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민재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지환을 끌고 센터장실을 나왔다. 나오지 않고 버티려 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환은 순순히 민재를 따라 나왔다.
“정말 특강할 거예요?”
복도를 돌아 나갈 때쯤 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민재를 붙잡고 물었다. 센터장이 저렇게 나온 이상 특강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 사항은 없었다.
지환의 숨이 거칠었다. 어지간히 열 받은 모양이었다. 조금 의외의 반응이었다.
지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센터장에게 분노를 표출할 만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센터장의 끄나풀이 아닌 건 알겠으나 눈치가 워낙 없는 데다 센터의 물정도 영 모르는 놈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특강이라는 말에 반색하며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열이 올라 입을 여는 것을 데리고 나와야 했다는 사실이 민재는 좀 새로웠다. 한편으로는 좀 재미있기도 했다.
“…왜 웃으세요?”
정작 지환은 심각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웃는 건지 모르겠다는 심리가 다분히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지환은 미간을 찌푸리고 쳐다보다가 손을 올려 민재의 이마를 짚었다. 지환이 자신을 돌아버린 놈 취급하는 것에 어이를 살짝 상실해 버린 민재는 지환의 손을 떼어냈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랬는데 왜 뻥긋했냐.”
“어… 근데 그건 진짜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억울하다는 듯 무언가 말하려던 지환은 민재의 눈치를 슬쩍 살피다가 입을 다물었다.
“…원래 저래요? 센터장실에 들어가면?”
지환이 물었다.
원래 저렇게 좆같냐고? 그건 당연한 소리였으나 어쩐지 그렇다고 답하면 지환이 센터장실 문을 열어젖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재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러고는 구겨진 지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어차피 하게 된 거면 애들한테 정말 도움 되게끔 하면 되지.”
아. 신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이 지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민재는 센터장이 원하는 대로 맞춰서 움직여 줄 생각은 없었다.
지환은 민재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마치 민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너 졸업하더니 눈치가 꽤 늘었다?”
“…네?”
지환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저 지금 눈치 없다고….”
“오, 진짜 늘었네.”
민재는 한술 더 떴다. 칭찬을 해주듯 지환의 머리를 헝클자 지환의 얼굴이 구겨졌다.
민재는 약을 올리는 듯한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그러자 지환은 갑자기 고개를 홱 숙였다.
뭐야, 열 받았나? 생각하는데 지환이 머리로 민재의 손을 살짝 밀었다.
“…좀 는 것도 같아요.”
이런 데는 눈치가 아직 한참 먼 것 같은데. 졸지에 칭찬을 해준 게 되어버렸다.
지환은 칭찬을 받은 게 정말 좋은 건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강아지가 헤벌쭉 웃는 사진 같았다.
진짜 이 멍청이를 어떻게 하냐. 민재는 지환의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지환은 잠자코 그 손길을 받고 있었다. 민재는 지환의 표정에 어울릴 법한 까치집을 지어주고는 손을 뗐다.
***
“너… 머리채 뜯겼어?”
급식실에서 지환을 기다리고 있던 태현은 그의 머리를 보고 기겁했다.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머리카락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거울도 안 보는지 그대로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그냥 도망가 버릴까 태현은 고민했었다.
머리? 지환은 태현의 말에 의아한 듯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실실 웃었다. 웃기냐. 태현은 머리를 정리해 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지환은 꽤 빠른 속도로 상체를 뒤로 물렸다.
태현은 머쓱해진 손을 허공에 띄운 채로 황당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내가 할게.”
지환은 머리를 대강 쓸어 넘겼다. 조금 전보단 나아진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묘하게 히죽거리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뭐가 있나? 지환이 요새 민재 실장한테 딱 붙어 다니느라 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지환은 어딘가 좀 이상한 것도 같았다. 우선 자꾸 대화 도중에 허공을 보면서 멍하니 있는 것이 그랬다. 그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을 해대기도 했다.
“형, 혹시 센터장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센터장?”
뭘 듣고 온 거지? 태현은 에스퍼 실장이 지환에게 어떤 바람을 불어넣은 건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보던 뉴스에서는 센터장이 에스퍼를 위하는 사람 같았는데… 선배님한테 하는 거 보니까 너무 열이 받아서….”
“…뭐라고 했는데?”
이건 중요한 정보였다. 태현은 집중했다.
“…까마귀 문제에 선배님 책임 어쩌구 하면서 몰아가는 거야! 그게 말이 되냐고.”
“그 우민재 실장은 뭐라고 안 하디?”
“뭐라고는 내가 하려다가 선배님한테 혼났어.”
우민재가 센터장에게는 대들지 못한다는 건가. 그럼 복종하는 쪽? 아니면 약점을 잡힌 쪽? 태현은 센터장과 우민재 실장 사이에 뭐가 있을지 가늠해 보았다.
“선배님 아니었으면 그렇게 많이 구조하지도 못했어. 까마귀 본거지에서 예언을 찾아낸 것도 선배님이란 말이야.”
“예언?”
“어. 전단지 보고 바로 딱 알아차리고 지시 내리는 거 진짜 멋있었어.”
태현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미리 정보를 알아둔 게 아니라면 전단지만 보고 그렇게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민재 실장이 까마귀 쪽 끄나풀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뒤로 감추고 있는 게 뭘까. 심각한 태현의 마음과는 반대로 열을 내고 있던 지환의 얼굴은 다시 풀어졌다. 아까부터 우민재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얼굴이 풀어진다.
단단히 낚였네. 불쌍한 새끼. 태현은 한숨을 삼켰다.
“…센터장이 다른 말은 없었어? 실장만 부르면 되는데 너까지 부른 거면 뭔가-”
“센터장실에 갔었다고? 민재 선배님이랑?”
센터장이 가진 속내를 좀 알아낼 수 있으려나 싶어 질문하려는데 옆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어느새 옆자리에 와 앉아 있는 호영을 보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불청객의 난입에 불쾌해졌다.
“아… 네. 갑자기 불려가서요.”
“뭐라고 하셨는데?”
“에스퍼 학교에 가서 애들한테 특강해 주라고 하셨어요.”
지환은 센터장에 대한 욕은 빼놓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갈수록 눈치가 느네. 태현은 내심 안도했다.
“…허.”
호영은 꽤나 날 선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환이 당황한 듯 눈을 끔벅였다.
“왜….”
호영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러나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예상이 갔다. 입을 다물고 식판을 노려보던 호영은 밥도 먹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미안. 먼저 일어날게.”
호영은 식판을 정리하고 빠르게 식당을 벗어났다. 허, 찌질한 새끼. 태현의 입에서도 헛웃음이 새어 나갔다.
***
민재는 센터 뒷길을 걷고 있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조 박사에게 가는 길이었다.
센터 내부에서 가이딩 약품이 새어 나갔고, 까마귀 쪽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 박사는 뭐든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흥미를 가지게끔 구슬려 뭔가 얻어낼 수도 있었다.
좆같은 면상을 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민재는 수통을 꺼내 보드카를 들이켰다. 그러다 자신이 걸어가는 방향 쪽에서 달려 나가는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검정 가방을 끌어안고 있는 게 영락없는 좀도둑 모양새였다.
센터 내부인이 아니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민재는 대각선 방향으로 멀어지는 남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둥거리는 것 같았던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척이 들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요란스럽게 쫓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민재는 남자를 잡는 걸 포기하고 그가 가는 방향을 확인했다. 남자는 센터 후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민재는 빠르게 몸을 돌려 조 박사의 실험실로 향했다.
“어, 왔어?”
올 줄 알았다는 듯 조 박사가 태연하게 민재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민재는 의자를 끌어다 조 박사 근처에 앉았다.
“손님 왔었어요?”
“손님? 센터장 요새 여기 잘 안 와. 왜?”
“근처에서 누가 나오는 게 보이길래.”
“그래? 그냥 길 잃은 건가 보지. 어차피 이 안엔 못 들어와.”
조 박사는 태연하게 고글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코를 문질렀다. 심드렁한 태도였다. 표정을 읽기가 힘들어졌다. 민재는 다른 방식으로 떠보기로 했다.
“박사님, 내가 좀 재밌는 걸 찾았는데.”
“재밌는 거?”
박사는 고글을 닦아 다시 썼다.
“얼마 전에 까마귀 쪽에 잠입했다가 내가 가이딩 약을 발견했거든요.”
민재의 말에 박사는 글라스 안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다 민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박사님, 요즘 돈이 좀 궁했나 싶어서. 센터장이 잘 안 챙겨줘요?”
조 박사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센 편이었다. 거기다 에스퍼와 가이드 관련 물품을 개발할 수 있는 자가 전 세계에 자신밖에 없다는 가정을 하고, 그것을 삶의 이유로 삼는 놈이었다.
그래서 뒷방에서 또라이 짓이나 하고 있으면서 뒷방 늙은이 취급당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민재의 도발에 조 박사의 윗입술이 씰룩였다.
“내가 그걸 왜 팔겠어. 민재 군 아직 날 너무 모르네. 난 돈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요? 그럼 더 재밌네. 장비도 제대로 없는 것들이 무슨 수로 가이딩 약을 개발했지?”
조 박사가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의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게.”
조 박사가 중얼거렸다.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일단 뭐가 있긴 있다. 민재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 거 있죠.”
“글쎄다. 나야 오래 연구를 했으니 뭣도 모르진 않지만….”
조 박사가 말을 돌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진열장에서 서류철을 꺼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민재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듯했다.
“뭘 조합해 본 거지? 유사한 화학 반응이라도 찾았나….”
“…….”
“약 가진 거 없어? 주면 성분분석 해줄게.”
씨발. 민재가 욕을 짓씹었다. 조 박사의 눈이 탐구열로 번뜩이고 있었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민재는 조 박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조 박사가 혀를 찼다.
“없구나. 아니 재밌는 거 찾았다면서 정작 약은 못 챙겼어, 왜.”
“…미안하게 됐네요.”
민재의 성의 없는 사과에 조 박사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유리관 안에 몇 개의 액체들을 넣고 섞기 시작했다.
“새로운 약 조합을 찾으면 민재 군한테 제일 먼저 알려줄게.”
민재는 조 박사가 어떤 약을 만드는 걸 즐기는지 알고 있었다. 죄다 알고 싶지 않은 용도였다.
“괜찮아요.”
“아니. 필요할걸?”
민재의 거절에 조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씩 웃는 얼굴로 민재를 바라보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소름이 끼치는 감각이 올라왔다. 뭐야 씨발. 기분이 더러워진 민재는 더 지체하지 않고 실험실을 나섰다.
또 봐. 느물거리는 목소리의 인사가 뒤통수로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