을 물어보고 다녔으나 아는 자가 없었다. 마치 여태까지 본인이 히어로 우민재와 다녔던 게 꿈이라는 듯이 민재는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감췄다.
민재는 지환을 피해 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환은 계속 생각했다.
며칠 전 악몽을 꾸는 민재 옆에서 잠든 것 때문인가? 그때 민재는 계속 작은 비명을 지르거나 웅얼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지환은 깨워보려다가 민재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민재가 좀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잠시만 있다가 나가려던 것이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그러나 민재는 평소 그런 것으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가설은 비행 연습 때 지환에게 있었던 일을 민재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지환은 더더욱 빨리 민재를 찾아야 했다. 찾아서 해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선배를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고? 아니면 선배도 알고 있냐고 물어봐야 하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나 지환은 답을 찾지 못했다. 최근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지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환은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민재가 없으면 다시 숙소로 가볼 셈이었다.
쾅!
큰 소리가 울렸다. 시뮬레이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패싸움을 하는 광경 속에 민재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얼굴이 보이는 순간 지환은 숨을 멈췄다. 우습게도 민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묘한 열감이 들끓기 시작했다.
민재에게 주먹을 날리던 인영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키가 큰 놈이 민재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민재는 놈의 어깨에 올라탄 다음 다리를 휘감아 단숨에 목을 꺾었다.
끝없이 발과 손이 민재에게 날아들었다. 일 대 다수로 붙는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민재는 강했다. 그것은 지환이 알고 있는 히어로 우민재의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였다면 지환은 이런 구경을 할 수 있음에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지환은 불안했다. 민재의 걸음 하나하나가 위태로워 보였다.
민재의 팔이 뒤로 확 꺾였다. 제압용이 아니라 팔을 망가뜨리기 위해 들어간 공격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민재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민재는 방금까지 꺾여 있던 팔을 들어 올려 상대의 목 근처 급소를 손날로 가격했다. 검은 인영이 쓰러졌다.
불을 삼킨 것처럼 눈알이 홧홧했다. 지환은 심장 부근이 뻐근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죽은 듯 누워 있던 민재를 볼 때와, 시위대 현장에서 썩은 계란을 뒤집어쓴 자신의 영웅을 보고 말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지환은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이 싫었다. 자신의 반경 내에서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지환은 저 사람으로 인해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맛보게 되었다.
그것은 동경이나 존경과는 분명히 달랐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으나 지환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것을 어떤 것이라고 칭해야 할지는 알았다.
지환은 훈련장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났으나 격투가 진행 중인 훈련장 안까지 들리지는 않은 듯했다.
지환은 민재에게 달려드는 검은 인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