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민재는 지환을 향해 손을 뻗어서 내놓으라는 시늉을 했다. 신용카드로 사용 가능한 에스퍼증은 있었으나 외진 곳에서 에스퍼증으로 결제를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에스퍼증에는 민재 본인의 사진도 박혀 있으니 조용한 동네에 큰일이 벌어진 줄 알고 사람들을 당황시킬 수도 있는 문제였다.
더군다나 일이 터지면 벽돌을 만들어서 던지거나 버려야 하는 게 핸드폰이었기 때문에 민재는 폰뱅킹도 사용하지 않았다.
지환은 옷을 뒤지다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그거면 되겠네. 민재는 지환을 이끌고 바닷가에 있는 슈퍼 겸 편의점으로 향했다.
민재와 지환은 컵라면과 핫바, 땅콩 과자, 그리고 맥주를 샀다. 그래 봤자 이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편의점 앞에는 접이식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둘은 자리를 잡고 앉아 라면을 먹었다.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민재는 과자 봉지를 뜯고 맥주를 마셨다.
“넌 원래는 여기 와서 뭐 하고 싶었는데?”
민재가 물었다.
“어… 원래는 카페 갔다가 바닷가 산책도 하고, 파도에 발도 담그고….”
“…그건 보통 낮에 많이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요.”
지환은 멋쩍은 듯 웃더니 젓가락으로 라면을 저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준비한 여행인데 카페가 문을 닫아서 좀 실망한 것 같았다.
민재는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편의점의 불빛이 바다 쪽으로 번져서 어둠 속에서 파도가 치는 것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몇 없어 철썩이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보통 사람들은 밤바다에 오면 뭘 하지. 생각하던 민재의 눈에 편의점 입구 쪽 매대에 잔뜩 쌓여 있는 불꽃놀이 용품이 들어왔다.
“폭죽이나 터뜨릴까.”
“폭죽이 있어요?”
지환의 눈 크기가 커졌다. 민재는 턱으로 불꽃놀이 용품을 가리켰다.
“해본 적 있어?”
“아뇨.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만 봤어요.”
지환은 눈을 빛내며 불꽃놀이를 하자고 했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남은 돈을 거의 다 썼다. 긴 대롱 끝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과 막대 끝에 불을 붙이는 것을 섞어서 구매했다.
모래사장으로 들어서자 주위가 더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환이 민재의 손을 가볍게 잡고 끌어당겼다.
“여기면 될까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풍경을 조금씩 알아볼 수 있었다. 파도가 치는 곳 바로 앞쪽에서 지환은 걸음을 멈췄다.
“우리 혹시 모르니까 물 근처에서 해요.”
지환은 미사일이라고 적힌 발포형 폭죽부터 꺼내 들었다. 민재가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이려고 했으나 바람이 강해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지환은 입고 온 재킷을 펼쳐 바람을 막았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민재가 다시 라이터를 켰다. 민재 바로 옆에 바싹 붙어 선 지환의 얼굴이 라이터 불빛에 환해졌다.
뭐 이렇게 가까이 붙어. 기분이 좀 이상해진 민재는 빠르게 폭죽에 불을 붙이고는 라이터를 껐다. 그러자 지환이 민재의 손 위에 손을 겹쳐 잡으며 폭죽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야, 네 거도 붙여.”
“바람이 불어서 하나씩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위험해요.”
지환과 민재의 팔이 겹쳐지듯 붙었다. 민재의 등 쪽에 지환의 어깨가 닿았다.
좀 옆으로 가라고 하려는 찰나, 민재의 손아래 쪽에서 뭔가 튕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피융-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짧은 직선으로 치솟던 불꽃은 펑 소리를 내며 터져서 쏟아져 내렸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그맣고 별 볼 일 없는 크기였다. 그래도 손아래에서 퉁 하고 튀어 나간 불꽃이 터져서 밤하늘을 밝히는 찰나를 구경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꽤 즐거웠다.
첫 번째 폭죽 미사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별거 아닌데도 민재와 지환은 계속 불을 붙이고 폭죽을 쏘아 올렸다. 그러고는 스파클러라 쓰인 폭죽을 집어 들었다.
지환은 막대기 하나에 불을 붙여 민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다른 막대를 민재의 막대에 가져다 댔다. 불꽃이 이리저리 튀며 옮겨붙었다.
두 사람은 불이 꺼지면 다시 붙여서 불꽃을 구경했다. 지환은 막대를 휘적거리면서 원을 그리거나 선을 그렸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폭죽은 정말 꽃 같기도 했고, 촛불 같기도 했다. 민재는 그것을 보다가 남은 막대들을 모아 모래사장에 꽂았다. 그러고는 모래를 끌어다가 작은 둔덕을 만들어 고정시켰다.
야, 줘봐. 민재는 지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환은 라이터를 건네며 민재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았다.
민재는 남은 막대에 한꺼번에 불을 붙였다. 꽤 괜찮은 초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민재는 고개를 들었다.
“야.”
“네?”
“보통 졸업 여행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졸업 축하해.”
“어….”
어찌 되었든 본인이 가고 싶었던 졸업 여행이라고 했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지환은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다.
민재는 옆을 돌아보았다. 지환이 얼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좀 오버한 건가. 민재는 민망해졌다.
“…감사해요, 선배. 최고의 졸업 여행이에요.”
치직, 하는 소리를 내며 불꽃이 꺼졌다. 지환이 속삭이듯 말했다.
불꽃이 꺼져도 그렇게 많이 어둡지 않았다. 푸르스름하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지환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게 잘 보였다. 조금 전보다 더 민망해진 민재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날도 밝았으니까 돌아가자.”
***
민재와 지환은 센터로 복귀하자마자 센터장실로 호출을 당했다. 무슨 일인지 센터장은 윤 비서를 통해 지금 당장 와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꼭 지금이요? 이따 오후에….”
[센터장님이 오후에 따로 일정이 있으셔서요. 지금은 많이 곤란하신가요?]
그렇게 말하는 윤 비서의 목소리에는 곤란함이 가득 차 있었다.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박지환 에스퍼님도 꼭 같이 오라고 하셨어요.]
“…네, 알겠습니다.”
가겠다고 하자 윤 비서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다.
이래서 윤 비서 통해서 오라고 시켰군. 개인적으로 박지환을 데려오라고 하면 안 달고 갔을 것이다.
무슨 꿍꿍이가 생겨서 같이 오라는 거지. 민재는 심란한 마음으로 지환을 쳐다보았다. 지환은 민재의 심각한 얼굴에 덩달아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센터장실 호출 왔어.”
“아, 피곤하실 텐데…. 지금 가야 돼요?”
지환이 물었다.
“어, 그리고 너도 같이 가.”
“…저요?”
지환은 당황한 듯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장실에 들어가서 네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야. 가만히 있는 거. 절대 먼저 입 열지 말고 뭐라 말해도 함부로 대답하지 마. 알겠어?”
“네.”
지환은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면 안 되냐는 질문도 없었다. 너무 깔끔하게 대답해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민재와 지환은 센터장실 앞으로 들어섰다. 윤 비서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둘을 맞이했다.
“오셨네요. 센터장님한테 오셨다고 말씀드릴게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윤 비서가 센터장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잠시 후 둘은 센터장실로 들어섰다.
센터장은 사람 좋은 척하는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다.
“우리 센터의 자랑인 두 에스퍼가 왔네요.”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요즘 민재 군과 지환 군 페어의 미담이 자자해요. 까마귀 소동에도 대처가 빨라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지 않습니까.”
“너무 과한 칭찬이신 것 같네요.”
미담이라니. 민재는 김진성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순간이 제일 불안했다.
“개중에는 민재 군의 후배로 장차 나라를 지킬 히어로들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있어요.”
감동받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나셨겠지. 민재는 속으로 이죽거렸다. 이어서 나올 말이 대충 예상이 갔다.
“내친김에 두 사람이 에스퍼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의지를 북돋는 시간을 좀 가지면 좋을 것 같은데. 센터의 좋은 교육 환경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킬 수도 있고.”
“안 합니다.”
그 말은 민재와 지환이 학교에 방문하는 날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 것이라는 의미였다. 민재는 바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박지환 군?”
센터장이 지환을 부르며 미소 지어 보였다. 민재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민재를 힐끔 쳐다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민재는 입을 열었다.
“지금은 센터에 소속되었어도 아직 상처가 큰 아이들이라 대중에 노출되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민재의 말에 센터장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지금은 동정여론이 거센지라. 오히려 부모에게 부정당했던 것을 치유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반대로 도마 위에 오르는 꼴이 될 수도 있죠.”
음. 센터장은 깍지를 낀 손을 책상 위로 올렸다.
“지환 군의 생각도 같나요?”
센터장이 다시 지환을 걸고넘어졌다. 지환은 다시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다 말았다.
“지환 군, 잘 생각해야 해요. 히어로는 몸을 움직여서만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에요. 안심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깁니다.”
“…네.”
“지금은 사람들이 둘의 미담에 집중하고 있어요.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센터장은 시선을 돌려 민재를 바라보았다.
“나는 걱정이 돼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능력이 좋다는 두 사람이 투입된 현장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니까요.”
개새끼. 민재는 이를 갈았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실책이었는지를 따지고 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센터장은 문제가 생기면 꼬리를 자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에스퍼는 해고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해고가 더 끔찍했다. 에스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에스퍼는 정식적인 ‘인간’으로서 사회에 속할 수가 없게 된다.
센터장은 그날 구조 업무를 하러 출동한 에스퍼들을 인질로 잡은 셈이었다. 그것은 센터장이 민재를 굴복시킬 때 언제나 쓰는 방법이었다.
“그건 너무한….”
“알겠습니다. 대신 아이들 노출을 최소화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전해두세요. 그래야 센터장님이 지켜야 하는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환이 하려는 말을 자르고 민재가 끼어들었다. 센터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쓰레기 새끼. 민재는 속으로 욕을 하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