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은정은 조그만 건물들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도로 위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얼굴이 보일 리 없었지만 은정은 계속해서 도로 위를 눈으로 좇았다. 그 사람들 속에서 엄마를 찾게 된다면 죽고 싶을 것 같았다. 은정은 불안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선배님 멀미 나세요?”
“아니, 괜찮아.”
호영의 물음에 얼른 대답한 은정은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업혀 있는 상태라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었다.
호영은 손목시계에 표시된 붉은 점을 확인하더니 넓은 운동장에 착지했다. 도심에서 꽤 많이 벗어난 곳에 있는 학교 건물이었다.
한두 군데 창문이 깨져 있었고 건물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폐교된 곳 같았다.
“이런 건물을 정말 잘도 찾네요.”
“…그러게.”
운동장 곳곳에는 잡초가 자라 있었다. 칠이 벗겨진 건물 외관은 해가 떠 있는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호영과 은정은 1층에 있는 큰 문 쪽으로 다가갔다. 원래는 쇠사슬과 자물쇠 같은 것으로 문을 단속해 왔던 것인지 쇠사슬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있나?”
은정과 호영은 눈을 마주쳤다. 잠시만요. 호영은 빠르게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러고는 밖으로 보이는 복도나 교실들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호영은 다시 은정 앞으로 내려왔다.
“지금 보이는 바로는 없어요.”
은정은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나 교실 안에는 간간이 쓰레기를 모아둔 것 같은 봉투나, 가스버너와 그릇 같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꽤 꼬질꼬질한 담요나 등이 배길 것 같은 소형 매트리스 토퍼 같은 것도 있었다. 여기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서랍들을 뒤져보았지만 쓸 만한 건 나오지 않았다. 학교라 그런지 사물함에서는 종종 누군가 버리고 간 것 같은 문제집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했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물건은 있으나 가방이나 옷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자신들이 나가면 우리가 이리로 올 걸 알았단 건가?”
“그렇게 정보력이 좋은 집단일까요?”
은정의 혼잣말에 호영이 대꾸했다. 신은 다 뜻이 있으신 거다. 은정은 엄마가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움직일까. 그런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로 확신을 받을 만한 무언가가 있었나?
챙그랑!
그릇이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은정은 빠르게 움직여 소리가 들린 위층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교실들을 모두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복도 맨 끝 교실에 들어섰을 때 은정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청소공구함 밖으로 흰 천이 삐져나와 있었다. 천은 얼룩덜룩 무언가 묻어 있어 청소공구함에 있을 법했지만 위치가 애매했다.
헙, 하는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은정은 공구함의 문을 열었다.
“잘못했어요….”
아이는 몸을 움츠린 채로 말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은정은 그대로 굳었다. 은정을 따라 들어온 호영이 다가왔다.
“헉, 얘 왜 이런 곳에….”
무심코 물어보려던 호영은 입을 다물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뻔했다.
“…부모님은? 어디 가신 건지 알아?”
은정이 물었다.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가야 된다고 해서….”
아이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너는 가고 싶지 않았어?”
은정이 물었다. 아이는 은정의 눈치를 살피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랑 갈래?”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이가 경계하듯이 물었다. 호영은 작업복 소매에 수놓은 하얀 날개 모양을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사람 구하는 사람이야.”
호영은 꽤나 능숙한 태도로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처음엔 무서워하는 듯하다가 계속해서 다정하게 대하는 호영에게 마음을 열었다.
호영에게 안긴 아이는 잠시 떨다가 많이 지쳤는지 잠들었다. 아이를 제외하고 다른 단서들을 발견하지 못한 은정과 호영은 학교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호영이 중얼거렸다. 그러다 은정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멋쩍은 듯 웃었다.
“동생들이 많이 어리다 보니까.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짓에 동의하는 부모들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애 깨겠다.”
혼자 화를 내던 호영은 은정의 말에 아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은정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공간에서 아이가 숙식을 해결하게끔 할 정도면 까마귀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소리였다. 은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가자.”
은정은 호영에게서 아이를 받아서 고쳐 안았다. 다른 곳을 살피기 전에 아이를 센터에 데려다주어야 했다.
***
까마귀의 본관은 생각보다 뜬금없는 곳에 있었다. 시내 번화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있는 곳. 간판이 달려 있지 않은 신식 건물.
누군가의 집인지 사무실인지 알 수 없는 건물은 딱 봐도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특별히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았다.
도움을 주겠다고 한 여자의 말에 따르면 열성 신도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이었다.
민재는 건물 앞을 살폈다. 누가 지키고 있으려나? 가까이 다가서려는 민재를 지환이 가로막았다.
“왜.”
“제가 먼저 가볼게요.”
지환의 표정은 비장했다. 민재는 지환의 얼굴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환은 앞으로 몇 걸음 가다 도로 돌아왔다.
민재는 얼마 전 지환이 두려움을 토로했던 일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막상 들어가려니 공포심이 드나?
민재는 그냥 자신이 먼저 갈 테니 따라오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지환이 민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선배님은 뒤돌아서 뛰세요.”
허. 민재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갔다. 민재는 가볍게 지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 지환이 작게 신음했다.
“까불지 마라.”
민재가 문고리를 잡았다.
“선배님, 안 돼요!”
당황한 지환은 빠르게 민재보다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문도 제대로 단속 안 하나? 민재는 생각했다.
“아무도 없네요.”
지환은 여전히 경계 태세였다. 민재는 지환이 혼자 경계하게 두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1층은 꽤 멀끔했다. 평범한 로비 같았다.
“본관의 예배당은 3층에 있어요.”
여자의 말을 떠올리며, 민재는 3층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신도가 도로로 나갔다고 하더라도 몇몇은 남아 기도를 하거나 의식 같은 걸 치를 수도 있었다. 지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민재의 옆에서 붙어서 걸었다.
두 사람은 3층에 커다란 강당 같은 공간에 들어섰다. 천장이 높게 트여 있었다. 정면 중앙부에는 흰색 아치형 구조물과 교단이 있었다. 뒤쪽에는 긴 벽면을 다 덮는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교단 옆에는 실제에 가까운 까마귀 모형이 서 있었다.
민재는 가까이 다가가 모형을 살폈다. 모형은 높은 천장과 이어진 검은 철사 같은 것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깃털과 새의 눈알까지 정교하게 묘사된 모형이었다. 실제와 매우 흡사했다.
정말로 아무도 없다고? 이상했다. 일부러 이 공간을 비운 것 같았다. 아니면 일제히 무언가를 위해 움직였거나.
교주가 사라지기 전 무언가 남기고 갔나? 아니면 다른 선동자가 있나? 민재는 강당에서 나와 복도를 바라보았다. 4층짜리 건물이니 아래층과 위층 쪽을 더 살펴보면 될 것 같았다.
“야, 네가 아래층 좀 보고 와. 내가 위층 좀 살필게. 자료나 의심될 만한 거 있으면 바로 나 불러.”
“같이 가요.”
“아니….”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왜 해. 라는 말을 하려던 민재는 입을 다물었다. 지환은 절대 민재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민재의 작업복 옷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민재는 한숨을 삼켰다. 어차피 불안해하는 놈을 혼자 보내봤자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할 터였다. 한시가 급하니까 그냥 달고 다녀야겠다. 민재는 4층으로 향했다.
서재처럼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공간과 작은 방들이 있었다. 방 안에는 이부자리가 개어져 있기도 했다. 컴퓨터는 전원을 켜 살펴보았으나 이미 모든 자료가 삭제되어 있었다.
2층은 식당과 샤워 시설이 있었다. 그 모든 공간이 깔끔했다.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있으나 짐은 없었다.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어? 선배님, 여기 이런 게 있어요.”
지환은 교단 아래쪽에 살짝 삐져나와 있던 종이를 빼서 민재에게 내밀었다. 전단지였다. 까마귀 사진과 일몰 사진, 아마도 신으로 보이는 인간의 형상-그림자처럼 인영만 보이게 해놓았다- 이미지들이 조악하게 조합되어 있었다.
디자인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인간이 상징성 있는 것들을 아무 위치에나 욱여넣은 것 같았다.
-까마귀는 신의 전언을 가지고 금빛 물결로 뛰어든다.
문구는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들은 적이 있는 말이었다.
민재는 전단지 뒷면을 살펴보았다. 뒷면에는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약도라고 하기에도 정보가 빈약한 그림이었으나 형태가 지도에 가까웠다.
중간중간 물이 흐르고 있고 몇몇 곳에 빨간색으로 엑스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엑스 표시가 그려진 곳에는 아치형 기호가 있었다.
도시의 중심부를 타고 흐르는 강과 그곳에 있는 다리인 것 같았다. 신의 전언이라는 것이 실행되는 곳이라는 건가? 민재는 생각했다. 전언이 뭐지? 금빛 물결은?
민재는 교단 뒤쪽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하늘이 붉고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선배님?”
지환이 의아한 목소리로 민재를 불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에스퍼 전원 인력 배치 다시 한다. 내가 지시한 장소로 최대한 빨리 이동할 것.
씨발. 이 중에 어디지? 여기 전부 다? 뭘 하려는 거지? 민재의 머릿속이 뒤엉켰다.
지환이 민재의 손을 낚아채서 잡아당겼다. 그제야 민재는 자신이 머리를 스스로 쥐어뜯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디로 갈까요?”
지환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