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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60)화 (6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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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 손목에 불빛 보이죠? 지금 무슨 색이에요?”

“초록색이요!”

“좋아요. 지금 상태가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호등 알죠? 그거랑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현장에서는 내가 내 몸을 잘 지켜야 되니까 손목의 경고등을 잘 확인하는 거예요!”

민재는 밝은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호영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 민재는 호영에게 특강 내용을 준비해 보라고 제안했다. 자신과 지환 두 명에게 집중되는 이목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아이들을 잘 관리하는 센터 이미지를 챙기라는 게 원래 센터장의 목적이었으니 제1팀을 부각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호영은 현장에서 내 몸 지키기, 안전 수칙 같은 어느 정도 귀여우면서 유용한 내용을 찾아 준비해 왔다. 어린 동생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다루는 데 능숙해 보였다.

아이들은 딴짓을 하다가도 금세 호영의 말에 집중했다. 호영의 말이 끝날 때마다 기자들이 포진해 있는 뒤쪽에서부터 셔터음이 터졌다.

은정은 의자 뒤쪽으로 몸을 기대듯이 하고는 불량스러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민재가 은정의 의자를 발로 툭 치자 인상을 쓴 은정이 몸을 바로 하고 앉았다.

“저는 뭘 하면 돼요…?”

민재 옆에 앉은 지환이 물었다.

“이따가 애들이랑 놀아줘.”

민재가 말하자 지환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아이들과 호영을 바라보았다.

“선배님도 여기 다녔어요?”

지환이 기자들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민재는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교실은 사진 촬영을 대비해 평소보다 좀 더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민재는 ‘다녔다’고 표현할 만큼 이 교실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일반적인 학교와 비슷하게 수업을 하기도 했지만, 에스퍼는 어릴 때부터 에스퍼로 길러졌다. 민재에겐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런 셈이지.”

“어릴 때 선배님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별게 다.”

지환은 민재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입을 비죽였다. 호영의 수업이 마무리되자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호영이 들어와서 앉고 난 뒤 민재가 교단으로 나가 섰다.

“이번에 구조된 아이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나요?”

“이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되나요?”

“아이들의 상태는요? 능력에 영향이 있나요?”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 관한 정보를 콕 집은 말들이었다. 애초에 관심사가 그리로 몰려 있을 테니 예상은 한 부분이었다.

은정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기자들을 노려보았다. 더 두면 터지겠네. 민재는 은정이 나서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센터장님께서는 늘 좋은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고 계세요. 여기 오신 김에 한번 둘러보실래요?”

민재의 말에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센터에 출입을 허가받은 기자는 총 8명 정도였다. 들어오기만 해도 나름 특종인데 내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지 재보는 모양이었다.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촬영도 가능합니다.”

기자들은 민재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

제1팀과 기자들은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 안에는 벽면에 꽤나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기자들은 구멍 안쪽을 들여다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민재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공을 집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눌러 우그러뜨렸다.

“이 공들은 전부 특수 고무로 만들어진 공입니다. 벽이나 바닥에 어느 정도 속도로 부딪히면 튕겨 나오지만 사람의 몸에 심한 충격을 가할 정도로 탄력을 가지진 않았어요.”

민재는 기자들을 훈련장 내 안전선 뒤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훈련 시작 레버를 잡아당겼다.

탕!

총성이 들리자 기자들은 일시에 몸을 움츠렸다. 벽에 있는 구멍들 중 한 곳에서 공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공은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튀어 올랐다.

잠시 뒤 또다시 총성이 들려왔다. 훈련장 안으로 공들이 하나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굉장하네요.”

“현장에서 던져지는 것들은 우리가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요. 빨리 움직이는 법을 터득하는 게 아이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생존율이 올라가거든요.”

민재의 말에 기자들의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졌다.

“테러로 인해 동료를 잃는 일이 많나요?”

“…없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할 뿐이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민재는 얼마 전 수많은 사람 앞에서 격추를 당했던 에스퍼였다. 기자들은 섣불리 다른 질문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기자들 중 한 명이 인사를 했고, 민재는 미소 지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러면 추가 질문을 하기 애매해지겠지. 예상대로 기자들은 눈치만 살폈다. 감정에 기대어 호소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질문을 더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민재는 만족했다.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민재는 기자들을 바깥으로 안내했다.

***

지환은 침대에 누워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낮의 일이 생각나 잠이 오지 않았다.

민재를 비롯한 선배들이 어릴 때 생활했던 공간을 볼 수 있다는 작은 기대감은 빠르게 사라졌다. 지환이 생각했던 학교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지환은 눈앞에서 빠르게 지나가던 공을 떠올렸다. 지환은 그 순간 공의 움직임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그와 달리 민재와 호영, 은정은 그곳이 익숙해 보였다. 그런 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지환은 외부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지환을 그렇게 취급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생존율.’

지환은 현장에서 그 말을 별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생존율은 시민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전 지환은 히어로의 생존율에 대해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도 몇 있었다.

따져보자면 지환은 생존율이 높은 팀원은 아니었다. 오늘 훈련장에서 쏟아지던 것들이 공이 아니라 총알이었다면 지환은 몇 분을 버텼을지 알 수 없었다.

지환은 자신 쪽으로 총구가 겨눠지고, 민재가 손으로 틀어막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손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치료하기도 전에 목숨을 앗아가는 곳이 노려지면?

지환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명치 안쪽이 답답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민재를 안고 허공을 날았던, 영겁 같았던 시간이 지환의 머릿속을 스쳤다.

지환은 몸을 완전히 일으키고는 숙소를 벗어났다. 훈련장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시간을 좀 때우고 싶었다. 지환은 고요한 새벽 어두운 길을 걸어 훈련장으로 향했다.

쾅!

훈련장에 가까이 왔을 때였다.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지? 지환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몸을 띄워 훈련장 건물 바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다.

쾅!

다시 한번 큰 소리가 울렸다. 훈련장 안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훈련하는 사람들이 또 있구나. 지환은 조금 머쓱해진 기분으로 훈련장에 들어섰다.

커다란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무슨 훈련이지? 궁금해진 지환은 소리가 들리는 훈련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복도를 따라 걷는 지환의 눈에 타오르는 불길이 비쳤다. 이글거리는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그라들었다. 지환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작게 난 창 안쪽은 불바다였다. 곳곳에 불이 붙어 있어서 내부의 구조가 잘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이따금 바닥에 총탄이나 뾰족한 화살촉 비슷한 것이 내리꽂히는 게 보였다.

누가 있지? 지환은 눈을 찌푸리며 연기 사이에 나타나는 인영이 있는지 살폈다.

쾅!

훈련장 중앙부쯤 되는 곳에서 작은 폭탄이 터졌다. 훈련용치고는 꽤 위력이 있는 편이라 지환의 코앞에 있는 유리창이 흔들거렸다.

“으아앙!”

안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포대기에 싸인 인형 몇 개가 바닥에서 나타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

지환이 보고 있는 창 근처에 포대기가 생겼다. 그리고 지환은 앞쪽 연기 사이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보았다. 폭탄이다. 포대기에 싸인 인형 쪽으로 겨냥된 것 같았다.

지환의 시야 안으로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그 뒤로 빨간 레이저 불빛이 따라붙었다.

그는 저격의 위험성을 감지한 것인지 몸을 빠르게 틀어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몸을 날려 아이를 끌어안고는 굴렀다.

쾅!

폭탄이 조금 늦게 떨어졌다.

헉.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충격의 여파가 있었던 건지 훈련 중인 에스퍼는 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왜 알림음이 안 울리지? 아이를 구했는데 미션 완료 문구가 뜨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구조가 미션 완료 조건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에스퍼는 인형을 실제 아기를 다루듯이 안아 들고 훈련장 구석에 눕혔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두려워하는 여성을 총으로 겨누고 있는 남성의 형상이 나타났다. 훈련장 바닥에 빨간 불빛들이 몰려다녔다. 그 불빛에 의해 에스퍼의 옆얼굴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민재 선배? 지환은 창문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붙었다. 불빛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옆얼굴은 확실히 민재의 것이었다.

그때, 민재의 뒤쪽에서 총을 겨누는 형상이 더 생겨났다. 총 3명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레이저 총이 여러 군데서 동시에 발사되었다. 레이저 불빛 몇 개가 민재의 어깨를 뚫고 뻗어 나갔다.

“선배님!”

놀란 지환이 소리쳤다. 그러나 총성과 폭발음에 지환의 목소리가 묻혔다.

민재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남성의 팔의 관절을 내리친 다음, 여성을 향하고 있던 총구를 남성의 얼굴 쪽으로 향하게 꺾었다. 그리고 빠르게 옆으로 쓰러지는 여성을 받아냈다. 총알이 어딘가 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띠링!

미션 완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민재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지환은 민재의 팔을 타고 흐르는 피를 발견했다. 옷 옆구리 쪽도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시뮬레이터에 사용되는 총은 실제 탄환과는 달리 레이저로 만들어진 전기총이었다. 맞는다고 생명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기로 만들어진 총알은 작은 불꽃과도 같았다. 맞으면 상처가 생긴다. 지환도 저 총알을 맞아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피부가 꿰뚫리는 고통을 알고 있었다.

지환은 학교에서 인질로 잡힌 자신을 구하기 위해 총구를 손으로 잡아 꺾었던 민재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의 민재는 그때와 같이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늘 이런 방식이었나?

훈련장 안이 밝아졌다.

민재는 훈련장 구석에서 대걸레를 꺼내 들고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피를 대강 닦아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지환은 기척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날아올라 복도를 벗어났다. 지금은 선배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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