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시위는 대낮에 이루어졌다. 구름이 많이 껴 우중충한 회색빛을 띤 날씨였다.
지환은 그 구름을 바라보다가 위장용 차량에 탑승했다. 센터 측에서 한 번 잠입한 적이 있었으니, 예의 단체에서 어떤 방식의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을지 몰라 내린 판단이었다.
차 안에는 은정과 호영, 그리고 서연이 탑승해 있었다.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해 잦은 출장으로 현장 경험이 많은 이서연 가이드가 투입된 것이었다.
다소 좁은 골목에도 접근하기 쉽도록 소형차로 움직이기로 했기 때문에 지환은 운전석 뒷좌석에 타면서 몸을 조금 구겨 넣는 기분이 되었다.
“은정아, 의자 더 뒤로 해도 돼.”
“아냐, 괜찮아.”
그러나 정말 말 그대로 몸을 고이고이 접은 은정을 보고는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은정은 몸을 구기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운전대는 호영이 잡았다.
“…호영아?”
“죄송해요!”
평소 자신의 몸이나 운전하던 호영은 당연하게도 운전 실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은정은 호영의 이름을 불렀고, 호영은 울상으로 사과했다. 지환은 멀미 때문에 조용히 손으로 입을 막고만 있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까마귀 본거지 근방 골목에서 4명은 차 안을 벗어났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자 조금 살 것 같았다. 지환은 다른 팀원들을 빠르게 안내했다.
건물은 그대로였다. 제1팀과 서연은 입구 쪽을 지나쳐 건물 옆쪽에 모여 섰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조용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호영과 지환이 창문들을 살핀 다음 호영이 잠기지 않은 창문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고는 조용히 창문을 틀에서 뜯어낸 뒤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호영과 지환은 서연과 은정을 데리고 창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안쪽에 아무도 없었어?”
은정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위를 나갔나? 지환은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갔었던 비밀의 공간으로 다른 팀원들을 안내했다.
이상하게도 건물 안이 너무 조용했다. 제1팀은 이동하는 내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게….”
지환이 문을 열자 은정은 말을 하려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지환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도 사람은 없었다.
이래도 되나? 위험 상태인 아이들을 그냥 두고 시위에 나갔다고? 분노하던 지환은 6명 남짓하던 아이들이 3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연은 빠르게 움직였다. 비상용 가이딩 물약을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동시에 등을 쓰다듬는 방식으로 가이딩을 채워줬다.
호영도 빠르게 서연을 도왔다. 쓴 가이딩 약을 먹이고는 주머니에서 자연스럽게 사탕을 꺼내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지환은 공간 안쪽을 살폈다. 별다를 게 없는 공간이었다.
너무 늦었나? 나머지 아이들은? 지환은 약을 먹고 가이딩을 받아 조금 기운을 차린 듯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혹시 나 기억나?”
지환이 묻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같이 있던 다른 친구들은 혹시 어디 갔는지 알아?”
“…선생님들이 데려갔어.”
“선생님? 저번에 너희한테 물 뿌리던 사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선생님.”
모르는 사람이 데려갔다고? 왜? 어디로? 지환은 묻고 싶었으나 아이에게 그런 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생각에 잠긴 지환의 옷소매를 아이가 살짝 잡아당겼다.
“응, 왜? 어디 아파?”
지환의 물음에 아이는 꼭 쥐고 있던 한쪽 손을 펴 보였다. 작은 손안에는 가이딩 알약이 쥐어져 있었다.
“저기 누나가 주실 때 안 먹었어?”
지환이 놀라 묻자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주먹을 쥐었다.
“이거 준 형은 안 와?”
“응?”
“이거, 눈앞이 하얘지면 먹으라고 그랬는데. 그 전까지는 잘 참아야 한댔어. 안 먹었어. 그 형은 안 와?”
지환은 위험 상태의 아이들을 망설임 없이 쓰다듬으면서 무어라 말하던 민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는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폭주 위험에 놓인 아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갈 정도로, 폭주 직전 증상이 무엇인지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람은 죽음에 가까이 있었다는 것.
민재 선배는 처음 이곳을 맞닥뜨렸을 때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구나. 지환은 아이가 쥐고 있는 주먹을 감싸 쥐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갈 곳에 그 형이 있을 건데. 같이 갈래?”
“…….”
아이는 겁을 먹은 듯 작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자.”
호영이 3명의 아이를 안고, 지환이 서연을 안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은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창문을 다시 제자리로 끼워 넣은 다음 1층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1층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은정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나 모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서연과 호영이 차에 아이들을 태워 움직이기로 했다. 지환과 은정은 다소 어색하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지환은 두 팔을 살짝 벌려 안는 자세를 했다.
“이렇게 타시는 게 편하세요, 아니면 업히는 게 편하세요?”
“…너 선배 이렇게 안고 다녀?”
은정의 얼굴이 순간 이상하게 구겨졌다. 지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정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업힐게. 부탁해.”
지환은 조심스럽게 은정을 업고 날아올랐다. 은정은 그의 등에 가만히 업혀 있었다.
“괜찮으세요?”
“어… 야, 애들 원래 몇 명 정도 있었어?”
“…여섯 명 정도였어요.”
“나머지 애들은 어디로 데려간 거지? 그리고 남겨진 애들은 왜 남겨진 거지?”
은정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딱히 지환에게 묻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질문을 지환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네가 왔을 때는 거기 신도들 태도가 어땠어?”
“…좀 허술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애가 좀 이상해지니까 당황하는 것 같았거든요.”
조금 전 팀원들과 공간에 들어섰을 때 남아 있던 아이들은 상태가 많이 심각했다. 죄다 거의 실신 상태였다.
지환은 아이가 이상 반응을 보이자 다급하게 밖으로 향하던 신도를 떠올렸다. 혹시 그럼 남겨진 아이들이 버려진 건가?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디로 데려간 것일까.
“침입이 쉬웠던 이유가 있겠네.”
은정도 같은 것을 생각하는지 목소리가 어두웠다.
그럼 우리가 아이들을 구하러 갈 것을 예상했다는 건가? 간파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지환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시위대에 민재 선배님이 간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저 앞에 센터 입구가 보였다. 지환은 속력을 높여 센터 입구 쪽에 착지했다.
“선배님, 여기서부터는 혼자 센터 복귀하실 수 있죠.”
“…어, 그렇지. …근데 왜?”
땅에 내려진 은정이 당황한 듯 물었다. 지환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는 시위대 쪽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뭐? 야!”
은정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지환은 빠르게 날아올랐다.
***
“여러분! 지금 우리는 위기에 맞닥뜨렸습니다. 인권이 바닥에 처박히고 인간이 세상에서 배척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사람만이 세상을 구한다!”
“인간을 위하여!”
시위대의 함성은 우렁찼다. 평소에는 평범의 범주 속에 숨어 있던 자들이 광장에 모이면 돌연 목소리를 높이며 큰 물결의 일부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인간을 위하는 것 같았지만 듣다 보면 개소리에 불과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인간이 아닌 에스퍼’를 모두 척결하거나 노예로 만들어 ‘인간’이 평온한 삶을 영위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민재는 베이스캠프 겸 설치해 둔 막사 쪽에서 그 광경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보다는 덩치가 확실히 커진 것이 보였다. 정말 말세구나. 민재는 중얼거렸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까마귀 시위에서는 총 7명의 경찰 사망자가 나왔다. 저들의 시위는 생각보다 과격했다. 세이프티 라인을 침범하는 것을 물론이고, 주먹질과 발길질은 기본이었다.
그로 인해 현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시위에 육체 강화형 에스퍼와 경찰이 함께 팀을 이루어 시위 현장을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일반인인 경찰의 희생자를 줄이면서 과도한 진압의 형태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여차하면 그냥 에스퍼와 에스퍼 혐오 세력의 대결 구도로 밀어붙일 심산인 것도 보였다.
민재는 현장으로 출근하자마자 신신당부했다.
“때리면 맞아. 좀 빡치면 그냥 바닥을 뒹굴어. 그다음엔 빠져나와서 막사로 와. 절대 손 올리지 마라.”
“네!”
시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에스퍼들이 막사 안으로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민재는 다친 곳이 있으면 치료를 해주면서 잠깐 쉬게 한 뒤 에스퍼들을 복귀시켰다.
“세이프티 라인을 자꾸 이탈해요. 미치겠어요, 실장님.”
“저 새끼들 원래 저래.”
불평하는 후배들이 늘자 민재는 직접 밖으로 향했다. 시위대 코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추자 시위대는 더 날뛰기 시작했다.
“쓰레기 같은 놈!”
“죽어라!”
참나. 내가 뭘 잘못했냐. 민재는 심드렁하게 양손을 들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알립니다. 세이프티 라인 계속 침범하시면 시위가 일찍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민재 바로 앞쪽에 서 있던 경찰의 몸이 흔들리면서 대열이 깨졌다. 우르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민재는 경찰을 부축하면서 밀려드는 사람들을 몸으로 막았다. 그 과정에서 몇 번 발로 차였고, 민재는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괜찮으세요?”
민재가 묻자 창백하게 질린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시위대가 더 흥분할 터였다. 민재는 때를 봐서 몸을 뒤로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누군가 민재의 팔을 확 잡아챘다. 순간 주먹을 날리려던 민재는 최선을 다해 참았다. 상대는 일반인이었다.
“살려주세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민재의 얼굴 가까이에서 속삭이듯이 말한 것이었다.
민재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러나 민재를 향해 뻗어진 손이 너무 많았다.
수많은 손 가운데 작은 손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민재의 손을 잡아왔다. 일반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이었다.
그 순간 민재는 눈물에 젖은 눈과 마주쳤다. 제발. 입 모양으로 말하는 표정이 간절했다.
민재는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시위대가 격렬하게 달려드는 현장에서 자신이 오길 기다렸다가 잡아챘다. 우연인가? 아니면 함정인가?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더 많은 손과 발이 민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