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오늘도 민재는 현관을 나서자마자 오도카니 서 있는 지환을 발견했다. 왔냐. 민재의 심드렁한 인사에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지환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비행 기술을 가르쳐 주세요.”
여기가 무림이냐…? 더군다나 지환은 번지수도 잘못 찾아왔다. 비행은 민재의 전문이 아니었다.
“그건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지 않아?”
“아뇨, 선배님 맞아요. 저는 같이 나는 법에 익숙해지고 싶어요. 저번 같은 돌발 상황에도 더 잘 대비하고 싶고요.”
지환에게는 아무래도 격추 당시 일이 꽤 큰 충격이었던 듯싶었다. 민재는 지환의 진지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은정이한테도 전투 기술을 알려달라고 한 건가?
물론 지환의 비행 실력과 현장에서의 대처 능력이 좋아지는 건 민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민재는 지환의 열의가 걱정되었다. 정의를 쫓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지환 같은 타입의 인간들은 센터 내에서도 유독 쉽게 무너지곤 했다.
“어차피 선배님과 저는 계속 같이 활동할 거잖아요….”
민재가 아무 말이 없자 불안한지 지환이 말을 덧붙였다.
원래 민재는 지환과 계속해서 활동할 생각이 없었다. 센터장에 의해 혹 하나를 달게 된 꼴이었고, 민재는 그 혹을 빠르게 제거하고 싶었다.
민재는 지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지환을 팀에서 내보내려던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민재는 지환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훈련도 선배님이랑 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말도 맞았다. 신입이 이제 맞는 말도 할 줄 알게 되다니. 민재는 조금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흔쾌히 지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훈련 약속도 바로 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재는 첫 훈련 날 이 결정을 바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첫 훈련은 훈련장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지환과 민재는 작업복 차림으로 이른 아침 훈련장으로 향했다.
“일단은 도약과 착지를 위주로 연습하자. 나는 날 수가 없으니까 네가 나를 언제 들어 올릴지, 어디에 내려놓을지 판단하는 게 중요해. 알겠어?”
“어… 네….”
지환은 감이 잡히질 않는지 멍하게 대답했다.
“우선은 일단 해봐. 해야 감이 잡혀.”
레버 쪽으로 향하는 민재를 지환이 잡아당겼다. 지환의 손에는 고정 로프가 들려 있었다.
“…이걸 왜 들고 왔는데?”
“네? 착용 안 해요?”
“당연하지. 싸우는 현장에서 너랑 나랑 같이 수갑 차고 있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럼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허공에 떠 있는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요.”
무슨 이런 바보 같은 소리가 다 있지. 민재는 지환의 손에서 로프를 낚아채 훈련장 저 구석으로 던졌다.
“원래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민재는 훈련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레버를 당겼다. 몇 가지 장애물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불을 뿜는 익룡이 등장했다. 첫날부터 총이나 폭탄이 등장하면 너무 긴장할까 싶어 일부러 비현실적인 걸로 게임 분위기를 내볼까 싶어 고른 것이었다.
“선배님???”
지환이 경악한 표정으로 민재를 쳐다보았다. 민재는 지환의 어깨에 팔을 올려 어깨동무를 했다.
“괜찮아, 저거 초급이야. 출발.”
익룡이 민재와 지환을 발견한 듯 방향을 고정한 채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왁! 지환은 민재를 공주님 안기로 안은 다음 빠르게 도약했다. 방금까지 둘이 서 있던 위치에 불길이 쏟아졌다. 민재는 앞쪽에 살짝 높이가 있는 원통형 장애물을 가리켰다.
“저리로 가봐.”
“어어, 선배님! 움직이지 마세요.”
민재가 안긴 상태에서 익룡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움직이자 지환이 민재를 세게 부둥켜안았다.
이 정도로는 놓치지 않는데 호들갑은. 민재는 지환의 목을 잡고 당겼다. 지환의 머리통이 시야를 가려 거슬렸다.
헙. 지환이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지환은 민재의 손에서 얼굴을 빼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아 뭐야. 민재의 시야가 흔들렸다.
그사이 지환이 원통형 장애물에 민재를 내려놓았다. 민재가 내려서자 지환이 두 팔을 어정쩡하게 띄운 채로 멀어졌다.
“…뭐 해?”
“어… 이제 뭘 하면….”
익룡이 다시 이쪽을 조준하는 게 보였다. 저 멀리서 불길이 쏘아졌다. 지환의 옆구리 쪽이었다. 민재는 지환의 팔을 잡고 휙 잡아당겼다.
지환의 등 뒤로 불길이 스쳤다. 그와 동시에 허리가 당겨졌던 지환은 튕기듯 몸을 뒤로 물렸다.
“야, 이 미친!”
불길이 아직 다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민재가 지환의 몸을 잡고 옆으로 틀었다. 둘은 비틀거렸다. 탱고 춤 추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민재는 몸의 균형을 다시 잡으며 욕지거리를 씹었다.
익룡은 초급이라 움직임이 단순했지만 그래도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야, 이 새끼야. 똑바로 안 해?!”
민재가 고함을 질렀다. 죄송합니다. 지환은 사과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익룡이 근처로 날아오고 있었다. 민재는 지환의 멱살을 잡고 장애물에서 뛰어내렸다.
“위로!”
민재의 허리를 끌어안은 지환이 위로 활강했다. 민재는 훈련장 반대편 구석을 가리켰다. 지환은 민재를 데리고 그리로 향했다.
“좀 이따가 쟤 이리로 다시 오면 아까 그 장애물로 가서 나 두고 아래쪽에서 위치 지키고 있어. 내가 이거 던지고 뛰어내리면 네가 받는 거로 하자.”
민재는 훈련용 전류 폭탄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지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선배님이 싸우신다고요?”
“그럼 네가 나 여기 두고 싸우다가 익룡이 이쪽으로 오면? 그럼 어떡할 건데.”
“저 위에 선배님 두고 가라면서요. 그건 뭐가 달라요.”
“그건 대기하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잡는 게 중요해, 지금?”
“그게 아니라.”
하. 민재의 귀에 지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한숨은 왜 지가 쉬어? 살짝 열이 받은 민재는 지환을 노려보았다.
지환은 그런 민재를 보더니 그의 허리춤을 잡고 날아올랐다. 익룡이 어느새 근방까지 날아와 있었다.
지환은 조금 전 장애물에 민재를 착지시켜 주고 다시 몸을 띄웠다.
“조심하세요.”
지환이 하강하다 말고 주의를 줬다. 저쪽에서 익룡이 날아오고 있었다. 민재는 닥치고 하강하라는 의미를 담아 빠르게 손짓했다.
지환의 몸이 낮아지고 시야가 트였다. 익룡과 마주하며 민재는 타이밍을 계산했다. 그리고 익룡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을 때, 민재는 점프하며 폭탄을 익룡의 입속으로 던져 넣었다.
제대로 폭탄이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앞을 보자 코앞에 지환이 있었다.
민재는 재빨리 팔과 다리를 벌려 지환을 안았다. 나무에 붙은 긴팔원숭이 같은 자세였다. 지환이 민재를 받아내느라 뒤쪽으로 좀 밀렸다.
민재의 뒤쪽에서 작은 폭발음이 일었다. 익룡이 저쪽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보였다. 민재는 왠지 조금 후련한 기분이 되었다.
“야, 이거 공중에서 싸우니까 좀 재밌다.”
“…네, 그렇네요.”
민재가 고개를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어딘가 살짝 경직된 지환의 얼굴을 발견했다.
뭐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민재는 이상한 이물감을 느꼈다. 왼쪽 허벅지 안쪽에 닿는 무언가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민재는 그제야 지환과 자신이 꽤 이상한 자세로 매우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친. 정지된 민재의 사고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띠링!
미션 성공을 알림과 동시에 훈련장이 밝아졌다. 지환과 민재는 삐걱거리며 착지했다.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민재는 계속 되뇌며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뒤로 물렸다. 지환의 몸 상태를 눈치챘다는 걸 숨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 야, 고생했어. 오늘 훈련은 끝.”
“선배님. 그….”
“나중에 보자~”
지환이 할 말이 있는 듯 민재를 불렀다. 민재는 급작스럽게 말을 끊은 다음 훈련장을 벗어났다. 미치겠네. 민재는 중얼거리며 빠르게 복도를 벗어났다.
***
서연은 오랜만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평소 서연은 출장을 갈 때 비행 에스퍼와 동행하거나 센터 전용 차량을 탑승하고 다녔다. 그러나 본가에 불려가는 날이면 부러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다. 서연에겐 스스로가 현실에 발붙이고 있다는 확인이 필요했다.
“네가 왜 그곳에 있는지, 무슨 마음으로 네 발로 직접 거길 들어갔었는지 잊지 마라.”
서연은 얼마 전 태현과 자신의 아버지인 신 의원이 했던 경고를 떠올렸다. 서연은 까마귀 교주를 잡아내지 못했다. 신 의원은 서연이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닌지 의심을 했고, 그 진위를 가려내기 위해 서연을 호출한 것이었다.
지하철역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만은 서연이 기억하고 있던 과거와 똑같은 것이었다.
서연은 개찰구로 들어서면서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었던 일상에 대해 생각했다.
지친 얼굴로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마트에 들러 떨이로 판매하는 반찬을 사서 귀가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최근의 경제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직장에나 있을 법한 재수 없는 상사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취업이 어려워 포기하게 되더라도 이직을 고민할 것이다.
“히어로 센터는 살해를 인정하라!”
“내 아들의 죽음을 은폐한 히어로 센터를 타도하라!”
생각에 잠긴 서연의 옆쪽에서 중년의 여자가 소리쳤다. 중년 여자는 두 개의 하드보드지로 전단을 만들어 노끈으로 대강 연결한 뒤 목에 걸고 있었다. 꽤나 남루한 차림새였다.
여자는 쉰 목소리로 열심히 소리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단지를 받아서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거나 여자를 피해 지나갔다. 여자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떨어진 전단지를 다시 주워오기도 했다. 전단지에 아이의 사진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서연은 그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런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고, 언론이나 힘이 있는 곳에서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을 것이다.
저 여자는 지하철역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여자로 기억되고 말 것이다. 그마저도 기억에 남기나 하면 다행이었다.
힘과 지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서연은 가방에서 작은 명함 지갑을 꺼냈다. 낡고 해진 갈색 가죽의 지갑이었다. 명함을 한 장 꺼내 든 서연은 여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여자의 손에 들려 있는 전단지를 받아 들었다.
“참 예쁘게 생긴 아이네요.”
“네. 참 똑똑한 아이였어요…. 우리 아이가…!”
여자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듣는 이가 생기자 여자의 눈에 희망이 가득 찼다. 서연은 여자의 앞으로 명함을 들이밀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질 않잖아요.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을 알아요.”
여자의 눈이 흔들렸다. 서연은 여자의 손에 명함을 쥐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