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민재는 자신의 손을 꽉 붙들고 있는 그 손을 잡아당겼다. 밭에서 무가 뽑히듯 중년의 여성이 시위대에서 휙 빠져나왔다. 민재는 손을 살짝 꺾은 다음 시위대가 잘 볼 수 있게 내밀어 보였다.
“잠시 같이 가주셔야겠네요.”
무감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몸을 살짝 움츠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민재는 여자와 함께 막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후배들을 다시 현장으로 내보냈다.
“지금부터 내가 사인 줄 때까지 이 안에 아무도 들어오지 마.”
경고까지 해준 뒤 민재는 여자에게 막사 안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여자는 막상 따라오고 나니 무서운지 주춤거리며 앉았다.
민재는 그녀의 옷차림을 살폈다. 여자는 목이 살짝 늘어난 티에 발목까지 오는 기장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깔끔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신념을 드러내는 장소에선 있어 보이는 행색으로 나타나는 신도들과 조금 대비되는 구석이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선생님?”
민재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물이라도 건넬까 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이상할 것 같았다.
“제 아이를 살려주세요.”
다 쉬어 있는 목소리였다. 여자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여자는 갑작스레 몸을 앞으로 숙이며 민재 쪽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민재는 순간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여자는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듯 그저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까처럼 민재의 손을 잡으려는 듯 보였다. 여자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민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몸을 숙여 여자와 눈을 맞추었다. 지금 섣불리 손을 잡으면 원하는 바를 다 들어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아이가 있으시군요.”
“처음에는 그냥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그곳에 가면 다 나을 수 있다길래…. 그래서 갔어요. 옆 학교 학부모도 자기 애를 데려갔는데 나았다고 그러더라고요.”
바람잡이다. 아마 그 학부모의 자식은 에스퍼가 아닐 것이다. 설사 본인은 정말로 그렇다고 믿을지라도 그건 발현이 아니라 가벼운 열병 정도였을 것이다.
“몇 번 데려갔을 때는 애가 좀 좋아지나 싶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심각해졌어요. 그러더니 그 사람들은 더 강력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서 아이를 데려가고는 저한테 잘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아이가 볼 때마다 여위고… 아프다고 우는데….”
“…….”
“아이 얼굴을 보려면 계속 신도로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더 열심히 믿는 척을 하면 종종 애를 보여줬단 말이에요. 애가, 계속 아파하는데…. 그 나쁜 새끼들은 나아지고 있다고….”
여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선생님. 민재가 나지막하게 여자를 불렀다.
“도와주세요. 당신들은 원래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기관이잖아요. 네?”
우리 애가 죽을지도 몰라요. 그럼 저는 못 살아요. 여자는 민재가 어떻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계속 말을 이었다. 비슷한 의미의 말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민재는 망설였다. 이런 약속은 덥석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보가 너무 없었다. 이런 경우 구하지 못하게 된다면 민재가 감당해야 할 여파가 너무 컸다.
거기다 구해낸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이 여자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나라에 아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까마귀를 찾아갔을 테니까.
그리고 이 여자가 까마귀 쪽에서 얼마나 세뇌를 당한 상황인지도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연기이고 그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걸지도 몰랐다.
“선생님.”
민재가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계속하던 말을 멈추었다.
“저는 선생님의 자녀분처럼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계속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라는 종교단체에서 정보를 빼내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네….”
“선생님은 까마귀에서 얼마나 열성 신도로 활동하셨나요?”
민재는 패를 던졌다. 아이를 위한다는 말이 정말인지 떠보는 동시에 거래를 제안하는 질문이었다. 의미를 알아들은 것인지 여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
“실장님! 나와서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막사 앞에서 다급하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민재는 밖으로 나와야 했다. 잠시 여기 계시라는 말을 남기고 움직이는 민재의 팔을 여자가 다시 붙들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다 말씀드릴 수 있어요. 진짜 뭐든지 할게요!”
바로 핵심 정보가 튀어나오진 않았으나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이진 않는 대답이었다.
민재는 알겠다는 답을 남기고는 시위대가 난동을 피우는 현장으로 향했다. 자신들의 일행 중 한 명을 연행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 과격해진 것 같았다. 일반인 경찰이 민재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민재는 무시했다.
“우리 신도를 어떻게 했지?”
“이건 탄압이야!!!”
민재의 얼굴이 보이자 사람들은 더 흥분했다. 퉤. 누군가 침을 뱉었다. 민재의 발치에 끈적한 액체가 떨어졌다. 씨발. 민재는 욕을 삼켰다.
“에스퍼에게 상해를 입히신 관계로 경찰 측에서 조사를 받으시고 귀가하실 예정입니다. 여러분도 계속해서 이렇게 과격하게 행동하시면 조사를 받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썅것들! 나도 잡아가라! 자, 어디 잡아가 봐라!”
민재의 말이 끝나자 한 남자가 수갑이 채워진 듯한 모양새로 두 손을 모은 다음 앞으로 막 내지르며 걸어 나왔다. 남자는 주먹을 꽉 쥐고는 두 팔을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억!”
그 주먹에 일반 경찰 한 명이 광대 쪽을 얻어맞고는 몸을 움츠렸다. 바로 옆에 있던 경찰은 동료의 신음에 눈을 크게 뜨고는 팔로 가드를 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만하시라고요!”
“뭐, 이 자식아? 너도 사람이면서 같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썩을 것아!”
사람들이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 좆같네, 진짜. 민재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흥분한 경찰을 잠시 뒤로 빼고 가드에 합류했다.
“어억!! 나 죽는다!! 아이고… 이 개새끼들이 사람 죽인다!”
그러자 좀 전까지 주먹을 내지르던 남자가 갑자기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발목이 살짝 돌아가 있었다. 인파에 밀려서 발을 접질린 모양이었다. 거의 골절인데. 민재는 생각했다.
한 박자 늦게 고통이 밀려드는지 큰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말을 더 있지 못하고 숨넘어가게 비명만 질러댔다.
한숨을 내쉰 민재는 근처의 에스퍼 몇에게 손짓했다. 에스퍼들이 달려와 남자를 안아 올려서 세이프티 라인 안쪽으로 살짝 옮겼다.
“많이 아프세요?”
“그럼 아프지, 이 개새끼야!”
민재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카메라 몇 대가 보였다. 또 물어뜯기겠네. 민재는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민재는 남자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선생님, 제가 지금부터 치료를 해드릴 거예요. 응급처치니까 나중에 병원 꼭 가보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하지 마!!! 나한테 뭔 짓을 하려는 거야!”
남자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근방에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민재와 남자 쪽으로 쏠렸다.
“우선 발부터 제자리로 옮길게요. 뼈가 제대로 붙어야 해서.”
민재는 남자의 종아리와 발을 잡고는 돌아간 발을 제자리로 옮겼다. 남자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민재는 빠르게 힐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욕설과 고함 소리가 고개를 숙인 민재의 뒤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 많은 소리가 뒤섞여 한 사람의 말 같기도 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처럼 들리기도 했다.
퍽.
갑자기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민재의 머리 위에는 깨진 달걀 껍데기가 붙어 있었다. 민재는 광대를 타고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점액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 달걀이 날아왔다. 부러 썩은 것을 골라왔는지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몇몇은 작은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민재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고통이 있으신가요?”
물어보는 민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민재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흠칫 몸을 떨더니 시선을 피했다.
“괘, 괜찮아요.”
“네.”
민재는 몸을 일으켰다.
“이분 대열 밖으로 모셔다드려. 구급 대원 있는 쪽으로.”
민재가 다른 에스퍼에게 지시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민재의 눈치를 보던 에스퍼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더니 남자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민재는 몸을 돌려 막사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 무언가 민재의 무릎 뒤를 누르는 바람에 민재의 몸이 뒤로 넘어지듯 휙 젖혀졌다. 민재는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반사적으로 팔꿈치로 명치를 치려고 하던 민재는 벌게진 눈으로 이를 악물고 있는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잠시만요, 선배님. 잠시만요.”
지환은 민재를 공주님 안듯 들어 올리더니 막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민재의 몸에 묻은 것들이 지환의 옷에도 묻었다. 바로 위에서 쏟아지던 소리들이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민재의 젖은 머리칼 위로 지환이 내쉬는 숨이 내려앉았다. 소름이 돋아 민재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내려놔.”
“잠시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왜… 왜….”
이 꼴로 막사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지환은 민재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막사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민재를 세우고는 막사 앞에 여분으로 놓여 있는 구급상자를 뒤져 거즈를 꺼내 왔다.
“어….”
지환은 어디부터 닦아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거즈로 민재의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환이 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지환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턱도 덜덜 떨렸다. 죄송해요. 지환이 나지막하게 사과했다. 민재는 지환의 목덜미에 묻은 썩은 달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대로 복귀하라니까 왜 여길 와, 그러니까.”
“…….”
“여기도 기자들 오는데. 또 일 커지면 어떡할래.”
네가 왜 우냐고 묻는 대신 민재는 타박을 했다. 지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재에게 묻은 것들을 닦아내는 데 여념이 없는 것 같았다.
민재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되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기면 되는데 지환 때문에 지금 자신이 당한 일이 퍽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야, 결국 저런 사람들도 위험할 땐 최선을 다해 구조하는 게 네가 그렇게 노래 부르던 히어로의 일이야. 너 이런 일로 죽상 하면 히어로 못 한다.”
민재는 밀려드는 기분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아무런 말이나 내뱉었다.
“그럼 선배는요?”
“…뭐?”
민재의 어깨에 묻은 것을 자신의 옷소매로 벅벅 문지르던 지환이 물었다. 목소리가 거칠었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민재는 지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재의 어깨를 노려보던 지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은 누가 지켜요?”
민재는 그런 멍청한 질문은 처음 들었다. 장난치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환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다.
“하게 해주세요, 제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민재는 조금 전처럼 퉁명스럽게 대꾸하지 못했다. 지환의 눈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민재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