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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윤 - 히어로는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 (50)화 (5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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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은 아이들이 있는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얘들아 안녕~”

은정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자리에 눕거나 앉아 은정을 흘깃 바라보았다. 어떤 때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사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그러지 않기도 했다.

아이들은 은정의 인사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서연이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왔어?”

서연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 좋아? 은정이 입 모양으로 물었다. 서연은 코를 살짝 찡그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좋다는 의미였다.

센터에 도착한 뒤, 아이들은 모든 에스퍼들과 동일하게 가이딩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칩을 손목에 심었다. 덕분에 가이딩해 줘야 하는 타이밍을 잡기는 수월했다.

오랫동안 상태 이상으로 버텨온 아이들은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갔는지 수치가 조금 불안정했다.

은정은 서연의 품에 안긴 아이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의 등급은 C였다. 어둠을 크게 만들거나 구역을 형성해서 잠시 적의 시야를 가리거나 다른 시공간을 생성해 낼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었지만 등급이 높지 않았다.

더군다나 능력 조절을 할 줄 몰라서 자꾸 자신도 모르게 능력을 사용했다. 어둠이 저렇게 새어 나오고 나면 가이딩 수치가 확 떨어졌다. 그래서 서연이 안은 채로 계속 가이딩을 주입해 줘야 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은정은 아이들도 걱정이 되었지만 서연도 걱정되었다. 은정은 A급 가이드로 실력도 역량도 좋은 편이었지만 계속해서 무리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모든 아이의 가이딩이 안정되고, 잠들 때까지 둘은 아이들의 방에 머물렀다. 아이들의 머리맡에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알람을 울릴 수 있는 버튼이 달려 있었다. 버튼과 알람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두 사람은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

“오늘 나는 이 안에서 잘게.”

서연이 말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너무 피곤해 보였다.

“괜찮겠어?”

“응, 너는 들어가. 너까지 안에 있으면 나 더 기 빨려.”

서연의 말에 뭐라 말을 하지도 못하고 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바람을 쐴 겸 은정을 배웅해 주겠다며 1층으로 향했다.

“서연아.”

은정이 서연을 불렀다. 잠시 망설이던 은정은 자신이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을 했다.

“…불안하지 않아?”

“응? 뭐가?”

“아이들 말이야. 수치가 너무 불안정하잖아. 아직 어리니까 능력 조절도 안 되고. 폭주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하지 말걸. 은정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이들을 핑계로 서연을 떠보고 싶었던 마음을 서연이 알아챌 것만 같았다.

은정은 서연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과거에 내내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칭하는 ‘괴물’ 같은 자신을 어느 순간 서연이 무서워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할 수 있으니 아이들을 돌보는 걸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음,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응?”

“폭주 말이야. 내가 잘 관리하면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서연의 얼굴은 다정하면서도 단단했다.

“…그렇구나.”

서연이는 정말 따뜻하고 강한 사람이구나. 은정은 생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연의 말이 마음 언저리에 가라앉았다.

‘관리’와 ‘막아낸다’는 말. 그 말은 가이드의 말이었다. 이따금 은정은 서연이 굉장히 ‘가이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연은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폭주라는 것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은정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나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위험이자 슬픈 일이었고, 서연에게는 막아내고 처리해야 하는 일에 속했다.

결국 목표는 같지만 진행 과정에서 가이드와 에스퍼의 입장 차이들을 목격하며 자라온 은정은 마음이 조금 쓰렸다. 그리고 자신을 선택해 준 서연에게 다시 미안해졌다.

“…고마워.”

은정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서연은 늘 그렇듯 다정한 미소로 은정을 배웅했다.

***

민재는 회의실 문 앞에서 뒤를 돌아 지환을 바라보았다.

“이게 맞나….”

“네?”

심란하다. 중얼거리며 민재는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시위 현장에서 연행을 빌미 삼아 구조했던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시위가 있던 날, 민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여자는 막사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민재는 자신이 까마귀를 쫓고 있다는 사실만 알려준 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여자는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센터를 찾아왔다. 불안함에 못 이긴 여자는 자신의 아이가 있는 메디컬 센터에 갔다가 혼자 버려진 아들을 발견했다고 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아 둘은 안전히 구조되었다. 다만 아이는 센터 내 시설에 속하게 되었다.

여자는 민재가 다친 아이를 치료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해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민재는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자주 면회를 오시라고 말하면서 센터 근처의 숙소를 잡아두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걸 옆에서 지켜봤던 지환이 자신도 아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쨌든 여차저차 해서 잠복도 같이 했었으니까 같이 들어가긴 하는데….”

“네!”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진짜 명령이야.”

“네!”

“그리고 이 안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로 발설해선 안 돼. 알겠어?”

“네.”

지환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내쉰 민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단정하게 인사하는 민재를 보고 여자는 몸을 일으켜 마주 인사한 뒤 앉았다. 지환은 웃으며 인사하고는 민재의 옆자리에 앉았다.

민재는 챙겨온 녹음기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은 어디에 사셨나요?”

“xx동이요.”

여자가 말한 곳은 민재가 잠복했던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럼 종교 활동을 하러 가는 장소는 어디였나요?”

“xxx동이요.”

그곳도 민재가 찾아갔던 곳은 아니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까마귀는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거긴 단순히 종교단체가 아니에요.”

여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면 상태가 좋아진다며 종교 활동 쪽으로 회유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쪽 신도들이 후원하는 믿음직한 메디컬 센터로 연결시켜 준다고 한다.

아이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에 젖은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계속해서 종교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메디컬 센터에서는 이상한 약을 처방해 주고 한동안 통원 심리치료를 하는데 이때 애들이 증상이 완화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가이딩 약을 몰래 처방해 주는 모양이군. 민재는 생각했다.

그여자는 그 뒤 아이에게 무슨 검사를 한다고 했는데, 그 뒤로 상태가 심각해지며 입원을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그 뒤는 뻔한 수순이었다.

“한, 한 곳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그 의사라는 사람이 들고 있는 차트를 훔쳐본 적이 있는데 구역만 네 곳이 있었어요.”

여자는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나는 것은 모조리 말해주었다. 4곳이라. 그건 쓸모가 있었다.

“메디컬 센터는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마지막으로 갔을 때 거기 의사가 계약 기간이 다 되어 이전할 거라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알려드릴 수 있어요!”

민재는 여자가 알려준 정보들을 메모했다.

“…혹시 지금 말씀하신 걸 피해 증언으로 후에 사용해도 될까요?”

“네, 동의합니다.”

녹취가 끝나고 녹음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민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네? 네, 물어보셔도 됩니다.”

여자는 잠시 망설였다. 질문을 고르는 듯했다.

“센터… 교육 환경은 그러니까… 괜찮은… 아니.”

여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밥은 잘 나오나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민재는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네, 그럼요. 여기 밥 엄청 맛있습니다.”

지환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여자가 조금 안심한 듯한 얼굴로 웃었다.

“네. 면회 자주 오세요, 어머님. 오고 가시면서 저랑 만나면 인사도 해주세요.”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사 같은 싹싹한 말투로 지환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웃으면서 눈물을 닦았다.

***

아이들이 구조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민재는 이렇다 할 반응이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뉴스 특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이비종교 단체 까마귀의 교주로 추정되는 사람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이 남성의 가명은 ‘크로우’로 자신이 신의 전언을 전하는 까마귀의 현신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실종 신고에 접수된 사진이 이전 종교 활동 사진으로 배포된 사진의 얼굴과 일치합니다.]

[경찰 측에서는 신고를 한 사람이 스스로를 신도라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신고를 한 신도는 히어로 센터가 선량한 신도이자 신민인 자신들의 교주를 암살하려 했다며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검찰 측에서는 신고자의 말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되, 교주의 도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쪽 입장만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속보입니다. 종교단체 까마귀의 예언을 실행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도로를 점거했습니다. 대로변의 차들이 정체되고 승차한 시민들이 위협을 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종이라고? 민재는 스크린에서 나오는 뉴스 화면 속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른 방식으로 위협이나 테러를 해올 줄 알았는데 꽁무니를 빼다니. 이러면 실체 파악은 물론 아직 소재 파악이 안 된 다른 아이들의 구조 작업도 어려워질 것이다.

로비로 좀 가자. 민재의 말에 지환이 두 팔을 내밀었다.

센터 복도에 비상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기동이 빨라 구조 작업에 우선 투입되는 에스퍼들이 복도와 로비로 몰려들었다.

지환과 함께 날아 로비에 착지한 민재는 손목에 있는 시계를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비상 상황이다. 사이비종교 교주가 도주 중인 상황으로 추측. 신도들이 거리에서 난동을 부려 교통 상황이 좋지 않다. 2팀부터 5팀까지는 내가 발송한 위치로 이동한다. 6팀은 센터 내 일반인의 안전을 우선하며 남는다.”

“네!”

“1팀은 나와 따로 간다. 이상.”

에스퍼들은 일사불란하게 로비를 나가 팀끼리 자리를 잡았다. 2팀부터 순서대로 위치를 확인한 뒤 팀 내 배치된 비행 에스퍼들과 함께 날아올랐다.

모든 팀이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민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1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 교주의 생포를 우선으로 움직인다. 내가 보낸 위치로 각각 찢어져서 움직이되 내가 연락할 시 바로 합류할 수 있도록 경계하고 있어.”

“네.”

은정과 호영이 날아올랐다. 민재도 지환과 함께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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