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민재는 은정의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은정을 불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민재는 보안팀에서 가져온 마스터키를 꺼냈다. 실장직 권한을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민재는 묘한 씁쓸함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은정의 방은 어두웠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민재의 발에 무언가 차였다. 맥주 캔이었다. 방에는 쓰레기장처럼 술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깨진 유리와 자기 재질의 파편들로 보아하니 그릇이나 컵도 깬 모양이었다.
민재는 발로 그것들을 살짝 치워가며 안으로 들어섰다.
은정은 침대를 놔두고 침대 아래에 앉아서는 매트리스에 엎드려 있었다.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슬쩍 돌려 민재를 바라보고는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민재는 싱크대 선반에서 봉투를 찾아 바닥의 파편들을 주워 담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소형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했다.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옷들을 빨래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정적이 달그락거리는 일상적인 소음으로 채워졌다.
은정은 어느새 민재가 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빨갰다.
“다친 데는.”
민재가 물었다. 은정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잘했네. 민재는 천천히 은정에게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은정의 손목을 확인했다. 아직 양호한 편이었다.
하기야 은정이 능력을 사용해서 방을 부쉈다면 그릇만 깨지진 않았을 테니 다행이었다.
“내가 혹시나 해서 사망자 명단 다시 찾아봤는데, 어머님은 명단에 없으셨어.”
민재의 말에 은정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은정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알아.”
“…….”
“내가 다 찾아봤어. 그날도 호영이한테 업혀 날면서 끝없이 찾았어. 그렇게 한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닌데. 어디 있지, 하면서 찾다가 또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무섭고.”
“…그래.”
“웃기지, 선배. 찾으면 어쩔 건데. 안 찾아진다고 왜 무서운 건데.”
윽. 은정은 얻어맞는 걸 참는 듯한 신음을 냈다. 울음을 참는 것 같았다. 은정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켜 민재에게 내밀었다.
-엄마가 미안해.
구조 작업이 끝나갈 시간대에 도착한 문자였다.
“미안하대. 선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한테.”
은정의 목소리가 퍼석했다. 은정은 저 문자로 안도와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미워하면서 시간을 죽였을 것이다.
민재는 자신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모친을 만나게 된다면, 우연히 그녀를 구조하게 된다면, 하는 가정을 끝없이 반복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그녀를 죽였다가, 구했다가, 또 미친 듯이 찾았다. 그러다가 점차 포기해야 했다.
이제 그는 눈앞에서도 자신의 모친을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은정아, 울어.”
민재는 속삭이듯이 말하며 은정의 등을 쓸었다. 민재는 침대 아래로 몸을 내렸다. 은정이 민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비명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소리를 내며 은정이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싫어.”
“씁,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민재는 계속해서 자신이 싫다고 말하는 은정을 달랬다. 한동안 계속되던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을 때는 민재의 어깨가 완전히 축축해져 있었다.
민재는 근처에 있는 휴지를 끌어다 은정에게 건네주었다. 은정은 휴지를 받아 들고는 코를 풀었다.
“그리고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은정이 좋아해.”
“…….”
“아마 서연이도, 우석이도. 꽤 여럿이 그럴걸.”
“…미안해.”
은정이 시선을 내리깔고 사과했다.
“이제 꼬마에서 좀 벗어난 줄 알았더니 아직 애기네.”
민재의 너스레에 은정이 힘없는 웃음을 흘렸다.
“내일은 출근해.”
“응.”
“기죽어서 나오진 말고.”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그런 은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다음 날, 은정은 에스퍼 학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학관은 센터 뒤편에 별개의 구역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3개의 동으로 나뉘었다. 대략 초중고의 느낌으로 나눈 셈이었다.
오늘은 구조된 아이들이 에스퍼 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이 길도 오랜만이네. 은정은 자신이 과거에 오고 갔던 길이 좀 더 좁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학관 입구에는 제1팀이 모두 와 있었다. 서연도 함께였다.
“왔어?”
민재가 아무렇지 않은 듯 은정을 반겼다. 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이 자신을 잠시 빤히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꼭 와야 해!”
“그럼. 약속!”
한쪽에서는 지환과 호영이 아이들과 약속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학관에 자주 찾아오기로 약속하는 것 같았다.
곧이어 학관 직원이 밖으로 나와 아이들의 명단과 능력치, 그리고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민재는 아이들의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는 어떤 걸 가르쳐?”
은정의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서연이 물었다.
은정은 서연을 돌아보았다. 서연은 보이지 않는 내부를 꼼꼼히 살피는 것 같은 얼굴로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연도 꽤 늦게 가이드인 것이 발견되어 성인이 다 되어서 센터에 들어온 케이스였다.
“…사람을 구하는 법과 사람을 해하는 법을 가르쳐.”
은정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배울 것이다. 자신이 다치거나 죽어도 괜찮으니 사람을 우선하라는 가르침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투법도 배울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제압하고, 처리하는지를 몸에 새길 것이다. 그래도 저 아이들이 자신처럼 스스로를 미워하는 법까지 배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은정은 생각했다.
서연은 가만히 은정의 손을 잡았다. 은정과 서연은 같이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은정은 팀원들에게 사과했다.
“모두 바쁜 상황이었을 텐데 미안해.”
“아니에요, 선배님. 쉬실 때도 있어야죠. 별로 바쁜 거 없었어요.”
호영은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는 센터로 복귀했다. 민재는 은정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지환을 달고 사라졌다.
단둘이 남게 된 서연과 은정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잠시 망설이던 은정은 조심스럽게 서연과 잡고 있던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는 까마귀 신도였어.”
서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가라앉았다. 은정은 잠시 숨을 삼켰다.
“음, 엄마는 내가 에스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
은정은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서연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은정은 어쩐지 그것이 무서워졌다.
서연은 가이드다. 이런 이야길 들으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두려웠다.
“미안해. 내가….”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은정은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어디부터 사과해야 하지?
은정이 말을 고르는 사이 서연이 가까이 다가와 은정의 손을 잡았다. 잘게 떨리는 손이 서연의 힘에 의해 안정되었다.
“…말해줘서 고마워.”
서연은 은정을 가볍게 잡아당겨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서연이 자신을 두고 그냥 가버리고 다신 상대하지 않을지 모른다 각오했던 은정은 지금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다.
“…서연아?”
“다음부터는 그래도 연락은 받아줘.”
“…응, 미안.”
서연은 한참 동안이나 은정을 다독여 주었다. 키가 한참 작은 서연이 은정에게 기대어 있는 꼴이었으나 은정은 커다란 품에 안긴 것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
은정은 일정한 간격으로 등에 닿는 온기와 눈앞에서 옅은 바람에 흩날리는 서연의 머리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민재는 자신의 왼쪽 팔에 철썩 달라붙어서 걷는 지환을 노려보았다.
지환은 최근 복도를 걸을 때면 뭘 하려는 건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끼듯이 팔을 잡아댔다. 그에 짜증이 난 민재가 뿌리치자 이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무서운 게 있어 그러나 싶어서 적당히 넘어갔는데 점점 도가 지나쳤다.
지환은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는지 자꾸만 몸을 민재에게 기대어 왔다. 들러붙는 건 둘째 치고 무거워서 걷는 데 방해가 되었다. 복도 구석으로 몰려서 걷던 민재는 결국 폭발했다.
“야!”
“네???”
지환은 민재가 고함을 지르자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크게 떴다. 민재는 지환을 옆으로 밀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게 된 지환은 금세 울상을 지었다.
“너 대체 뭐 하자는 건데?”
“뭐가요…?”
“뭐가요? 장난하냐. 지금 복도가 이만큼인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냐고.”
민재는 머리를 헝클이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지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환장하겠네. 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 무슨 일 있어?”
“네?”
민재가 물었다. 지환은 되물으며 민재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그 와중에 주변을 흘끔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 그래도 복도에서 계속 애를 잡는 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 민재는 목소리를 좀 더 차분하게 낮추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고민되는 게 있으면 그냥 말을 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도울 테니까.”
민재의 말에 지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소문이요…. 이렇게 하면 그냥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소문? 민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를 따라다니는 소문은 워낙 많았다. 그중 어느 소문인지 생각하던 민재는 우석이 말했던 스캔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지금, 그 소문을 덮으려고 이렇게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고?
“뭐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
“네?”
“아니, 그냥 그런 건 가십 같은 거잖아. 아무렇게나 지껄이게 둬.”
“선배님 원래 소문 신경 쓰시는 분 아니었어요? 근데 그 소문은 왜….”
민재는 실장으로서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소문만 아니면 별로 상관없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센터장에게 불려가는 건 물론이요, 여럿의 안위가 박살 나니까.
그러나 하고 있지도 않은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 무슨 상상을 하든지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 건 나나 센터 안위와 관련 없잖아.”
하지만 그런 민재의 생각과 반대로 지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멋모르고 떠드는 말에 그렇게 신경 쓸 거 없어.”
민재의 말에 입을 꾹 다문 지환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쩌고 하면서 뭐라고 툴툴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애네. 민재는 지환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안 오면 두고 간다.”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한 지환 때문에 센터 말고 다른 곳에서 밥을 먹기로 한 참이었다. 최근 지환도 고생이 많았으니 한 번은 챙겨주자 하는 생각이었다.
민재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가요. 지환이 바로 옆으로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