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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52)화 (5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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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잇는 대교 난간 위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기다란 검은 천을 몸에 두른 채로 서로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늘어진 검은 천이 이어져 하나의 장막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핏 보면 연극이 끝난 뒤, 무대 위로 막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뭐 하는 짓이에요!”

“위험해요! 내려와요!”

대교 위에서 사람들이 차 경적을 울리거나 아예 내려서 소리치기도 했으나 난간 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다가가질 못했다.

민재와 지환은 대교가 잘 보이는 길가에 내려섰다. 까마귀 집단 특성상 에스퍼가 가까이 다가가면 자극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요.”

지환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민재도 묻고 싶은 말이었다. 난간 위에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같이 있었다. 길가를 지나가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하늘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흐르고 있는 물결에도 같은 색이 번졌다. 하늘과 강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을 때, 검은 천의 무리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황금의 시간이 왔다!”

인간을 위하여! 그들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은 검은 천을 펼친 채 일제히 뛰어내렸다. 마치 까마귀라도 된 것 같았다.

헉, 지환이 숨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몇몇은 핸드폰을 들고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민재는 펄럭이는 검은 날개를 노려보았다.

민재의 신호로 대교 근방에 도착해 대기하던 에스퍼들이 모두 바로 강으로 뛰어들었다. 해양경찰과 헬기도 투입되었다. 관광용 유람선을 끌고 와 구조를 돕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들부터 빠르게 구조가 진행되고 있었다. 민재는 허리춤에 착용하는 미니 튜브를 달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물속으로 들어갔다.

비장하게 뛰어들 때와 달리, 신도들은 계속 허우적거리다가 에스퍼나 경찰이 오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놔! 놓으라고!”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으세요.”

개중에는 구조하지 말라고 발버둥 치는 이들도 있었다.

한 남자가 민재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물속으로 내리눌렀다. 코와 입으로 물이 계속해서 들이찼다. 씨발. 민재는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숨을 들이켰다.

민재의 머리를 내리누르던 남자가 들어 올려졌다. 지환이 남자를 들쳐 업고 강가에 내려주는 게 보였다. 남자는 버둥거렸으나 공중에 몸이 들리자 두려운지 더 이상 격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민재는 헤엄쳐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냥 놔둬!”

“내버려 둬! 썩을 것들 콱 죽어버리라지!”

차에서 내려 대교 밖으로 소리치는 이들도 있었다. 민재는 허우적거리는 다른 남자의 두 팔을 뒤쪽으로 꺾어 잡은 다음 헤엄쳐 물가로 향했다. 옷이 젖어서 몸이 무거웠다.

남자는 계속 악을 쓰며 욕을 지껄였다. 민재는 남자의 팔을 잡은 그대로 구급대원에게 연행했다.

“놓으시라고요! 아오! 진짜.”

“안 돼! 우리 애를 왜 데려가! 얜 정화된 아이야. 너희처럼 더럽지 않아!”

“엄마….”

물가에선 후배 에스퍼들과 까마귀 신도들이 싸우고 있었다. 구조되었으면 에스퍼인 아이들은 센터 쪽으로 인계되어야 하는데 부모가 안 된다며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난장판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민재가 물었다.

“얜 이제 깨끗해요. 그냥 평범한 아이라고요. 데려가게 해줘!”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엄마! 아이가 다시 여자를 불렀다. 아이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듯했다.

“너 당장 내려오지 못해!”

“제가 데려갈게요, 선배님.”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저 멀리서 날아온 호영이 아이의 귀를 감싸며 안아 들었다.

호영은 민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아이들을 탑승시킬 차량으로 날아갔다. 여자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민재는 몸을 돌려 다시 강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구조해야 할 인원이 남아 있었다. 민재는 강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이고 사람들을 끌고 강가로 헤엄쳐 갔다.

하늘은 금빛에서 점점 붉은빛을 더하며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들이 말한 황금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검은 천들이 강 위를 둥둥 떠다녔다. 흐느적거리는 모양새가 꼭 망령들 같았다.

민재의 턱 아래에서 물이 넘실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민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놓친 건지 제대로 짐작이 가지 않았다. 분명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패였다. 교주가 이 판을 혼자 짜진 못했을 것이다. 뿌리가 어디로 뻗어 있을까. 민재는 자신이 찾아내려고 했던 존재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애초에 그걸 찾아내면? 이 모든 게 끝이 나긴 하나? 민재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선배님!”

지환이 날아와 민재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민재는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 축축하게 늘어진 작업복을 입은 지환을 바라보았다.

“…곤란하세요?”

지환이 물었다. 기자회견장에서처럼 냅다 들고 튈 요량인지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살피기까지 했다. 그렇게 티 나게 군다고? 민재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갔다.

“복귀해.”

민재가 지환의 손을 잡았다. 민재는 물에서 끌어 올려졌다.

***

[까마귀 신도들이 대교 위에서 ‘단체 자살 소동’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신의 전언을 받아 움직인다며 대교 위를 점령하고 시간에 맞춰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히어로 센터와 해양경찰 등 전문 인력이 투입되어 3시간의 구조 작업 끝에 대부분의 인원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약 6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까마귀 종교 신도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될지에 관해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까마귀 신도나 일반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에스퍼 아동학대에 관한 문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민재는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껐다. 며칠째 비슷한 내용의 뉴스만 반복되고 있었다.

정부 입장에선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지 애매할 터였다. 어쨌든 소동을 피운 건 거의 테러 수준이었으나 자신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자살을 강력 처벌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신도들은 교통을 방해해 도시를 마비시킨 것에 대한 벌금과 정신과 상담 권고를 선고받게 되었다.

여론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히어로 센터 에스퍼들이 구조 현장에서 사상자를 낸 것에 대한 평가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민재는 고민했다.

그날 이후 며칠이 흘렀으나 아직 센터장도 조용했다. 이러다 또 뒷북치면서 사람 돌게 만들려고 그러나. 골이 흔들리는 것 같은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다.

민재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보드카를 컵에 따라 들이켰다.

“선배님, 출근하셔야죠.”

지환이 밖에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민재는 터덜터덜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잘 잤어요?”

지환이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민재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날 이후로 잠을 거의 못 자고 있었다. 잠깐씩 잠에 들어도 악몽만 꿨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지환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거짓말.”

민재는 재촉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지환을 쳐다보았다. 지환은 못 미덥다는 듯 입을 비죽거렸다.

“뭐라고 했냐.”

“선배님, 오늘은 구조된 애들 능력 검사하는 데 얼굴 비추러 가셔야 해요.”

지환은 와다다 말을 뱉더니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석이 알려줬을 것이 다분히 보이는 일정이었다. 민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구조된 아이들은 모두 히어로 센터에 소속되었다. 제1팀은 구조된 에스퍼 아이들의 능력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인원 통솔을 맡았다.

능력검사실에 들어서자 서연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무언가 말할 게 있는 듯 민재를 계속 힐끔거렸다.

“왜? 말해.”

“혹시 최근에 은정이 만난 적 있으세요?”

은정이? 민재는 은정의 이름이 들리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왜?”

“좀 걱정돼서요. 그날 이후로 은정이가 방에서 안 나와요. 제 연락도 다 무시하고요.”

아. 민재는 눈을 깜박이고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머리가 계속 지끈거렸다.

민재는 얼마 전 회의 때 불안해 보이던 은정을 떠올렸다.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현장에서 혹시 모친이랑 마주치기라도 했나. 은정이한테 가봐야겠다. 민재는 생각했다.

“은정이랑 싸웠어?”

민재는 모르는 척 물었다.

“아뇨?”

서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은정이 제 가이드를 끔찍하게 여기는 건 센터 내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이 드물 터였다.

“내가 조만간 가서 혼낼게.”

“아뇨, 그게 아니라….”

“알겠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서연에게 민재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서연은 더 이상 은정에 관해 묻지 않았다. 민재는 검사를 진행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

민재는 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자 핸드폰이 꺼졌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무슨 일이 있네. 민재는 생각했다.

사망자 명단에는 은정이 부모 이름이 없었는데. 민재는 다시 한번 명단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정이 작정하고 틀어박혔을 땐 이유가 있을 테니 무작정 쳐들어가는 것보단 나았다.

아이들이 임시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민재는 옆에 서 있는 지환을 바라보았다.

“다음.”

“네?”

“이다음 뭐냐고. 없으면 넌 들어가 봐. 난 갈 데가….”

“있어요. 잠시만요.”

지환은 민재의 손목을 들어 올렸다. 가이딩 수치를 살피려는 것 같았다. 민재는 지환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 머리뿐만 아니라 눈도 욱신거렸다.

“어딘데.”

민재의 말에 지환이 앞서 걸었다. 민재는 바닥을 보며 걸었다.

지환은 민재를 숙소 현관 앞으로 안내했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사람 놀리나. 이 새끼가. 민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지환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 꺼내어 건넸다. 캔 음료였다.

“잠 잘 오게 하는 거래요. 몇 시간이라도 좀 자요.”

“아니, 다음 일정.”

“잠드는 게 힘드신 거면 제가 재워드릴까요?”

말이 통하질 않았다. 짜증이 치밀었다.

“야.”

“진짜 좀 자야 돼요, 선배님. 이러다 또….”

네가 뭘 알아. 민재는 퍼부으려던 말을 삼켰다. 지환의 얼굴이 창백해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던 탓이다.

“몇 시간만이라도 안 될까요. 원하는 시간 말씀해 주시면 깨우러 올게요.”

내가 자는 걸 본인이 저렇게 사정할 만한 일인가. 민재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산송장 꼴인가 싶어 조금 민망해졌다. 신입한테 배려받는 실장이라니, 꼴사나웠다. 민재는 자조하며 현관을 열었다.

“…너도 좀 쉬어.”

민재의 인사말에 지환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별걸 다. 민재는 현관을 닫았다. 좋은 꿈 꾸세요! 닫힌 현관을 넘어 지환의 인사말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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